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론 하권
4. 다름을 타파하는 장[破異品]
[외도] 그대가 앞에서 존재와 단일성과 물단지가 다르다는 것 이것에도 과실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과실들이 있는가?
[불자] 만약 존재 등이 다르다면 하나하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네. [수투로]
만약 존재와 단일성과 물단지가 다르다면 하나하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단지가 존재와 단일성과 다르다면 이 물단지는 존재가 아니고 단일성이 아닐 것이다.
존재가 단일성과 물단지와 다르다면 물단지가 아니고 단일성이 아닐 것이다.
단일성이 존재와 물단지와 다르다면 물단지가 아니고 존재가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가 상실된다. 또 물단지가 상실될 때 존재와 단일성은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존재가 상실될 때 단일성과 물단지는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단일성이 상실될 때 물단지는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다르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이 사람이 죽을 때 저 사람은 죽지 않는 것과 같다.
[외도] 그렇지 않네. 존재와 단일성이 합하기에 존재와 단일성과 물단지는 성립하네. [수투로]
존재와 단일성과 물단지가 비록 다르긴 하지만 물단지가 단일성과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를 단일성이라고 한다.
그대가
“물단지가 상실되지만 존재와 단일성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잘못된 것이다. 왜 그러한가?
다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화합의 다름[合異], 둘째는 분리의 다름[別異], 셋째는 변화의 다름[變異]이다.
‘화합의 다름’이란 실체[陀羅驃]와 속성[求那]의 다름 같은 것이다.
‘분리의 다름’이란 이 사람과 저 사람의 다름 같은 것이다.
‘변화의 다름’이란 소똥덩어리가 잿덩어리로 변화되는 것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이 합한 것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상실될 때 단일성 또한 상실되고 단일성이 상실될 때 물단지 또한 상실된다. (그러나) 존재는 상주하기 때문에 상실되지 않는다.
[불자] 만약 그렇다면 물단지가 많을 것이네. [수투로]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이다.
물단지가 단일성과 합하기 때문에 ‘한 물단지’[一甁]이다.
또 물단지이기에 ‘물단지’이다. 그러므로 물단지가 많다.
그대가
“실체와 속성은 화합의 다름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상실될 때 단일성도 상실되고 단일성이 상실될 때 물단지도 상실된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대의 다름을 타파하고자 한다.
어떻게 다름으로써 다름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다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외도] 보편이기에, 속성이기에, 존재와 단일성은 물단지가 아니네. [수투로]
존재는 보편[總相]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아니다. 단일성은 속성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아니다. 물단지는 실체[陀羅驃]이다.
[불자] 만약 그렇다면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네. [수투로]
만약 존재는 보편이기에 물단지가 아니고 단일성은 속성이기에 물단지가 아니라면, 물단지는 실체이기에 존재가 아니고 단일성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외도] 많은 물단지를 인정하네. [수투로]
그대는 앞에서 많은 물단지를 말했다. 하나의 물단지를 타파하고자 다시 많은 물단지를 인정한다.
[불자] 단일성이 존재하지 않기에 많음도 존재하지 않네. [수투로]
그대는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이다. 물단지가 단일성과 합하기 때문에 ‘한 물단지’이다. 또 물단지이기에 ‘물단지’이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世界]이 ‘한 물단지’라고 말할 때 그대는 그것을 ‘많은 물단지’라고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一]물단지가 많은 물단지가 된다.
단일한 것[一]이 많은 것[수다한 것]이 되기 때문에 한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많은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에는 단일한 것이고 후에는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네. [수투로]
또 수[數法]의 최초는 하나이다.
만약 하나[단일]가 물단지와 다르다면 물단지는 단일한 것이 되지 않는다.
단일한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외도]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이네. [수투로]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를 존재라 하지만, 완전히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렇듯이 물단지가 단일성과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를 단일한 것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단일한 것은 아니다.
[불자] 단지 이 언설이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앞에서 이미 타파한 바 있다.
만약 존재가 물단지가 아니라면 물단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다시 설명하겠다.
물단지는 물단지가 아닐 것이네. [수투로]
만약 물단지가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면 이 존재는 물단지 아닌 것이다.
만약 물단지와 물단지 아닌 것이 합한다면 물단지가 왜 물단지 아닌 것이 되지 않겠는가?
[외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합함이 없기에 물단지 아닌 것이 되지 않네. [수투로]
물단지 아닌 것은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합함이 없다. 그러므로 물단지는 물단지 아닌 것이 되지 않는다.
이제 존재가 있기 때문에 합함이 있다. 합함이 있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
[불자] 이제 존재가 물단지와 합하기 때문이네. [수투로]
만약 물단지 아닌 것이라면 존재는 없다. 존재가 없다면 합함이 없다.
이제 존재가 물단지와 합하기 때문에 존재는 물단지가 될 것이다.
만약 그대가
“물단지는 아직 존재와 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합함이 없다”고 말한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존재[無法]이기 때문에 합함이 없다.
이와 같이 아직 존재와 합하지 않았을 때 물단지는 비존재이고 비존재이기 때문에 존재와 합하지 않을 것이다.
[외도] 그렇지 않네. 존재는 물단지 등을 인식하기 때문에. 등불이 그러하듯. [수투로]
존재는 물단지 등 사물들의 원인인 것만이 아니다. 또한 물단지 등의 사물들을 인식한다.
등불이 사물들을 비추듯이. 그렇듯이 존재는 물단지를 인식하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불자] 만약 존재[有法]가 인식하는 것이 마치 등불과 같다면 물단지는 미리 존재할 것이네. [수투로]
이제 사물들이 미리 존재하고 이후에 등불이 비추는 것이다.
존재가 만약 이와 같다면 존재와 아직 합하지 않았을 때 물단지 등의 사물들은 미리 존재할 것이다.
만약 미리 존재한다면 이후에 존재를 어떻게 쓰겠는가?
만약 존재와 아직 합하지 않았을 때 물단지 등의 사물들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와 합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면, 존재는 만듦의 원인[作因]이 아니고 인식함의 원인[了因]일 것이다.
만약 상[相]에 의해 상을 갖는 것[可相]이 성립한다면 왜 하나는 둘이 되지 않는가? [수투로]
또 만약 그대가 존재는 물단지의 상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한다고 말한다면, 만약 상이 없다면 상을 갖는 사물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존재도 또한 변해서 다시 상이 있는 것이다.
만약 다시 상이 없어도 사물[法]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고서 존재한다고 한다면 물단지 등도 그러할 것이다. 등불의 비유는 앞에서 이미 타파한 바 있다.
또 등불이 스스로 비추고 바깥의 비춤에 의지하지[假]않는 것과 같이 물단지도 스스로 존재하고 바깥의 존재에 의존하지[待]않는다.
[외도] 몸의 상[身相]과 같네. [수투로]
부분[分]인 발에 의해서 전체[有分]를 인식하고서 몸이라고 할 때 발에서 다시 상(相)을 구하지 않듯이,
그렇듯이 존재가 물단지의 상이기 때문에 물단지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할 때 존재에서 다시 상을 구하지 않는다.
[불자] 만약 부분 속에 전체가 갖추어져 있다면 왜 머리 속에 발이 있지 않은가? [수투로]
만약 몸[身法]이 있다면 일부인 발 등(等) 속에 전체가 있는가, 부분이 있는가?
만약 전체가 있다면 머리 속에 발이 있을 것이다. 몸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분이 있다면 또한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전체는 부분과 같네. [수투로]
만약 발 속에 부분이 있다면 부분인 발과 동일할 것이다. 여타의 부분도 또한 그러하다면 전체는 부분과 동일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전체를 몸으로 하는 일은 없다.
그렇듯이 부분인 발 등 자체에 전체가 있다는 것도 동일하게 타파된다. 전체가 없기 때문에 부분들도 또한 없다.
[외도] 그렇지 않네. 극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네. [수투로]
부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극미에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분 속에 존재하지 않긴 하지만 극미들이 적집해서 물단지 등의 결과를 생기게 한다. 그러므로 전체가 존재한다.
[불자] 만약 적집해서 물단지가 된다면 모든 것은 물단지가 될 것이네. [수투로]
그대가
“극미에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저 이 언설이 있는 것일 뿐이니 후에 타파할 것이다.
지금은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극미가 적집해서 물단지가 될 때 만약 일체가 적집해서 물단지가 된다면 모든 극미가 남김없이 물단지가 될 것이다.
만약 일체가 적집해서 물단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극미는 물단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외도] 실과 물방울의 적집하는 힘과 같이 극미도 그러하네. [수투로]
한 올 한 올의 실이 코끼리를 만들 수 없고 한 방울 한 방울의 물방울이 물단지를 채울 수 없지만 많이 적집하면 할 수 있듯이
그렇듯이 극미들이 집적하기 때문에 그 힘이 물단지가 될 수 있다.
[불자] 그렇지 않네. 확정되는 것[不定]이 아니기 때문에. [수투로]
한 명 한 명의 석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고 한 명 한 명의 장님이 색을 볼 수 없고 한 알 한 알의 모래가 기름을 낼 수 없으니 많이 적집해도 할 수 없듯이
그렇듯이 극미들 한 개 한 개도 할 수 없고 많이 적집해도 할 수 없다.
[외도] 부분 부분이 힘이 있기에 확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네. [수투로]
실과 물방울 부분 부분이 힘이 있기 때문에 코끼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물단지를 채울 수 있다. 석녀ㆍ장님ㆍ모래 부분 부분은 힘이 없기 때문에 많이 적집해도 힘이 없다.
그러므로 확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기에 석녀ㆍ장님ㆍ사막을 비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불자] 부분과 전체는 같음과 다름의 과실이 있기 때문이네. [수투로]
부분과 전체가 만약 같거나 다르다고 한다면, 이 과실은 앞에서 이미 타파한 바 있다.
또 전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을 때 부분을 얻을 수 없는데 어떻게 만드는 힘이 있겠는가?
만약 전체가 이미 존재한다면 부분의 힘을 어디에 쓰겠는가?
[외도] 그대는 법을 파괴하는 사람이네. [수투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물단지 등의 사물들을 보는데 그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인과 연들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법을 파괴하는 사람이다.
[불자] 그렇지 않다.
그대는
“존재가 물단지와 다르다”고 말하고
나는
“만약 존재가 물단지와 다르다면 물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비존재를 존재로 보고 존재를 비존재로 보는 것 따위이네. [수투로]
그대는 법을 파괴하는 사람과 같다. 이에 또 과실이 깊다.
왜 그러한가?
부분인 머리 등이 화합해서 이 몸이 나타날 때 그대는 몸이 아니라고 말하고 이것을 떠나서 이미 별도로 전체가 있어서 몸이라고 한다.
또 바퀴ㆍ굴대[軸]등이 화합해서 나타나 수레가 될 때 그대는 이것을 떠나서 이미 별도로 수레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