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묵상 7. 한계는 없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다음번에 구약 성경을 읽을 때는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하나님의 모습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하나님이 하신 모든 구속의 말과 질책의 말 사이로, 인간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척당한, 그럼에도 그 자녀를 관대함으로 돌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성경은 율법책이 아니라 낙심과 좌절로 가슴 가득 멍이 든 한 박애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들이 원하는 이상으로 너와 네 자손에게 베풀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다. 또한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3,6)고 약속해주셨다. 이보다 더 좋은 말씀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자원의 제약 같은 것을 모르신다. 그분이 하시는 일 가운데 마지못해 하거나 강압에 의해 억지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분은 자기 자녀에게 너무 많이 복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자제하셔야 한다! 성경 어디를 살펴보아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렇게 복을 주었는데 또 복을 달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라고 질책하시는 구절은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은 천국에다 장부를 비치해 두고서 나에게 한 번 복 주실 때마다 혹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나에게 너무 많이 복 주시는 건 아닌가 하고 셈하는 일은 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아무리 많이 써도 우리에게 할당된 하나님의 선하심의 분량을 다 쓸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자상함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의 거장인 조지 뮬러(George Muller)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님의 복은 아무리 욕심내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뮬러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어, 온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가야 했다. 그래서 인부들을 불러 언덕에 있는 자기 집에서 부두에 정박해있는 화물 운반선으로 가재도구들을 나르는 일을 하게 했다. 인부들은 하루 종일 부두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뮬러의 짐을 옮겨 실었다. 드디어 짐을 다 싣고 출항하려고 하는데, 뮬러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의자가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장에게 달려가 출발을 조금만 늦춰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선장은 그럴 수 없다며 그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다급해진 뮬러는 갑판 위에 서서 큰 소리로 '오, 주님. 어서 빨리 제 의자를 좀 갖다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다. 그러자 선장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요청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귀찮게 하냐고 비웃으며 선원들에게 밧줄을 풀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사람이 언덕 꼭대기에서 허겁지겁 달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의 머리 위에는 조지 뮬러의 의자가 들려 있었다.
여러분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풍성하고 아낌없이 주고 싶어하신다. 이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그분의 속성이다. 감사하게도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아주 좋은 선물을 언제 우리에게 주면 좋을까 기회를 엿보면서 말이다. 지금 마음속에 있는 걱정 근심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간절히 바라는 부분은 없는가? 혹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너무 사소하고 난처하고 말도 안 되어 도저히 그분께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는 없는가? 그렇다면 너무 고민만 하지 말고, 하나님이 거기에 응답해주시면 당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지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보려고 노력하기 바란다. 지금 당장 눈을 감고 하나님이 당신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지 한번 상상해보라. 하나님은 조지 뮬러에게 하셨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기 원하신다.
그동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있었다면, 오늘 이후로는 그러지 말라.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다 그렇듯이, 하나님도 지금 당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하며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당신이 그분께 간구하는 것 가운데 너무 사소해 도저히 그분의 주의를 끌 수 없겠다 싶은 것은 하나도 없다. 갖가지 필요와 꿈 그리고 야망에 대해 너무 성가시게 요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실 수 있고 또 기꺼이 주고자 하는 선하고 좋은 것들을 주지 않으시겠는가. 그러니 그분을 믿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기탄없이 아뢰라.
그리고 시선을 언덕 꼭대기에서 떼지 말라.
* 나의 야베스 기도 일기
”하나님이 나를 위해 떼어놓으신 선하심과 은총과 나에게 복 주시고자 하는 소망의 분량은 평생 구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간구해야 할까?
야베스의 기도 8일 - 산출량 증대시키기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7~8)
하나님의 손가락이 하늘나라의 전화번호부를 훑어 내려가고 있다. 한 줄 한 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주의 깊게 훑으시는 게 누군가의 이름을 찾으시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분의 손가락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어느 이름 앞에서 멈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로 당신의 이름이다.
하나님은 왜 당신의 이름 앞에서 손가락을 멈추었을까? 그것은 얼마 전에 당신이 삶을 찬찬히 돌아보며 "주님, 저는 더 많은 걸 원해요. 당신을 위해 좀 더 많은 걸 하고 싶거든요. 그러니 좀 더 많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기 때문이다.
야베스는 맨 처음으로 자기에게 복주시길 기도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자신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했다. 여기, 자작농장이자 미개척지 개척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둘러본 다음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난 이것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태어났어." 그리고 "하나님, 제발 저의 지경을 넓혀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어떤 역본에는 지경이란 말이 해변 혹은 경계로도 번역되어 있다. 어떤 말로 번역되어 있든, 이것은 한 사람의 영향력과 소유권 그리고 책임의 한계를 의미한다.
나는 야베스가 성장을 위한 성장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지경을 확보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키거나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재물을 축적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라는 소리다.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근거는 성경이 그를 가리켜 '보다 존귀한 자'라고 일컫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동기나 요구가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농부였던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의 땅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느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께 물려받은 몇 평 안 되는 밭돼기로는 딸린 가족과 생축을 먹여 살리는 일만도 급급했다. 소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땅과 더 많은 기회가 필요했다.
복을 바라는 기도는 분명 거룩한 간구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위해 지경을 좀 더 넓혀달라는 간구도 거룩한 야망이라 볼 수 있다. 바로 이 같은 열정이 있을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원이 가게 주인에게 "아저씨, 아저씨를 위해서 가게 한 번 깔끔하게 꾸며보고 싶은데 아저씨 생각은 어떠세요?"라고 물었을 때, 허튼 소리 말고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하라고 면박을 줄 주인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혹은 아이가 엄마한테 "엄마, 제가 뭐 도울 일 없어요?"라고 묻는데, 저리 비키라고 짜증낼 엄마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으니 좀더 많은 기회를 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기쁘게 응답해주시며 은총의 은총을 더해주신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으니 더 많이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더 큰 비전을 보고 그 비전이 실현되게 해달라고 간구하기 원하신다. 물론 그 비전은 하나님의 비전과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더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동안 간과한 기회는 없는지 한번 점검해보라.
하나님은 우리가 '좀더 많이' 달라고 아무리 많이 간구해도 그 간구 하나하나를 다 긍정적으로 들으시며, 풍성한 은총을 베풀려는 마음으로 들으신다. 이것만큼은 절대 확신할 수 있다.
* 나의 야베스 기도 일기
지금 내 삶에는 경계선이 둘러져 있다. 이 경계선을 정한 것은 누구인가? 상황인가? 주변 사람들인가? 아니면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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