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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의 실체와 허구 -價値物과 假想物(실물가치와 허구가격)의 식별-
*** 이 글은 경제학자들도 잘못 알고 있다고 보는 경제의 실제적인 현상들이며, 물질이 풍부한 사회에서 왜 주기적 금융위기와 가격에 '인플레이션'이라는 허수가 자꾸 생겨나야 하는지를 밝히는 내용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이성적이고 현명한 가치 판단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최첨단 과학사회에서 최첨단의 미신(허구)을 실제 현상이라고 믿고, 이러한 미신 현상에 값을 매겨 팔고 사고 있는 주체가 바로 사람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비트코인 열풍이 불고 있다. 필자는 이 비트코인이 영원히 아무 것도 없는 허상이라는 사실을 밝히려고 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이 주식이나 선물과 다름이 없이 사회가 또 하나의 허구적 상품을 가치물로 믿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인간의 경제적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으며, 사람을 장기적으로 커다란 “경제 미신”의 올가미에 빠져들게 할 수 있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성경에서 엘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은 왕들이 희년법을 파기하고, 바알 제도를 도입할 시기에 나타나서 이를 강하게 질타한 지도자들(하나님만 인정한 비공식 지도자들)이었다. 바알 제도는 토지가치에 대한 거래를 한시가격제에서 영구가격제로, 토지의 사용료 제도를 소유가격 제도로 변질시켜 오늘날까지 백성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크게 끼치고 있는 경제제도와 시장시스템을 말한다. 신약시대는 예수님도 성전에서 하고 있는 환전거래에 대하여 강도의 소굴이라고 강하게 질타를 하였다. 이 행위는 단순한 환전(가치교환)이 아니라 돈(세겔화)이 상품이 되어 웃돈까지 붙이는 "머니게임(가격교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시작하고 있는 비트코인도 앞으로 이와 꼭 같은 성격을 가지면서 머니게임만 하고 있는 약육강식의 바알 경제법을 주도해 갈 것으로 보인다.
1. 가치(value)의 정의
경제에서 가치란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있는 ①가치물, ②가치 가능물, ③가치 대리물(청구권)을 말한다. 필자는 이를 통틀어서 "실물" 또는 "실물가치"라고 한다.
① 사람의 욕구를 충촉 시켜주는 실물, 곧 재화(goods)나 서비스(service, 용역)가 현재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현재에 존재하는 쌀은 재화이며, 현재에 들리고 있는 음악은 서비스로 실물이며 가치물이다.
② 현재 ①은 아니지만, 일정(한시적, 영구기간이 아님) 기간 이내에 ①의 가치로 실현이 될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성경 희년법이 거래를 허용한 50년 이내에 생산될 농산물 수확권, 미래에 제작이 완료되면 상영될 영화의 관람권 가치물에 해당한다(한시 수확권, 광업권, 특허권, 지적재산권, 저작권 등은 실물이 없어서 한시적으로 초과수요를 일으키고 있는 허구가격이지만, 시간 흐름으로 가치가 실현된다.
③ ①은 아니지만, ①을 대리하는 화폐나 증권(금전증권, 상품증권과 같이 투자 원금인 기초가격과 말기가격이 같거나 커지지 않는 자본가격의 상품들)을 말한다.
④ 실물 청구권처럼 보이는 자본증권(토지문서, 주식, 先物 계약권 등)은 겉보기로 ①을 대변하는 실물처럼 보이기는 하나 우리의 눈을 속이는 것이며, 영원히 실물이 없기 때문에 ③의 가치물에서 제외한다.
⑤ 경제계에서 경제활동 없이 원금, 화폐, 증서(증권)가 스스로 커지는 가치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경제활동이란 가치의 생산, 소비, 보관, 이동, 교환(매매가 아닌 실물의 수수가 있는 교환)을 말한다. 사람의 노동이나 실물의 투입 행위 없이 자연활동만 하고 있는 토지는 여기서 말하는 경제활동에서 제외한다. 이 진술은 성경의 희년법이 가르쳐 준 것인데 지금까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모든 사람의 이론보다도 더 귀하고 값진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가치물이 아닌 허구의 실체들
비트코인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좀 알고 있고 용어라도 들어본 본 경험이 있는 토지나 주식, 선물 등에서 발생하는 허구가격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비트코인의 실체를 알기 위해 다음 상품들에서 발생하는 허구가격의 실체를 인내심을 갖고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액면가보다 높은 가격이 붙어 있는 화폐들(역그레샴의 법칙)
소재가치가 명목가치보다 높다고 화폐교환에서 웃돈(프리미엄)을 붙인 거래물, 예를 들면 성전에서 헌금용 유대화폐 세겔화가 로마화폐 데나리온화와 교환될 때 세겔화에 붙여놓은 웃돈은 가치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곧 사회적 생산물인 재화나 서비스의 총액은 화폐와 일정한 비율인데 그 재화에 대한 청구권은 세겔화 소지자가 데나리온화 소지자보다 유리하게 작용한다. 부의 분배가 사람의 노력보다 화폐를 소지한 자격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2) 문어발 같은 주식 분산으로 구성된 재벌 방계회사 주식의 합산가격
10억원의 실물투자로 A사 를 설립 후, A사가 그 실물 10억원 중 7억원을 재투자하여 B사를 설립, 다시 B사가 3억원을 재투자하여 C사를 설립한 경우이다. 겉보기로는 20억원(A사 10억원 + B사 7억원 + C사 3억원)의 실물을 가진 3개 회사로 보이지만,, 합병해 버리면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적 가치물은 10억원의 실물 뿐이다.
(3) 주식의 실물가치 초과액
100억원의 실물을 투자한 회사가 장래성이 있기 때문에 기업가치가 300억원으로 평가된 경우, 그 주식 성장액 200억원(200억원 = 주식가격 300억원 - 실물투자 100억원)은 영원히 실물로 변하는 성질이 없는 허구가격이다.
10년 내용연수를 가진 1억원짜리 자동차를 구입한 후 성능이 2배(기능이나 내용연수가 2배 증가한 경우)로 좋아져서 2억원의 가치로 거래되었다면 이것은 허구가격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동차 가격 2억원은 그 자동차의 내용연수(10년 또는 20년) 이내에 모두 가치로 실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하는 주식의 2배·3배 성장가격은 기한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가치로 실현이 되는 성질이 없다(무한대 기간에서 더 크게 커지는 수익으로 인하여 원금자본 비율이 수학적으로 0으로 수렴할 뿐, 그 값이 자동차처럼 원금자본이 물리적으로 소멸하여 0이 되면서 실현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2배 커진 자동차 거래액은 내용연수(10년 또는 20년) 안에 가치(GNP, 국민총생산)로 실현이 되지만, 2배 커진 주식 거래액은 영원히 가치물(GNP, 국민총생산)로 실현이 되지 않는다.
(4) 땅값은 1원의 가격도 영원히 가치물로 실현되지 않는다.
(땅값은 공시지가를 보더라도 거의 매년 커지고 있고, 이렇게 커지는 가격은 영원히 사람이 쓸 수 있는 국민소득물이 될 수가 없다).
땅은 가치물을 생산은 하지만 자신의 값은 가치물(국민소득물)로 실현되지 않는다.
000번지 A 필지 땅값 1원은 영원히 가치물이 될 수가 없고, 같은 땅 000번지 A 필지가 낸 지대(rent, 토지 임대료)는 1억원이라도 땅이 낸 가치물이다. 같은 번지에서 발생한 땅값 1원은 같은 번지에서 매년 실현(생산)되는 지대 1억원에 포함되지 않으며 그 값만 독립적으로 영구히 존재하고 있다. 땅값은 (3)의 주식과 똑 같은 성질로 영원히 가치(GNP, 국민총생산)로 실현되지 않는다. 주식은 실물 투자가치 초과액만 가치물이 될 수 없지만, 땅값은 발생액 전액(100%)이, 영원히(∞) 가치물로 실현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땅값은 실물이 없기 때문에 그 값의 크기에 비례하여 사회는 인플레이션만 생산한다.
그래서 이 사회가 땅값으로 인한 허구가격, 곧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없애려면 토지의 용도배분은 땅값을 대신하여 지대(rent)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이 사회는 영구 허구가격인 땅값이 사라지고, 지대가 공경비를 대신하여 주기 때문에 사회적 벌금이나 다름이 없는 세금도 필요가 없게 된다. 그래서 시장은 시장기능을 왜곡시키는 허구가격과 가치의 무상이전(세금=무보상 강제징수=정부의 무임승차로 인한 시장 침해) 현상이 사라지고, 경제는 교환원리만 작용하여 완전균형을 달성하는 자유시장사회가 성립한다(단, 주식과 선물 등에 포함된 허구가격으로 인한 시장 불균형은 별개의 과제).
(5) 실물 인도가 필요 없는 先物(futures) 가격도 영원한 허구가격이다.
미래에 실물 수수가 있는 선도거래(예 : 농작물 입도선매)는 허구가격이 아니며, 투기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물거래는 실물 인도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금융거래에 불과하며, 실물 수수가 있는 선도거래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거래이다.
선물은 미래의 실물을 현재에 값을 미리 매겨서 팔고 사는 것이다. 선물은 헷지(위험과 손실의 전가) 기능을 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선물은 이러한 사회적 순기능(위험 담보)보다는 그 값이 허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역기능(시장의 불균형기능)이 훨씬 더 크다. 선물은 시장에서 가격 위험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가격이나 허구가격을 생산하여 가격 위험을 초래하는 역기능만 하고 있다.
원래 가치물 거래는 한 단위 거래에 한 단위 이상의 복수 거래가 동시에 발생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선물은 실물 한 단위에 한 단위 이상의 거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선물시장은 실제로 시장의 통제기능이 없다면 한 단위의 실물에 이론상 천문학적인 숫자의 복수거래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선물은 계약금(증거금)만으로 원금 거래를 한 것으로 서로 계약을 하고, 시간이 지난 결제 시에도 원금 거래는 없이 선물가격과 만기 실물가격의 차액에 대한 결제 곧 차익거래로 종결한다. 곧 선물거래는 원금 거래가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닭이라는 실물이 없이 가격만 알면 닭을 팔고 살 필요가 없으며(닭의 값을 주고 받지 않고도), 닭을 사육하지 않아도 닭이 알을 낳으므로 그 가격을 팔고 산다는 가상과 허구를 실체로 가장하여 팔고 사는 행위다.
이것은 선물이 실물을 거래할 필요 없이 단지 실물에 대한 가격만을 매겨서 팔고 살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은 거래에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실물이 없다. 굳이 말한다면 선물은 인간의 화폐적 욕구만 충족시켜 줄 뿐이다.
이런 거래는 선물시장이 만들어 놓은 거래의 제도(방식) 그 자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보면 허구적 경제행위라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원물 없는 종물의 발생과 거래는 그 자체가 논리적 허구임). 따라서 우리가 약간의 이성적 판단력만 갖추고 있다면 이런 거래는 거래 당사자 쌍방이 서로 속고 속이는 사기 행위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유명 경제학자들마저 이를 식별하지 못하고 원금(실물) 거래가 있는 선도거래와 원금 거래가 없는 선물거래에 대해 개념적 구분도 못하는 착각에 빠져있다.
성경을 보는 전문가들도 토지를 상품으로 착각하게 되니 성경이 허용한 거래와 금지한 거래를 두고 가치 구분도 못하며, 희년법은 피하거나 윤리적 내용만 다루고 만다. 희년법 무르기가 생명과 세상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시장원리인데도 말이다.
인플레이션은 겉보기로는 숫자가 화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화폐의 기능(지급수단기능, 가치척도기능)을 하지 못한다. 다만 그렇게 생성된 허구적 숫자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치물처럼 보여질 뿐이다. 따라서 선물시장은 폐지하여야 한다. 물론 실물거래가 있어야 종결되는 선도거래는 남겨두어야 한다. 지금 선물시장에서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는 거래의 위험분산기능과 가격 위험에 대한 보상기능(헷징)은 가격보험제도로 대체하여야 한다.
(6) 주택, 상가, 공장 등의 감가상각비 초과 계산액
50년 내용연수를 가진 취득원가 1억원의 건축물이 있다고 하자. 이 건물의 취득원가 1억원을 내용연수 50년까지 보존하려면 지금 그 원금을 현재가치로 역산하면 얼마나 될까? 이자율을 5%로 하면, 약 872만원이 나온다. 이자율을 3%로 하면 2,280만원, 2%로 하면 3,715만원 정도가 된다. 이 금액을 해당 이자률로 50년간 예금하면 원금 1억원을 보상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건물이나 고정자산의 감가상각은 모두 만기에 소멸하는 자산가치에 대한 원금을 보상받기 위한 회계절차이며, 기업 재무관리의 기법이다. 그러므로 만기에 원금을 보상 받기 위한 감가상각은 그 원금을 만기까지 기간 이자를 감안하는 감채기금법(원금 상환법)으로 계산을 해야 이 조건과 원리에 부합한다.
그런데 지금 기업에서 부동산이나 건축물의 감가상각은 대체로 정액법으로 하고 있는데 이 방법이 감가상각 자산의 가치 계산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오류는 내용연수가 장기인 자산이 문제인데 특히 건물과 같은 부동산에서 그 폐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원금은 잔류 기간이 길수록 이자에서 차지하는 원금의 보상 비율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감안하지 않고 계산하는 지금의 감가상각비 계산액은 너무 잘못이 크다. 지금의 감가상각 방법인 정액법으로 하는 경우, 내용연수 50년에 이자율을 5%로 하면, 감가상가비 연금총액은 취득원가의 약 4배 정도 초과 계산되고 있다. 3%에서 2.25배, 2%에서 1.7배, 1%에서 1.29배이다. 그리고 이 감가상각비 비율은 해당 자산의 투자비용인 수익이나 이자에 대비하여 비교하여 보면 이자율이 낮을 수로 그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 이자수익 대비 감가상각비 비중은 이자율이 5%일 때 40%, 4%이면 50%, 3%이면 75%, 2%이면 100%, 1%이면 200%가 된다.
이자율이 1% 사회이면, 기업은 장기성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는는 감가상각비만 계산하여 반영하거나 회수하여도 투자비용에 대한 이자를 보상 하고 남는다는 말이다. 그만큼 지금 기업의 감가상각비는 과대 계산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률법으로 계산하면 정률법은 초기 감가액이 정액법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 비중도 더 크게 나타난다.
이렇게 초과 계산된 감가상각비는 가치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초과 가격만큼 임대료와 상품원가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 이것 역시 사회적으로 분배를 왜곡시키며, 인플레이션만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한다(임대료 가격에는 cost push, 부동산 가격에는 demand full). 이렇다고 해도 부동산 소유자가 모두 소유에서 유리하다는 말은 아니다. 감가상각비 초과액만큼이 임대료와 상품원가에 반영되면 그 초과수익은 다시 부동산 가격에 반영되어 버린다. 그래서 부동산을 구입한 소유자는 초과감가상각비의 수혜자가 아니라 지급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건물을 지어 최초로 분양을 한 자는 이 초과혜택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 있다. 아파트를 재건축 하게 되면 초과수익이 커지고, 분양가격도 커지는 현상은 이런 이유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7) 비트코인(암호화폐 또는 가상화폐) : 영원히 아무 것도 없는 허상이다.
블록체인은 전자매체가 개발한 최첨단 기술(프로그램)로 사람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가치물이다. 곧 불록체인은 값을 매겨 팔고 살 수가 있다. 물론 필자는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의 기술적 문제나 인과관계를 잘 모르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무지와 의문점
(블록체인 기술이 "집단암호방식 결제시스템" 같아 보이는데 왜 비트코인이 2,100만개로 수량이 한정되어야 하는지? 그렇게 편리한 기술이 개발에는 왜 채굴기를 동원하여 복잡한 난수 풀이 수학기법을 컴퓨터로 풀어내야 하는지? 이게 중앙통제자 없이 가입자가 블록으로 모두가 함께하기에 "중앙집중식 결제"가 아닌 "가입자 분산결제"라고 하는데 그러면 한정된 2,100만개가 블록을 형성하여 시장에서 더 큰 독점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닌지? 이런 것에 대하여 필자는 기술적 문제를 모르고 있다.)
(주식은 증권이라는 가치 분할 방식으로 물질의 물리적 분산과 소유의 분산이 가능하며, 기업의 부를 개인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가입자 전체가 지분만큼 고르게 분산 소유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우량기업인 삼성전자의 주식은 아무나 소유할 수가 없고, 소유자 전체가 주주총회를 통하여 독점적 소유와 통제가 가능하다. 이러한 부의 소유를 실물소유에서 주식소유로 바꾸고는 비트코인처럼 종전의 중앙통제기능에서 수평적 분산기능으로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비트코인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은 갖고 있지만, 기술적 문제를 잘 모르므로 더 이상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블록체인의 기술을 이용한 비트코인, 곧 가상화폐는 화폐의 기능이 없음을 지적은 할 수 있다. 곧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에는 가치물이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비트코인은 그 안에 가치물이 들어 있지 않으므로 투기 심리가 발동하여 값이 커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고, 가치물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꺼질 때는 허무하게 가격이 증발되어 버린다.
비트코인은 개발자의 기술적 문제나 사회적 유용성 문제와는 별개로 이것이 화폐나 가치물로서는 허상에 불과하다. 이 말은 화폐의 물리적·가치적 이해부터 할 수 있다면, 비트코인의 허구도 간단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은행에서 바로 나온 새돈 1만원권과 사용으로 낡아버린 헌돈 1만원권은 분명히 소재가치가 다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새돈과 헌돈을 바꾸면서 새돈에 웃돈(가치)을 붙이지는 않는다(웃돈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화폐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화폐가 무슨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고, 그 화폐가 있기 전에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실물이 사회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증표일 뿐이다. 곧 사회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실물의 가치를 문서나 증표(사회적 실물 존재를 국가가 보증한 증표)로 표시한 것이 바로 화폐라고 할 수 있다.
곧 1만원권 화폐(종이)는 그 값에 해당하는 가치물이 사회에서 실물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이 그 화폐를 실물 1만원과 같은 가치로 인정을 하고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화폐란 그 화폐가 제시한 액면가액만큼 가치물이 사회에서 실물과 신용의 양면에서 실제 존재하고 있다. 화폐에 이러한 가치물이 존재하지 않거나 담보가 없다면 그 현상은 사회적으로 인플레이션이라는 모양으로 나타난다. 사람은 이것을 가치물이라고 우겨도, 물질계는 오히려 이것이 가치물이 아니라고 응답을 해 주는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 현상이다. 국가나 중앙은행이 보증한 화폐마저도 그 화폐에 해당하는 실물이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만 생산한다. 최근에 베네주엘라 사회가 보여준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그 좋은 예이다.
같은 수표 용지에 10만원을 기재하면 10만원권 수표, 1억원을 적으면 1억원짜리 수표가 되는 것도 같은 가치의 실물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신용의 증표다. 그래서 화폐는 화폐에 명시된 가치물을 숫자로 대변할 뿐 자신은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설사 10만원짜리 금덩어리를 녹여서 1만원권의 화폐를 만들었다고 하여도 그 금덩어리가 화폐가 되는 순간 금덩어리 화폐의 값은 1만원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한화 10원짜리 동전은 제조원가나 실물가치로는 30원이 넘을 것인데 화폐 구매력은 10원이다. 그래서 동전을 녹여 구리로 팔아먹다가 화폐파괴범으로 잡혀가기도 한다.
이 예는 우리가 돈 1만원을 빌리면서 10만 원짜리 금박지에 차용증서를 써 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행동은 1만원짜리 거래의 증표를 10만 원짜리 종이에 써 준 것이므로 배보다 배꼽이 커져버린 것과 같은 잘못일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 차용거래는 10만원의 거래를 담보하거나 증빙하는 것은 아니고, 10만 원짜리 금박지에 1만원의 돈을 빌리고 갚아야 한다는 사회적(또는 거래 당사간) 약속을 금박지에 증표로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이다. 비트코인을 개발한 자가 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유용하다면 그 가치는 값으로 매겨지고 거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고, 나아가서 그것이 장래성 있는 기업의 주식처럼 값이 매겨지고 커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비트코인에 매겨진 가격만큼 사회에서 존재하는 실물이 없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이 무슨 가치물로 보이는 것은 허상이다. 그것은 사막에서 착시 효과로 보이게 되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3. 비트코인의 허구와 투자의 위험성
앞에서 설명을 한 바와 같이 기업의 수익력이 2배·3배 커진 기업의 주식이 같은 비율로 2배·3배 커져도 그 값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허구가격이 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주식의 실물가치와 허구가격의 이중성(양면성)을 먼저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비트코인의 문제도 간단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주식은 그 가격이 현재 기업의 실물이나 미래 생산력에 근거하여 값이 매겨지지만, 그렇게 매겨진 값에 해당하는 실물(실물투자 초과액)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비트코인도 그 값에 해당하는 실물이 사회에서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비트코인도 주식이나 선물과 같이 시장에서 실물은 없고, 사막의 신기루처럼 가치물이 있어 보이는 허구적 가격만 있을 뿐이다. 지금의 주식 매매차익, 토지 양도차액, 선물 매매차액, 환 차액 등은 영원히 국민소득이 되지 못하며, 허구가격인 숫자만 존재하고 있다. 비트코인도 이와 마찬가지다
주식은 일하는 말의 다리를 자르지 않고도 잘라 팔고 사는 것과 같은 기능, 가동하고 있는 공장 기계의 부속을 빼내지 않고도 빼내 팔고 사는 것과 같은 편리한 거래 방법이다. 그러나 사람이 주식이 가진 유가증권의 이점(지분증서, 가치 분할성, 양도성)만을 부각시켜서 주식을 “자본주의 꽃”으로 미화만 하고 나서면, 주식이 가지고 있는 허구가격에 따른 사회적 폐단은 거의 보지 못하게 된다.
세계의 경제를 지옥과 같은 현상으로 내몰았던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왜 왔는지? 정상 시장경제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 특히 불황속의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왜 발생하고 있는지 등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땅값과 주식에 반드시 들어 있어 보이는 가치 요소들, 또 이것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면 내가 그만큼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그 허상의 신념(사회 정서)이 이러한 허구적 가치 현상을 얼마든지 덮어 둘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도 혹자는 하늘의 해와 달도 지분(몫))을 정하여 값을 매기고 팔고 사면 그것은 가치물이 된다고 주장하는 허구적 믿음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 선물시장 주창자들은 미래의 일기예보도 값을 매겨 팔고 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기예보가 가치물이므로 사회비용을 들여 기상대를 운영하며 일기 정보를 생산하고 있고, 유료 전화로 그 정보를 구매하여 서비스 가치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실물이고 경제활동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일기예보라는 서비스의 미래가치를 값을 매겨 지금 팔고 사는 경우 그 값에는 일기예보라는 서비스와는 별개로 주식과 같은 허구가격이 들어오게 된다.
미래의 일기 정보에 대한 가치를 지금 단위 가격으로 매겨 놓고 팔고 사도 선물시장의 허구가격과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일기예보의 서비스 가치를 이용하는 경제활동이 아니고, 미래의 일기에 값을 매겨 팔고 사는 허구적 행위일 뿐이다. 이것은 점심 내기를 위한 "사다리 타기"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곧 사다리 타기에는 생산이나 소비의 경제활동이 없으며 서로 서로 가치를 주고 받는 제로섬 게임만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주식시장은 유가증권의 이점은 살리고. 하구가격의 단점을 없애려면 영구적 이익배당권을 한시적 이익 배당권으로 바꾸어 주면 된다. 그러나 지금의 주식에 대한 우리의 신용(일반 정서)은 주식 매매차액이 그 주식의 배당이익과 다름이 없는 가치물이라고 굳게 믿어 버린다. 이것은 질병이 있을 때 굿이나 푸닥거리를 하고 나면 그 행위에 무슨 영력이 생겨나서 병을 낫게 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미신일 뿐이다).
이 비트코인도 장점만을 보면 지금까지 중앙은행이나 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는 화폐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래나 결제도 안전하게 할 수 있고, 지금 제도에서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거래 수수료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 비트코인이 지금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대신할 수도 있고, 그래서 달러에 묶여 있는 세계의 금융과 경제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도 해 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블록체인이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와 연관되어 발행한 비트코인은 주식 투기의 광풍처럼 흘러가서는 아니 된다. 주식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투기로 인한 피해가 매우 컸으며, 설사 투기 광풍이 불지 않아도 그 값은 영구적 미실현가치로 허구가격이다. 그래서 이 허구가격으로 인한 피해는 거래 당사자들보다 사회 전체가 불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감당해야만(메워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경제가 허구가격의 파장(함정)을 피하고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회는 이 허구가격의 골이 메워질 때까지 주기적 불황과 실업 등의 피해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은 그 자신이 보유한 실물가치나 미래 생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 매겨진 주식가격은 실현이 되지 않기 때문에 허구가격이다. 그러나 같은 주식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보여도 한시 배당권은 기한 이내에는 실물로 가치가 실현되기 때문에 허구가격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치와 영구가격의 성질 차이를 개념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토지 역시 인간의 생존과 생산활동에 필수재라고 할만큼 귀한 가치물이다. 이러한 토지에서 현재 생산된 가치물인 지대는 분명히 가치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 지대가 아니고, 미래에 생산될 지대에 대한 영구적 배당권 또는 소유가격은 그 값을 매겨 팔고 사는 순간, 그 값은 영원히 지대(GNP)로 실현되지는 않는 허구가격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실체도 이렇게 토지와 주식을 이해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과 땅값, 그리고 선물은 실물과 관련이 없는 허구가격이기 때문에 통제가 없으면 시장에서 가격 기복이 매우 심하고, 폭등락을 반복하게 된다. 흔히 투기라고 말하는 경우는 토지 투기, 주식 투기, 선물 투기, 환 투기 등을 말하는데 이런 대상물이 바로 실물은 아니고, 허구가격이 들어있는 금융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비트코인 역시 그런 대상물이다.
그런데 주식이나 토지는 허구가격이 발생해도 내재적으로 미래 생산력(근본가치)을 담보하고 있다. 그래서 가격 폭락에도 어느 정도 견디는 힘(순자산=총자산-부채)이 남아 있고, 특히 토지는 값이 아무리 폭락해도 땅이라는 미래 생산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처럼 값이 0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사회적으로 이러한 가치물이나 생산력에 대한 담보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실물이 담보가 없이 거래자 쌍방이 서로가 서로를 믿는 개인의 신뢰 뿐이다. 그래서 이 신용이 무너져서 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값은 0까지 폭락할 수 있다.
우리는 주식시장에서도 투기 바람이 지나고 나면 생산력 기반이 약한 기업의 주식은 값이 떨어질 때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비트코인도 바로 이러한 성질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은 기술로서 가치물이 될 수 있지만, 이를 매개물로 이용한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는 말 그대로 가치물이 아닌 가상물이며, 숫자에 불과한 허구가격이다.
그러므로 지금 거래되고 있는 비트코인은 이러한 허구적 성질로 인한 투기가 만연하기 전에 빨리 뿌리부터 없애 버려야 할 대상이다. 물론 사회적 유용성을 가진 블록체인의 기술은 살려두어야 하고...
특히 지금 일고 있는 비트코인 광풍에는 청년들까지 뛰어들고 있다. 비트코인이 컴퓨터를 이용한 기술이기 때문에 전자매체에 밝고 적응이 빠른 청년층이 유혹을 받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사기 행위나 별반 다르지 않고, 마약처럼 인간의 경제적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는 위험한 것임에도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까지 가세를 하고 있으니 ...그러나 학자나 당국은 비트코인의 실체에 대한 이론적 규명도 하지 못하고 비트코인을 없애려고 하였으나 반발자가 생기니 그 광풍은 거래 실명제와 세금(매매차액은 양도소득세, 거래에는 거래세, 수수료는 법인세)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곧 허구가격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로 곧 주식과 같은 자본자산으로 인정을 하겠다고 뜻이다. 결국 그렇게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지양도차액에 대한 세금은 토지 투기가 생기니 1960년대 후반부터 투기억제책으로 생긴 제도다. 이것은 허구가격이므로 소득도 아닌데 소득이라는 가짜 명칭을 붙여주고 양도세를 거두어 들인다. 지금 비트코인도 꼭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금도 정부는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양도소득 중과세제도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미 결정하여 시행고 있듯이...양도소득세제(양도차액은 소득이 아니므로 "양도차액세"라고 해야 함)는 투기를 일정기간 잡을 수는 있지만, 이것이 부동산시장을 강하게 동결하고 부당한 과세 효과 때문에 장기로는 더 큰 정부실패와 시장실패를 동시에 당하게 된다.
여기서 시장동결이란 양도차액세가 양도차액은 소득물이 아니기 때문에 원금에 대한 과세의 성격을 가진다는 뜻이고(집을 팔아 세금내면 같은 가치의 집을 되살 수 없는 성질), 부당과세란 양도차액은 이론상 소유기간 동안 토지수익물인 지대가 땅값 이자보다 낮기 때문에 그 손실분이 양도차액이므로 정상이자에 해당하는 크기인데도 이자소득세보다 더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을 말한다.
비트코인 역시 같은 역사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4. 블록체인 기술 가치는 사용료(수수료)만으로
(블록체인 기술가치에 대해 사용료를 내지 않고 이를 선불이나 일시불로 지급하는 자본가격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이러한 자본가격은 기술 가치와 전혀 별개인 허구가격물이 되어 시장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이 허구가격은 시장경제에서 괴물이 되어 백해무익(시장불균형, 부의 수평 이전, 만성적 인플레이션 등)한 기능만 수행한다 -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아래의 글, "폰 요금을 선불로 하는 경우 발생하는 가격구조의 허구" 부분을 읽어보기 바람-).
가치물로 보이는 블록체인 기술은 장려도 하고,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지금은 인터넷 뱅킹, 폰 뱅킹 등 전자매체의 발달로 거의 화폐기능을 대신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결제 방식의 아이디어나 신기술은 직접, 간접으로 그 가치에 대한 혜택이 시장기능을 통하여 개발자에게 돌아가고 있으며, 간편 결제와 수수료가 낮아지는 등 사회적 혜택도 보고 있다. 곧 지금의 전자매체를 이용한 결제방식의 개발은 지금의 비트코인처럼 개발자들에게 특별한 값을 매겨 보상(매매)을 하지 않아도 시장기능이 자동적으로 그 개발자에게 가치를 보상하여 주고 있다는 말이다.
곧 블록체인이라는 최첨단 기술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가 개발자에게 그 가치를 사용하고 사용하는만큼 사용료나 수수료를 지급하는 시장제도만 있으면 된다. 굳이 이 서비스 가치를 자본자산으로 만들어 투기를 일으키고 허구가격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술적 문제를 잘 모르지만, 블록체인의 개발자에 대한 보상 역시 기존의 전자매체 결제방식의 개발자에 대한 보상과 같은 원리, 같은 방법으로 플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엄청나게 발전된 폰 뱅킹 결제 방식의 개발에는 지금의 고민 거리인 가상화폐와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고도 잘 되고 있다. 그런데 왜 같은 아류로 보이는 블록체인의 게발에는 신기루인지 뚱단지인지 이처럼 화폐라는 이름을 너무 쉽게 붙여놓고, 광풍의 위험이 충분히 잠재해 있는 투기상품들을 세상에 내어놓아야 하는가 말이다.
5. 비트코인 바람과 유대인? 그리고 월가의 큰 손들?
사람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이런 허구는 구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경제계에서 원금, 화폐, 증권 등이 경제활동 없이 스스로 커지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지 허구인지를 식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생산과 소비시점이 다르거나 수요와 공급의 변화가 있는 상품들은 가격이 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실물이 일으키는 가격 변동은 커지거나 작아지거나를 반복하며, 그 변동도 일정 시간과 범위에서만 한정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토지와 주식 등은 이런 성질과는 전혀 별개로 원금이 스스로 자꾸 커진다.
거대한 사기극에 불과한 선물거래도 1970년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유대인(밀턴 프리드만)의 제창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성경 희년법이 허용한 50년 수확권(레 25:13~17)을 허용하지 않는 영구 수확권(레 25:23)과 무르기(24절 이하)를 못하게 하는 제도로 살짝만 바꾸어 주면 허구가격이 생기고 이득이 생긴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 앞에서 성전에서 세겔화에 웃돈을 붙여 이득을 챙기다가 예수님에게 "강도의 소굴(마 21:12,13)"이라는 꾸중을 들으며 성전에서 쫒겨난 전례가 있는 장본인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중세에 금지된 이자법을 역이용하여 제도가 금지한 이자보다 더 큰 금액의 이득을 챙길 수 있 환율차익(파운드화 빌려 주고 고율의 마르크화로 돌려 받는 금융기법)을 개발(비트코인으로 치면 채굴)하여 유럽 금융을 지배한 후 지금은 미국의 월가에서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 하고 있다. 인류가 처음 겪었던 세계 대공황은 그들이 만든 제도나 다름 없는 주식시장이 일으킨 광풍의 결과물이었다.
1997년 한국이 당한 IMF 경제위기도 이들이 만든 외환 선물시장 주된 원인이다. 여기에 벤처기업과 코스닥이 들어오면서 새로은 허구가격이 가세를 하였고,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허구가격(바트화의 폴락과 금융위기) 여파가 한꺼번에 한반도까 불어 닥쳤던 것이다. 그 당시는 한국에 이자율이 높았기 때문에 이자율 차이를 노린 투자물(리보 금융?을 통한)이 선물시장을 통해 들어왔지만, 정부 당국은 이게 외화에 대한 차입인지 투자인지도 식별하지 못하고(선물과 옵션 상장된 상품 자체가 구입과 판매의 성격이 분명하지 않고 양쪽 모두에서 가격 차이만 거래하기 때문에 성격이 분명하지 않을 수 있음) 우왕자왕하다가 갑자기 당한 것이었다.
영국 영란은행의 고정환율제도가 붕괴된 계기도 근본에서 취약 상태에 있던 환율제도가 유대인 금융 마술사 조지 소로스 한 사람의 공격으로 무너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선물 금융을 잘 알았던 조지 소로스가 금융 기법의 원리를 거의 모르는 영국의 환율관리 당국자와의 대결에서 조지 소로스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초기 창시자나 다름이 없는 정체 불명의 신분 사카시 나카모토와 배리 실버트, 그리고 지금 비트코인을 금광 발견이나 금전처럼 여기도록 '채굴'이니 '화폐(金錢)'니 하면서 비트코인 금융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큰 손들은 혹시 유대인은 아닌지? 사카시 나카모토는 그 이름을 따라 일본계 미국인이라고 해도 이에 결부된 큰 손들은 세계 금융계를 지배하고 있는 유대 금융들이 아닐까? 아니면 유대인 금융 귀재들이 앞으로 이 비트코인의 허구가격을 어떻게 조종하며 끌고 갈지? 필자는 이게 궁금하다.
6. 비트코인, 양도소득, 양도소득세의 허구(허구가격은 양도세로 해결하지 못한다)
(비트코인 양도차액은 토지와 주식의 양도차액과 함께 발생도 부당하고, 세금부과도 부당하다)
(비트코인과 같은 자본자산, 양도차액은 영원히 소득물이 될 수가 없고, 그게 소득물이라고 하더라도 크기는 투자 원금에 대한 정상이자에 속한다. 그래서 이에 매기는 세금은 자본과세와 불공평과세가 되어 게속하여 부작용을 초래한다).
비트코인의 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가 비트코인 문제를 양도소득세로 해결하려는 것은 가상물, 가상화폐를 인정하는 것으로 경제적 정책이 될 수가 없고, 허구가격을 인정하는 것으로 윤리적으로도 부당한다. 정부가 도박이나 마약거래와 다름이 없는 허구가격의 인정과 참여는 사랍의 이성을 마비시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헌법의 기본 질서를 어기는 행위라고도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허구가격물이란 거래에서 가격이나 화폐는 있어도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실물은 영원히 아무 것도 없는 대상물을 말하였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것을 구입하거나 소유한 사람, 곧 특정 투자가나 개인에게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토지 소유자, 주식을 상장시킨 기업가, 주식 투자자, 비트코인 구입자들을 개인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필자도 형편이 되면 토지나 주식을 살 수도 있다.)
토지에서 소유가격은 전세가격보다 항상 크다(만약 전세가격이 소유가격보다 크면 전세시장은 성립하지 않음). 이 것은 소유가격이 사용가격보다 항상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장주식의 소유가격에 대한 이자도 그 기업의 배당(가능)이익보다 항상 크다. 이 말은 이론가격으로 보면 토지 소유자나 주식 투자자는 투자 비용을 보상받지 못하고 항상 적자만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적자는 토지나 주식을 팔 때 나오는 매매차액으로 비로소 보상(본전)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토지, 주식, 비트코인의 투자에서 원금과 수익의 상관관계를 등식으로 나타내면
원금투자비용 = 사용수익 + 원금 성장액
원금투자비용 = 사용수익(소득물) + 원금 성장액(허구가격물)
원금투자비용 = 예금이자 = 사용수익(소득물) + 원금 성장액(허구가격물)
[원금투자비용 > 사용수익] => 이것은 영구적 현상(이 투자의 적자는 팔 때 매매차액에서 간접 보상)
그러므로 매매차액은 소득물도 아니기에 세금은 부당한 자본과세가 되며 차액의 크기도 예금이자에 해당할 뿐 이자초과액이 아니므로 중과세 정책은 이자소득자와 비교해도 불공평과세가 된다.
그럼에도 토지, 주식, 비트코인의 소유나 투자에서 큰 돈을 버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바로 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허구가격이기 때문에 그렇게 시장 대박이 생기는 것 뿐이다. 그 이유는 허구가격을 시장에 판매하는 자는 대박 수익을 얻을 수 있으나 이를 구매하는 일반 소유자는 (이론적으로 보아서) 거의 대부분이 소유에서 계속하여 손해만 보고 있다.
허구가격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자는 천연토지를 처음으로 점유하고 판매를 한 자, 토지 개발자, 용도 변경자(임야를 대지로) 등, 성장주식을 처음 상장 하는 기업 창설자, 주기적 가격 상승기나 급등기에 땅과 주식을 발 빠르게 팔고 시장을 탈퇴 하는 자 등이 허구가격의 이점, 곧 대박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비트코인도 초기 창설자, 독점적 소유자, 열풍이 일기 전에 구입하여 열품이 꺼지기 전에 팔고 시장을 더나는 자가 이 혜택을 누린다. 비트코인이 지금은 초기 도입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박 기회를 잡을 수 있기 열풍이 광풍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토지 양도차액, 주식 매매차액, 비트코인 양도차액은 영원히 소득이 아니다. 그래서 세금을 낼 가치물이 없다. 아니 세금을 내어도 그 양도차액은 평소 소유에서 돈 이자도 안되는 적자를 늘 보고 있다가 매매에서 비로소 보상을 받는 은행의 예금이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 양도차액에 대하여 고율(중과세)의 세금을 거두는 것은 소득애 대한 과세가 아니라 부당한 자본과세이며, 불공평한 이자과세가 된다.
그러나 같은 매매차액 같아 보여도 실물 상품의 매매차액은 그 차액에 실물과 소득물이 들어있다. 그러나 토지, 주식, 비트코인의 매매차액에는 실물이나 소득물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실물 매매차액은 부가가치이며, 국민소득(GNP, NNP)이다. 그러나 토지, 주식, 비트코인의 매매차액은 영원히 부가가치나 국민소득이 될 수가 없다. 지금 이 개념이 이해가 되어야만 실물가치와 허구가격을 식별할 수가 있고 세금도 바로 매길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정부가 하려는 비트코인 양도세 정책은 토지 양도소득세 정책처럼 허구가격을 모르는 무지가 저지르는 또 하나의 큰 실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지금 하려는 세금 정책은 세금에 대한 명칭만이라도 "양도소득세"라고 하지 말고, 사람들이 실물과 허구물을 구별할 수 있게 "양도차액세"라고 해야 한다. 아니면 1960년대 양도소득세를 처음 도입할 때와 같이 "투기억제세"라고 해야 한다.
7. 비트코인과 인간 이성
왜 이성을 가진 인간이 이런 거대한 사기술(실물가치와 허구가격)을 식별도 못하고, 그 피해를 장기간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지? 해방 후 지금까지 어림잡아 물가가 60만배 올랐다고 한다. 그동안 화폐개혁도 두번에 걸쳐 화폐의 숫자를 1/1,000로 낮추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화폐 숫자는 컴퓨터가 아니면 제대로 계산도 못할만큼 커져 있다. 가치가 가치가 아니라 종이 쪽지가 되어 버리니 가치를 표시하는 숫자에까지 만성이 되어서 이제는 1조원이라는 숫자도 얼핏 보면 9,900억원보다 작은 수 같고, 단순해 보인다. 그래서 이제는 경제적 가치도 "경"이라는 화폐 단위가 나와야 통계나 기록, 결제가 가능한 시대로 곧 접어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유대교는 종교적으로 머리 카락 하나까지 수를 셀만큼 율법 준수를 강조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ㄱ. 농경시대에 성경이 가르쳐 준 시한부 가격제도를 버리고, 바알 우상이 유혹하는 영구가격제를 택하여 희년법을 파기g하고 허구가격이 발생하게 했다.
(사사시대는 룻과 보아스처럼 희년법을 지키는 자도 있지만, 왕정시대에 왕들이 희년 토지법을 문란케 하고(삼상 8:14,15), 특히 바알 숭배자 아합왕과 이세벨에 의해 완전히 파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제사장들도 이를 묵인하거나 동조함)
ㄴ. 화폐경제가 커지니 이제는 성전에서 세겔화를 상품처럼 팔아먹으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ㄷ. 그리고 중세에는 이자금지법을 피한 환차익 금융기법의 개발(채굴)로 유럽의 부를 흡입하였으며,
ㄹ. 산업혁명으로 기업활동이 커지자 이를 주식으로 만들어 팔아먹으며 세계 대공황을 유발하였다.
ㅁ. 1970년도 이후에는 선물 사기상품을 만들어 금본위 통화제도를 무너뜨려 버렸으며
(한국은 이 선물 사기에 속고, 코스닥을 비롯한 벤처기업의 허구가격 열풍으로 치욕적인 IMF 경제위를 당했다)
ㅂ. 2008년 경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폭풍으로 미국과 세계 경제가 또 한번 도산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ㅅ. 그런데 이제는 무엇일까 했더니 드디어 비트코인이라는 괴물이 화폐라는 가면을 덮어쓰고 금융시장에 나왔다.
이러한 인류의 지난 역사와 반복적 과오를 되씹어 볼 때
ㅇ. 비트코인을 그대로 두면 이 놈은 앞으로 중앙통제기능을 가진 기존의 화폐제도까지 완전히 무너뜨려 버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앞의 예와 같이 세계 경제는 또 다시 커다란 소용돌이를 내게 되고...).
ㅈ. 아니면 비트코인이 소멸되지 않고 세금 내는 정도로 연착륙에 성공하면 그 이후로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더 강하게 마비시키면서 세계의 부를 이것으로 흡입하며 숫자(잎플레이션)를 크게 키워나갈 것이다.
(세계 대공황의 원인자가 주식이었음에도 아직 살아 남았고, 선물이라는 파생상품끼지 만들어 가며 건재하고 있듯이)
가정마다 국가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가계부채, 국가부채의 본질이 무엇인지?
미국은 이자도 없는 무이자 채권인데도 발행만 하면 세계가 종이 쪽지에 불과한 그것을 왜 계속하여 사 주고 있는지? 컴퓨터가 제공하는 외환 결제 시스템을 통하여 밤과 낮도 없이 화폐(외환)를 천문학적 숫자로 거래를 하고 있는지? 무역 결제나 실물거래로 필요한 화폐 교환은 10%도 안되는데...도대체 90%의 외환 거래는 무엇을 위한 교환이고 거래인가 말이다.
주식시장은 왜 가격정지제도(상한가, 하한가) 거래 정지제도(써킷 브레이크)라는 빨간불 통제 시스템을 두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주식이 실물이 없는 허구가격이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이나 실물거래는 실물의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자동으로 이런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제동장치를 걸어둘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식은 허구가격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가통제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식시장은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가격정지, 거래정지라는 빨간불을 켜 주어야 비로소 시장 참여자가 가격 위험을 감지하는 것이다.
허구가격은 실물가격의 변동률(이자율, 경제성장률, 정책 변수 등)보다 항상 더 빨리, 더 크게, 그리고 스스로(별개) 움직이기는 기본 속성 때문에 이것을 시장에 남겨두는 한 사회는 어떤 이론이나 처방책도 이 폐단을 감당하지 못한다. 발생한 허구가격의 질병은 처방의 강도에 따라 급성과 만성, 약성과 잠복성 등으로 그 증상만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영국의 영란은행이 금융 투자가 조지 소로스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 그리고 주식 투자 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기능이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이 주식시장이라고 상황을 역으로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하며 아주 세련된 전문 용어와 유식한 식견으로 주식투자를 권하고 있다. 그러면 주식시장의 개미들은 이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므로 그대로 믿으며, 주식을 모르는 백성들도 그게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렇게라고 해야 시장경제가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참을 수밖에 없다. 누가 주식에 대한 반론을 제시해도 허구가격의 본질을 잘 모르니 빈약한 논리에 정서적 표출만 하고 그친다. 이처럼 우리는 주식의 허구가격에 대해서는 이미 이성이 마비 상태에 깊이 빠져 있다. 이성을 잃으면 마약도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양약으로만 보인다.
앞으로 비트코인은 지금의 주식보다 더 큰 폭으로 인간 이성을 마비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 대가는 주기적 경제불황,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그리고 세금부담 증액 뿐이며, 비트코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 이 값을 장바구니에 모두 물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은 사람들은 이러한 허구가격과 부채가 천문학적으로 커지고만 있는데
예수님이 가르쳐 준 주기도문 "모든 빚을 사하여 주듯이 죄들도 사하여 주옵소서(눅 11:4)"의 뜻을 알고 기도를 하고 있는지? 성경에서 빚(자유의 제약물)과 세금(가이사의 것)이 사라져야 이루어질 수 있는 희년(레 25장)과 열납의 해(눅 4:18,19)를 문자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성경 읽는 사람들이 컴퓨터가 666 마귀 숫자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사람들에게 창피만 당하고 지금은 그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의 이성은 물론, 하나님의 영성까지 마비시키고 있는 비트코인의 실체는 거의 모르며, 말도 못하고 있다. 영혼만이 구원의 실체로, 神(귀신 신)의 소리만 듣는 무당처럼 이 세상은 세속적이므로 저 세상만 보고 살라면서 종교만 전하고 가르치는 자들, 하나님 나라의 필수 요건인 창조질서와 실물계, 그리고 구약이 강조하는 육의 구원은 쓰레기 같아 보여서 피해 가고 싶은 대다수 종교인들...계시록 18장이 말하는 장사꾼들의 영혼거래, 그리고 하룻만에 사라져 버릴 값진 상품과 거대한 치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목탁을 두드리며 가부좌를 틀고서 염불을, 그리고 3보 1배로 순례자의 삶을, 돌상과 목상 앞에서 현세의 복을 찾고 빌고 있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 긴긴 역사 속에 본질을 캐기 위해 땀 흘리는 철학들, 인간의 근원적 행복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사상가들...
모두가 종이(화폐와 증권) 쪽지 하나에 기록된 숫자에 대해서는 본질은커녕, 그 가치의 존재 유무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고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열심을 내거나 고행을 하며 살고 있다.
번개같이 빠른 컴퓨터 결제 수단을 통하여 하루에도 천문학적 숫자를 다루는 외환 거래는 과연 무엇을 팔고 사고 있다는 말인가? 아무 것도 아닌 허상이기 때문에 그 거래는 70억의 인류에게 1원 하나 줄게 없다. 그럼에도 굶주려서 아사 직전에 있는 생명들의 장바구니에까지 인플레이션을 집어넣어 주고는 가치를 도둑질 하고 있는 셈인데도 그 허구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노동가치만 알고, 자본가치는 감가상각비만 인정을 하고는 모든 가치를 노동가치로만 생각했던 유물론자(마르크스나 공산주의자)들의 잘못 때문일까? 아니면 토지와 자본을 식별하지 못하고 강남 부동산시장에서 집값과 땅값을 식별하지도 못하는 자본주의의 맹신들 때문일까?
8. 비트코인(블록체인)의 기술가치와 천연토지의 기술가치
블록체인의 이점이 화폐시장의 혁명을 가져오더라도 하나님의 창조물이자 자연물인 토지에 비하면 그 경제적 기능은 천만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블록체인 기술에는 그 기능이 아무리 빼어나다고 하더라도 극히 한정된 기능만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물이자 자연물인 토지는 자전과 공전, 물과 햇볕 등 어느 하나의 기능만 하더라도 블록체인보다는 천배, 만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경제 가치물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의 기능은 아무리 우수해도 그 놈이 생명을 내거나 생명을 먹여 살리지는 못하지만, 토지는 다양한 양식과 가치를 내어서 생명을 내고 있고, 그 생명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블록체인이 무슨 큰 기적을 가져다 줄 것으로 너무 과신하지 말고, 생명을 내고 살리며 이 보다 천배, 만배 더 높은 기능을 가지고도 말도 없이 생산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토지에서 더 큰 기적을 찾고 만들어 보기 바란다. 땅은 우리가 그것을 팔고 사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크기의 부채를 만들어 우리에게 안겨주고 거기에 인플레이션과 세금까지 덧붙여 벌금을 매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성만 바로 가지고 있고, 성경의 토지 경제법을 제대로 알고 나면, 그래서 창조질서대 토지가치를 바로 이용할 줄만 알면, 지금까지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시켜 놓은 천문학적 숫자의 부채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세금까지도 토지가치가 모두 대신하여 줄 것이다. 이게 토지가치가 가진 창조원리이자, 자유시장 경제원리이며, 그리고 희년법 토지 무르기가 가르쳐 주는 십자가의 구원원리이다.
9. 맺음말
그러나 우리가 토지가격이 금융물로 보이지 않고, 실물(가치)로만 보이고, 주식은 기업의 실물가치나 미래의 생산력을 대신한다고 보면(또 언제인가 주식가격이 실물가치로 실현이 된다고 믿는 한) 이 허구가격은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는다. 이게 바로 인플레이션도 숫자이므로 사람의 눈에는 가치로 보이는 것과 같은 가치에 대한 완전 착각현상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임금이 오르거나 가격이 오르면 실제로 임금이나 가치가 커진 것이 없지만, 우리의 인식은 그만큼 소득이 늘거나 가치가 커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화폐환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지금의 비트코인도 바로 이러한 "화폐환상"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비트코인을 자본주의 초기처럼 그냥 용인한다면 그 열풍이 불 때마다 세계의 경제를 흔들었던 광풍의 소용돌이를 벗어날 수 없는 위험을 그대로 갖고 있다. 물론 지금은 이런 폐단(공황과 위기)을 역사적으로 경험하였기 때문에 정부가 미리 통제를 하여 자본주의 초기와 같은 급격한 투기 광풍이나 공황은 당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로 인한 피해는 사회가 모두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다.
불과 몇 년 전(20세기 후반) 선물시장이 세계 시장에 처음 도입될 시기에 세계 금융시장을 생각해 보자. 영국의 영란은행을 비롯한 유럽에서 통화제도(고정환율제)가 무너지고 금융시장이 큰 혼란을 겪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비트코인과 같은 투기성 허구 상품이 등장하여 커지면 이로 인해 세계시장은 통화가 증발하는 효과가 발생하고, 그 여파로 또 다시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투기 상품이 득세를 하면서 허구가격을 만들어 낸다. 그러면 그 허구가격의 피해는 이러한 투기상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세계의 선량한 백성들이 시장가는 장바구니에서 그 값(스태그플레이션)을 메워 주어야 한다. 허구가격이 발생하고 난 뒤는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금융이 살아나고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구조조정이니 금융개혁이니 하면서 어슬픈 처방책을 내어놓고 정책적 논쟁을 반복하는 역사적 악순환을 계속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은 경제에서 허구적 가격만 만들어서 사회에서 위험과 부담만 존속시키는 허구물이므로 조기에 그 싹을 없애버려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최첨단 과학시대에 살면서
㉠ 노동과 자본, 그리고 기술이 일을 하여 가치를 생산하고 그 생산한 가치를 누리는 수익물(희생의 대가물)과
㉡노다지나 산삼을 캐서 횡재를 한 가치물(불로소득물)은 재화나 서비스가 사회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 위의 (1)에서 (7)까지의 가격은 영원히 국민소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가치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제적 실체를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리고 매년 오르기만 하는 물가상승은 원래 그렇게 해야만 하는 하나의 연례행사인 것처럼로 여긴다.
시장에 투기 가격물이 생기지 않았던 사회, 곧 산업혁명으로 실물 생산이 커지던 자본주의 초기에는 물가가 내렸다는 역사적 사실도 모르고...
㉠은 땀과 노력, 투자와 희생 그리고 아이디어의 대가이며,
㉡은 불로소득이지만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켜주는 가치물이다.
그러나
㉢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화폐만 있고 실물은 아무 것도 없는 허구물이다.
그래서 선진국은 물질이 풍부한 사회에 살면서도 매년 물가를 올려주어야 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정서는 그 진실을 얼마든지 덮어버릴 수 있다. 이게 인간의 보편적 삶이고, 사람이 만든 주류 세계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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