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향기(2010. 가을)
거실 창밖에는 크고 작은 국화꽃과 분재들이 차 한 잔의 여유로움으로 시선을 멈추게 한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늦가을로 접어들고 있음을 마당 분재의 단풍잎에서 느낄 수 있다. 도심 속의 단독 주택은 해가 갈수록 칙칙함을 더 하지만 자연의 일부를 닮아가는 정원의 모습은 계절에 따라 마음을 정화해 주는 역할도 한다. 스물일곱에 결혼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아온 세월이 사십 년을 넘고 보니 나이 칠십에 올랐다.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니 삶의 흔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신혼 초부터 시동생들과 함께 방 두 칸에서 생활하면서 아웅다웅 부대끼며 살았다. 몇 년 후에야 꿈에 그리던 우리 집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이곳에서 6남매를 키웠다. 지낸 세월이 30년에 접어들고 보니 묵은 정 때문에라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접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집안에 불길한 일이 생길 때면 으레 집터 탓으로 돌리곤 한다. 나 또한 그런 사례를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둘째 아들의 청천벽력 같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와 그 이듬해에 시동생이 위암으로 사망, 시어머님의 느닷없는 신장 장애로 인한 사망과 6년 동안 홀로였다가 돌아가신 아버님 등 감당하기 버거운 삶의 멍에를 짊어진 심정으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에서도 희망의 빛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아들은 신앙의 힘을 얻어 항상 밝은 모습으로 생활해서 나에게 편안함을 주고 희망을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도 20년 전부터는 4명의 가족이 갑자기 늘어남으로써 우리 집은 새로운 역사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작은 섬마을에서 살던 조카들이 광주로 유학 왔다. 그곳의 초등학교가 역사와 전통을 이어갈 학생 수가 턱없이 줄어들게 되어 학교는 자연히 폐교되었다. 여러 가지 교육 여건의 열악함으로 도시에 있는 초· 중등학교로 전학하게 된 것이다.
나는 맏며느리이고 보니, 장래의 아이들 교육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었다. 네 명의 조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섬에서 생활했던 아이들은 도회지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순수함과 정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방학 때면 그 넓은 바다가 보이는 시골에서 뭣이 좋아서 빽빽한 도심 속의 큰집을 찾아오곤 했다. 덕분에 큰집과 아이들의 관계는 자연스레 보듬어 안을 수 있었다.
어느덧 수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섯 명의 아이는 바르게 성장해 큰아들과 큰딸은 출가하여 건강한 가정을 이루며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있고 교통사고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은 공무원이 되었고, 둘째 딸은 전공을 살려 학예연구사로 제자리를 빛내고 있고, 셋째 딸은 공무원으로 그리고 막내아들은 중등학교 임용고시 통과하여 교사가 되어 맡은 바 임무에 열을 올리는 모습들이 대견하다.
이렇듯 우리 집에는 세월 속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2층 단독주택이라서 핵가족과는 동떨어진 대가족의 화기애애한 훈훈함을 맛볼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삶의 참맛이 우러난다.
사촌들과 서로 부대끼면서 동생들이 오빠의 필요한 부분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정다움이 우리 집의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한다. 요즘 핵가족 시대의 흐름 속에서 친형제 간에도 서로 잘 다툰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면, 내심 친밀하게 생활하는 우리 집 아이들이 떠오른다.
사촌지간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부모님의 친 형제지간의 자식들이다. 어렸을 때는 집안 육촌지간도 유달리 가깝게 지냈던 것이 생각난다. 요즘엔 부모님의 친 형제간인데도 자녀들의 왕래가 특별한 경우 외에는 마주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생활이 나름대로 바쁘다는 핑계가 우리 생활을 고갈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한다.
나는 우리 집만큼은 사촌이란 이미지를 버리고 가정교육의 기본 바탕으로 촌수를 초월하여 친형제지간의 질서로 자리매김했다. 가끔 주변으로부터 훈훈한 향기가 전해진다는 말을 들을 때면 다시 우리 가족들에게 감사와 사랑이 두 배로 넘쳐나는 기분이다. 우리 집은 언제나 그리운 고향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목에 접하는 걸 보며 새삼 걸어왔던 그 길이 뒤돌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이들의 반듯한 성장의 흔적들로 자리해 온 희망찬 태양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세월은 늘 변함없이 가고 오는 것 어느새 내 나이 칠십에 이르고 보니 내 아이들은 든든한 울타리로 버팀목이 되어있음을 느낀다.
오늘따라 거실 창밖에 분재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향기를 풍기며 인사를 건넨다. 내년 봄이 되면 낙엽 진자리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수형을 잡아 연출 할 것이다. 자연의 위치를 거슬러 오를 수 없듯이 인생 역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 모두가 그대로인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