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2년 1월 18일 금요일, 맑음.(캄보디아)
자동차 경적 소리와 엔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 5시 40분이다. 어제 일들을 더듬어 메모 한 후에 하루의 일과를 계획해 본다. 여유 있는 아침이다. 시끄러운 데도 아내는 새근새근 잘도 잔다. 아내는 여행이 체질인가보다. 무엇이든 잘 먹고, 건강하게 잘 걸어 다니고, 어디서든 잘 잔다. 마음이 편한가보다. 짐이 되지 않고 도움이 되는 아내가 고맙다. 갑자기 밖이 마이크 소리와 구호 소리에 시끄럽다. 흰 옷을 단체로 입고 거리를 행진하는 대열이 제법 길다. 하늘색 깃발을 흔들며 뭐라고 외치고 있다. 나이 어린 고등학생 정도를 동원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 같다. 처음 치르는 선거라는 말도 있다.
자유와 민주화의 바람이 이곳에서도 시작된 듯하다. 건물에서 모두 나와 구경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낯선 풍경인 듯 쳐다본다. 숙소를 이동했다. 방만 옮기는 것이다. 목욕탕이 딸린 숙소로 짐을 옮겼다. 방당 2인 1실에 5달러다. 아래 식당에 내려와서 식사를 했다. 국수 2,000리알, 치즈 1,000리알, 햄 오믈렛 2,500리알, 깔끔한 식사다. 물 2개를 1,000리알에 사고 오전 시티 투어에 참가한다. 오전 8시 45분에 출발이다. 오르세 마켓 부근에 사람들이 모여서 장사할 준비를 한다. Capital Guest House 옆에는 컴퓨터 오락실이 있다. 아침부터 붐빈다. 원시와 첨단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인 것 같다.
9시에 현대 그레이스 9인승을 타고 투어가 출발한다. 인원은 서양인 1명과 한국사람 5명 그리고 기사다. 일산에서 중학교 영어 교사를 하시는 이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귀엽고 영어도 잘하고 외향적인 성격에 밝은 미소가 좋다. 처음 도착한 곳이 National Museum이다. 입장료는 두당 2달러다. 캄보디아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다. 황토색으로 외벽이 되어있어 특이하다.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면 2달러 추가 요금이 붙는다. 짐을 맡기고 그냥 들어갔다. 입구에는 내전으로 몸을 다친 상의 군인들이 구걸을 한다. 앙코르 유적에서 발견된 조각을 중심으로 수많은 국보급 조각물들이 전시되어있다.
시대와 함께 불상들의 양식이 바뀐다. 상좌부 불교, 힌디대승불교, 다시 상좌부 불교로 바뀌는 모습이다. 12~13세기 자야 바르만 7세 무렵이 캄보디아의 정치 문화의 절정기다. 조각 양식도 정밀하고 교묘하다. 앙코르 유적을 보고 와서인지 좀 시시해 보인다. 불교문화 일색으로 좀 단순해 보인다. 다음은 차를 타고 왕궁으로 이동한다. 박물관에서 가깝다. 왕궁은 입장료 3달러에 비디오카메라 5달러, 카메라 2달러다. 또 짐을 맡기고 몸만 들어간다. 역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데 소박한 맛도 있다. 돈레샤프 강을 바라보며 위치해 있다. 태국 건축과 유사하다.
몇 개의 조각을 이어붙인 것 같은 지붕 중앙에 높은 첨탑이 솟아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1886년 노로돔 왕 때 건축한 목조건물이었는데 1913년부터 3년간에 걸쳐서 시스도 왕이 콘크리트 건물로 바꿔서 지었단다. 즉위식을 거행하던 궁궐, 아프사라 극장, 코끼리 테라스, 1873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로부터 기증받은 건물 등, 장엄하다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건축물들이다. 1991년 11월 14일 시아누크 공이13 년 만에 귀국해 공항에서 맨 먼저 간 곳이라고 한다. 관공서에는 대부분 국기가 걸려있다. 위, 아래 청색에 중앙에는 홍색 바탕에 앙코르 와트가 그려져 있다. 시내 외곽으로 차는 달려간다. 비포장에 집들이 먼지로 덥혀있다.
현대 중고 트럭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학생들이 학교가 끝난는지 거리에 많이 보인다. 흰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로 통일된 교복차림이다. 가로수가 양 옆에 서 있는 시골길로 접어든다. 한참을 가니 넓은 벌판이 나온다. 킬링필드로 가는 것이다. 1970년대 론놀 정권이 구테타로 무너지고 폴포트 정권이 들어섰다. 폴포트는 전국에 공포정치를 펼친다. 도시의 주민을 농촌으로 연행해 강제 노동을 시켰다. 론놀파의 처형으로 시작된 숙청의 바람은 지식인, 기술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지 확산되었다. 75년부터 79년 까지 4년간의 숙청으로 전 국민의 3분의 1 가량(약 1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체를 군데군데 산더미 같이 매장했던 곳이 그대로 남아있다. 수거된 해골들이 위령탑에 빽빽이 보관되어있다. 거의 5층 건물이다. 2달러의 성금을 내고 들어서니 벌판 구덩이들과 위령탑이 무겁게 느껴진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한숨만 나온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 다리에 힘이 빠진다. 소박하기만 한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찬란한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환경, 소박한 국민들임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를 잘못 택한 결과의 아픔을 보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다. 입구 밖에는 매점에 가니 몇 개의 흑백 사진이 당시의 발굴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교실 하나도 안 되는 구덩이에서 시체를 450구나 찾았단다. 이제는 따뜻한 풀들이 모든 것을 덮고 코발트빛 예쁜 꽃이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 같다. 뚜 길 건너편에는 물 수렁이 많이 보인다. 수렁에서 고기 잡는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즐겁기만 하다. 이리 저리 30여 마리의 오리 떼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돌아다니는데 세월이 흘러 아픈 상처를 망각시켜 주는 것 같다. 오전 투어가 끝났다. 숙소로 돌아왔다. 아래 식당에서 닭고기와 야채, 후라이드 라이스(볶음밥)로 식사를 했다. 숙소에 올라가 미지근함 물로 샤워를 하니 한결 피곤이 풀리는 것 같다. 오후 2시에 관광이 시작된다. 투올 슬랭 박물관(Toul Sleng Museum)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2달러다. 영상 자료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아내는 구경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망설이다가 들어갔다. 아내는 나무 그늘에서 쉬기로 했다. 폴포트가 남긴 참혹한 흔적들이다. 폴포트 정권은 원래 학교였던 이 건물을 감옥으로 사용했다.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처형되었다. 처형된 사람은 집계된 숫자만으로도 14,500명을 헤아린다. 그중에는 2,000명의 아이들도 포함되어있다. 박물관은 네 동으로 되어있다. 각 교실을 개조하여 독방과 여러 사람을 함께 가둔 방도 있다. 고문에 사용한 기구들, 희생자의 유품들이 있다. 고문했던 철재 침대 밑에는 아직도 핏자국들이 있다. 수의를 입고 아무 표정도 없이 찍어놓은 수많은 흑백사진들, 머리에 고문 기구를 들이대고 찍힌 아주머니의 표정이 머릿속에 맴돈다. 투옥 당시와 처형 후에 촬영된 희생자들의 사진, 고문과 처형을 묘사한 끔찍한 그림이 전시되어있다. 같은 사람끼리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해골로 만든 지도와 당시 프놈펜 사진이 마지막 방을 장식하고 있다. 해골로 만들어진 지도는 2002년 3월 초순경에 ‘죽은’ 영혼을 보호하고 캄보디아의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방침에 따라 조용히 철거했다는 보도를 신문을 통해 읽었다. 5년 동안 17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크메르 루즈 정권은 1979년 전복됐고 감옥은 박물관으로 바뀐 것이다. 1979년 1월 7일,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침공했을 때 간수들은 나머지 수감자들을 대부분 살해하고 도주했단다. 그때는 고문 흔적이 생생한 시체가 방치된 채로 있었고 처형을 모면한 사람이 몇 명 있었을 뿐이란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다시 차는 우리를 러시안 마켓(Russian Market)으로 데려다 주었다. 주로 불교 용품과 골동품 그리고 전통 수제품을 팔고 있는 재래식 시장이다. 짚으로 만든 바구니, 대바구니, 실로 짠 작은 가방들, 목가 인형들과 실크로 만든 스카프 등 다양했다. 아내는 실크로 만든 스카프 상점 앞에서 오래 머물러 구경한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오후에 해먹 위에서 한가하게 잠을 자는 여인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식당가와 다른 곳을 돌아본 후 와서 봐도 아내는 아직도 실크를 만지며 구경만 하고 있다. 한 개도 사지 못하고 그냥 나온다. 펜 부인 언덕에 있는 왓 프놈(Phnom Wath)이라는 절에 갔다. 주변 정리정돈이 어수선하다. 오래된 나무도 있다. 시내에서 유일하게 언덕 위에 있어 전망을 볼 수 있다. 꽃시계도 있다. 걸어서 언덕에 오르니 걸을 만 했다. 황토색 옷을 입은 스님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실내에는 불상이 있다. 그 앞에 불공을 드리는 사람은 없고 젊은 남녀가 어떤 아저씨 앞에서 점을 치고 있다. 카드 책을 머리에 얹고 펜으로 꾹 눌러 책속을 체크해 주면 점쟁이는 그곳을 펴서 그 속에 기록된 내용을 읽어준다. 참 쉬운 점이다. 불교와 민간 신앙이 섞여있다. 실내 기둥을 한 여인이 칠하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나무 위에 원숭이가 새끼를 데리고 내려와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바싹 마른 원숭이가 이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절 아래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큰 코끼리 두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다시 차는 강을 내려다보며 달려간다. 톤레삽 강에 가까이 있는 아우날롬(Ounnalom)절에 도착했다. 이 사원은 특이한 것이 정원에 있는 돌 조각이다. 수행으로 뼈만 앙상한 수도승과 여러 수행 모습이 있다. 특히 돌 위에 누워있는 창자가 터진 수도승의 배를 새가 쪼아 먹는 조각상이 특이했다. 아마도 무슨 유래가 있는 것 같다. 전혀 내용을 모르겠다. 그저 예쁜 연꽃들과 졸고 있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온다. 위치상 왕족이나 중요한 사원에 관계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캄보디아 왕의 스승이며 왕실을 보필하는 스님(텝보엉)이 계신 곳이란다.) 사원을 돌아보고 조그만 문으로 나오니 바로 길이다. 도로변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 싱싱한 아가씨들이 우물물을 퍼서 그저 머리에 붓는다. 머리가 다 젖고 옷이 다 젖는다. 시원해서 좋단다. 다시 차를 타고 조금 달려가니 개선문이 인상 깊게 서 있다. 앙코르 와트의 탑 모양을 본 뜬 황토색 붉은 조형물이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인상이다. 주변에는 톤레삽 강까지 길게 잔디밭이 있다. 조경수를 시원하게 잘 심어 놓았다. 계획적으로 가꾸어 놓는 모습이다. 주변에는 고급 주택들이 제법 보인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원형 로터리가 되어있다. 차량 통행은 별로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내려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했다. 차를 돌려보내고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톤레삽 강으로 걸어간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내의 종아리는 모기에 물린 곳이 표시가 난다. 약한 피부에 독한 물파스를 발라서 매 맞은 것 같이 벌겋게 부스럼이 생겼다. 잔디밭 중앙에는 나가 신의 일곱 개의 뱀 머리의 입에서 물을 뿜어대는 분수가 있다. 연꽃무늬의 청동 분수에서도 시원하게 물이 나온다. 걸어가는 길옆의 노점상에서 하얀 찐빵과 옥수수도 사서 먹었다. 고동을 쪄서 파는 사람도 있다. 강 가까이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약간 촌스럽다. 그래도 이 놀이공원은 부자 어린이들만 놀 수 있는 것 같다. 회전목마와 장난감 자동차가 앙상한 뼈대만 있다. 그래도 망가지지 않고 잘 달린다. 공터에는 원숭이를 데리고 마이크를 잡고 열심히 떠드는 약장사도 보인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톤레삽 강에 도착했다. 유유히 흐르는 강이 한강만큼 넓다. 강변에는 수상가옥들이 있어 더 멋지다. 쓰레기가 강변에 많다. 놀이공원 멀리에서 웨스트라이프 그룹의 음악이 들려온다. 강을 따라 만들어 놓은 난간 위에 걸터앉았다. 해질 무렵이라 시원한 바람이 분다. 강둑에 사람들이 많다. 제법 화려하게 화장한 젊은 아가씨들이 많다. 강으로 내려가 보니 진흙 위에 강물은 깨끗하다. 배 위에 지붕만 있는 낡은 배들이 있다. 갑판은 맨발로 다녀 나무가 빛이 난다.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아이들의 숙 들어간 까만 눈동자가 맑고 깨끗하다. 4 가족이 이 작은 배에서 살고 있단다. 그 위에는 대형 유람선이 있다. 바다에나 있어야 할 배가 어떻게 이곳에 들어와 있는지 궁금하다. 나가(Naga)라고 씌어 진 카지노 배란다. 호텔 캄보디아와 연결되어있다. 날고 작은 배와 크고 화려한 배가 대조적이다. 강둑에 앉아 있다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니 호텔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고급스런 호텔이다. 호텔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찾아 볼일을 봤다. 전통의상을 입은 문지기가 자꾸 쳐다본다. 캄보디아 건축양식이 깨끗하고 멋진 호텔이다. 아마도 캄보디아에서 최고급 호텔 일 것이다.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다시 강을 따라 올라간다. 저녁이라 시원한 강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과일 파는 상인들도 많다. 맘껏 자유를 누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둡던 과거의 모습이 더 생각난다. 좋은 시절에 태어난 것 같다. 길을 달리는 오토바이 불빛 물결과 화려한 네온사인에 비해 거리의 골목과 왕궁은 어둡다. 왕궁 앞으로 해서 국립 박물관 앞으로 걸어간다. 왼쪽으로 꺾어서 곧장 걸어간다. 그림 파는 골목이 특이하게 눈에 들어온다. 약간 어설퍼 보이는 그림들과 유명한 작품의 모작들이 많다. 여권을 찾아야 한다. 등에서 땀이 나도록 부지런히 걸어서 Capital Guest House 도착했다.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베트남을 향해 가야한다. 두당 35달를 주고 비자를 발급받은 여권을 찾았다. 베트남 사이공으로 가는 버스를 두당 6달러를 주고 에약했다. 시장에 들러 주먹밥을 사서 Capital Guest House 식당에서 국수와 야채수프에 밥을 말아 먹었다. 레몬차로 마무리를 했다. 이선생과 헤어져야 한다. 저녁에 과일파티를 한다. 시장에서 종류별로 과일을 샀다. 이선생의 애교스러운 흥정에 과일 값이 쑥쑥 내려간다. 숙소에 와서 과일을 펼쳐놓고 얘기를 나눈다. 키위 맛이 나는 특이한 모양의 그린 드레곤, 약간 퀘퀘한 냄새가 나지만 참외보다 맛있는 파파야, 아내가 좋아하는 망고 스텐, 그리고 제일 흔한 바나나다. 먹고 떠들고 밤이 늦어진다. 다음 일정을 위해 각자 숙소로 간다. 하루가 정말 보람 있는 관광이었다. 과일값 4달러에 저녁이 즐겁다. 맡겨놓은 사진도 약 4달러가 들었다. 캄보디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베트남 여행기 1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