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나찰소집경 상권
[보살이 삼매를 수행할 때]
보살이 삼매(三昧)를 수행할 때 비록 그 삼매에 들어 반연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아직 잃지 않았고, 또한 게으르지 않아 그 한마음을 오로지 하였다.
다시 은근한 방편을 구하지 않고 또한 여러 가지 행을 받지 않고, 모든 법의 맛을 알되 그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 경지에서 또한 번뇌도 없었도다.
그 삼매 속은 청정하여 티와 더러움이 없이 바깥 적(敵)을 항복시켜 겁약함이 없으며, 한마음으로 그 기미(氣味)를 알았으며, 마음에 집착이 없는지라, 뜻과 성품을 항복시켜 일찍 게으르지 않아 그 행하는 대로 삼매를 성취하였다.
크게 기쁜 근성으로 정진하여 생각을 옮기지 않고 어긋나고 어지럽지 않았으니, 1겁(劫)의 닦은 대로 깨달아 안 도품(道品)이었다.
생각이 크게 기쁨을 의지해 용맹스레 얻은 바요, 모두 지혜를 의지해 점점 환락한 곳을 얻음이었다.
그러나 보살이 그 삼매를 행할 때 삼매에서 일어나 잘 행하여 삼매를 성취하였으며, 가고 머묾을 잘 행하여 일찍 잃음이 없고, 그는 이렇게 행함으로써 착한 법이 구족하며, 모든 착한 행을 일으켜 온갖 구하는 것이 모두 앞에 나타났었다.
비록 마음에 근심이 있더라도 점차 그 뜻을 항복 받아 잃지 않았으며,
더욱 더하고 더욱 더함을 생각하여 만약 마음이 게으르면 다시 착한 법을 생각하였으며,
만약 마음에 근심을 품어 그로 인연해 얽힘이 되면 곧 능히 저 해탈의 착함을 생각했었다.
그 경계에 있어서 위의가 모두 다 착하여 사람을 위해 어지러운 생각과 더러운 병이며, 또 여러 가지 삼매를 연설하되 그 삼매에는 모든 공덕이 구족하였고,
그 삼매를 행하는 보(報)의 결과는 참으로 가장 착한 행이 되었으니,
마치 푸르른 나무가 조촐하게 벗어나듯 또 그 밖에 푸르고 누르고 희고 검음이 모두 그 삼매를 따라 내왕하되 걸리는 바가 없었다.
삼매 힘의 불이 모여 햇빛이 비추지 않은 곳이 없듯이 천안(天眼)을 얻음도 또한 그렇게 낮과 밤을 사무쳐 비추었으며, 다시 천이(天耳)를 얻어 들음도 그러한 힘이 있었다.
그 보살이 이 삼매를 얻음이 한량이 없고 헤일 수도 없었으니,
모두 삼매의 힘을 말미암음이요
또한 사유(思惟)로 말미암은 것이며,
게으르지 않음을 말미암음이요,
지혜의 밝음을 말미암음이며,
말고 폄을 알아 또한 삼매를 희망함을 말미암음이요,
나쁜 생각을 버림을 말미암음이며,
거스르고 쫓는 삼매의 힘을 말미암음이었다.
이러한 모든 생각은 그 삼매에서 난 것이며, 그 총지문(總持門)이 삼매를 이루어 맞은 곳에 또한 피곤함 없이 그 방편으로 견고치 않은 삼매를 구한 까닭에, 삼매를 행하여 일체 욕심을 위한 까닭에,
마음과 뜻을 항복 받고 잘 옹호하고 생각하여 또한 어긋나고 어지럽지 않으며, 뜻에 따라 자유자재하였다.
사람의 허물을 꾸짖지 않기 한량이 없고 다함이 없었으며,
지금 삼매에서 모든 적은 의심을 끊고 가지가지 광명을 놓으며,
일체 착한 법에 의지하여 모든 번뇌가 청정하며,
자주자주 삼매를 익히되 일체 착한 법을 따랐었다.
이때 이런 게송을 읊었다.
이 해탈의 마음을 얻으니
삼매에 걸림이 없었다.
새로운 머리로 큰 바다에 나아가니
빨리 흐름을 막기 어렵네.
만약 뜻에 하고자 함이 있어도
마음이 또한 옮기질 않네.
경계 안의 물을 끊고자 하니
이것은 다 근문(根門)의 행일세.
내가 백 년 동안이나
부모를 엎고 간다하더라도
나의 소원이 차도록
부모의 은혜를 갚지 못하리.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 달라.
부모의 처소를 가리키리라.
능히 이렇게 깨달음은
세상에 매우 희유함이네.
[보살이 견고한 마음을 행할 때]
그때 보살이 견고한 마음을 행할 때 해탈을 수습해 이런 방편으로 그 용맹한 뜻이 있으므로 하는 것이 걸림이 없고, 사람의 제지함이 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방편으로 구하였다.
듣건대 옛적에 아란가란(阿蘭迦蘭)에게 모든 선정(禪定)을 일으켰다가, 그 선정을 버리고서 다시 삼먁삼불타의 위없는 도를 구하여 문득 남쪽으로 반 유순(由旬)을 가서, 그 고요하고 한가로운 곳에 나아가 가지가지 고행을 닦았었다.
과일을 먹고 물을 마시며, 검은 가죽 옷을 입고 나무 아래서 가부좌(跏趺坐)를 맺고, 때로는 물을 마시고 때로는 과일을 먹으며, 혹은 공기를 마시며, 이렇게 고행하여 풀 위에 눕기도 하고 스스로 재[灰]를 안기도 하며, 그것을 즐겨 3숙(宿) 가운데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었다.
9일 동안 무릎을 꿇고 불의 신[火神]에게 제사지내자 모든 게으른 사람들이 그의 가르치는 말을 따랐다. 때로는 하늘에 제사도 지내므로 머리와 눈이 점점 야위었으며, 두 팔을 드러내거나 혹은 한 발로 뛰고 몸을 구부리기도 하며, 또한 훔치지 않는 법을 스스로 즐겼다.
또 그 고행으로 도를 구함에 또한 먹고 마시지 않아 살갗과 뼈가 마주 닿았고, 햇빛을 향해 몸이 검고 얼굴이 누렇게 되어 마치 공후(箜篌)와 같이 속이 텅 비었고, 늑골과 척추가 모두 드러나 형상이 백 가지로 변해 눈으로 볼 수 없었으며, 젊어 한창 때의 모습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마치 늙은 코끼리같이 맡겨 둘 곳이 없는 듯 앉고 눕고 가고 걸음에 힘이 없고, 또한 말도 못하였다. 비록 목숨을 탐내었으나, 세상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천사(天使)가 그곳에 이르러 방편을 베풀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법을 위한 까닭에 자나 깨나 그 절조를 잃지 않고 이렇게 해탈을 구하여 그 몸을 돌아보지 않았었다.
그리고는 게송을 읊었다.
설령 내가 썩고 문드러져
사람의 몸이 백 쪽이 되더라도
또한 성내는 생각이 없을 것이요
중생도 다름없는 데 이르게 하리라.
그 뜻에 무엇을 탐내어
괴롭게 수없이 변하랴.
‘나’라는 생각을 헤아리게 되면
잠자는 것과 죽음이 무엇이 다르랴.
[보살이 ‘많이 들음’을 행할 때]
그때 보살이 ‘많이 들음[多聞]’을 행할 때
이른바 이름이 들리는 사람은 스스로 그 덕이 가장 마음을 쉬는 이가 된다 일컬으며, 뭇 사람들이 공경히 대하였으며, 뜻과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며, 들은 것을 잘 지녀서 듣고 가짐이 구족하여 또한 잊어버리지 않는지라, 그 뜻을 관찰하여 교만함을 버리고, 이러한 업이 있으므로 지혜가 서로 응하며, 이제 다 듣고 앎으로써 지혜에 게으름이 없었으며, 스승을 공경하여 소원이 자재로웠다.
주리고 허기진 사람에게는 큰 자비를 일으키고 외도를 항복 받아 걸림이 없었으며 또한 번뇌도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 도행(道行)을 나타내되 애욕에 물들지 않고, 방편의 뜻을 일으켜 세상 인민을 위하여 해탈케 하려 하였다.
그때 보살은 이러한 자비심이 있어 일체 지혜의 인연하는 바가 다 이 방편으로 일어났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게송을 읊었다.
그 들음이 약간 메아리쳐
그 빛은 변함이 없네.
견고해도 오래 가지 못하거니
하물며 나의 지금 몸이랴.
가장 처음에 이 법을 받고
저 부처님을 믿음이 있어
문득 큰 지혜가 생겨서
모든 번뇌를 덜어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