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미지근한 아침의 차가운 햇살이 빛을 받아 환해지기 시작하는 지붕의 어스름 위로 묵시록의 고난처럼 퍼진다. 또다시 점점 밝아지는 광활한 밤이다. 또다시 항상 같은 공포, 그러니까 하루, 일생. 꾸며낸 유용성, 어쩔 도리 없는 활동이다. 또다시 그것은 육체적이고 가시적이고 사회적인 나의 개별성, 아무 의미 없는 단어를 통해 전달되고 타인의 행동과 의식에 의해 이용되는 나의 개별성이다. 또다시 나, 내가 아닌 나다.
-페르난두 페소아(오진영 옮김),『불안의 책 Livro do Desassossego』부분
이번에는 세계의 산문이다.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기념비적 고백록『불안의 책-리스본의 회계사무원 베르나르두 소아르스의 작품』은 시보다 깊고 어둡고 아름다운 산문이다. 나는, 내 안의 나는 누구인가?“우리 안에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산다. 나는 단지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공간일 뿐”. 이처럼 페소아의 문학은 무수한 페르소나에 의해 규정된다.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 등 무려 백여 개에 가까운 이명異名을 사용한 그는 이름 마다에 각기 고유성을 부여한다. 문체까지 달리하여 스스로에게 복수複數의 정체성을 부여한 그것은, 페소아 이전의 문학과 철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그에게 문학과 장소에 대한 느낌과 경험은 비非의 신체와 감각 지각을 요구한다. 신체는 인간 영혼의 생명 속에 예술을 낳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며, 신체와 영혼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부제의 인물인‘베르나르두 소아르스’는 이 책의 화자로서 평생 회계 사무원으로 살아갈 운명. 소아르스의 시는, 문학은 머리 위에 앉은 나비와 같아서 아름다울수록 희극적이 된다. 이런 존재의 모순과 부조리는 세상의 모든 꿈과 아무것도 아닌 존재-현실 사이에서 주어진다. 문학은 장식인가 구원인가?
부채살처럼, 묵시록의 고난처럼 퍼지는 아침의 빛과 옅은 그림자가 지붕 위로 내려 앉는다. 다시 밤이 찾아오면 점차 밝아지는 밤. 그 밤은 시간을 공간화 하는 광활한 밤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과 색의 변화는 허와 공에 있다. 허공이라는, 밤이라는 공포! 하루가 일생인 이에게 삶은 허구적 유용성이며 개별성으로서 또다른 나다. 페소아에겐 우울과 광휘, 풍경과 상처의 내면이 혼재해 있다. 진리에 대한 회상, 기억의 방식으로서 철학과 시가 공속 관계에 있다면, 알랭 바디우는 말한다. 위대한 예술의 시대에 인간은 예술에〈대하여〉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부터〉사유한다. 시인들은 예술을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서 바라보지 않으며, 모든 대상을 예술 안에서 바라본다. 이는 페소아가 위치하는 지점이다. 근대적 인간의 경험을 예고하고 정식화하며 예술을 위한 예외적인 시기로서 시인들-횔덜린, 말라르메, 랭보, 트라클, 페소아, 만델슈탐, 첼란-의 시대, 그들은 어떤 대상성, 어떤 주체성에도 복속되지 않은 채 현존의 흔적과 경계를 드러낸다. 리스본의 영혼 알베르투 카에이루, 아니 페르난두 페소아에겐 분명 다른 삶과 다른 층위의 감정이 있다. 그것은 불안이라는 책이다.
“인생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고결한 영혼을 그림자 안에 지닌다면. 꽃잎에 앉은 먼지처럼 오후의 바람을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저물녘의 무기력을 따라 내려앉아 더 큰 것들 사이에 묻힌다면.”
첫댓글 또다시 나, 내가 아닌 나다. - 시보다 깊고 어둡고 아름다운 산문이다. 나는, 내 안의 나는 누구인가? “우리 안에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산다. 나는 단지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공간일 뿐”. - 김상환 시인의 말처럼, 페소아는 현대인의 '불안'을 가장 깊이 탐색한 사색가이다. 하여, 우리는 지금도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 가?' 이 질문을 찾아가는 자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