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복수인 줄 몰랐다. 뱃살이 점점 찌나? 했는데, 단단해지는 윗배가 심상치가 않다.
'늙으면 애된다'고, 손녀가 다니는 소아과가 내가 다니는 병원이다. 따뜻한 눈빛이 좋은 선생님이 나의 주치의이다.
초음파 검사를 하시더니, 근처 방사선과에 가서 CT를 찍어 오라고 한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의사에게 "혹시 난소암인가요? 했다.
며칠 전, 검색을 해보니 난소암이 복수가 찬다고, 이미 자각증상이 생기면, 3~4기라고~
그 외에도 부정적인 이야기 들이 많았다.
주치의가 큰 병원 다닌 적 있느냐고 물었다.
69년 동안 살면서 크게 아파서 병원 다닌 적이 없었으니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만을 생각한다면, 크게 미련은 없다.
그리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암환자가 되어 불행한 코스프레를 해야 하나? 생각하니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너 시간 전과 뭣이 다른데?
평소 모습과 같은 나의 대응에 주위에서는 약간 당황스러운가 보다.
검사를 위해 큰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입원을 대기하다가 사흘째 되는 날 입원을 했다.
5인실이다. 가운데 침상이라, 좀 불편하려나? 했으나, 살만큼 살아온 경험과 이해로 그러대로 적응이 되었다.
첫날은, 침상에 누워, 선배가 "당신이 좋아하는 키키 키린이야~내가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한 권 샀어"하며 건네준 책을 읽었다.
다음날 병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암병동답게 머리카락 이슈가 제일 많았다.
역시, 암환자도 여성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자~ 우리 예뻐져볼까요? 마스크팩을 하나씩 나누어 드리고는 " 병원에 입원이나 해야, 몸뚱이를 쉬게 할 수 있는 우리 여성들, 이왕이면 재미나게 지내보면 어떨까요? 모처럼 주어진 기회인데~"
입원 준비물을 인터넷의 도움으로 가방에 싸면서, 오전에 도착한 <여성시대> 선물 중에서 마스크팩을 가방에 넣었다. 어차피 집에 두면 써질 것 같지 않아, 여행지는 아니지만, 잠시라도 느긋한 마음으로 마스크팩을 한다면 그 순간 만이라도, 잠시 현 상황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마스크팩을 받는 한 분 한 분, 모두 아름다운 미소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수줍어한다.
다음날 아침, "마스크팩의 향이 쉼을 줬어요~고맙습니다~" 하는 분이 있어서 고마웠다.
대하드라마 스무 편은 족히 나올, 여든 살에 난소암이 재발되어 오신 할머니는 항암 중인데도 자신의 성공스토리와 한을 풀어내신다. "저런 저런" 하며 듣고 있으니, 빙긋 웃으시며, 좀 부끄럽기는 한데 털어놓으니 시원하기도 하네~ 시간이 벌써 저렇게 됐나?
오늘 하루도 잘 보냈네~하신다.
금요일에 입원할 수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검사수가 많지 않았다. 덕분에, 졸리면 자고, 일어나서 책 읽다가, 그것도 지루해지면, 다른 사람들 사연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통점은 남편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걱정하는 대상은 남편이란 점이 재미있다.
모두 측은지심으로 남편을 대한다는 공통점도 흥미롭다.
검사가 끝나고 치료가 시작되면, 내 마음이 어찌 변할지는 나도 모른다.
내일 걱정을 미리 당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일 걱정은 내일 모래 하기로 하고 지금은 오랫만에 주어진 한가를 느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