앙굴마라경 제1권
[제석의 게송]
그때 하늘 제석(帝釋)은 모든 하늘 대중과 궁녀들과 권속들을 데리고 몸의 광명을 놓아 사위국을 비추면서,
앙굴마라가 부처님과 서로 힘을 겨루다가 힘이 꺾이매 마음이 돌변하여 굴복하고 귀의하여 참회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게송을 말하였다.
신기합니다. 10력(力)을 지닌 영웅이시여,
조복하고 다스리심을 견줄 수 없어서
항상 몸에 피를 온통 바르는
앙굴마라를 항복받으셨나이다.
단나(檀那)와 인다라(因陀羅)와
또는 아수라와 나찰이며
흉폭한 야차(夜叉) 귀신과
그 밖의 여러 흉악한 사람이며
나가(那伽)와 그리고 긴나라(緊那羅)와
힘이 센 가루라(迦樓羅)인 그들이
앙굴마라의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두려워하여 모두 눈을 감거든
하물며 인간의 왕으로서
그를 보고 겁내지 않겠습니까.
그가 처음 출생할 때
용과 귀신이 모두 떨었으며
여러 찰리족[刹利]들의
투구가 벗겨지고 칼이 떨어졌거든
하물며 인간의 왕으로서
그를 보고 겁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도 흉악한 그 업을
부처님께서는 모두 조복하시니
부처님의 힘이야말로 불가사의하며
지혜의 경지 또한 그렇습니다.
기이합니다. 앙굴마라여
깨끗한 계행에 잘 머무르고
범행(梵行)이 아주 청정하여
마치 순금의 산과 같나이다.
기이하게도 제가 오늘에
좋은 법의 이익 잘 얻었사오니
저는 앙굴마라가 입을 옷을
지금 곧 보시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가엾이 보시고
원컨대 저를 위해 받아주시옵소서.
지금 앙굴마라에게
사문의 법복을 보시하오니
그가 위대한 비구이기 때문입니다
세존께는 잘 살피시옵소서.
[앙굴마라와 제석의 대화]
그때 제석이 앙굴마라에게 말하였다.
“이 대사(大士)께서는 이 하늘 옷을 받아 법복을 만드소서.”
앙굴마라가 제석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모기 같은 작은 벌레와도 같은가? 내가 어찌 신심이 없는 보시를 받겠소?
그대는 어찌도 탐욕의 나귀와 같은가? 나고 죽음인 온갖 고통의 기나긴 흐름을 건너지 못하여 마음이 벌거숭이가 된 이로서 어떻게 옷을 보시할 수 있겠소?
그대는 마음이 벌거숭이가 되었다고 알아야 하니 어떻게 남에게 값진 옷을 보시하겠는가?
마치 어느 국왕이 천 명의 역사(力士)와 상대하였다면 원수 도적을 보기도 전에 벌써 땅에 쓰러질 것인데 어떻게 저 적국의 대왕과 천 명의 역사와 함께 싸울 수 있겠소?
이와 같이 내가 값진 옷을 받는다면 어떻게 억이나 되는 번뇌의 마군과 자성(自性)의 마군을 항복받겠는가? 나는 한량없는 번뇌를 끊어 없애야 하며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는 열두 가지 두타(頭陀), 즉 사문이 행할 법을 당연히 배워야 하오.
그대는 천왕(天王)이 아니고 날 적부터 눈먼 이와 다름없도다.
그대는 하늘제석으로서 어떤 것을 흉폭한 악업이라고 하는지 분별할 줄을 모르니 그대는 바로 모기와 같소.
어떻게 내가 흉악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가?
아, 제석이여, 그대는 앙굴마라가 바로 흉악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으니, 또 어떻게 불법의 바른 이치를 알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문이 막 출가하여 값진 옷을 입었던가? 그대는 도무지 출가한 이의깨끗한 법을 알지 못하는구려.
아, 제석이여, 그대는 바로 여래의 바른 법 밖에 있는 사람이로다.
여래의 상수 제자[上座] 가섭(迦葉)은 마니 등의 8만 가지 보물 창고가 있으며 그 밖의 보배 갈무리가 한량 없고 또 그 밖의 갖가지 값진 의복이 있는데도 그는 침 뱉듯이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사문의 법을 행하며 열두 가지의 두타를 받아 고행하였소.
그는 무엇 때문에 값진 옷을 입거나 방일한 행동을 하지 않소?
상좌 가섭은 갖가지 맛있고 감미로운 음식을 떠나고 고기 맛을 떠나서 고기 먹지 않는 법을 받아 지니고 닦으며 집집마다 걸식을 하는데 처음이나 끝이 항상 한결같고 괴로움과 즐거움에도 변함이 없었소.
걸식하는 마당에는 가지각색의 사람이 있어서 혹은 ‘없다’고 말하며 혹은 꾸짖기도 하는데,
모두 ‘좋습니다. 잘 계시오’라고 대답하고서 떠나가며, 마음이 쏠리거나 움직이지 않았소.
만일 어떤 이가 ‘있다’고 말하여도 탐내거나 기뻐하지 않고 역시
‘좋습니다. 잘 계시오’라고 대답하고서 그것을 받아 가며 마음이 쏠리거나 움직이지 않소.
많은 재물로 여러 스님들에게 보시하면 미래의 세상에도 여러 스님들이 수용하게 될 것이며 낱낱 보배 갈무리가 다하지 않으리니
무엇 때문에 스님에게 받들어 보시하거나 스스로 아귀에게나 빈궁하고 고독한 걸인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소.
제석이여, 사문의 법이란 많이 저축하지 않으니 소금과 기름조차 저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소. 이것이 바로 사문의 법이오.
종들과 전택을 사고 팔고 하는 청정하지 못한 온갖 것은 사문의 법이 아니라, 재가인의 법이며, 만일 온갖 청정하지 못한 물건을 보시하거나 받는 것도 모두 다 그와 같소. 그대는 크게 어리석은 무더기니 좋은 이삭을 해치는 피ㆍ잡초 따위를 제거하는 것처럼 이와 같은 무리들을 지금 조복해야겠소.
내가 죽여서 손가락 꿰미를 만든 그것들은 모두 법을 파괴하는 중생들이요, 한 사람도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라고는 없소.”
그때 제석은 앙굴마라에게 말하였다.
“살해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법입니다.
여래께서는 일체 중생을 아들[羅睺羅]과 같이 평등하게 보시니 어찌 나쁜 사람 조복하는 것을 용납하겠습니까.”
앙굴마라는 말하였다.
“해치는 것과 해치지 않는 것의 차이를 그대가 어떻게 알겠는가?
요술 부리는 이의 수단을 딴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은 보살의 요술과 같은 경지를 불법 밖에 있는 그대가 어떻게 잘 알겠는가?
해치는 것과 해치지 않는 것에 각기 두 가지가 있나니,
성문(聲聞)의 해치지 않는 것과 보살의 해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작은 모기와 같은데 어찌 두 가지의 해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겠소.
그대의 경계가 보살의 경계와 다른 모양은 마치 모기의 날개로 허공을 덮는 것과 같소.
이를테면 사문이 나쁜 사람들에 붙잡혔다면 그때에 있던 대중들은 그를 응당 수호해야 하는가?”
제석이 대답하였다.
“당연히 수호해야 합니다.”
앙굴마라가 물었다.
“만일 수호하다가 죽으면 누가 죄를 얻겠소?”
제석이 대답하였다.
“깨끗하여 해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죄를 얻지 않습니다.”
앙굴마라가 말하였다.
“이와 같이 모든 나쁜 무리들을 조복하여 만일 그로 하여금 죽게 하였으나 수호한 사람은 죄를 얻지 않는다면, 응당 한량없는 수승한 공덕을 얻을 것이다.
이와 같아서 해치는 것과 해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알기가 어려우니 이것을 보살의 해치지 않음이라 한다.”
앙굴마라가 물었다.
“만일 용한 의사가 병든 사람을 치료하느라 칼 따위로 수술하다가 환자가 만일 죽었다면 의사에게 죄가 있겠습니까?”
제석이 대답하였다.
“죄가 없소. 저 용한 의사는 이익을 많이 주었으며 해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오.”
앙굴마라는 물었다.
“그와 같아서 모든 무리들을 조복하여 만일 그들이 죽게 되었다면 죄가 있습니까?”
제석은 대답하였다.
“죄가 없소. 응당 한량없는 수승한 공덕을 얻을 것이니 해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오.”
앙굴마라는 물었다.
“만일 제자가 스승을 따라 배우다가 그 가르침으로 인하여 죽었다면 스승에게 죄가 있겠습니까?”
제석은 대답하였다.
“죄가 없나니 해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오.”
앙굴마라는 물었다.
“만일 나쁜 무리들이 위덕이 있는 중생과 현명한 중생을 보고 죽었다면 그는 죄가 있겠습니까?”
제석은 대답하였다.
“죄가 없나니 해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오.”
앙굴마라는 말하였다.
“그러므로 제석이여, 그대는 착한 업과 나쁜 업의 차이를 알지 못하며 사문과 사문이 아닌 것의 차이를 알지 못했소. 바른 법을 파괴하는 모든 나쁜 무리들을 응당 조복해야 하오.
저 상좌 가섭과 같은 80의 위대한 성문과 나아가서는 억이(億耳) 성문들도 모두가 많은 보배 갈무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바른 법에 들어와서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을 아는 것이오.
비구로서 어찌 값진 옷을 입겠소. 이들은 모두가 머리털을 깎고 교만함을 없애고서 외로이 노닐며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여 생활하고 괴색(壞色)의 옷을 입는데 이러한 비구들이 어찌하여 방일하겠소.
그들은 항상 추위와 더위와 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고 발은 항상 먼지를 밟는 것이 들사슴과 같으며, 조그마한 계율도 어기지 않는 것이 검은 소가 그 꼬리를 사랑하는 것과 같으며, 수호하여 놓지 않는 것이 까마귀가 그 새끼를 품은 것과 같소.
코끼리가 만일 어금니가 부서지면 다시는 볼 모양이 없는 것과 같으니 그들이 어찌 값진 옷을 필요로 하겠소.
그대는 바른 법의 밖에 있는 사람이니 삼가 다시는 말하지 마시오. 저 외도와 전타라(旃陀羅)의 무리들이 필경 2생(生)의 무리에 들지 못하는 것과 같이, 그대도 그와 같아서 바른 법 밖에 있는 전타라이오. 그대는 작은 모기니 잠자코 말하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