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리의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무참하게 밟아버린 세계 최강의 풋볼팀 FC 바르셀로나의 고장,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것은 지난 11월 25일. 6세대 BMW 3시리즈의 글로벌 미디어 론칭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5세대 3시리즈의 론칭 무대 역시 스페인, 도시는 발렌시아였다. 7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또 한 번 변화의 현장에 가는 길에 감회가 새로웠다.
춥고 음습했던 독일의 기후와 달리 바르셀로나는 공항에서부터 포근하고 환한 기운이 가득했다. 북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왜 지중해 연안의 도시로 오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BMW는 1터미널 한쪽에 3시리즈 라운지를 꾸며놓고 주차장 부근에 시승차를 준비해두었다. 코스와 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바로 시승에 나선다. 320d의 키를 건네받고 차를 찾아가는데, 진행요원이 안내해준다.
가져온 여행가방을 싣기 위해 트렁크를 열려고 하자 그가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트렁크 앞에 선 그는 뒤 범퍼 아래로 오른발을 쑥 밀어 넣는다. 마치 공을 차는 것처럼. 그러자 트렁크가 저절로 열린다. 그가 보여주려 한 것이 바로 이것이고, 새로운 3시리즈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키는 주머니에 있고, 양손에 짐을 들었을 때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신형 3시리즈는 마치 5시리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이즈가 커진 모습이다. 차체 길이는 이전보다 93mm, 휠베이스는 50mm 길어졌다. 앞뒤 트레드가 각각 37, 47mm 커졌다. 높이는 9mm로 미미한 수치. 변화는 항상 키드니 그릴에서부터 이루어졌다. 1세대의 각진 세로형 그릴은 전체적으로 각진 이미지를 완성했다. 그리고 다음 세대, 그릴이 둥글어지면서 보디 스타일도 유선형으로 바뀌어갔다. 이번 6세대는 헤드램프와 라인이 이어지며 조금 매서운 인상을 풍긴다.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바일은 “라이트가 키드니 그릴과 연결되면서 측면이 보인다. 말하자면 키드니 그릴이 차 안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릴 아래 에어 인테이크는 가운데 하나로 있던 것을 좌우로 분리하면서 사이즈를 키웠다. 양 끝단으로 확장하면서 프론트 휠 주변의 공기흐름을 향상시킨 것. 롱 노즈 숏 데크의 스포티 룩에 긴 휠베이스와 셋백 그린하우스의 비율이 자연스레 녹아드는 모습이다. 차체가 커졌지만 다이내믹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디자인이다. 옆모습에서 아래 위 두 개의 라인은 차가 뻗어나가는 느낌을 주고, 뒤 휠 하우스에서 이어지는 후미등은 2개의 LED 줄로 마감해 5, 7시리즈와 구분하게 했다. 또한 3시리즈는 5, 7시리즈와 비교해 표면의 굴곡이 적은 편. 그런데, 3시리즈를 계속 컴팩트 세단으로 불러야 할까?
차체가 커진 만큼 실내도 넓어졌다. 넓어진 공간은 대부분 뒷좌석을 위해 할애되었다. 이전에 다소 뒷좌석이 좁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인데, 특히 뒷좌석의 편안함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트렁크 용량도 20L 커진 480L. 그렇다고 운전석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3시리즈는 누가 뭐래도 드라이버즈카. 운전자를 중심으로 배치된 계기는 손닿기 쉬운 위치에 있고,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모양이 조금 바뀐 디스플레이 모니터는 테두리가 없는 평면 스크린 타입으로 아이폰을 연상시킨다.
정형화된 틀을 깨기 위함인 듯 3시리즈는 모던, 스포트, 럭셔리 등 3개의 라인업으로 구분된다. 모던 라인은 11개의 키드니 그릴을 알루미늄 컬러로(실제는 보행자보호 때문에 플라스틱) 처리하고 실내에서 나무 소재를 약간 거칠게 다루어 현대적인 느낌이 나게 했다. 스포트 라인은 키드니 그릴이 8개로 선을 3차원적으로 구성. 타이어의 스포츠성을 강화하고 스티어링 휠, 도어 이음새, 대시 패널 등에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럭셔리 라인은 키드니 그릴에 크롬을 입히고 고급 마감재와 고급 가죽으로 차별화했다.
지중해 태양의 축복인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가 이내 사라진다. 시승 코스는 점점 골짜기를 향해가고 있다. 시승차는 320d 모던 라인. 회색 보디컬러가 따뜻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가장 많이 팔릴 주력 모델이다. 4기통 트윈 터보 디젤 엔진의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비는 높이고 배출가스를 줄인 것이 포인트. BMW가 줄기차게 추구하는 이피션트 다이내믹스의 결과물이다. 최고출력 184마력은 4,000rpm에서 발생하지만 주행의 대부분은 3,000rpm 이하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진다. 38kg·m에 이르는 최대토크는 1,750~2,750rpm 사이에서 탄탄한 달리기를 뒷받침한다. 모든 라인에 들어가는 자동 8단 기어가 동력을 부드럽고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연속 커브가 이어지는 험준한 산악도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강렬한 햇살은 쉴 새 없이 창가를 두드리고, 아찔한 절벽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거친 달리기 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320d는 정확한 라인을 따라 코너를 감아나간다. 차체는 커졌지만 체중은 감량했다는데, 확실히 가벼워진 보디를 느낀다. 하체의 묵직함은 이러한 코너에서 더 안정감을 주지만, 한층 가벼워진 느낌이 주는 민첩함도 그에 못지않다. 그만큼 신뢰를 주는 핸들링이다.
운전 모드를 선택하는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컨트롤’은 에코 프로, 컴포트, 스포트, 스포트 플러스로 구분된다. 운전자가 먼저 시동을 걸면 이중 하나로 시작하는데 바로 컴포트 모드다. 댐퍼의 세팅이 부드럽게 된 상태다. 가변식 댐퍼에는 자석 밸브가 달려있는데 전기를 통해 오일이 흘러가는 양을 조절(mm/초 단위)한다. 컴포트에서 스포트 플러스로의 모드 변환은 무단계로 이루어진다. 댐퍼의 변화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노면이 순식간에 바뀌므로 그에 앞서 적응하기 위해서다.
에코 프로는 최적의 연료효율을 위한 모드. 액셀러레이터의 반응뿐 아니라 에어컨과 시트 히팅까지 줄인다. 연료를 적게 사용하면서 운전자가 릴랙스하게 운전할 때 필요한 모드. 이 패키지는 15~20%의 연료를 줄여준다는데 운전재미는 그만큼 양보해야 하겠다.
바르셀로나 근교에 자리한 라 몰라(La Mola) 호텔까지 약 200km에 이르는 시승 거리는 어느새 바람처럼 지나갔다. 밤이 내리자 날씨는 매우 쌀쌀해졌다. 공식 발표회장 앞에는 지난 5세대의 3시리즈들이 나란히 서있다. 이러한 성공의 역사 앞에서 새로 3시리즈를 개발하는 이들은 얼마마한 부담감을 가졌을까. 함께 저녁을 먹은 테크니컬 개발팀의 마틴 사우터 씨는 그러한 의무와 성취감을 이야기했다. 그는 엔지니어로서의 가장 큰 보람으로 차가 커졌지만 경량화했다는 것, 그것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다음날은 빨간색 보디의 328i 스포트 버전을 탔다. 328i는 이전 6기통 엔진을 대체하는 것으로 4기통 트윈스크롤터보 245마력 휘발유 엔진은 3시리즈에 처음 쓰이는 것이다. 이러한 다운사이징은 528i도 똑같이 진행되었다. 6기통을 4기통으로 바꾼 2012년형 528i는 국내시장에도 출시되었다. 사실 바르셀로나로 날아오기 전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이 528i를 먼저 타볼 기회가 있었다. 부드럽고 사뿐한 달리기는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 민첩한 핸들링은 물론 여유 있는 승차감도 그랬다.
328i는 초강력 스틸과 알루미늄 등의 사용 부위를 바꾸면서 25kg, 엔진을 바꾸면서 20kg 등 총 45kg의 무게를 감량했다. 차체가 커지고 강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하는 이유다. 아무튼 3시리즈에서 6기통을 원하는 고객은 이제 335i로 달려가야 한다.
넉넉한 파워는 굳이 기통 수의 차이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가속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만큼 도달하는 데 실망을 안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디젤이 토크의 힘이라면 휘발유는 가속이 진행될수록 풍부한 느낌이 좋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F1이 개최되는 카탈루니아 서킷. 여기서 마음껏 달려보라는 의미다.
페이스카를 보내고 나서 액셀러레이터에 좀 더 힘을 싣는다. 카탈루니아 서킷은 우리나라의 영암 서킷보다 까다롭지 않고 평이해 보였다. 어쩌면 1랩이 20km에 이르는 녹색 지옥, 뉘르부르크링을 다녀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첫 코너 앞까지 시속 150km로 가속한 다음 제동을 걸고 시속 80km로 코너를 빠져나가며 서킷주행은 시작되었다. 랩을 거듭하면서 속도와 코너 공략은 과감해졌다.
아무리 친환경과 효율성의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이렇게 서킷에서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는 것은 결국 운전재미를 향한 멈출 수 없는 열정 때문. BMW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메이커. 자동차 분야의 저널리스트들을 서킷에 풀어놓으며 “어때, 재미있지?”라고 묻고 있다.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6세대 신형 3시리즈는 효율성과 운전재미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또 한 번의 진보와 더불어.
글 · 최주식 <오토카 코리아> 편집장
FACT FILE |
BMW |
320d |
328i |
크기 |
4624×1811×1429mm |
← |
휠베이스 |
2810mm |
← |
엔진 |
직렬 4기통, 1995cc, 터보디젤 |
직렬 4기통, 1997cc, 터보, 휘발유 |
최고출력 |
184마력/4000rpm |
245마력/5000~6500rpm |
최대토크 |
38.7kg·m/1750~2750rpm |
35.7kg·m/1250~4800rpm |
연비 |
22.2km/L |
15.6km/L |
CO₂ 배출량 |
120g/km |
149g/km |
변속기 |
8단 자동 |
← |
서스펜션(앞/뒤) |
스트럿/멀티링크 |
← |
브레이크 |
V디스크 |
← |
타이어 |
225/60 R16 |
225/50 R17 |
*제원은 유럽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