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론 상권
4. 진왕에게 올리는 서장
사문 법림 등이 아룁니다.
소승[琳]이 듣자 하니, 정성이 지극하면 그 소리가 애처롭고 이치가 바르면 그 말이 곧다 합니다.
궁자(窮子)는 그 말이 참되기를 바라고 노인(勞人)은 그 일을 노래하기 원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업(大業:隨나라) 말년에 천하가 환난을 입어 하늘과 땅이 혼탁해지고 사해(四海)가 들끓었으니, 풍파가 휘몰아쳐 흙먼지만 휘날리고, 언덕마다 불이 붙고 들녘마저 타는지라, 오마(五馬)는 두절되고 수로(水路)조차 막혔었습니다.
일곱 살의 동자는 구덩이를 다지며 울부짖는데, 봉화를 피울 때마다 급한 격문[羽檄]이 다투어 달렸고 변방의 요새에 근심만 늘었습니다. 전쟁준비로 쉴 틈도 없어서, 도는 쇠하고 덕은 어지러워 마침내 국운(國運)이 다하고 명수(命數)가 막혔습니다.
조세는 갈수록 늘어나 머릿수마다 가렴(苛斂)을 붙이고, 송장이 쌓여 언덕을 이루자 피가 냇물처럼 흘렀습니다.
산 사람이 삶을 즐기지 못하고 만물 또한 생장을 그쳤는지라, 갈 곳도 없어져 죽더라도 해골 거둘 자리마저 없었습니다.
백성은 괴롭기가 거꾸로 매달린 듯하였고 만국(萬國)은 곤경에 빠져 임금조차 없어졌었는데, 어떻게 법륜(法輪)의 울림을 끊어 정교(正敎)를 능멸할 수 있겠습니까?
성상(聖上)께서 백성을 돌보는 마음을 내어 하늘[昊天]의 명(命)에 순응하신다면, 마침내 의로운 깃발을 다시 세워 천하를 다스리게 될지니, 이러한 때라야 도속이 뇌덕(賴德)을 입게 되고 중화(中華)와 이융(夷戎)도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
천지가 화합하여 팔풍(八風)이 통하고, 음양을 헤아려서 사계절이 순조로워졌습니다.
방국(邦國)을 화기(和氣)롭게 하시고 인륜을 펴시니, 공덕은 보천(補天)을 덮고, 신령함은 입극(立極:지극한 도를 세움)과 짝할 만합니다.
단비가 내려 만물을 기르고 일월을 열어 빛을 내리시며, 성명(聲明)으로써 발동하시고 문물(文物)로써 기록하시니 그 은덕이 갈대까지도 적셨고, 물고기와 벌레까지도 흡족히 베푸셨습니다.
바야흐로 구주(九疇)를 거듭 밝히고 오교(五敎)를 다시 펴서, ‘석거(石渠)의 학(學)’을 일으키고 ‘상서(庠序)의 풍(風)’을 널리 편다면, 멀리는 헌희(軒羲)에 빛나고 가까이는 문경(文景)에 버금갈진대, 그 공업이 영구히 융성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젓고 발을 구르며 춤추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가마히 부혁이 상주한 일을 들여다보면, 미처 읽기도 전에 오장[五內]이 갈라지고, 소리내어 읽으면 육정(六情)이 찢어집니다.
슬프게도 삿된 말이 정도(正道)를 현혹시키고 마귀의 말이 진리를 누르는 것이 아래의 미욱한 이들조차 듣기 거북한데, 하물며 윗자리의 천총(天聰)을 범하고자 함이겠습니까?
부혁도 벼슬아치인지라 물망을 얻고자 하였을 텐데, 어찌 인정을 멀리하여 무고한 악업을 지을 리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언사가 비루하고 사리가 분명치 못하여 선왕의 전모(典謨)를 욕되게 하고 인륜의 풍궤(風軌)를 상하게 하였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대개 말이 없는 사람이 말을 하면 반드시 적중한다고 했습니다.
공자도 “한 마디 말이라도 이치에만 맞으면 천하가 돌아서고 한 가지 일도 상도(常道)에 어그러지면 처자식도 배반한다”고 하였습니다.
부혁이 상주한 일을 돌이켜 대도(大都)를 통괄해서 본말을 따져 보면, 금궐(金闕)과 조정을 모욕하고 성인을 욕보인 것이 극심합니다.
이처럼 부혁의 본뜻은 이로써 스스로를 도모하고자 함이니, 비록 영달은 구할지 몰라도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본뜻이 조야를 희롱하는 데 있으나, 폐하께서 하늘에 호응하고 때에 순응하여 도록(圖籙)을 장악해서 만국(萬國)의 근본으로만 매진한다면, 이는 한 사람의 복이 세상의 위급을 구하는 힘이 되고 난리를 평정하는 공이 될 것이기에, 참으로 위망(威望)은 선대의 삼왕(三王)을 덮고 성망(盛望)은 예전의 오제(五帝)를 능가할 것입니다.
이에 다시 삼보(三寶)를 깊이 유념하여 복전에 뜻을 두고 출가인을 예우하신다면, 하늘의 은택에 감복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단지 스님들이 계행(戒行)을 지키느라 국은(國恩)에 보답하지 못한 것인데 무식한 무리들이 비위(非違)로 죄를 조작한 것이라, 부혁이 이 같은 악담을 늘어놓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가슴 치며 통탄할 노릇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스님들이 죄가 있다면 극형이라도 감수할 것이나, 부혁이 성인을 능욕하는 언사가 지나친 것이 개탄스럽고, 또 사견을 내는 자가 이로써 비행을 저지를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춘추(春秋)』에 따르면,
“노나라 장공(莊公) 7년 여름 4월에 항성(恒星)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밤중이 대낮같이 환하였다”는데,
이는 바로 부처님께서 탄생하신다는 서응(瑞應)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진신(眞身)과 응신(應身)의 2신에다 방편과 실제[權實]의 두 가지 지혜에 삼명(三明)ㆍ팔해탈(八解脫)ㆍ오안(五眼)ㆍ육신통(六神通)의 위신력이 있는데다, 불가사의한 법호(法號)를 갖추어 심행처(心行處)가 멸했기에, 그 도는 중성(衆聖)을 니원(泥洹)으로 인도하고, 그 힘은 고해에 빠진 범부를 이끌어 구제합니다.
후한 명제(明帝) 영평(永平) 3년에 금인(金人)이 들어오는 것을 꿈꾸고서 상교(像敎)가 동쪽으로 유입되었는데, 그 서상(瑞相)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한 나라나 위나라의 서사와 요석(姚石) 등의 서책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도안(道安)과 도립(道立) 등의 스님들과 불도징(佛圖澄)과 구마라집(鳩摩羅什) 등의 고승들에 이르러서야, 그 높은 덕행을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당세의 명승은 모두 임금에게 그 존귀함이 알려져 존중받았으니, 5백여 년 이래로 사원과 불탑이 구주(九州)에 두루하고 승니가 삼보(三輔)에 가득하였어도 당대의 임금마다 존경한 까닭에 조야가 모두 진심으로 귀의하였는데, 상교(像敎)가 지금까지 단절되지 않은 것이, 어찌 인왕(人王)의 힘이었겠습니까?
세간의 군신과 부자간에 은택이 있더라도 보답받기 힘들고 넓은 하늘은 보응(報應)조차 없을지나, 하물며 부처님께서는 이 중생들 가운데 출세간의 자부(慈父)이시고 범부나 성인을 모두 위하는 양의(良醫)이신데도 이를 짓누르려 하고 허물을 씌워 욕보인다는 것은 이치로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여래의 지혜는 유무(有無)를 벗어난 것인데, 어찌 삼황이 헤아릴 수 있겠으며, 그 힘이 조화를 머금었는데 어찌 하늘과 땅으로 가릴 수 있겠습니까?
『열자(列子)』에 따르면,
“예전에 상(商)나라의 태재(太宰) 비(嚭)가 공구(孔丘)에게
‘그대는 성인인가’ 하고 묻자,
공구가
‘나는 아는 것이 많고 힘써 기억할 뿐이지 성인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였습니다.
다시
“삼왕이 성인인가” 하고 묻자,
“삼왕은 지혜와 용기가 가상하나 성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오제는 성인인가” 하고 묻자,
“오제는 어짊과 신의가 가상하나 성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삼황이 성인인가” 하고 묻자,
“삼황이 적시에 정사를 잘 선용(善用)했으나 성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태재가 놀라서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성인인가”고 캐어묻자,
공구가 안색이 변하면서 뜸을 들이다가
“서방에 성인이 계신데,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고 교화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해지기에, 너무나 위대해서 백성이 무어라 이름붙이지도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만약 삼황과 오제가 반드시 성인이라면, 어째서 공자가 이를 말하지 않고 숨겨서 바로 성인을 감춘 허물을 범할 리가 있었겠습니까?
이로써 추측해 보면, 부처님이야말로 대성인이신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에는,
“우리 스승이 천축에서 출현하셨다가 니원(泥洹)으로 드셨다”고 하였고,
부자(苻子)도
“노씨의 스승 이름은 석가문(釋迦文)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공자나 노자의 책에서도 부처님을 스승으로 존중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글이 적지 않은데, 어찌 부혁 한 사람에 의해 비방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공손룡(公孫龍)이 『견백론(堅白論)』을 지어 삼황을 탓하고 오제를 그르다 하였다고, 지금까지도 이를 읽는 이들이 어금니를 깨무는 것이 좋은 본보기가 되었을 터인데도 참으로 애석합니다.
주상(主上)께서는 성명(聖明)하시기에, 바야흐로 전장에서의 말을 놀리고 소를 쉬게 하였으며, 이문(里門)을 지날 때마다 수례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덤에 흙을 덮어주는 예를 다하였으니 삼황과 삼왕의 풍화를 이루면서 석가와 노자의 말씀을 여신다면, 미친 소리가 도리어 사그라질 것입니다.
또 오제와 삼왕 때는 부처가 없어서 치적도 크고 연조(年祚)도 길었으나, 부처가 있는 때는 정치가 가혹해지고 국조(國祚)도 짧았다고 억지를 부리는데,
요임금과 순임금은 자손에 전하지도 못하고 홀로 다스렸고,
하(夏)ㆍ은(殷)ㆍ주(周)ㆍ진(秦)의 왕정도 몇 번이나 바뀌면서 소장(蕭牆)의 변(變)이 잇달았는데,
이때에는 부처가 없었는데도 어떠한 연고로 국운이 짧았습니까?
단지 소승[琳]은 요순시대에 즐거이 살아가기에 일용사(日用事)를 알지 못하나, 바깥에서는 필시 이를 좋지 못한 일로 볼 것이니, 서번(西蕃)의 나라까지 멀리 전해지기라도 하면 화하(華夏)가 무식하다고 비웃을까 염려됩니다.
공자는
“말이 천하에 가득하더라도 입에 허물이 없고, 행이 천하에 가득하더라도 원망하거나 헐뜯음이 없다”고 하였으니,
말하는 이는 허물을 없애고 듣는 이는 경책을 삼아야 하는 데도,
부혁은 하는 말이 너무 불손해서 이를 듣는 이마저 모두 꺼리는지라, 마침내 국풍(國風)을 어지럽히고 화하(華夏)의 민속에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삼가 충정을 표하고자 감히 아뢰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대왕 전하는 천품이 뛰어나 저절로 우뚝 하신데다 풍채가 반듯하고 도량도 넓으신지라, 어진 것을 즐겨서 동쪽을 평정하였고, 원만함을 기뻐하여 서초(西楚)를 깎았습니다.
아형(阿衡)과 백규(百揆)에다 식년시(式年試)로 육조(六條)를 보태었으니 덕이 이미 장막을 들어 올렸고 어짊은 그물을 찢었습니다. 강장(康莊)의 제(第)를 열고서 순경(筍卿)을 빈(賓)에 앉히고 수죽(脩竹)의 원(園)을 일으켜 문아(文雅)의 객(客)을 예우하시되, 받드는 것이 지극하십니다.
또 시(詩)는 정(情)을 따라 극치를 다하셨고, 부(賦)는 사물을 다 체득하였으니 진실로 명예로우며, 조야(朝野)의 아름다운 인재는 전대의 인재를 관통했다 하겠습니다.
다만 소승 등이 속으로 부족한 것을 돌이켜 보면 비록 방원(方圓)에 쓰임새가 없으나, 부혁이 어리석기 그지없어 스님들을 대머리라 욕하며 업신여긴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극악무도한지라, 죄가 이보다 큰 것이 없겠습니다.
존로(尊盧)와 혁서(赫胥) 이래로, 천지가 개벽한 이후 부혁처럼 패륜한 자가 없으니, 뼈가 부러지지 않았어도 속이 아픕니다.
삼가 부혁이 해를 끼친 일을 못난 글로 적고서, 조목조목 답변한 것이 아래와 같습니다.
보잘것없는 글로 위엄만 손상시켰는지라, 엎드려 사과드립니다.
무덕 5년 정월 12일 제법사 사문 석 법림 삼가 아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