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월 23일 목요일, 맑음.(싱가포르)
숙소가 다른 곳에 비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지만 행복하게 자는 아내와 유진이 상희를 보니 마음이 든든하고 한편으론 미안하다. 순서를 정해 실내화로 갈아 신고 화장실을 드나들며 세면을 끝냈다. 싱가포르는 늦게 날이 밝아지는 것 같다. 오전 6시 30분인데 아직도 어둡다. 발리 섬 보다. 서족에 있어서인가보다. 오전 8시에 일행을 만나서 종합식당인 Kopitian으로 갔다.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그림을 통해 골라서 먹었다. 오늘의 일정은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며 오후와 저녁은 센토사 섬에서 보내기로 했다. 싱가포를 History Museum을 간다. 8 년 전 모습과 변함이 없이 흰색 건물이다. 건물 앞의 특이한 늘어진 나무는 아직도 그대로 살아있다. 이 나무 앞에서 사진은 찍던 홍샘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문을 열지않아 뒤편 센트럴 파크로 올라갔다. 전에 있던 잔디 언덕의 교회도 그대로다. 공원 정상으로 걸어올라갔다. Battle Box를 지나 산책길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결혼 회관 인 듯한 곳에는 오늘도 예쁜 예복을 입은 신랑신부가 사진을 직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담장에 새겨진 기념비는 변함이 없다. 고목들은 죽은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물러 오랜 세월을 지켜보는 고목들과 건물들이 실재 이곳의 주인인 것 같다.
번호가 나타나는 신호등이 재미있는지 숫자를 세며 건널목을 건넌다. Stamford Road를 따라 걸어오다가 St Andrew’s Cathedral로 들어섰다. 새파란 하늘과 하얀 첨탑이 유난히 빛이 난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회내로 조용히 들어가서 오래된 의자에 앉으니 마음이 평안하다. 천정에는 팬이 나란히 있고 소리 없이 돌아간다. 고딕양식의 예쁜 실내 모습이 정겹다. 기념품코너에 가서 이것저것을 구경한다. 점원 아주머니가 친절하다. 기독교와 경제발전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본다. 기독교 국가는 지역에 관계없이 발전되는 것 같다. 싱가포르의 도시 속에서도 기독교의 특성이 보인다.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종교는 정신적 부함을 강조하지만 핑계인 것 같다. 사랑, 하트 모양의 빨간 열매가 열리는 나무 밑을 지나서 학살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간다. War Memorial Park에 우둑 솟은 125m의 하얀 탑의 정식 명칭은 일본 점령 시 죽은 인민 기념비이다. 싱가포르에 침략한 일본군의 학살로 1942년 2월 15일에 함락된 날부터 10일 사이에 3만 명의 화교가 살해된 사건이 있었단다. 우리와 같은 피해국임에 마음이 찡하다. 지도를 보며 시내를 돌아 삼성전자 전광판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웅크린 뱀 모양 같기도 한, 파인애플 껍질 모양 같기도 한 Esplande theatres 건물을 만나러 지하도로 내려가 길을 건넌다. 바닷가에 세워진, 전에 보지 못했던 건물이다. 이곳 바다 항만에서 마주 보이는 곳이 싱가포르의 상징인 머라이온 동상이다. 시원하게 물을 뿜는 모습이 반갑다. 우리는 급히 Esplande Bridge를 건너서 동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싱가포르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Mer Lion이다. 8m의 순백색 동상이 싱가포르 만을 주시하며 물을 뿜어댄다.
이 동상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낮의 얼굴과 밤의 얼굴이다. 낮에는 싱가포르를 오가는 선박과 새파랗게 펼쳐진 하늘, 그리고 열대의 선명한 색깔들의 꽃들을 배경으로 용감한 수사자의 얼굴을 나타낸다. 밤이 되면 그 칠 흙의 어둠속에서 조명을 받아 창백하게 떠오르는 신비로운 암사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러한 두 가지의 모습이 도시화된 싱가포르의 모습인 것 같다. 강하고 현대적이며 부하게 보이는 겉모습 속에 약하고 옛 스러운 가난한 인간의 모습이, 거대한 빌딩 속에 더욱 작아진, 소품과 같은 인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 동상 보다도 훨씬 빨리 안개 같이 사라질 것도 모른 채 즐겁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은 좀 더 오래 버텨보겠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단체로 와서 사진 찍기 바쁘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들을 만나니 반갑다. 우리는 Anderson Bridge를 건너서 근대 싱가포르의 발상지인 Empress place(앰프레스 광장)로 갔다. 1819년 1월에 토머스 스텐퍼드 레플즈가 상륙한 곳은 현재의 싱가포르 강 하구의 왼쪽 해안이란다. 이곳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작은 광장이 엠프레스 광장이다. Anderson Bridge 쪽에는 검게 칠하여진 레플즈의 동상이 있다. 강을 따라 돌아서면 똑같은 폼을 잡고 있는 하얀색 동상이 있었다. 근대 싱가포르는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장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광장 정면에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자취가 남아있는 Victoria Memorial Hall이 있다. 1905년 완성 때의 영국 여왕 빅토리아 1세를 기념하여 이름 붙인 것이란다. 시계탑이 예쁜 이 홀에서는 지금도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단다. 이 일대부터 싱가포르 강을 따라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하얀 레플즈 동상 앞에는 짐을 짊어진 채로 커다란 저울로 무게를 달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 있다. 옛날 싱가포르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낡은 거룻배들과 인부들은 보이지 않고 이제는 조그만 선착장에 유람선만 보인다. 유람선은 어른 12$, 아이들 5$라고 선명하게 씌어 있다. 광장에는 나이 많은 인도 사람이 커다란 뱀을 들고서 사진 찍기를 권한다. 우리는 도로에서 택시를 잡았다. 9명인데 인도네시아에서는 두 대를 빌려 타고 갔는데, 이곳에서는 한 차네 5명을 태워주지 않아서 3대를 타고 간다. 센토사 섬을 들어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는 무역센터 건물 앞까지 간다. 택시는 친절했다. 차에 탄 사람들은 앞좌석이나 뒤에도 안전벨트를 매란다.
규제가 불편하지만 자유를 주는 것 같다. 택시는 차이나타운을 지나 고가도로가 있는 해안가를 달리다가 무역센터에 내려주었다. 보수공사중이라 택시 내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았다. 성원이와 상희는 만났지만 찬주 가정이 보이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가도 보이지 않았다. 8년 전에는 입장료를 센토사 섬에서 낸 것 같은데 이제는 1층 로비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들어가기로 했다. 입장료를 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올라갔다. 6인승 케이블카는 귀엽다. 싱가포르의 시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내려다보니 조금 무섭다. 해산 60m 높이로 이어져 있다. 싱가포르가 항만도시임을 이곳에서 알 수 있다. 한국말로 나오는 안내 방송을 들으니 매년 14만 척의 선박들이 입출항을 한단다. 3분에 한 대 꼴이란다. 멋진 섬의 이곳저곳을 보며 스릴을 맛보며 드디어 낭만, 자연, 역사의 섬인 센토사에 내렸다. 찬주네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다가 모모레일을 타고 한 바퀴 돌아본다. 그래도 만나지 못했다. 배가 고프다. 피자 가게에 들어가 피자를 먹고 있는데 찬주 가족이 보였다. 우리는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기다리고 찬주는 무역센터 앞에서 택시를 내려 기다리다가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이란다. 어쨌든 다시 만나서 걱정이 하나 줄었다. 8년 전보다 달라진 것은 키 큰 머라이언 동상이 섬 중앙에 세워졌다는 것뿐이다. 버스를 타고 원숭이 쇼를 하는 곳으로 간다.
조그만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원숭이와 사회자와 함께 한적한 오후 시간을 보낸다. 팔라완 비치는 역시 아름답다. 인공으로 만들었다. 누구나 수영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곳이다. 날이 너무 뜨거워 바닷물이 싫다. 줄다리를 건너서 Southernmost Point of Continental Asia라는 섬으로 갔다. 울렁거리는 줄다리가 재미있다. 조그만 섬에는 두 개의 전망대가 있다. 나무 층계를 올라 높은 곳에 앉으니 멀리 바다가 보인다. 많은 배들이 섬 같이 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좋아 바닥에 앉아 잠시 쉰다. 8 년 전 냄새나는 김치를 들고 다니다 점심을 먹었던 계단을 쳐다보니 웃음이 나온다. 모노레일을 타고 분수가 있는 곳, 골프장을 내려다보며 큰 다리를 건넌다. Causeway Bridge가 있는 곳을 지나 Ferry Terminal 건물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40분이다. 모노레일 내려 식당가를 구경한다. 상점에 벌금 T 셔츠가 보인다. 9가지 금지 품목과 벌금이 적힌 옷을 보니 재미있다. 기념품으로 많이 팔린단다. Ferry Terminal 내에서 앵무새 쇼가 있어서 한참 구경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Cable Car Plaza 앞에 내려서 Dragon Trail이라는 산책길로 갔다. 입구는 용머리를 잘 만들어 놓았다. 폭포도 있고 공룡뼈 터널과 해골, 화석 바위, 숲의 심장이라는 쉼터도 있다. 재미있다. 곳곳에는 비가 내리면 피할 수 있는 원두막들이 있다. 날씨는 푹푹 찌다가 오후에는 한 차례 시원한 비가 내린다. Mount Imbiah라는 산으로 올라간다. 시원하게 앞 바다가 보인다. 실로소 요새, 나바 박물관, 곤충 박물관, Underwater world 등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 우리는 식당가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원형으로 된 식당 센터는 먹을 것이 다양했다. 마지막으로 커다랗게 세워진 머라이언 동상에 올라가기로 했다. 입장료는 두 당 3S$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굴속이다. 보물섬인양 보물 모형이 반짝반짝 거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입속에서 내렸다. 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센토사 섬도 넓게 펼쳐진다. 머리 위로 올라가니 시원하다. 아래에서 머리 부분을 올려다보면 꼭대기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사자머리에 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다는 찬우의 표현이 적당했다. 전망을 보니 축구장에 대여섯 명이 해가 진 오후의 쓸쓸함을 달래준다. 분수 쇼하는 곳에는 벌써 사람들이 모여 있다. 우리도 동상을 내려와 분수 쇼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분수 쇼를 볼 수 있는 스탠드에 앉아 잔뜩 기대를 하며 기다린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한다. 이 섬에 있는 모든 관광객이 모이는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지고 멀리 머라이언 동상의 불빛도 사라진다. 무대 위에 젊은 사회자가 나와서 멘트로 분수 쇼를 이어간다. 테마가 있는 분수 쇼다. 젊은이가 바다 세계를 구경하고 나온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서울 한 강의 분수 쇼에 비하면 규모는 엄청 작지만 아기자기하다. 약간의 분수와 조명 그리고 레이저 빔, 불덩이 등 다양함이 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분수 쇼에 비해서 가볍고 상업적이고 지루하다. 클래식 쪽 보다는 팝 스타일에 더 가깝다. 시원한 밤에 재미는 있다. 머라이언 동상에서 비쳐지는 레이저 푸른빛과 함께 어우러져 싱가포르의 밤을 멋지게 장식해 준다. 저녁 8시 20분이 지나서 끝이 났다. 9시에 케이블카가 끝이다. 밀려서 인파와 함께 모노레일 타고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왔다. 밤에 타는 케이블카는 또 멋지다. 싱가포르의 화려한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케이블카, 그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행복해 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피곤한 하루였다. 얼굴은 모두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