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리 루이스는 끈질긴 사나이였다. 호전‧단기‧재능‧자존심이 급템포 뮤직‧쇼맨십과 뜨겁게 뒤엉켰다. 초기 로큰롤에 맞춰 야성적인 프로토타입을 난도질해 불태웠고, 7번이나 결혼했다. 나이와 관습을 완전히 무시했다. 한번은 자신이 라이브쇼의 최종 연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 분노가 폭발했다. 그 화풀이로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에 불을 질러 피날레로 삼았다. 아무도 더 킬러(The Killer: 루이스의 별명)를 따르지 않았다.
컨버터블 XKR-S 앞자리에 들어가자 문득 제리 리 루이스가 떠올랐다. 재규어의 제일 값비싼 모델은 이따금 자기중심적 환상에 빠질 수 있다. 흔해 빠진 속살과 요란한 뚜껑을 달고 있는 바퀴 달린 꽃불놀이 기구. 동시에 발작적인 굉음을 들려줄 플레이 버튼을 달고 있었다. 그렇다고 신형 로드스터가 재규어 거장의 뒤꽁무니나 따라 다니길 바랄 리는 없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호화판 틈새를 장기간 독점할 수는 없다. 재규어 라인업의 정상 10만3천 파운드(약 1억8천500만원)짜리 컨버터블이 모래밭에 깃발을 꽂은 지 겨우 6개월. 자신만만한 독일인들이 토플리스가 판치는 해안전선에 실력이 빵빵한 라이벌 2대를 내려놨다. 둘 다 개성만점인 우뢰형 8기통을 얹었고, 정상급 한정판 수준에 도달하는 희소성을 자랑했다.
9만9천 파운드(약 1억7천만원)(옵션을 두루 갖추면 11만4천 파운드(약 2억원)에 달한다)에서 시작하는 BMW M6 컨버터블은 재규어를 앞섰다. 재규어는 현행 M5와 똑같이 560마력 4.4L 트윈터보 V8. 하지만 M6은 XKR-S보다 0→시속 100km 가속에서 0.1초 빠르다. 4.3초로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SL63 AMG와 같다. SL63은 537마력 5.5L 터보 AMG 8기통을 얹었고, 기본형은 11만 파운드(약 1억9천700만원)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더 빠르고, 더 높고, 더 힘차다. 잠재적으로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단단하기도 하다. 이들 트리오를 영국 남동부 서리의 심장부에 몰아넣었다. 시각적으로 이들은 모두 아래층 형제들이 다져놓은 청사진을 한층 아름답게 장식한 모델이다. BMW는 익숙한 M 브랜드의 특징을 라인업의 정상 6시리즈에 도입했다. 거기에는 플레어 아치, 더 낮은 공기흡입구와 신형 흑색 슬레이트 M 키드니 그릴이 들어 있었다. 물려받은 트림 프로포션과 개성 있는 ‘지느러미’ 루프구조가 눈을 즐겁게 한다.
메르세데스에 따르면 SL63은 재해석한 크롬 ‘트윈 블레이드’ 라디에이터 그릴을 받아들인 최초의 고성능 모델. 이로써 앞머리는 더욱 뚜렷이 찡그린 V형을 이뤘다. 앞머리의 새로운 찌푸림과 뒤쪽의 4개 AMG 파이프를 제외하고도 클래식한 SL 프로필을 지켰다. 거대한 보닛, 뒤로 물러난 실내(라이벌 트리오 중 유일하게 뒷좌석이 전혀 없다)와 마그네슘 프레임 접이식 루프를 갖췄다. 시간을 초월한 그 매력과 고귀한 혈통이 빈틈없는 미모의 당당한 풍채를 빚어냈다. 전적으로 아름답거나 스포티하지 않았다. 그러나 궁극적인 드라이브웨이 장식. 치밀하게 스타일을 다듬어 오너의 집마저 한층 돋보이게 한다.
한편 재규어는 가만히 서 있어도 음속으로 달리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공력효과는 허울뿐이지만 XKR-S의 앞머리(불길한 독기를 뿜으며 눈을 부라리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반면 화끈한 스포일러는 이름 그대로 뒤꽁무니를 망쳤다. 하지만 아무리 추가 장비가 많아도 재규어의 스타일을 완전히 망칠 수는 없었다. 대형 영국제 카브리오는 여전히 비범하고도 영혼을 울리는 자태를 뽐냈다. 제멋대로 보는 이의 눈길과 찬사와 뜨거운 한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실내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시대가 성큼 앞서 가면서 잔인하게 재규어의 실내를 버렸다. 시네마스코프적 실내공간이 파도처럼 솟구치는 가죽내장 대시보드의 언덕과 어우러졌다. 이 같은 인체공학적 겉치레는 미식축구선수인 왕덩치 아저씨가 포옹하려 덤비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스위치기어는 랜드로버 프리랜더라면 시각과 감각의 어느 쪽으로도 빗나가지 않을 수준이었다. 광택 플라스틱은 이전의 광채를 많이 잃었고, 한때 매혹적이던 터치스크린은 다이얼형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듯했다.
광섬유형 선물로는 BMW를 꼽아야겠다. M6은 극적이고 기술집약적 콘솔과 제대로 쓸 수 있는 뒷좌석이 돋보였다. 이들이 합쳐 마치 거함과 같았다. 굵은 손목만 한 스티어링에서 무광택 블랙의 질펀한 내장에 이르기까지 바람직한 이점으로 덩치를 내세웠다. 아이드라이브(iDrive), 기어박스, 서스펜션, 엔진, 루프 조절장치 그리고 재떨이와 핸드브레이크가 모두 왼손 아래 있으면서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 다만 스티어링 컬럼 스토크의 위치는 좋지 않았다. 고릴라처럼 큰 손으로 짜릿한 손맛을 보려면 패들 쉽터에 너무 가까이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M6이 의도적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판다면, SL63은 호사를 자랑했다. 승객들은 라이벌의 시장가치에 눈살을 찌푸릴 수 있다. 메르세데스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으로 엄청난 가격표를 달았다. 루프를 올리면 스티칭‧디테일‧동물가죽‧무광택금속이 아름답게 장식된 고요한 대리석관으로 탈바꿈했다. IWC 시계, 박격포탄 크기의 환구기, 옵션인 매직 스카이 컨트롤 루프, 에어 스카프, 알칸타라 스티어링을 갖춘 SL. 힘들이지 않고 귀족적 기대를 자극했다.
물론 결함이 없지 않았다. 메르세데스가 전화 키패드로 대시보드를 멍들게 하고, 운전석 뒤에 트렁크 리드 장치 일부를 드러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섬뜩할 만큼 예리하고 상쾌했다. 고속도로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봐도 트리오 중 가장 세련됐다. 옵션인 20인치 휠의 BMW는 도로소음에 시달렸고, 재규어는 절연된 소프트톱 주위의 기류에 흔들렸다. 하지만 SL63의 단단한 하드톱은 감압실처럼 단단히 감싸줬다. 정속주행에는 다리가 긴 엔진도 별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체의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단일 목적에 맞춰 조율했다. 메이커의 적응형 액티브 보디 컨트롤이 기본이지만 고속도로 M4의 모든 주름을 매끈하게 타고 넘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불편하다는 말은 아니다. 메르세데스가 그런 SL을 내놓을 리가 없다. 구체적으로 재규어와 비교했기 때문에 이따금 겪는 요철의 거친 반응이 두드러졌을 뿐이었다. 한편 XKR-S를 지옥의 맹견 케르베로스처럼 궁지로 몰지 않고 110km 정속주행에 들어갔다. 그러자 경이적인 정숙성을 자랑했다. 라이벌과는 약간 다른 고객을 겨냥한 재규어는 지나치게 딱딱한 쿠페 서스펜션을 한결 부드럽게 손질했다. 그래도 여전히 훨씬 값싼 기본형보다는 뻣뻣했다(라이벌보다 더 뚜렷이 이상한 진동이 보디를 타고 흩어졌다). 그리고 스티어링은 약간 허전하지만, 의무적인 스포츠카 스타일에 본격적인 GT 성격을 담아냈다.
M 디비전에서 나오는 모든 새 모델과 마찬가지로 M6의 가변적 성격은 사전에 조율할 수 있다. 엔진 반응에서 댐퍼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드라이버의 성향에 맞출 수 있고, 2개의 두드러진 M 버튼 중 하나와 연결했다. 그러나 단단한 참나무 커피 테이블을 갖춘 헤비급에 맞먹는 매력을 살리려면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잘 길들여진 페이스로도 어쩐지 무기력하고 투박한 느낌이 들었다. 건성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서보트로닉 스티어링은 덩치가 커졌다. 그리고 컴포트(Comfort) 모드에 들어가면 경제우선의 드로틀맵이 파워트레인의 실질 에너지를 거의 한계로 몰아갔다. 역동적인 댐퍼도 걸핏하면 부당하게 혹사를 당했다. 나중에 BMW가 라이벌 중 유일하게 2톤을 훌쩍 넘는다는 걸 알았지만, 전체적인 평가를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BMW는 로드스터의 구체적인 결함을 숨기기를 꺼렸다. 그러다가 양들이 점점이 박힌 브레컨 비컨의 아스팔트에 들어선 뒤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웨일스’풍으로 보이고, 오른발이 브레이크 페달에서 떨어질 줄 모를 때 M6은 품위 없이 터덜거리다 진정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보이던 틈을 메우려 공중에서 기체를 바짝 움츠리는 비행기처럼 육중한 무게가 갑자기 M6을 노면에 찰싹 밀어붙였다. 그립의 한계에 이르자 액티브 디퍼렌셜의 지원을 받은 BMW는 능란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밸런스‧정밀성과 결별했다.
구형 터보 V8은 괴기하고 요란한 배경음을 오직 스테레오 스피커를 통해 귀에 전달되도록 제한했다. 예상대로 그 방식은 살아났다. 겨우 1,500rpm에서 70.5kg‧m를 몽땅 쏟아내지만 강펀치를 날리기 위해서는 고회전대에 올라가야 했다. 그 전환점이 5,500rpm. 단연 뛰어난 7단 M-CDT가 3단에 들어가야 발랄한 새 스타일에 어울리는 스피드가 나왔다. 그러자 드라이버는 등골이 오싹하고, 교통경찰은 경적을 울리며 추격전을 벌였다.
재규어는 전혀 다른 악보에 따라 노래를 불렀다. 지옥의 남성합창곡. XKR-S의 센터콘솔에는 다이내믹(Dynamic) 버튼이 있었다. 한데 그걸 누르든 말든 상관없었다. 액셀을 별로 밟지 않았는데도 경이적인 추진력으로 포탄처럼 날아갔다. 그 이유는 첫째 1,000rpm을 지나자 69.3kg‧m 슈퍼차저 550마력 5.0L 엔진(놀랍게도 재규어는 BMW보다 250kg 이상이나 가볍다)을 가로막을 장애는 확 줄어들었다. 아울러 액셀 페달은 가학성 음란증을 자극했다. 단 1mm라도 더 밟으면 2차대전 중 나치공군의 영국공격 이후 들어본 적이 없는 피스톤 발화 사운드트랙으로 외딴 마을들을 폭격했다. 게다가 M6보다 헐렁한 XKR-S는 목이 부러질 번개 같은 가속을 380mm 디스크로 힘차게 나꿔챘다. 아무튼 활강 스키어가 무릎으로 지형에 따라 가감속을 조절하듯 숙달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스티어링은 지나치게 가볍다고 할 수는 없어도 요즘 유행하는 끈끈한 유형과는 달랐다.
이들 모두를 소화할 때쯤 XKR-S는 즐거웠다. 한층 극적인 자유를 누릴 공간에 들어가자 철없는 재미 앞에 펄떡거렸다. 가볍게 타고난 엉덩이는 슬라이딩에 빼어난 자질을 발휘했고, 라이벌보다 훨씬 빨랐다.
SL63이 그렇게 재미를 볼 수는 없었다. 해제 가능한 ESP를 갖추고 있어 집요한 뒤액슬을 독자적으로 조절 가능한 슬립각도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메르세데스는 그와는 다른 재주를 부릴 수 있도록 조율했다. 다시 이 방정식에서 무게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구체적으로 무게를 얼마나 줄였느냐가 문제. SLS와 같은 완전 알루미늄 보디는 구형 SL의 강철형보다 125kg이나 내려갔다. 1,845kg은 재규어보다 약간 무겁지만, 운전을 하며 그 차이를 느낄 수는 없었다. M6이 폭력을 쓰고 XKR-S가 고꾸라질 때 SL63은 확 쓸고 나갔다. 앞머리는 다른 두 적수보다 한결 깜찍하고 민첩했다. 메이커가 내놓은 액티브 보디 컨트롤은 저롤링 코너 정점에서 훨씬 일을 잘했다. 속도감응형 스티어링이 유연한 반응을 한층 북돋았다. 어느 속도에서도 팽팽하고 반응이 뛰어나며 유기적인 성능을 발휘했다.
그렇게 성능의 70%에서 가장 뛰어난 로드스터가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거의 모든 고성능차(특히 507마력급 컨버터블)가 실제로 도로를 달리는 속도다. 때문에 드라이브트레인이 그 목적에 완벽하게 맞아들었다. 골수 수동모드에서는 7단 AMG 스피드쉽트 박스가 가속 때 덜덜거렸다. 하지만 S+ 세팅(4개중 하나)에서는 감각적이고 능동적이며 으레 제 구실을 해냈다. 마찬가지로 5.5L V8(트랙데이 레이스에서는 약간 직선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다)은 중간회전대의 평범한 요구에 81.6kg‧m의 막강한 파워로 응답했다. 황홀하게 아늑한 실내의 고요 속에 난폭하고 아름다운 바리톤으로 함성을 질렀다. 궁극적으로 선두주자와 추격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의식에 구멍을 펑 뚫었다가 나중에 되살려주는 바로 이런 우렁찬 추억. M6은 기술적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가장 큰 기질과 정답고 유순한 한계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너무 크고, 다루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두 라이벌과의 본격적인 사운드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재규어와 메르세데스 사이에는 햇빛이 들어갈 틈도 없었다. 둘이 거의 같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SL63은 타고난 스타일, 실내 안락성, 세련미와 균형감각을 자랑했다. 따라서 재규어가 절대로 바랄 수 없는 독특하고도 윤택하고 매혹적인 틀을 갖췄다. 그럼에도 AMG는 SL의 레서피에 상대가 없는 드라마를 꽂아 넣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힘들이지 않고 우아하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일련의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재규어가 스스로 밝히지 못한 XKR-S의 결함을 잘 드러냈다. 객관적으로 그 둘 가운데 XKR-S가 더 불완전하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호화로운 SL63이 훨씬 눈에 잘 띄고 빛났다. 그러나 늘 한산한 B급 도로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정조준 해보자. 여기서 메르세데스는 본격적인 공연을 앞둔 총연습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반면 XKR-S는 단 하나도 빠트리지 않은 완전한 라이브 드라마였다. 600km를 달려보라. 그러면 스스로 럭셔리한 주역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연료와 화력으로 포효하는 워밍업의 벌거벗은 열정으로 당당히 무대에 올라봤다.
글 : 닉 캐킷(Nick Cacke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