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비유왕경 상권
[왕자의 관정]
사리불아, 국왕의 첫째 부인이 아들 여덟 명을 낳았다 하자. 모든 아들 중에서 왕의 상호를 다 갖춘 아들은 하나뿐이었다.
그가 왕위를 잇고자 이마에 물을 뿌리는 의식[灌頂]을 행하면 나머지 모든 왕자들이 에워싸고 법도에 따라 일을 받드는 것과 같다.
사리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어머니의 뱃속에서 잘못이 있어서 나머지 왕자들이 관정을 받지 못하고 왕위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고 여기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대덕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저 나머지 왕자들은 지나간 옛날부터 왕이 될 만한 업을 짓지 않았으며, 선근을 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마에 물을 뿌리고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사리불아, 동일하게 한 법계를 증득했으나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법왕(法王)이라는 이름을 얻고, 나머지 모든 선남자 등은 성문의 이름을 얻었는데, 그렇게 된 것은 이 법계에 허물이 있어서가 아니겠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계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들이 지나간 옛날에 지은 선근을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도를 행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발원하지도 않았으며, 훌륭하고 높은 선근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를 성취하겠다는 발원도,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발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성문의 일만 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또한 여래의 행을 실천하지 않았으므로 여래의 공덕도 없으며, 모든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와 같은 신통을 갖추지도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이러한 뜻 때문에 선남자ㆍ선여인은 짓는 선근을 다 위없는 보리에 반드시 회향한다.
[파리질다라구비타라 나무가 처음 나면]
사리불아,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어느 때 파리질다라구비타라(波利質多羅具毘陀羅)나무가 처음 나면 삼십삼천(三十三天)이 다 크게 기뻐하면서
‘이 나무가 이미 났으니 삼십삼천이 오래 비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어느 때 선남자ㆍ선여인이 위없는 보리심을 내면
그때 가진 바른 믿음을 3보ㆍ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류다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이 매우 기뻐 뛰면서
‘이 도량이 오랫동안 비지 않고 보살마하살이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사리불아, 마치 저 파리질다라구비타라나무에서 잎이 나오는 것을 볼 때는 삼십삼천이 찬탄하지도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다가 꽃이 피는 것을 보고서야 기쁜 마음을 내서 뛰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성문과 독각도 동일한 법계를 증득하지만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이 찬탄하지도 않고 귀중하게 여기지도 않다가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를 보면 기쁜 마음을 내서 뛴다.
왜냐 하면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는 모든 선근과 32가지 대장부의 상호를 갖추었으며,
그가 가진 광명이 해와 달을 능가하여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능히 비추며,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저 파리질다라구비타라나무가 점점 자랄 때 삼십삼천이, 이 나무에 오래지 않아 많은 잎이 생길 것이며, 백천 구지 나유타 잎 내지는 한량없는 아승기의 잎이 그 위를 덮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저 처음 마음을 발한 보살마하살이 태어나고 자랄 때에 백천 구지 나유타 등의 성문과, 나아가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의 모든 성문이 에워싸고 앞에 있으며, 많은 성문과 독각이 출현하게 될 것이라고 꼭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