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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역대상 4장9-10절) - 정준모 목사
역대상 4:9-10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올 한 해 열심히 살았던 것에 비하여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행한 것처럼 느껴지시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로운 소망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밀씀의 핵심은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야베스가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불행한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불행한 상황을 바꾸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야베스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입니까?
야베스 이름의 뜻은 고통(pain, trouble), 수고라는 뜻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정할 때, 나쁜 뜻을 가진 이름을 정하겠습니까?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1) 축복된 이름 2) 희망찬 이름3) 듣기 좋은 이름 4) 부르기 좋은 이름 5) 기억나는 이름을 정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자녀들 3명 이름을 지을 때, 장녀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라고 정찬미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장남은 복의 근원이 되라고 정근원이라고 지었습니다. 막내아들은 온 백성들 중에 뿌리 같은 존재가 되어라고 정근민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라, 복의 근원이 되라, 백성들 중에 뿌리가 되라 얼마나 축복된 이름, 얼마나 희망찬 이름, 얼마나 부르기 좋은 이름, 얼마나 기억나는 이름입니까?
그런데 왜 야베스의 부모는 그의 이름은 고통, 수고라고 지었을까요?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름은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이름은 역사와 문서에 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 그 사람 인간됨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야베스, 고통이라고 지었을까요? 야베스를 두고, 부모가, 친구가, 동네 어른이, 아는 사람들이 고통, 고통, 고통이라고 불렀을 때,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름은 듣는 순간 정말 귀를 막고 싶었을 것이고, 도망가고 싶을 것입니다. 대인기피증이 생겼을 것이고 스스로 자신을 왕따시켰을 것입니다.
왜 야베스, 왜 고통이란 나쁜 이름, 부정적 이름을 지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성경을 기록할 당시 이스라엘의 시대적 정황이나 문화적 상황을 이해할 때,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시대에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또한 시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이름을 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믿음의 조상, 열국의 아비가 되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물에서 건져냈고 장차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저내라고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발꿈치를 잡고 나왔고, 약삭 빠르다고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자식을 달라는 자신의 애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야베스는 고통 속에서 그 아들을 낳았기에 고통, 고통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수고로움 속에서 그 이들을 낳았다고 수고, 수고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면, 왜 야베스는 고통, 수고라고 이름이 불리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몇가지 추론과 견해들이 있습니다.
1. 남편 없이 자식을 나았기 때문입니다.
2. 성폭행들 당해 낳았기 때문입니다.
3. 미혼모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4. 원치 않은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5. 출산시 산모나 태중아기에게 생명의 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 당시 사회나 국가에 큰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등등의 추측과 학설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제가 소개하는 사람 5명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스티브 잡스, 레오나드 다빈치, 빌리 홀리데이, 마릴 몬로, 오프라 윈플리 등입니다. 잘 모르시나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생아들입니다. 유복자녀가 아닌, 사생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역사에 위대한 인물, 놀라운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생아라는 불행한 자신의 인생, 고통스런 자신의 삶, 비극의 상황을 극복하고 명성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따르면, 야베스가 고통의 인생, 수고로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9절에 “귀중한 자”,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귀중한 자라”는 영어 성경에 “ more honorable” 입니다. 그 뜻은 “영예로운 자”, “무게가 있는 자”, “영향력이 있는 자”, “칭찬을 받는 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야베스를 “고통덩어리”를 “복덩어리”로 바꾸어 주셨다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 인생”을 “축복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졸장부 인생”에서 “대장부 인생”으로 역전시켜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손가락질 받는 인생”에서 “박수받는 인생”으로, “낙제생 인생”에서 “모범생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상황과 문제를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는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을 우리 노력으로, 우리 지혜로, 우리 능력으로, 우리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결정적인 문제를 우리는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바꾸어 주셔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결재 테이블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아시고, 분명히 깨닫고, 분명히 확신하고, 분명히 확실하게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내 인생의 굽은 길, 하나님만이 곧은 길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그늘진 길, 하나님만이 밝은 길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폭풍의 바다, 하나님만이 평온의 물결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고난과 고통, 하나님만이 형통과 평탄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십니다. 할렐루야
2.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고통의 인생을 바꾸어 주십니까?
11절에 답이 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아뢰어는 영어 성경에 "울부짖었다"고 되어있습니다. “cried out"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인생, 야베스가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고통의 인생에서 존귀한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야베스가 어떻게 했다고요? 울부짖었다고 했습니다. 몸부림 치고 매달렸다는 의미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간절성, 기도의 집중성, 기도의 믿음, 기도의 응답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하나님께서 야베스가 기도했다고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까? 11절에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이스라엘 하나님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약속하시는 하나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반드시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고통의 인생 야베스가 어떻게 귀중한 자, 존귀한 자로 바뀌었습니까? 하나님께 울부짖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고통에서 해결받는 길, 우리 인생의 문제가 바뀌는 길은 오직 기도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가 힘입니다. 기도가 길입니다. 기도가 해결입니다, 기도가 승리입니다. 기도가 역사입니다.
칼빈은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는 믿음의 측정기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창고를 여는 열쇠다. 기도는 우리의 공급을 채울 수 있는 무한한 신용카드다."고 했습니다.
토레이는 “하나님께는 우리의 수많은 수요를 채울 수 있는 무한한 공급이 있다” 패드릭 존스톤은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해야 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했습니다.
기도 없는 성도는 사탄의 밥입니다. 기도 없는 영혼 호흡 질환자가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교회지도자들 기도 시간은 짧고 회의 시간은 길어집니다. 기도 없으면 하나님은 바꾸어주시지 않습니다. 기도 없으면 영적 파산입니다. 기도 없으면 축복 스톱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끊어진 기도 줄을 잇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막힌 기도를 뚫는 길입니다.
3. 울부짖는 야베스에게 하나님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주셨습니까?
1) 고통을 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Bless Him)
하나님께서는 기구한 인생, 파산당한 인생, 진흙탕에 곤두박질한 인생을 바꾸어주십니다. 고통의 인생을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성경에는 제 2, 3, 4의 야베스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또 다른 아베스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야베스의 인생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께 부르짖었을 때, 주님께서 바꾸어주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빛을 보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죽은 딸 무남독녀 회당장 딸은 달라다굼,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뀌었습니다. 38년 된 앉은뱅이 병자가 걸어가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류증 여인이 고침을 받은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이 용서받는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목마른 수가성 여인이 영혼의 생수를 얻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린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의 귀신병이 떠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자식없는 한나가 사무엘을 얻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2) 넓은 지역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enlarge his territory)
지역을 넓혀 주셨다는 것은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세워주셨다는 뜻입니다. 비록 고통과 고난, 역경과 파산인생지만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 울부짖고 간구하는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십니다. 또한 그의 지경을 넓혀주십니다.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세워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오프라 윈플리는 가난한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9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 당하였습니다. 14살에 임신을 하여 2주 만에 죽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마약에 손을 됩니다. 그러나 외조모의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 기도생활, 감사생활로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주십니다. 토크 쇼의 여왕이 됩니다. 기부금의 여왕이 됩니다.
3)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함께 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hand be with him)
하나님의 손으로 고통의 인생을 복된 인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어떤 손일까요? 창조의 손, 축복의 손, 기적의 손, 전능의 손, 치료의 손, 심판의 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떄 하나님의 손이 역사합니다. 우리의 손으로 바닷물을 어찌 옮길 수 있습니까? 옮겨야 얼마나 옮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의 역사는 폭퐁, 태풍을 일으키시며 태산 같은 바닷물을 순식간에 옮길 수 있습니다.
4) 환란과 근심을 바꾸어 주십니다(keep him from harm)
하나님은 아무리 환란의 태풍이 불어와도 울부짖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막아주십니다. 아무리 근심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고난의 쓰나미가 몰려와도 울부짖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손으로 막아주시고 하나님께서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 주십니다. 요셉을 보세요, 여호수아를 보세요, 다윗을 보세요, 다니엘 보세요. 하나님께서 환란과 근심을 형통과 평강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5) 귀중한 자, 존귀한 자로 바꾸어 주십니다(more honorable)
한국 사람으로 미국에서 최고의 관직을 오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강영우 박사입니다. 백악관 정책 차관보를 지냈습니다. 그의 아들 강진석은 세계 최고의 안과 전문의입니다. 그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처럼 백안관 법률고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시력장애인이었습니다. 참으로 야베스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명은 장애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한 도구이다. 그는 "no where, now here" "아무 곳에서 실망할 필요 없다. 지금 여기서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고통이 저주가 아닙니다. 새로운 축복의 통로입니다. 여러분의 아픔이 절망이 아닙니다. 기적체험의 재료입니다. 여러분의 눈물이 좌절이 아닙니다. 새 역사의 제물입니다. 하나님이 바꾸어 주십니다.
지금 나의 삶이 생애 중 최악의 절망의 순간에 있습니까? 야베스와 같은 나의 고통, 나의 뼈아픈 상황입니까? 그러나 나의 죄악을 토설하고, 나의 교만을 내려놓고, 나의 우상을 깨드리고, 울부짖을 때, 나의 메마른 영혼을 위해 탄식 할 때, 하나님께서 더욱 존귀한 자로, 더욱 소중한 자로, 더욱 지경을 넓혀 주시고, 더욱 영향력 있는 인물로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람에게 높임을 받을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짓밟히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짓밟힐 때 울부짖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십니다.
빌립보서4장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역대하 20:12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주님만 바로 볼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지혜, 인간의 방법, 인간의 수단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오직 소망이 주께로부터 나옵니다. 울부짖고 간구할 때, 하나님이 바꾸어 주십니다. 회복케 하십니다.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음악의 거성 베토벤을 만든 것은 청각장애와 사랑하는 여인과 시련의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도스토에프시키를 위대한 문학가로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 감옥의 시련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역자가 된 것은 동족의 대적과 몸의 가시의 아픔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고난 속에서 자신의 허물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시련의 때에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가난할 때에 자신의 부족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실패의 때에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게 됩니다. 인간은 낮아질 때에 하나님의 손길을 앙망하게 됩니다.
'빙점', '길은 여기에', '빛이 있는 곳에', '이 질그릇에도', '양치는 언덕' 등 놀라운 기독교 문학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삼포능자)는 평생 질병 속에 살았습니다. 처녀 때부터 결핵성 척추병으로 8년간 요양소에 있었습니다. 파킨스병, 피부병으로 평생 고생했습니다. 말년에는 암으로 고통당했습니다. 그녀는 뼈를 깍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어린 기도로 아픔을 극복했습니다. 그 때, 그분이 성령의 감동으로 지은 시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체험하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올라가지 못할 성전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앙모하지 못할 그분이 계신다.
고통과 불행의 조건을 제거해 주심도 하나님의 기적이요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크고 이 보다 더 값진 은혜는 고통과 좌절, 절망과 낙담의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말씀을 의지하며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현재 나의 삶이 야베스입니까? 지금 내가 야베스의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주님께 나와 울부짖고 매달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귀중한 자로 바꾸어주십니다. 지경을 넓혀 주십니다. 환란과 근심을 사라지게 하십니다. 다시 시작케 하십니다. 다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시 새 역사의 빛이 비추게 됩니다. 다시 축복의 만나가 내리게 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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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대상 4: 9-10> 김흥규 목사
미국 애틀랜타의 복음주의자인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 목사가 쓴 야베스의 기도: 축복받은 삶으로 나아가기(The Prayer of Jabez: Breaking Through to the Blessed Life)가 출판된 지 3개월 만에 410만부 이상이 팔려서 USA 투데이, 뉴욕 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습니다. 윌킨슨 박사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한 우리가 당연히 하나님께 축복을 구할 수 있으며 또 축복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사실 기독교인들이 지나치게 축복을 간구할 경우 미신적이고 샤머니즘적이며 이기적이라는 비판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본래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를 넘치도록 축복하시는 데 있으므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구하지 못해서 큰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당장 근처 서점에 달려가 이 책을 사서 조심스럽게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 저는 야베스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또 윌킨슨의 주장대로 우리의 정욕이나 죄와 관련되지 않은 축복에 대한 간구는 성경적이며 좋은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윌킨슨은 실제로 달라스에서 신학대학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야베스의 기도'--즉,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하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기도--에 대하여 배운 뒤 이 기도를 30년 동안 매일 드려온 결과 자신이 창립한 'Walk Thru the Bible Ministries'가 전세계 40개국으로 팽창한 것이 이 기도의 효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윌킨슨의 책은 거의가 개인적인 간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우화가 저에게는 인상 깊었습니다. 존스(Jones)라는 사람이 죽어서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천국 여기저기를 안내해 주는데 한 이상하게 생긴 건물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거대한 창고(warehouse) 같은 곳이 있는데 이 건물은 창문은 하나도 없고 오직 문 하나만 달랑 있었습니다.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냥 지나가자고 하였습니다. 보게 되면 크게 후회하게 될 테니 그냥 지나가자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간청을 해서 존스는 겨우 이 창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창고 안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반들이 빼곡이 들어 차 있는데 각 선반에는 빨간 리본이 묶여진 하얀 상자들이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자들은 모두 앞에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존스는 자기 이름이 쓰여진 상자를 열심히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할 수 있으면 존스가 자기 상자를 열어보지 않기를 바랬지만 존스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 이름이 적힌 상자를 즉시 찾아 열게 되었습니다. 존스가 이 하얀 상자를 여는 동안 베드로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불쌍한 듯이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까요? 존스가 열어 본 상자 안에는 그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했던 수없이 많은 복들이 가득차 있었지만 존스는 한번도 그 복을 구한 적이 없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윌킨슨은 이 예화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태 7: 7)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땅위에 사는 동안 마땅히 누려야할 축복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야베스는 누구이며 그가 올린 기도는 어떤 내용의 기도였습니까? 먼저 야베스는 성경에서 가장 지루한 책으로 유명한 역대기 상에 등장합니다. 특히 역대상 1―9장은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말로 연결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족보로서 아담에서 이스라엘 12지파까지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에는 오백명 이상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야베스는 다윗왕의 혈통인 유다지파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이 별로 뼈대있는 집안이 아니었던지 3장에 나오는 왕족의 족보에 들어가지 못하고 4장에 비로소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야베스에 대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9절 후반의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고 한 구절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괴롭게 하다" 혹은 "슬프게 하다"의 뜻을 가지는데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컨대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 혹은 '빼앗는 자'(grabber)인데 이름 그대로 그는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또한 나오미가 그 두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말론은 '병약한'(puny)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기룐은 '수척해지다'(pining)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 이름대로 두 사람 모두 젊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룻기 1: 1-5 참조). 또한 솔로몬의 뜻은 '평화'(peace)인데 그는 이름처럼 전쟁에 한번도 나가지 않은 첫 번째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의 뜻이 한 사람의 운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면, 야베스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지어 주었다는 사실에서 유복자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야베스'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혹 난산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르며 아니면 그 자신이 불구자로 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어머니가 야베스가 태어남으로서 어떻게 먹여 살릴까 경제적인 문제로 근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적어도 그의 이름 뜻으로 보면 어머니로 하여금 "이제 너는 고생문이 훤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태어난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슬픈 출생과 과거를 지닌 야베스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가 다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케 되었다고 합니다. 야베스가 불행과 슬픔의 과거를 딛고 축복과 존귀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바로 그의 담대한 기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내용의 기도를 드렸기에 그가 축복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첫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복을 달라고 하는 기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구하여서 기왕이면 더 잘살고 더 잘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를 축복해주시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건강하고 잘살고 성공하고 승리하시길 원하십니다.
잠언 10: 22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복을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축복을 어떻게 누리며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자세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정욕만 위하여 축복을 구한다면 그런 축복은 의미가 없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영화롭게 하는 축복은 우리가 반드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야베스는 자기가 어떤 축복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받게 될 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채 그저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해야 하는 자기의 책임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 7: 7―8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은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복을 채워주시길 원하시는 분인 까닭에 열심히 구해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자기의 지경을 더욱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가 살던 시대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12지파에 골고루 땅의 지분을 나누어 주었던 시대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은 곧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땅 한 조각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목숨을 건 전쟁을 수없이 치러야 했으며 땅을 넓힌다는 것은 무한히 생육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경을 넓혀달라는 기도는 단순히 이기적인 복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책임을 달라고 하는 비전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윌킨슨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할 때 흔히 다음과 같은 인간적인 계산방식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즉 "내 능력 + 내 경험 + 내 인격과 외모 + 내 과거 + 다른 사람들의 기대 = 나에게 할당된 지경"이라는 계산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윌킨슨은 스가랴 4: 6에 나오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신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계산 방식을 말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와 약점 + 하나님의 의지와 초자연적 능력 = 나의 지경을 넓혀나감." 우리의 부족함과 약점을 그대로 가지고 간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순전히 당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과 물자와 지혜를 허락하셔서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자기를 도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경을 넓혀달라고 간구한 뒤 그 목적을 향하여 열심히 나가다 보면 어려운 장애물이 하나 둘 출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한 축복은 그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기적적인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한 뒤 어려운 장애물들을 잘 통과한 뒤에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와주고 계심을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시는 능력을 상징합니다(여호수아 4: 24과 이사야 59: 1 참조). 또한 사도행전 11: 21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말함으로서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자기의 지경을 넓혀나가는데 있어서 주의 손이 함께 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야베스는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산다고 해도 환난과 시련이 때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수없이 많은 근심이 우리를 삼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우리의 지경이 크게 넓어져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실수해서 죄악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건실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뒤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저버림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축복이 근심 없는 축복,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축복이 되어야지 추한 이기심으로 일그러진 축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축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을 경우 빼앗아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윌킨슨은 야베스가 드렸던 이 기도 부분을 다음과 같은 자신의 간증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윌킨슨이 몇 년 전에 아주 피곤한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를 탔을 때였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강연의 강행군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찾아 왔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야베스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주님, 이제 제가 죄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봉사하느라고 저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저는 유혹과 싸울 힘이 없답니다. 오늘 죄악으로부터 저를 멀리 있게 하옵소서." 기도를 드린 후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에 탑승해서 좌석 중간에 앉게 되었는데 왼쪽에 앉은 남자가 가방에서 포르노 잡지를 꺼내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윌킨슨은 신분이 목사였기 때문에 한숨을 짓고 고개를 얼른 다른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오른쪽에 앉아 있는 청년이 가방을 주섬주섬 열더니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나체 사진들이 들어 있는 도색잡지를 또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오른쪽도 볼 수 없고 왼쪽으로도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눈을 감고 다시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오 주님, 저는 이 상황을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제발 악을 저에게서 멀리 치워 주시옵소서!" 이 기도를 드린 후 갑자기 오른쪽에 앉아있던 청년이 도색잡지를 접어서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왼쪽에 앉아있던 사람이 이 청년이 하는 짓을 보더니만 자기도 역시 포르노 잡지를 치웠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일이 일어나서 비행기 상공에서 윌킨슨은 큰 소리로 걷잡을 수 없이 웃어댔습니다. 옆에 있던 두 사나이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웃어댑니까 하고 묻자 윌킨슨은 "신사 양반들, 내가 대답을 해도 당신들은 이 일을 믿지 않을 걸세!"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환난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우리의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아름답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특별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넘치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한 사람이 되어서 유대 전승에 의하면 당대의 가장 유명한 율법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셔서 여러분의 지경이 넓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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