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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4일 Asan UBF 주일메시지 민수기 제 5 강 강해
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말씀 / 민수기 9:1~10:36
요절 / 민수기 9: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드디어 오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이 행진을 시작합니다. 광야 길을 걸어서 이스라엘이 행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유월절 구원의 은혜 때문입니다. 고난과 미지의 광야 길을 행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믿음과 순종을 드리기만 하면 이 길을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들의 아들과 딸들은 다시는 이집트 같은 이민족 아래에서 종살이 하지 않으리라는 비전이 있었기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으로 가라 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추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1. 광야 행진을 준비하시는 하나님(9장)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온 지 일년 첫째 달 시내광야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 그 정한 기일 곧 이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2,3)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사건,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들은 1년 전 1월 14일 밤 애굽 전역에 죽음의 사자가 내리던 날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들은 죽었으나 그들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그냥 지나가고 건너 갔습니다. 바로는 장자 재앙을 당한 후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인정하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을 나가라고 항복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노예 생활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는 날입니다. 유월절을 기념하면서 이스라엘은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 되심을 기억하고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켜야할 유월절의 율례와 규례는 유월절 밤에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단에 뿌리고(대하 35:11) 그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효모 없이 구운 딱딱한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면서(11) 노예생활과 그곳에서 구원 얻은 것을 기억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기억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그대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배웁니다.
첫 번째 유월절이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광야행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지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키며 출애굽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거친 광야를 믿음으로 행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고 원수를 만나도 용감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땅도 주실 것을 분명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명한대로 첫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되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모세에게 나왔습니다. 그들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지도 못하므로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시체로 부정하게 된 경우나 먼 여행 중에 있다 해도 당연히 유월절을 지키되 한 달 격리 후 둘째 달 열넷째 날 해질 때부터 모든 것을 다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정결하면서, 또 여행 중에 있지도 않으면서 유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고의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이스라엘 가운데 끊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라도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그 규례에 따라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본격적인 출발이며, 시작점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 실행된 가장 큰 기적과 은혜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존재하는 이유를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는 절기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가? 이스라엘이 왜 이 광야에 모여 서 있는가? 이스라엘이 왜 가나안으로 나아가는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뚜렷하게 설명하여 줍니다.
유월절은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기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왜 지금 예배를 드립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캠퍼스에서 성경말씀을 전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를 사해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일용할 양식 말씀을 보는 것, 우리가 매주 소감을 쓰는 것, 온 세상에 나가 믿어 순종하게 하는 세계선교는 모두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지시고 죽으시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을 마친 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광야 행진를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분명한 신호 체계를 세우셨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성막을 세운 날 구름이 성막을 덮었습니다. 밤에는 불 모양 같은 것으로 나타나 아침까지 이르렀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를 때 이스라엘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물면 이스라엘은 그 곳에 진을 쳤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며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른 날이 이틀이면 이스라엘도 이틀 머물고 한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구름이 오래 머물면 이스라엘도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다가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어느 때라도 다시 행진하였습니다. 구름이 며칠을 머물지는 모릅니다. 구름이 얼마동안 계속 행진할지 모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만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머물기도 하고 진행하기도 할 뿐입니다. 23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
오늘날 우리를 이끄는 떠오르는 구름과 불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매일 일용할양식 말씀을 보고 주일 말씀 들은 것을 생각하고 되새기며 소감을 씁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분명히 계시하여 주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말씀에 대한 확신과 순종할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확신하며 기쁨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게 하는 은총의 채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사람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주시는 메시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본성이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사람에 대한 과도한 기대 의존심으로 깊이 병들어 가까운 사람들의 인격까지 파괴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고 괴롭고 어렵고 난감하게 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할 때, 세상풍조를 따르다가 죄의 열매를 맺고 어두운 밤길 걷는 것처럼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다가 실족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본성과 세상풍조를 따르지 않게 하시는 주 예수님을 찬양 합니다.
10장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께서 모세에게 은 나팔 둘을 망치로 두드려 만들도록 명하셨습니다. 은 나팔을 불어 회중을 소집하기도 하고 진영을 전진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은 나팔로 보내는 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나팔 두 개를 불 때는 온 회중이 회막문 앞에 모여 하나님께 나와야합니다. 은 나팔 하나를 불 때는 천부장 지휘관들이 모여야 합니다.
나팔을 크게 불면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두 번째로 크게 불 때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해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은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어야합니다. 그들이 대적을 치러 전투 하러 나갈 때는 두 개의 나팔을 크게 울려 불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10절을 보십시오. 이 나팔은 희락의 날, 정한 절기나 초하루에 헌신을 뜻하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붑니다. 이때 두 개의 나팔을 부는데 제물 위에서 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쁨으로 나와 나팔 불며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더욱 축복하십니다. 20b절을 보십시오.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찬양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범사에 축복하여 주십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광야를 진군할 때 신호체계, 통신채널을 갖추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는 민족,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인 모임에서는 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 있고 수평적으로 동역자들간에 목자와 양간에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소통채널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양이 다른 양을 데려오고 충성하는데, 어떤 목자는 늘 ‘저 놈은 정욕의 죄를 지을지 몰라’ 하는 일이 80년대에도 있었는데 21세기 지금도 있습니다. 목자가 사랑으로 돌보는데, ‘목자님은 내 형편을 모른다’. ‘나를 싫어한다’. ‘나를 쫓아내려 한다’ 하는 사람이 80년대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동역해 주는데, 그것을 몰라주고 ‘걔는 외국으로 내보내야 해’하는 일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서로 신뢰하여야 합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형제들과 사랑과 신뢰로 서로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 권세 아래 있는 지금의 이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는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잘 싸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올랐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출발하였습니다. 유월절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한 달 후 유월절을 한 번 더 지키게 한 후 2월 20일날 출발하였습니다. 맨 앞에는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서고, 그 뒤로 제1대로서 유다의 진기(旗)에 속한 지파들이 행군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성막의 기구를 메고 뒤따랐으며, 그 뒤에는 제2대로서 르우벤의 진기에 속한 지파들이 행군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고핫 자손이 성소의 기구들을 메고 뒤따랐으며, 제3대로서는 에브라임의 진기에 속한 지파들이 행군하였고, 끝으로 제 4대로서 갓 진기에 속한 지파들이 행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진영을 이루어 말씀대로 대오를 갖추고 행진하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일인지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조선 효종 때 일을 들 수 있습니다. 효종은 북벌을 계획하고 착착 준비하였습니다. 10년을 준비하였습니다. 효종임금이 훈련한 군대 1만명을 모아 기동훈련을 실시하게 하고 직접 참관하였습니다. 신호에 따라 군대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인데, 첫 번째 신호가 올라오기도 전에 대오가 우르르 무너지고 오합지졸의 행태를 보였습니다. 효종임금은 화가 났습니다. 다시 하도록 하였는데, 이번에도 신호가 올라가기도 전에 몇 그룹들이 움직이며 대오가 무너졌습니다. 정말 화가 나고 실망하였겠지요. 세 번 째 다시 하라고 하였는데, 다시 또 어떤 한 병사가 신호를 올리기도 전에 뛰어나가 깃발을 뽑았습니다. 효종은 크게 노하여 그 병사를 참하고 깊이 실망하였습니다. 그 날 깃발을 사이에 두고 대오를 이루며 행진하여 먼저 깃발을 뽑는 부대에게 상을 준다고 하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든 군대가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명령에 따라 기동하고 명령에 따라 멈추는 일이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군사들이 왕이 가진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합니다. 당시 청나라 철기군은 명나라를 무너뜨릴 만큼 엄정한 군기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백년 아니 천년 넘게 여진족들에 대한 중국, 조선, 거란, 몽골의 핍박과 압제를 벗어야 겠다는 소망과 비전을 추장으로부터 말단 병사까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중국도 그랬지만, 조선도 여진족이 조금 커진다 하면 여러 부락들을 토벌하였습니다. 남자들을 세워놓고 수레바퀴 보다 키가 더 큰 남자는 모두 죽이고 돌아왔습니다. 거란족이 힘을 떨칠 때 거란족 관리가 여진족에게 방문하고 돌아가면 그의 오가는 길 부락의 여진족 처녀들은 온전히 남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후손들에게는 그런 압제와 굴욕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불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생 노예로 살면서 비참하고 비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보여주셨습니다. 태양의 아들이라 자부하는 바로를 장자재앙으로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그가 뒤쫓아 오게 하신 후 홍해에서 이스라엘은 건너게 하시고 애굽군대를 바다에 쳐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새로운 민족 새로운 나라로 세우고자 하신다는 확신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지극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앞으로 나아가 가나안 땅을 주어 그들의 후손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고 다시는 종이 되는 일이 없고 노예가 되는 일이 없게 하신다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7:6~8절에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계속하여 7:11~15절에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계속하여 말씀을 주시고 약속을 주시고 그 말씀이 이스라엘의 심령에 심겨져 비전이 되었을 때, 430년간 애굽에서 압제받고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은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출 줄 아는 하나님의 군대로 진군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사라 목자와 올해로 결혼한 지 27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목원대로 올라가라 하면 목원대로 올라갔습니다. 호서대를 개척하라 하면 호서대 개척하러 호베리아 회룡리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역사에 대한 비전이 항상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 거듭나고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나라, 잃은 자들이 돌아와 예수님의 생명을 누리며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얻을 비전을 품었기 때문에 악조건이나 나쁜 상황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사라 목자는 남편대신 오래 동안 욕을 먹었고 스트레스 주는 사람들에게 저 대신 시달렸습니다. 아이들 먹일 간식도 없고 스쿨뱅킹 계좌가 비어 급식비는 늘 미납되고 월세, 관리비는 제때 낸 적이 없었어도 남편에게 한번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안고 업고 캠퍼스에 올라갔고 아이들이 자랐을 때는 캠퍼스에서 뛰어 놀게 하며 캠퍼스에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하라고 누가 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습니다. 큰 역사 이루어 유명해지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크고 교회가 행한 오류가 있었어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영혼들이 예수님의 생명을 얻어 기뻐하고 우리의 캠퍼스에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들이 나와 세계 각 캠퍼스를 선교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꿈꾸는 비전이 가득하였습니다. 우리부부는 지난 27년 동안의 결혼생활 중에 우리 가족끼리 살았던 적이 몇 년 되지 않습니다. 가정을 열어 신혼 때부터 어려운 학생, 새로운 학생 , 도와야 할 학생들을 먹이며 함께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고난 받고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행복과 기쁨이 늘 충만하였습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고독하다고 느끼는 것, 생산적이지 않은 고통 교훈 없는 고생에 시달리며 세월을 보내는 것, 나도 괴롭고 내 사랑하는 사람도 괴로이 사는 것을 보는 것, 사람이 뭐라고 하나,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전전긍긍하는 것 이런 것들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이 없고 소망에 관한 헌신이 없을 때 생기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 모세는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함께 가자고 초청했습니다. 모세의 처남으로 봅니다. 모세의 처가 사람들은 미디안 족으로 광야의 자연환경과 광야에서의 생존법을 잘 아는 광야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모세는 겸손하게 전문가를 청하여 도움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나중에 가나안 땅에 호밥의 후손들이 언급되는 것을 볼 때, 호밥은 모세의 초청에 응하여 동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나 바란 광야로 나갔습니다. 여호와의 궤는 삼일 길 앞서 가고 있었고 뒤를 이스라엘의 진영이 따랐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궤가 떠날 때에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이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35)
궤가 쉴 때에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36) 기도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하나님께서는 광야행진을 시작하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함께 하셨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 하나님의 구원을 깊이 간직하고 이스라엘 진영에 함께 하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방향에 믿음과 순종을 드릴 때 기적같이 광야로 힘차게 진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어떻게 고난 받고 죽으셨나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으로 내 안에 내주하시고 날마다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의 내주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새겨주신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상급이 실제 비전으로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청년들은 더 이상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오그라들지 않고 담대하게 개척하는 청년다운 청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품고 힘차게 진군하는 주의 군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산센터를 축복하시고 이번에 새롭게 미국 선교를 위하여 비전을 품고 나가는 청년 선교사를 세우심을 감사하며 찬양 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Asan UBF
Asan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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