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그야말로 도로 위에서 왕이 된 기분. 장인의 수작업이 가미된 실내 분위기는 부유한 감성을 자아내고, 드높은 시야로 인해 다른 차들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자연스레 오만해진다. 거대한 몸집이 엄청난 힘을 내뿜으며 강력하게 내달리는 느낌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 마치 머슬카처럼 우렁찬 포효로 울부짖는 엔진과 배기 사운드가 더해지면 카리스마 그 자체다.
국내에 경쟁자가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의 풀 사이즈 럭셔리 SUV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도로 위의 황제’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없는 에스컬레이드의 최고급 모델인 플래티넘 에디션이 등장했다.
지금껏 최고의 SUV를 꼽으라면 자연스럽게 레인지로버나 카이엔을 떠올렸던 기자의 머릿속은 이 특별한 에스컬레이드와의 만남을 통해 혼란스러워졌다.
차가운 검은색 차체는 5미터가 넘는 전장, 2미터를 넘나드는 전폭과 전고로 인해 여느 SUV들과 비교조차 힘들 만큼 당당한 풍채를 자랑한다. 직선적인 강인함이 돋보이는 외관 디자인은 전체적인 균형미가 뛰어난 편. 여기에 캐딜락 특유의 커다란 라디에이터그릴, 세로형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전용 22인치 크롬 휠 등이 세련미를 더해준다. 도어를 열면 소리 없이 내려오는 파워 러닝보드는 실용성보다 쏠쏠한 눈요기로서의 만족감이 더 크다.
외관만큼이나 웅장한 실내로 들어서니 허술함을 찾아내기 힘든 탄탄한 마무리가 돋보인다. 실내 전체에 폭넓게 적용된 가죽 마감재들은 장인이 손수 재단하고 바느질했다는 정교한 스티치로 품격을 높여준다.
테하마 천연가죽 시트, 올리브 애쉬 원목 트림, 전용 도어실 플레이트와 바닥 매트, 컵홀더 히팅/쿨링 기능 등은 플레티넘 에디션만의 특별한 선물세트. 뒷좌석을 위한 모니터와 리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여전히 잊지 않았다. 덕분에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칭찬이 자자할지도.
정작 운전자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한 가지 있다. 스티어링휠이 위 아래 틸트만 되고 당기거나 밀어넣을 수는 없는 반면, 브레이크 페달은 전동식으로 조절은 되지만 가장 아래로 내려도 높이가 꽤 되는지라 키가 큰 운전자일 경우 완벽한 운전자세가 나오지 않을 수도.
3열 탑승자의 편리한 승하차를 위해 버튼 하나만 누르면 2열 시트를 전동식으로 바닥까지 모두 접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다. 예상대로 2열과 3열 시트를 모두 눕히면 소형차 한 대는 족히 집어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공간이 창출되고, 3열 시트는 손쉽게 탈부착도 가능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볼 차례. 처음 거대한 차체를 마주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탁 트인 높은 시야 덕분에 오히려 다른 SUV들보다 운전이 손쉽고 편하다. 시동키를 돌려 심장을 깨우면 나지막하게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기판의 바늘이 끝까지 회전했다 돌아오는 세레머니를 펼친다.
최고출력 403마력(5700rpm), 최대토크 57.6kg.m(4400rpm)를 발휘하는 6.2L V8 VVT 엔진은 알루미늄 블록이 적용되었고,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로 캠샤프트 타이밍을 최적화해서 토크와 마력을 향상시킨 것이 장점. 6단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2.6톤에 달하는 무게를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컬럼식 기어변속레버에 수동모드를 위한 버튼까지 마련된 것은 불편하면서도 이채롭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대며 질주를 시작하니 응답성이 의외로 다부지다. 엔진과 미션의 반응은 덩치에서 비춰지는 선입견을 날려버릴 만큼 흥미롭고, 하체의 거동 또한 도로주행에서 승차감과 안정성이란 측면 모두 절묘한 타협을 이뤄낸 감각. 에스컬레이드의 주행감성은 그렇게 우직한 겉모습과는 달리 치밀하고 당찬 면모를 가졌다.
달리면 달릴수록 자신감이 붙게 되는 타입이랄까. 게다가 듣기 좋은 우렁찬 엔진음과 배기음이 온몸을 자극하며 넘치는 파워를 아낌없이 써보라는 듯 부추기기까지 한다. 이내 수동모드를 사용하며 더욱 밀어붙이니 그야말로 거대한 스포츠카가 따로 없다. 레인지로버의 부드러운 묵직함, 카이엔의 넘치는 박력, 적어도 체감 상으론 이 모두가 에스컬레이드에서 동시에 느껴지기도 한다.
고속 코너링이나 급차선 변경도 깔끔하게 해내는 실력을 갖췄다. 이는 풀타임 4륜구동인 이유도 있겠지만, 노면 상태를 1000분의 1초 단위로 감지하며 스스로 댐핑 압력을 조절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 시스템 덕분이기도 하다.
주변 차량이 없는 한적하고 넓은 도로에서 꽤나 고속으로 달리며 과하게 급차선 변경을 반복해서 시도해보니, 높은 차체가 뒤뚱거리긴 하지만 네 바퀴는 접지력을 잃지 않으며 덩치에 비해 훨씬 안정되고 기민한 거동을 보여준다. 무거운 차체 때문에 브레이킹 답력이 무겁고 다소 밀리는 경향은 있다.
신나게 달리다보니 슬슬 연비가 신경 쓰이는데,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AFM) 시스템이 장착되어 조금은 걱정을 덜어도 되겠다. 엔진 출력이 과하게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 자동으로 작동하는데, 도심에서의 교통 정체와 같은 상황에서 4실린더 모드로 전환되는 시스템이다. V8 엔진의 8개 실린더 중에서 절반인 4개의 실린더만 작동시킴으로서 연료 효율성을 높여준다.
에스컬레이드는 무거운 중량으로 인해 공인연비가 낮을 수밖에 없지만, 이를 실제 연비에서 보완시켜주는 장비라 할 수 있겠다. 실용적인 세단이나 효율성이 강조되는 친환경 차량 등에 이와 비슷한 시스템을 적용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에스컬레이드에 이러한 시스템을 장착했다는 것은 100리터에 달하는 연료탱크와 더불어 한 번에 주행 가능한 거리를 최대한 높여주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에필로그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플래티넘 에디션은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인 모델임에 틀림없다. 거대한 덩치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박진감 넘치는 주행감성은 예상을 뛰어넘는 만족감을 안겨준다. 장인의 손길이 닿은 꼼꼼한 실내 인테리어 또한 플러스 요소.
이렇듯 넘치는 매력과 당당함으로 도로 위를 군림하는 모습을 보면, ‘도로 위의 황제’와 같은 별명은 슈퍼카에만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제아무리 친환경 고효율이 강조되는 시대라지만 세상엔 이런 차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