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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다윈니즘 다윈주의 (le) Darwinisme
다윈주의는 영국의 박물학자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이론이다.
그는 피츠로이(Fitzroy) 선장의 원정팀, 비글(Beagle)에 승선할 때, 박물학자로서 출발하여, 남아메리카, 태평양 섬들, 특히 갈라파고스(Galapagos)의 섬들에 들렀다. 그는 동물의 다양한 종들을 관찰하였고, 이 동물 종들은 스스로 변형하면서 진화한다고 확신했다. 이리하여 그는 “다윈의 새”라고 불릴 새 한 마리를 연구했다. 그 새는 사냥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날개의 사용법을 잊어버렸고, 위축되었다(atrophier). 참조: 비글호 여행의 동물학(Zoology of the Voyage of the Beagle). 그러므로 인간 또한 원숭이의 후계일 수 있으리라.
이 가설은 프랑스에서 라마르크(Jean-Baptiste-Pierre Antoine de Monet, chevalier de Lamarck, 1744-1829)에 의해 이미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처음 발표되었던 시기에 상당한 논란거리(scandale)를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적 학설인 변형론(transformisme)은 본질적인 면에서 두 사람 사이에 차이를 드러낸다. 다윈의 경우에 환경(millieu)이 [열등한 종들을] 제거하면서선택한다고 보는데 비하여, 라마르크의 경우에 환경은 유기체를 변형시키면서선택한다고 보았다. 이 이론이 “자연 선택”(sélection naturelle)이론이다. [우리나라 책은 자연도태(自然淘汰)라 부른다. 도태란 좋은 것을 고르고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선별하고 분류한다는 의미이다. 왜 이런 어려운 단어를 썼을까?]
보다 정확한 예를 들자면, 다윈에 따르면 추운 지방의 털없는 동물은 제거[소멸]된다. 라마르크에 따르면 이 동물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털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선택은 가장 강한 자들의 잔존(survivance)를 이끌어낸다. 다시 말하면 타생명체에 대하여, 기후의 엄혹함을 넘어서, 식량조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등 끝까지(au fond)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여 자신을 가장 잘 적응(aptes)하는 데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세분화(différenciatrice)일 것이다. 죽은 생명(자)이란 존속하는 생명(자)과 동일하지 않다. 남은 자(생명)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존속을 허락하는 보충적인 형질(caractère)를 소유한다. 죽음은 새로운 종의 형성 그리고 개체들의 일반적 개선에 따른 결과이다. [앞선 세대의 죽음은 다음세대에 비해 자연선택에서 적응이 덜 된 존재들이다. 그래서 다음세대의 선택은 앞선 세대와 대결에서 앞세대의 죽음 위에 선택된 존재이다.]
다윈주의는 논란의 여지가 매우 많다. 사람들은 몇몇 유전형질의 유전을 부정했다. 게다가 “선택”이 좋은 창조이지도 않고, 또 생명의 조건들에 의해 획득된 새로운 형질도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다윈주의와 현대진화론은 종들의 진화에서 평행론이라 인정되고 있다. 예를 들면 “원숭이” 종은 진화할 수 있으나, 원숭이로서만 만들어 질 것이고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 오스트리아의 유전학자, 성직자, 1865년 유전법칙 발견)에 의해 분간되었던 변이(mutation)란 유전자의 수준에서 변종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경우에만 변이가 전달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마르크와 더불어 다윈은 종의 진화에 대한 과학의 선구자이자 기초자이다.
참조: 유전, 진화론 (42QKH)
정신 박약 (la) débilité mentale [정신(신경) 쇠약]
사회에 적응하는 데 능력이 모자라는 지적 불충분의, 일반적으로 천성적(congénitale) 불충분의, 영속적 상태이다.
정신박약은 프랑스 인구의 2%의 경우에 속하는 심각한 성격적 혼란을 말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내분비선의 질환과 결부되어 있는 신체적 허약의 결과이다. 내분비선 질환은 그 자체가 병으로부터 올 수 있고 과로, 영양실조, 깊은 슬픔, 열, 고통 등으로부터 올 수도 있다. 정신박약을 의사-박약(pseudo-débilité)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 후자는 어떤 어린이에 있어서 빈곤한 환경에서 자라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이다. 이 아이는 학교 성적이 나쁘고 사회생활의 품행이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받을 수는 아이이다.(43TMH)
인격성의 이분화 (le) dédoublement de la personnalité
이중 인격(double personnalité)의 상태를 말한다.
인간 의식이 종합과 통일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격성 이분화은 의식의 과잉에서가 아니라 의식 능력의 약화와 관련있다. 의식능력의 약화과정은 ‘암시의 현상’과 같은 정신적 자동주의 현상으로부터, 몽유병과 히스테리를 거치면서, 분신이 있다(d'être double, 분화된다)고 여기는 실재적 감정으로 진행한다. 이분화는 기억의 상실이나, 인격성의 변질에 따른 방식을 동반할 수 있다. (43TMH)
[우리는 개인의 인격의 이분화과정을 베르그송의 견해에 따라서, 새로운 인격을 생성하는 한 과정이라고 보기도 하였다. 진화상으로 분화는 개체의 차원보다 종의 차원에서 세분화와 닮았다. 새로운 종은 환경이 자연선택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개체의 노력에 의한 새로운 적응이라는 것이다. 같은 환경에서 몸의 다른 변화가 거기어 살아가기 위해 다른 노력을 한다. 확장하면, 같은 환경을 다른 방식의 언어를 만든다. 이것은 살기 위한 노력을 넘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것의 창조는 신적 창조론과 아무 상관이 없다. (43TMH)]
연역 (la) déduction
연역법은 일반 원리를 개별적 경우에 적용하는데 쓰이는 엄격한 추론이다.
삼단론법은 연역법의 가장 탁월한 예이다. 즉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실험과학들에서, 연역법은 일반가설을 가장 많은 개별적 관찰들을 검증하는데 있으며, 이것은 귀납법(l'induction)과 대립된다. 따라서 여기서 연역법은 “실험적 검증”(vérification expérimentale)이다
철학에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Critique de la raison pure, 1781)에서 “선험적 연역”(déduction transcendantale)은 정신의 기본적 구조들로부터 즉 “범주들”(catégories)로부터 뉴턴 과학의 일반적 원리들을 연역하는데 있다. 사람들은 이 범주들을 철학적 반성을 통해 모든 경험에 앞서서 발견했다.(43TMH)
[칸트의 ‘선험적 연역’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위해, 절대적 시공간을 선전제로 정신이 설정(규정작용 détermination)하는 것인데 비해, 들뢰즈의 선험적 생성은 시공간이 생명의 전개과정에서 형성중인 것으로 개체의 영혼이 규정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들뢰즈에서는 칸트의 시공간이 규정된 것으로(déterminée) 관념이며, 그에게서 살아가는 세상에서 시간은 과거를 포함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덩어리로서 규정할 수 있는(déterminable) 실재성이다. 영혼의 실재성이 일반관념으로 규정작용(détermination)이다. 들뢰즈의 영혼의 현상태는 정신이 연역하는 규정작용과 다른 의미에서 생성하는 개념으로서 규정작용이다.(43TMH)]
정의 (la) définition
한 대상에 속하는 본질적 성질들에 대한 진술(l'énonciation)
좋은 정의는 우리에게 정의된 대상을 확실하게 “재인식하게”(reconnaître) 한다.
논리학에서 모든 정의는 상호적이어야 한다. 즉 “인간은 이성적(raisonnable)[종차] 동물[류]이다, 모든 이성적 동물은 인간이다” 그리고 정의는 가능한 한 간략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 모델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는] 류(genre)와 종차(différence spécifique)를 포함하는 정의로 되어있다. 즉 “삼각형은 세 변을 가진(종차) 다각형(류)이다” (43TMH)
들레 Jean Delay 1907-1987
프랑스 정신과 의사이다.
쟝 들레는 1907년 프랑스 베아른(Béarn) 지방의 피레네(Pyrenées-Atlantiques 64)주의 베이욘(Bayonne)에서 태어나, 1987년(80살)에 파리(Paris)에서 세상을 떠났다.
철학 박사이며, 1939년(32살)에 의학으로 교수 자격을 통과하였고, 1946년(39살)에 파리 의과대학 정신의학과에 교수가 되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기억의 분해(Les Dissolutions de La mémoire 1942), 『기억의 질병들(Les Maladies de la mémoire, 1943), 인간 심리학(La Psychologie humaine 1945), 의학 심리학의 문제들(Les Problèmes de psychologie médicale 1952)이 있고, 또한 앙드레 지드(André Gide 1869-1951)의 행실과 작품에 관한 심리학적 비판적 분석을 한 지드의 젊은 시절(La Jeuness d'André Gide』(1957)도 있다. 1959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43TMH)
델보 Victor Delbos 1862-1916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이다.
델보는 1862년 미디 피레네(Midi-Pyrenées)지방의 로(Lot 46)주 피작(Figeac)에서 태어나 1916년(54살)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스피노자 철학에서 도덕문제와 스피노자주의(Le problème moral dans la philosophie de Spinoza et le spinozisme, 1896로 유명하다. 그리고 유명한 박사학위 논문은 칸트의 실천철학의 형성에 관한 시론(Essai sur la formation de la philosophie pratique de Kant, thèses de doctorat, 1902이 있다. (43TMH)
[우리가 스피노자주의(Le spinozisme, 1916와 프랑스 철학(La philosophie française, 1919(사후출판)을 덧붙이자]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 철학자이다.
질 들뢰즈는 1925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95년(70살) 파리에서 죽었다. [자살했다]
그의 니체와 철학(Nietzsche et la philosophie, 1962)에 관한 연구 작업은 “철학의 진실한 시작”으로서 “차이”(différence)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대로 그를 나가게 했다.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를 만나서, 욕망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모든 제도들에 맞서서 심지어는 정신분석학 제도에도 맞서서 욕망의 혁명적 측면을 제시하며, 가타리와 함께 앙티 외디푸스(Anti-Oedipe, 1972)와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1980)을 썼다. 그의 다른 저술로는 칸트의 비판철학(La Philosophie critique de Kant, 1963), 베르그송주의(Le Bergsonisme, 1966),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1968),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Spinoza et le problème de l'expression, 1968),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 1969)등이 있다. (43TMH)
범법행위(일체) la délinquance 비행
사회적 범죄 및 불법(délits)행위의 일체를 말한다.
사회학자는 범법행위(la délinquance)와 범죄행위(la criminalité)를 구별해서 말하지 않는다. 범법행위는 젊은 사람들 경우에 자라면서 사회적 적응이 안될 때 발생한다. 이들은 어린 시절에 집을 나왔고, 어떤 책임의식도 없었으며, 따라서 사회적 실재성(réalité)을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환경의 안정은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범법하는 대부분의 어린이는 결손 가정으로부터 온다. 범죄행위의 경우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소들의 급변화에서 또한 증가한다. 예를 들어 타르드(Gabriel de Tarde, 1843-1904)는 1826년과 1880년에 전반적 범죄행위의 대단한 증가를 주목했다. 이 시기는 산업의 발전 시기이고 시골 사람들의 도시로 쇄도가 있었을 때이다. 전쟁이 일어나 다음시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풍토에서 계절적 동요들에 대해 주목한다. 즉 겨울에는 도적질의 증가, 여름에는 성적 범법의 증가가 있다.
청소년 범법행위에 대한 투쟁은 지난 세기 초[20세기] 이래로 심도 있게 진화되었다. 이 투쟁은 경찰의 영역에서 의학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범법 어린이는 더 이상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적응과 재교육을 받는다. 참조: 문화부적응(Acculturation). (43UKJ)
만성 망상 (le) délire chronique
실재적인 것의 의미를 영속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상실을 의미한다.
만성 망상은 도식적으로 보면 4가지 계속적 국면으로 발전된다. 불안, 박해받은 다는 생각, 위인이 된다는 생각, 치매. 결국에는 체계화된 또는 영속적 망상(le délire systématique)에 이르게 되고, 그것의 가장 특징적인 예는 편집증(paranoïa) 즉 위인되기 망광기 이다. (43UKJ)
치매 la démence [착란]
깊은 정신적 혼동으로 지성의 변질을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치매란 지성이 부적한 것도 아니고 또 지적 발달의 부재도 아니고, 오히려 지성의 상실이다. [여기서 지성은 지적기능으로 지식을 사용하는 방식에 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치매가 어린아이의 경우에 일어날 경우에 실재에 대한 감관의 상실을 지칭할 수 있다. 이것을 조발성 치매 또는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관의 통합으로 지각이 이루어져야 대상에 대한 인식이 있은 데, 그 지각이 잘 안되어 지적 능력이 저하 또는 상실 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매우 자주 기관의 장애(troubles 혼란)에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다. 매독(syphilitique) [또는 마약 등의 약물중독] 때문에 일어나는 일반적 마비 현상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 노인성 치매의 경우도 있으며, 또한 픽(Pick)과 알츠하이머(Alzheimer)의 질환들도 있다. (40PKF)
[픽(Arnold Pick, 1851-1924) 유태계 체코 신경학자, 정신과의사. 두뇌의 일시적 전두엽의 파괴에서 오는 치매 즉 픽 질환을 서술했다. /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1864-1915) 독일 정신과 의사, 신경학자. 오귀스트(Le cas Auguste D)환자를 1901-1906년까지 관찰한 결과 두뇌의 작은 섬유들의 비정상에서 오는 알츠하이머 병을 묘사했다. (43UKJ)] ,
민주주의 la démocratie
그리스어 데모스(δήμος dēmos) 즉 지역주민(peuple)과 크라테인(κρατέιν, kratein κρατέω), 즉 명령하다(commender)[지배하다, 권력을 잡다]의 합성어이다. 다시 말하면, 인민의 정부 또는 정체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어떤 도덕적 신체적 구속없이 자유롭게 보편[보통] 선거를 실행하는 것이다.
정치적 행정적 구조는 집행부와 입법부 사이에 권력을 평등하게 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현대 민주정체의 헌법적 문제는, 특히 프랑스에서, 연속적이고 효과적인 행위의 가능성을 이러한 권력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다른 쪽의 권력에 대한 어떤 인위적 방해 없이, 조합하는(combiner) 것이다.
제5공화국에 이른 프랑스 헌법은 입법부가 행정부를 지명하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 또 국회와 공화국 대통령을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다는 의미에서이다. 두 권력 사이에 충돌이 생기는 경우에, 이를 해결하는 것 또한 국민이다. 국회 “해산”으로 의원들을 선거권자들 앞으로 되돌려 보내면, 선거권자는 의원들의 행동을 비준해 주거나 또는 그 행동을 단죄한다.
민주주의의 개념과 강한 정부의 개념은 서로 절대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정부는 자유국가에서 강한 정부일 경우에는, 그 정부는 두터운 민주의식의 층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투표[여론조사]의 도움을 받을 때이다. 우리시대에 민주정체의 개념은 모든 정부가 그것을 주장할 만큼이나 매력을 끌고 있다. 즉 “인민 민주주의”국가들의 가장 엄한 지도자주의(dirigisme)에서부터 프랑스에서 정당들 중에 한 정당으로서 조직된 무정부정체(anarchie)에까지 매력을 끌고 있다. (참조: 정부, 자유) (43UKJ)
데모크리토스 Démocrite 기원전 460경-370)
데모크리토스는 그리스 철학자이다. 그는 460년경에 트라키아(fr. Thrace, 마케도니아 동부지역이며 비잔틴 도시를 포함한다) 지방의 압데라(fr. Abdère)에서 활동하다가 370년(90살 정도)에 몰했다.
그의 원자론과 유물론은 에피쿠로스(Epicure)의 학설과 류크레티우스(Lucrèce)의 시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연을 원자들의 영속적 운동으로 생각했다. 원자들이란 불가분이자 영원한 물질적 부분들이며, 이 부분들의 조합은 매우 다양한 물체들을 생겨나게 한다.
우리가 지닌 사물에 대한 인식이란 대상들로부터 나오는 매우 미세한 실체들의 방사(放射)들이 우리의 감각에 작용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데모크리토스를 원자론의 선구자라고 생각한다. (39PNA)
사물의 지연/본성에 대하여(De Natura rerum, De la nature de chose ou De la nature)
이 저술은 류크레티우스(Lucrèce, 98-55 av. J.-C.)가 쓴 여섯 부분의 노래로 된 철학적 시이다. 류크레티우스는 이 시에서 에피큐로스(Epicure)의 유물론 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최고의 행복이란 초연한 태도(détachement)에 나오고, 또한 우주란 변질하지 않는 법칙에 지배되기 때문에 초자연에 대한 모든 두려움은 헛것(supergflue)이라는 확신에서 나온다. (39PNA).
울증 (la) dépression
노동에서 수입의 하락으로 일어나는 심리적 혼란의 특징이며, 이 증상들은 “신경쇠약”(neurasthénie, 노이로제)의 증상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후자는 신체적 심리적 피로, 불면증, 머리 아픔, 신경질(irritablilité, 잘 화냄), 주의를 집중시키기 어려움, 추억을 고정시키기 어려움 등에서 온다.
그러므로 울증에는 활동이 저하하고 동시에 슬픔과 불안과 같은 정서적 교란(perturbation affective, 애정적 교란)이 온다. 이 혼란들은(ces troubles) 노동이나 근심 등의 과로와 과부하로부터 오는 반복되는 강한 동요들(les emotions)에서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 혼란들을 “휴식의 치료”에 의해 장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 (43UKJ)
[정신질환으로 울증(le dépressif)은 정신적 신체적 의기소침을 넘어서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행위에 대한 실패를 우려해 삶의 의욕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울증은 분열증의 한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치료는 하던 일과 다른 일 또는 다른 환경으로 이전이 필요하다. 이 질환자는 그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 거부의 저항은 환경의 변화도 같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이웃(가까운)들의 이해와 공감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환경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요건을 마련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43UKJ)]
비현실자 (le) déréalisé
실재적인 것의 의미를 상실한 개인을 말한다. 임상 심리학에서 사람들은 이를 심리쇠약(psychasténique)이라 말하는데, 의식의 긴장의 축소가 그 특징이다.
이 비실현화는 우선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의해, 부적응(désadapté)이라 말한다. 이 비실현화는 세상에 대해서만큼이나 타인에 대하여 깊은 불안(angoisse)과 초조(inquiétude)를 동반한다. 이 비실현화는 언어적 망상과 같은 정신분열증(schizophrénie)형식을 또는 침묵의 공격과 같은 신경증의 형식을 취할 수 있다. (43UKJ)
드장띠 Jean Toussaint Desanti 1914-2002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는 1914년 프랑스 지중해의 코르스(Corse) 섬 아자키오(Ajaccio)에서 태어나 2002년(88살)에 죽었다. [레지스탕스, 전시에 공산당 비밀당원, 현상학적 관점에서 철학을 하였다]
그는 1971년(57살) 이래로 소르본에서 가르쳤으며, 카바이에스(Jean Cavaillès 1903-1944)의 전통을 이어받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수학의 이상성(Les Idéalités mathématiques,1968)은 수학적 인식의 주목할 만한 기여를 했다. 드장띠는 철학의 담론은 다양한 과학적 담론들의 분석 담론이라 정의했다. 그는 철학사 입문(Introduction à l'histoire de la philosophie, 1956), Phénoménologie et praxis, 1963), 집합 표준 개념의 형성에 관한 탐구(Recherche sur la formation du concept de mesure des ensembles 1970), 침묵의 철학(La Philosophie silencieuse ou Critique des philosophies de la science, 1975), 철학적 운명(Un destin philosophique 1982)를 썼다. (43UKJ)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철학자이다.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 뚜렌느(Touraine)지방의 앙드르 에 르와르(Indre-et-Loire 37)의 라에(La Haye 현재 Descartes)에서 태어나, 1650년(54살)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에서 죽었다. 그는 우선 1617년에서 1629년(33살)까지 군대라는 경력을 쌓는데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삶은 교회의 박해로부터 은신해 있으려는 생각에서 홀란드에서 보냈다.
고전시기의 탁월한 철학자이며, 많은 외국인들에게서는 프랑스 민족정신의 상징적인 철학자이다. 사실상 그는 “명석 판명 관념”에 의해 사유의 스타일을 프랑스 문화에 심었고, 또한 그는 철학적 반성을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인격적 성찰”(méditation personelle)의 실행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그의 합리론은 잘 인도된 정신은 진리의 인식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 위에 우선 원칙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7)은 이 규칙들을 알리고 있고, 이 규칙들은 철학과 과학의 탐구에 지배하게 된다. 그의 철학적 근본 작업을 구성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성찰(Méditations métaphysiques,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1641)에서 그는 모든 사물에 관해 “방법적”(méthodique) 의심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장 극단적인 의심 속에서 사람들이 의심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사유[의심한다고 생각하는 것]는 우리의 첫 번째 확신으로 대표된다. 이로부터 철학은 자기 현존(즉 내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한다)을 연역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우리 속에 있는 무한의 개념으로부터 신의 현존을 연역할 수 있다. 결국에는 우리 신체의 애정적인 감정(sentiment des affectons)으로부터 물질적 세계의 현존을 연역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의 합리적 학설은 따라서 사유로부터 모든 사물을 연역한다는 이론적 기초이다.
그의 도덕론은 방법서설과 또한 많은 편지에서 특히 팔라틴의 공주 엘리자베스와 교환한 편지에서 제기되었고, 그리고 영혼의 정념론(Traité des passions de l'âme, 1649)은 도덕의 생리학적하부 토대를 분석한다. 그의 도덕론은 한편으로 스토아 학파 경향으로 어떤 기회를 관망한는 임시적 도덕론이다. 즉 자기의 행위를 진리에 기초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채택하는 도덕론이다. 다른 한편, 결정적인 도덕의 시작은 진리의 인식에 근거한다. “잘 행동하기 위해 잘 판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수학자이면 마찬가지로 물리학인 데카르트는 철학원리(Principia philosophiae, Principes de la philosophie, 1644)에서 세계의 개념작업을 제시한다. 이 외에도 그는 대수학을 기하학에 적용하는 해석기하학의 창시자이다. (43UKJ)
절망 (le) désespoir
라틴어 데 스페라레(de-sperare)에서 나온 것으로 자신의 희망이 위에서 떨어지다는 의미이다. 무너짐과 비행위[행동 못함]의 상태로 끌어가는 실망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자의 상태이다. 이것을 독일어 페르쯔바이플룽(Verzweiflung)과 같은 의미이다. 쯔바이펠른(zweiflen)은 의심하다(douter)는 뜻이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움직이지 못하듯이, 어떤 다른 일을 못하는 경우이다.]
과도한 비참상태에 처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처한, 이 절망은 신에 대한 신앙의 상실과 연결될 수 있는 절대적 고독의 감정이라는 원인 상태로부터 귀결된다.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가 죄있나? 없나?(Coupable? Non coupable?, 1845)에서 표현했듯이. 또는 자기 이상들을 실현할 모든 이상과 모든 희망을 상실했을 때 인간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연결될 수 있다. 까뮈(Albert Camus 1913-1960)의 시지프스 신화(Le Mythe de Sisyphe 1942)를 참조하라. 그래서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무용한 정열”(une passion inutile)일 뿐이다.
절망에는 두 개의 출구가 있다. 1. 첫 출구는 폭력적이며 그 답은 자살이다. 2. 다른 출구는 “반성적”이며,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썼듯이, 그 출구는 실재성에 마주하여 바라보기 위하여 요구되는 에너지를 찾는 데 있으며, 또한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희망을 가장 깊은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있다. (43UKJ)
욕망 (le) désir
자기 목적(son objet)을 의식하게 되는 경향
욕망은 욕구(le besoin)와 구별된다. 욕구는 심리학적인 단순 자극이다. 예를 들어 먹을 것을 욕구할 수 있고, 나의 시련이 영양의 부족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도 위의 경련을 체험할 수 있다. 욕망은 일반적으로 정확한 대상에 연관있다. 즉 나는 포도주를 마시기를 욕망한다(désirer).
어떤 불만족을 가정하는 욕망은 애정적 삶에 자기 색깔(tonalité)를 부여하고, 감정과 정열을 자극하고, 능동적 삶의 토대로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은 수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에 이것들 모두를 만족하게 하려는데 주의 깊은 인간은, 플라톤에 따르면, 자기 자신에 비추어서 뒤로 물러서게 되고 그리고 모든 자유를 잃을 지도 모른다. 계산하고 반성하여 조절을 감당하는 욕망은 의지적행위(acte volotaire)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욕망의 충동이 아니라 오히려 인격성을 표현하는 의지의 작용이다. (43UKJ)
운수 (la) destinée
인간에게 “도래하는”(arriver 일어나는) 사건들의 일체를 말한다.
사건들이 의지와 일치하는지 않는지에 따라서 사람들은 두 가지로 구별한다. 1. 사명(la destination), 이것은 개인의 본질이며, 개인의 인격성의 법칙, 개인의 소명이다. 간단히 내적 요구이다. 2. 운명(le destin), 이것은 밖으로부터 개인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고대의 비극들은, 특히 아이스퀼로스(Eschyle, Aiskhulos: 기원전 525-456)의 비극들과 소포클레스(Sophocle, Sophoklês, 기원496-405)의 외디푸스 왕 등은 “숙명”(fatum)에 대한 근본적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숙명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지배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또, 인간 삶의 모든 문제는 자기 운명(le destin) 즉 숙명(amor fati)과 화해하는 것, 또 자기 운명(le destin)을 자기 자신의 사명으로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맹목적 외디푸스가 자기의 내적 침착(sérénité)을 다시 찾았을 때는, 그가 모든 것은 제대로 있고, 또 사물의 질서는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진실한 행복은 그에게 들이닥친 사건들의 경우에 스스로 실현할 수 있을 때이다. 따라서 모든 사건들을 자기 의지의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자기에 일어난 것 속에서 운수의 기호(le signe de sa destinée)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숙명이라 하고, 그것이 주는 조건이 있다. 그리고 양자갈 수 있고 또 다른 나라에 살 수 있는 것은 운명이며, 태어나 한가지를 이루고자 평생을 살아가는 것을 사명이라 구별하고 싶다. (43UKJ)]
데스튀트 드 트라시 (Antoine Louis, comte de Destutt de Tracy 1754-1836)
그는 프랑스 철학자이며 또한 정치가이다. 그는 1754년 파리에서 태어나 1836년(82살) 파리에서 죽었다.
트라시는 [프랑스 혁명 전야의] 삼부회(Etats générales)의 귀족 의원이었으며, 왕정복고 시대에는 프랑스 상원(pair)이었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요소(Elements d'idéologie(1801)에서 감각주의 철학을 제시하였고, 그의 감각주의 철학에서 처음으로 그는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내적 정서, 즉 동인성(motilité)을 밝히려 했다. 이 내적 감정을 근대 현상학은 “고유 신체”(corps-propre)라는 이름으로 묘사하였다. (42NNA)
정신적 쇠락 (la) détérioration mentale [원뜻은 파손, 악화이다. 또는 정신적 황폐화]
인격성의 분리(dissociation, 격리), 붕괴(dissolution, 해소), 풍화(désagrégation, 해리)를 의미한다. 이 지적 효과성의 저하는 지성[지능]의 저하가 아니라 노동에서 수확의 저하를 의미한다. [지적 능률의 저하와 닮았다.] 이것은 늙음에 기인하기도 하고, 피로, 경악이나 근심과 같은 심리적 혼란에 기인할 수 있다. 이것은 반드시 유기체의 타격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의 타격을 함축하고 있다. “정신적 쇠락”은 습득된 혼란이며, 그것의 가장 일반적 치료는 휴식에 의한 치료에 있다. 이것은 체질적 혼란에서 기인하는 정신박약(débilité mentale)과는 본성상 다르다. (43ULG)
결정론 (la) détermination
“동일한 원인들은 동일한 결과들을 생산한다”는 과학적 원리.
결정론의 관념은 현상들 사이의 관계들 안에는 항상적이고 불변하는 질서가 있다는 생각이다. 만일 내가 돌을 놓으면, 그 돌은 땅에 떨어진다. 내가 특별한 경우들에서 물체의 낙하라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법칙에 이를 때, 나는 결정론을 가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정론의 두 가지 개념을 구별한다. 1. 이 항상성은 자연 안에 있다. 이 결정론은 실재성 안에 있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이다. 2. 이 항상성은 우리 정신의 전제(postulat), 즉 방법적 원리이다. 이 양자의 경우에서 결정론은, 인간정신이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을 때, 증명된다. 미시 물리학에서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 같은 사람들은 비결정론(l'indéterminisme)을 말하는데, 그 때는 예견이 한 현상(예를 들면, 전자)에서 시험되지 않으나, 현상들의 집합(전자들의 다발 le faisceau d'élétrons)에서 점검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통계학적 결정론(un déterminisme statistique)이다. 하이젠베르크는 게다가 전자의 속도와 방향을 동시에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이해하기를, 전자의 장소를 관찰하고 결정하기를 우리에게 허락하는 광선이 그 자체가 관찰된 전자와 부딪히고 위치를 이동시키는 전자들의 다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연결(le lien, 묶음), 즉 교란(perturbation 전자파교란)인데, 이것은 비결정론이라고 이미 정의된 관찰된 현상 속으로 관찰을 도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결정론의 과학적 문제와 인간 자유의 형이상학적-신학적 문제 사이에 어떤 연관도 없다는 것을 알려야겠다. 인간의 자유는 예정설(prédestination)의 문제와 관련 있다. 왜냐하면, 만일우리가 자연이 결정론에 복종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가설은 결정론과 함께 일치할 뿐만 아니라 비결정론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의 모든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도[우연도 필연도] 없는 거기에서 우연성(contingence)을 [미리] 보려고 한다 점에서 그러하다. 그 비결정론은 우리 인식의 모방을 표현할 것이리라. [인간의 자유란 우연(hasard)의 발생에 맞물려 있다. 이 우연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비결정을 인식의 모방이라 본다. 이것은 인식과 관련이 없고, 기대에 대한 심리적 연결일뿐이다. 우연은 우연일 뿐이다.] 그리고 만일우리가 자연이 결정론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이 가설도 또한 결정론과 함께 일치할 뿐만 아니라 비결정론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결정론은 우리 인식의 생산물인 통계적 효과로서 표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 물리학으로부터 결정론의 형이상학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체 남아있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결론들을 미시 물리학에 근거하는 것은 부정직한 것이다. (43ULG)
의무 (le) devoir
도덕적 당위(l'obligation morale) 일반을 의미한다.
이 당위는 “너는 살생을 말라!”처럼 절대적 성격을 띨 수 있고, 그리고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처럼 정언명법(l'impératif catégorique)으로 이름 불릴 수 있다. 이것은 “너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면 공부해라!”처럼 상대적이고 조건적인 것에 반대될 수 있다. 그때는 가설적 명법(l'impératif hypothétique)으로 이름 불릴 수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정의(justice)로부터 나온 엄격한 의무들과 자비(charité, 사랑)에서 나오는 넓은 의무들을 구별한다. 의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부터 올 수 있다. 1. 개별적 양심(la conscience individuelle)으로부터. 즉 이것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가 “양심의 목소리”(le voix de al conscience)라고 불렀던, 소위 말하는 도덕적 당위이다. 2. 우리 자신 속에 사회적 의식 또는 집단적 의식(conscience collective)으로부터. 이것은 뒤르껭(Emile Durkheim, 1858-1917)과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에 의해 묘사되었으며, 이리하여 사회적 의식은 우리를 아침마다 일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생명과 예술 또한 양심의 의무와 사회적 의식 사이에 자주 격력한 대치를 부풀리게 한다. 전자의 예를 들면 이 양심의 의무가 안티고네에게 종교에 의해서 자기 오빠를 묻게 했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에, 이 동일한 비극에서 사회적 의식이 크레온 왕에게 매장 의식을 실행하는 것을 거부하게 했다는 것이다. 의무들의 충돌의 다른 예들로서, 양심의 거부자들(les objecteurs de conscience 양심의 병역거부)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도덕, 칸트, 스토아학파) (43ULG)
듀이(John Dewey, 1859-1952)
미국의 철학자 심리학자이다. 그는 1859년 버몬트(Vermont)주의 버링턴(Burlington)에서 태어나, 1952년(93살)에 뉴욕에서 죽었다.
그는 실용주의에 기초한 교육학을 진작시켰다. 지성은 성공의 요소로서 다른 많은 도구들 중의 한 도구이다. 듀이는 시카고 대학에서 ‘실험학교’(école laboratoire) 즉 “대학[부설] 기초 학교”(Univertity Elementary School)를 열었는데, 이 학교에서 그는 4살에서 16살 어린이에게 학력형성을 실행했다. “기획”(Projets)라 불리는 그의 방법을 프레네(Célestin Freinet 1896-1966)에게 영향을 주었고, 복합적인 소비에트 방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방법은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듀이는 학교 법령(Credo pédagogique, 1897), 학교와 사회(Ecole et la Société, 1899), 민주주의와 교육(Democracy and Education, Démoratie et Education, 1916)을 썼다.
참조: 여기 소개된 이외에도 인간성과 행위(Human Nature and Conduct, 1921), 확실성의 탐구(The Quest for Certainty, 1929), 경험으로서의 예술(Art as Experience, 1933), 경험과 교육 (Experience and Education, 1938년)도 있다. (42SLD)
변증법 (la) dialectique
처음에는 대화의 기술이었다. 반대되는 견해들을 지닌 두 개인이 서로 만났을 때, 토론이 이어진다. 각각은 다른 편의 견해를 반박하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두 주제 사이의 대립이다. 이 대립이 토론의 동기이다.
모든 대화는 이런 [대립의] 관점에서 변증법적이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그 예이다. 이러한 단순한 경험으로부터 사람들은 이중 측면, 즉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Aristoteles, 기원전 384-322)는 그것의 부정적 측면을 지닌다. 그는 변증법을 논증하고 반박하는 기술로서 정의한다. 칸트는 모순되는 주제들(thèses)을 단순히 대립시키는 기술로서 정의한다.
긍정적 의미에서, 변증법은 진실한 인식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 견해 즉 한 주제(thèse, 테제)가 분명하다고 하고, 그리고 반대되는 견해 즉 반대주제(antithèse 안티테제)가 잘 기초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고 나서, 한 사물의 총체적 진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이 점진적이고 변증법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처음에는 전체[총체적 진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한 인간이 타인과 대치, 자기 자신으로 후퇴(repliement), 행동, 반성의 놀이에 의해 변증법적으로 자기 인격성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했다. 이 변증법은 이해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기도 한다. 이로부터, 실재적 변증법(dialectique réelle) 즉 실재성의 변증법(dialectique de la réalité)이 구별되어 나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 그리고 맑스는 개인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의 수준에서 인간적 모든 실재성의 변증법을 말했다. 고대에서 노예제는 힘의 숭배에 기초되었으며, 크리스트주의를 필연적으로 부추기게 한다. (헤겔에 따르면) 이 크리스트주의에서는 최고의 가치로서 정신의 내재 종교가 그리스트주의의 반대로서 나온다.
역사는 모순의 법칙에 따라 발전한다. 자본주의(테제)의 절정은 (맑스가 말하는 경제적 대공황에 의하여) 자기 고유한 체제의 파괴를 공산주의(안티테제)에서 부추키고, 그리고 사회주의(synthèse 신테제)가 도래한다.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는 그 박해의 파괴로 이끌어냈으며, 유태국가의 도래를 부추겼다 등등. 변증법이란 것은 역사적 실재성이라는 것이다. 이 철학적 체계들은 이 변증법의 본성에 근거하고 서로 대립된다. (43UKG)
*(도표) 변증법 dialectique
● 부정적 의미(sens négatif)
- 두 주제 사이의 대립(아리스토텔레스, 칸트)
- “변증법은 현상의 논리이다.”
“변증법은 인간 정신의 자연적 오류들의 이론이다.”(칸트)
● 긍정적 의미(sens positif)
• 관념론적 의미(sens idéaliste)
- 진실한 인식의 구축에 있다. (플라톤, 피히데)
“ 변증론자는 각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는 자이다.” (플라톤)
• 실재론적 의미(sens réaliste)
“변증법은 추론하는 외적 기술이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영혼이다”(헤겔)
∙유심론적 의미(sens spiritualiste)
“정신의 운동은 역사에 의해 표현된다.” (헤겔)
“세계는 정신의 거울이다.”... “철학에 기여하는 관념만이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고, 따라서 보편역사는 합리적(rationnelle)이다.”(헤겔)
∙유물론적 의미(sens matérialiste)
“정신의 모든 운동은 물질적 운동의 표현이다.”(맑스)
“사유의 변증법적 운동은 실재적 세계의 반영이다”(맑스) (43UKG)
대화편들 (les) Dialogues
플라톤 작품 일체를 모아서 부르는 제목이름(題名)인데, 여기에는 몇몇 편지를 제외한다. 그 대화편들은 문학적 아름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인격을 전 작품에서 담았다. 또한 대화편들의 인물들로서 파이돈과 테아이테토스 같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라케스 같은 군인들, 고르기아스 같은 소피스트들, 심지어는 파르메니데스와 제논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 등이 등장한다. 이 문학적 아름다움은 또한 강제적인 철학적 반성과 연계되어 있고, 질문들과 대답들의 방법은 개인을 실재적으로 반성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되어있다. 이 질문자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것을 산파술(maïeutique)이다. 그리고 의견들의 대립은 진리를 찾아가는데 흥미를 부추긴다. 이것을 변증법이라 한다.
캄프벨(Lewis Campbell 1830-1908), 루토슬라브스키(Lutoslawski), 딜텐베르게(Diltenberger) 등의 작업에 따르면, 대화편들을세 가지 중요한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두 연구자는 이상하게도 위키 사전에도 없다.]
1. 젊은 시기 대화편들(dialogues de jeunesse): 이 작품들은 개념들을 정의하려고 애쓴다. 용기를 라케스(Lachès에서, 경건(piété, 신앙심)을 유튀프론(Euthyphron)에서, 소양을 카르미드(Charmide)에서 다룬다.
2. 성숙기 대화편들(les dialogues de maturité): 이 시기는 유명한 “이데아 이론”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파이돈(Phédon)편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향연(Le Banquet, Symposium)와 파이드로스(Phèdre)편은 사랑에 대하여, 국가(République, Politeia)편은 이상사회의 조직에 대하여 접근한다.
3. 노년의 대화편들(les dialogues de la viellesse): 이것들은 훨씬 더 난해하고 추상적이며, 인식의 형이상학으로 올라간다. [학문을 다루는] 테아에테토스(Théetète), [존재를 다루는] 소피스트(Le Sophiste), [이데아를 다루는] 파르메니데스(Parménide), [충성을 다루는] 정치가(Le Politique) 이 있고, 그의 마지막 대화편은 [법 제정에 관한] 법률(Lois, Nomoi)편인데, 이 작품은 완성되지 못한 체 남았다. (43ULG)
디드로 Denis Diderot 1712-1784)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는 1713년 샹파뉴(Champagne)지방 오트 마른(Haute-Marne, dép. 52)의 둘째 도시 랑그르(Langre)에서 태어나서,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1784년(71살) 파리에서 죽었다.
처음에 제스위트 학교에서 공부하였고, 그리고 파리의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는 어떤 정규 직업도 거부하고, 번역과 팜플렛을 제작하며 방랑적 삶을 살았다. 1743년에 직물상의 딸 안(Anne Antoinette Champion)과 결혼했다.
그가 명성을 얻게된 것은 백과전서(Encyclopédie 1751)을 출판하면서였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서적상인 르브르통(A. Le Breton)이 그에게 편집 책임을 맡겼다. 이 거대한 임무는 그의 생애의 작품이며, 1772년까지 그의 거의 모든 활동을 쏟아 부었다.
1746년부터 철학 사상들(Pensées philosophiques)을 쓰고서 철학적 투쟁에 전념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크리스트교를 공격하고, 심정으로 믿는 ‘자연 종교’를 위하여 싸웠다. 그는 자연종교를 ‘계시종교’와 대립시켰다.
1749년 장님에 관한 편지(Lettre sur les aveugles à l'usage de ceux qui voient)에서 그는 자신의 회의주의를 확신하고, 유물론으로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이 책의 출판으로 [유물론적 무신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3개월 동안 뱅센(Vincenne)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이후로 많은 글을 썼지만, 출판은 조금만 한다.
디드로는 한편으로 매우 생기있는 지성을 지니고 다른 한편 여러 분야에 산만했지만, 살롱(Les Salon, 1759-1781)이란 작품에서 스스로를 예술 비평가라고 알리고서, 자기가 선호하는 것은 샤르뎅(Jean Baptiste Siméon Chardin 1699-1779) 또는 그뢰즈(Jean-Baptiste Greuze Greuze 1725-1805) 화가와 같은 작품의 사실주의(réalisme)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드라마 작품 사생아(Le Fils naturel, 1757)과 가장(家長, Le Père de famille1758) 등은 평범하다. 그러나 그의 드라마에 관한 이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배우에 관한 파라독스(Paradoxe sur le comédien1773)에서 그는 위대한 배우는 자신이 표현하는 정념들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배우는 정념들을 잘 모사(simuler)해야한다. 왜냐하면 배우는 그 효과를 냉정하게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드로는 또한 꽁트와 소설의 작가이기도 하다. 운명론자 자크(Jacques le fataliste)(출판 1796), 라모의 조카(Le Neveu de Rameau)(출판 1821) 등에서 그는 영국 인문주의자의 제자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볼테르(Voltaire 1694-1778)와 달리, 그의 모든 작품들은 인간의 본성, 세계 내에서 인간의 지위를 정의하려는 고민을 담은 철학자의 작품이며,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화(L'Entretien entre d'Alembert et Diderot), 달랑베르의 꿈(Le Rêve de d'Alembert) (둘 다 1830년에 출판) 등도 도덕론을 기초로 한다.
그의 목표는 실증철학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루소(Rousseau, 1712-1778)와 달리, 그의 작품 자연 해석에 관한 사유(Pensées sur l'interprétation de la nature, 1753)에서 과학에 관한 관심도 철학적 탐구의 방향이다. (41RMA) .
신 Dieu
인간들이 믿는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다.
* 신의 현존 Existence de Dieu
사람들은 신의 현존을 위하여 이론적 증명으로 두 전형을 구별한다. 1. 소위 우주론적(cosmologiques) 증명들이 있다. 한편으로 우주란 그리스어 코스모스(κόσμος, cosmos)로서, 질서(l'ordre), 세계(le monde), 우주(l'univers)를 의미한다. 우주론적 증명이란 원인들의 연쇄과정을 무한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를 들면, 기와장이 떨어져 나의 머리에 부딪혔다. 그 원인은 바람이다. 그러나 그 원인은 어디서 오는가? 그 사람들은 우울함(dépression)에 빠지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우울의 원인은 어디서 오는가? 등등.. 그것의 결론을 위하여 제일 첫째 원인의 현존에 이를 것이다. 또는 다른 한편으로 예를 들어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처럼, 자연 광경의 아름다움으로 출발할 수 있다. 그 결론으로 최고의 예술가(l'artist, 기술자)의 필연성에 이를 것이다. 2. 존재론적(ontologique) 증명이 있다. 존재란 그리스어로 온(ὤν ὄν, on) 온토스(ὄντος ontos)에서 나왔으면 존재(l'être)의 뜻이다. 이 증명은 반대로 완전한 존재로서 신의 관념으로부터 추론을 시작한다. 신은 완전하고 모든 성질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은 필연적으로 현존한다고 증명하기에 이른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따르면, 이 증명들이 승인될 수 있으려면, 어떤 실재적 확신(certitude pratique)이 우리 속에 미리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 확신은, 칸트에 의하면, 도덕적 의식의 사실 위에 정초될 수 있을 것이고,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에 의하면, 우리들의 유한성을 의식하고 우리 속에 우리 자신보다 더 깊은[심층] 기원적 활동성[생명성]에 정초될 수 있다.
* 신의 지연/본성 Nature de Dieu
“신의 본성” 즉 다른 말로하면 신앙자(le croyant)가 신을 생각하는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구별이 있다. 한편으로 유신론(théisme)이 있다. 이것은 인격적이고 살아있는 신을 믿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신론(déisme)이 있다. 이것은 신의 현존을 인정하지만, (유대신앙과 프로테스탄트 신앙에서 의미하는) 신앙자의 주체에 주어지는 모든 계시도, 신의 모든 표상도 부정한다. 신의 문제에 관한 반성 없는, 또 인식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갖는 인식의 문제에 과한 반성 없는 철학자도 사상가도 심지어 무신론자도 없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팡세(278)에서 “신을 느끼는 것은 이성(la raison)이 아니라 심성(le coeur)이다. 그래서 신앙(foi)이 있다는 것,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심성에서 느끼는 신이 있다는 것이다”고 하고, 또 [신앙의 신이란]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신, 야곱의 신이지, 철학자들의 신도 과학자들의 신도 아니다”고 한다. [즉 믿든 자의 신이다. 그 믿는 사람에 따라 신의 의미는 다르다는 해석도 가능한다]
반대로 스피노자에서처럼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에서 복된 삶을 위한 지침(Die Anweisung zum seligen Leben 1806; Initiation à la vie bienheureuse)에서 “밝은[명석한] 인식의 불꽃만이 인식 자체에 전적으로 투명하며, 인식 그 자체적으로 자유롭기에, 절대자의 움직이지 않는 현전을 이 명석함에 의해서 보증 받을 수 있다.”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이다. 스피노자 식으로 해석함은 자연 자체의 명석함 속에 투명하고 자유롭게 인식하는 것이 절대자의 인식, 즉 스피노자의 제3의 최고 인식이다.]
심성이나 이성을 통한 신의 인식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상가들은 신을 하나의 요청으로 제시한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발명해야 했을 것이다”고 한다. 도스토에프스키는 따라서 “만일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락된다”고 말한다.
[베르그송은 우주가 신들을 만드는 기계이라 한다. 우주 즉 자연은 인민들을 신들로 고양시키는 힘을 지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들뢰즈는 신을 상징의 의미로 보고, 두 개의 다른 상징 사이에는 이이러니가 있고, 하나의 상징만을 주장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에서 보면 유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그 의미도 모르고 웃을 수도 없다.]
반대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우리 속에 신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없음을 확인하는데 만족했다. 그는 즐거운 지식(Die fröhliche Wissenschaft, Le Gai savoir, 1882-1885)에서 “신은 유럽의 인간들의 의식 속에서 죽었다. .. 나는 단지 그 새소식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예언하기를 “우리는 파괴와 폐허와 전복(boulevesements)의 길고 긴 풍부한 연속을 기다려야만 한다”고 한다.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1804-1872)와 맑스(Karl Marx, 1818-1883)는 훨씬 멀리까지 나간다. 그들은 신의 부재를 확정했을 뿐만 아니라, 오리려 신을 믿는 모든 것을 비판했다. 포이에르바하는 “신들은 인간의 소원들이 실현된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인간은 부자 신을 소유한다.”고 말한다. 맑스는 종교적 신화를 고발하면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종교는 인민에게 이 세상에서 사회적 혁명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 저 세상의 희망으로 구슬른다.”
그러나 파스칼이 신의 현존의 주제에서 확정했듯이, “ 우리는 모든 독단론을 물리질 수 없을 정도로 증명하는데 무능하다. 우리는 모든 회의주의(pyrrhonisme)을 물리칠 정도로 진리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17세기의 신비주의적 신앙관을 가졌던 파스칼은 데카르트와 동시대에서 진리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 진리는 한 틀 속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두 세기 반을 지나야 할 것이다. 인류의 지성의 진보와 지혜 확장은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보기에 신은 상징으로서 상층을 존중하는 자들이 갖는 한 의미일 뿐이다. 이 존중이 독단으로 흐르는 20세기 초까지 히틀러 오토다페와 같은 광기에 전제주의와 같은 야만에 빠질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의미의 다양성을 그리고 다른 의미에 대한 과정과 경험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이것은 아직도 말로만 돌아다닌다. 그 실질적으로 의미를 갖고 실행해야하는 것은 그 다양체가 인민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민은 살아 움직이는 흐름이고 강도가 있을 때에 현실(l'actuel)에서 급변 또는 혁명이 있을 것이다. 혁명은 어느 시대나 있어왔다.(43UMD]
딜레마 dilemme [안티노미, 택일 명제]
두 명제 중에 한쪽이 거짓이며 다른 한 쪽은 필연적으로 진리가 되는 것으로 된 두 명제를 제시하는 추론. [모순 명제와 무엇인 다른가? 하나가 진리이면 다른 하나는 거짓으로 둘 다 함께 있을 없을 경우에 모순이다. 이에 비해 딜레마는 둘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다른 하나에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
확장적 의미로, 가능한 두 부분 사이에 선택해야 만 하는 경우에 쓰인다. 이 경우에 “딜레마 앞에 있다”고 한다. [우산 장수 아들과 빙수 장수 아들이 있다. 우산장수 아들을 좋은 날에는 빙수 장수 아들이 우울하고, 빙수장수 아들이 웃는 날 우산 장수 아들이 울적하다.] (43RLE)
딜타이 Wilhelm Dilthey 1833-1911
독일 철학자.
딜타이는 1833년 라인지역(Rheinland fr. Rhenanie)의 비브리히(Biebrich)에서 태어나 1911년(78살)에 쥐트티롤(Südtirol)의 제스(Seis am Schlern)에서 죽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50살이 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영향은 그가 죽고 난 후에 퍼졌다. 그 덕분에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en fr. sciences de l'esprit)개념이 생겼으며, 그 개념은 보다 최근에는 인문 과학(sciences humaines)으로 불린다. 그는 자연과학들이나 정확한 과학들과 연관하여 정신과학의 영역에 한계를 정하고자 애썼다. 그에 따르면 심리학은 정신과학의 가장 견고한 토대이다. 왜냐하면 심리학은 도덕학과 형이상학과 반대로, 서술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이 과학적 방법의 엄밀함에 부속화 되어 가는 것을 걱정한다면, 딜타이가 생각했던 대로 철학이 스스로 추론적 지성의 방편들(les ressources)로 제한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아야 한다. 즉 자연 과학 속에 “감성적 세계의 직관”이 있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사회 문화의 세계에도 직관이 있다. 이 철학자에 따르면, 인간적인 세계의 기관(l'organ, 논리)은 “정신적 이해”(la compréhension spirituelle)이다.
그의 중요 작품으로 정신과학 입문(Einleitung in die Geisteswissenschaften, 1883; Introduction aux sciences humaines de l'esprit), 철학의 본질(L'Essence de la philosophie, 1907), 정신과학에서 역사세계의 구축(Der Aufbau der geschichtlichen Welt in den Geisteswissenschaften, 1910; La Constructionn du monde historique dans les sciences de l'esprit) 등이 있다. 그의 목표는 칸트의 비판을 인간 과학의 영역에 확장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의 작품은 아주 기획적 작품으로 되어있다. 그의 중요성은 어떤 길을 여는 것인데, 그 길은 사회학과 사회 심리학의 차후의 발전에 공헌하게 된다. (43UMD)
[프랑스 위키와 번역상의 차이를 참조할 것: Einleitung in die Geisteswissenschaften ("Introduction aux sciences de l'esprit") (1883), Der Aufbau der geschichtlichen Welt in den Geisteswissenschaften ("L'édification du monde historique dans les sciences de l'esprit") (1910)
디오게네스 Diogène le Cynique 기원전 413-323경
그리스 철학자. (프랑 위키와 로베르2에는 -327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음)
디오게네스는 기원전 413년에 현재 터어키의 중북부 지방에 있는 시노페(Sinope)에서 태어나 그리스 반도의 코린트(Corinthe)에서 죽었다. 그는 부와 사회적 규약을 경멸 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통속에서 살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코린트에서 그에게 ‘그가 무엇을 욕망하는 지’를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그래요. 당신이 나의 태양을 막고 있어요”라고 했단다. 아테네 거리에서 어느 날 대낮에 등불을 들고 “나는 인간을 찾는다”(je cherche un homme)고 선포했던 그는 인류(l'humanité)에 대해 매우 큰 경멸을 공언했다. (43UMD) [우리는 들뢰즈를 통해서, 이 설화가 매우 왜곡되었음을 알았다.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주의자들이 인간의 이데아가 실재한다는 것을 말했을 때, 그 인간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자며, 그“ 인간”은 대낮에도 찾을 수 없음을 아이러니로 비꼰 것이다. 이데아의 실재성은 현실적인 실재성이 아니라, 착각(i'illusion)이며, 이 존재를 믿는 것이 이미 예속의 상태에 있음을 풍자로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인간은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여기 지금의 인간이 있지, 보편으로서 인간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43UMD)]
방법 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 1637)
이것은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작품이다. [원 제명은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érité dans les sciences. Plus la Dioptrique, les Météores et la Géométrie. Qui sont des essais de cette méthode, 1637)이다.]
이 저술은, 그 당시까지 학문적 책들은 라틴어로 쓰여진데 비하여, 일상어 즉 프랑스어로 쓰여진 최초의 철학 작품이다. 모든 권위를 거부하면서 데카르트는 이 책에서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단순한 항목들(이것은 이시기에 매우 과감한 것인데) 네 가지 규칙들로 제시했다. 이 규칙들은 사람들 각각에게, 각자가 조금이라도 원한다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게 하고자 함이다. 이 규칙들에는 우선 확신(la certitude)의 규칙이 있으며, “내가 명증적으로(évidemment)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도 진리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그 둘째 규칙은 분석(l'analyse)의 규칙이며, “내가 검토해야할 난점들의 각각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리고 이 난점들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요구되는 대로, 그 만큼 많은 부분들(parcelles)로 나누는” 것이다. 셋째는 종합(la synthèse)의 규칙이며, “인식하기에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쉬운 대상들로부터 출발하여 조금씩 정도를 높여가서 매우 복잡한 인식까지 나의 사유의 순서(l'ordre)에 따라 이끌어 가는” 것이다. 넷째는 매거(l'énumération)의 규칙이며, “내가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정도로 아주 완전한 열거(dénombrement)와 매우 일반적 검토를 전반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에 의해 응용된 이 방법은 천문학, 기계 역학, 기계론적 생물학(동물기계론, théorie des animaux-machines)을 확립하게 하였다. 덕분이 이 학문들은 이시기에 괄목할 만한 진보를 이루었다. 방법서설은 근대 사유에 알맞은 과학적이고 합리적 방법이 도래하는 데 공헌하였다. (43UMD)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1755)』,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작품이며, 그는 1755년(43살)에 디종 아카데미에 의해 제시된 주제에 관해서 썼다. 이 책에서 루소는, 사회적 생활이 특히 농업과 제련업의 필수품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을 만들면서, 기원에서는 착했던 인간의 본성이 타락한다고 증명하였다. (43UMD)
논증적 discursif 추론적
추론에 의한 단계적 절차.
추론적정신[오성](l'esprit discursif)은 방법적이고 계산적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것은 직관적(l'esprit intuitif) 정신에 대립된다. 직관적 정신[영혼]은 증명을 거치지 않고서 결과에 무매개적으로 이해한다. (43UMD)
여가활동 (le) divertissement 기분풀이 오락.
일반적 의미에서 여가 활동. 예를 들어, 놀이(jeu, 이기고 지는 놀이들 일체), 신체적 훈련[운동]을 말한다. [오락 또는 레크레이션을 의미한다.] 」
이 단어가 매우 강한 의미로서 취해진 것은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에서 이고, 그리고 오늘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정신의 주의를 우회하게 하기 위한 모든 시도”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분풀이를 한다(se divertir)것, 이것은 삶에서 “기분전환을 하는”(faire diversion) 것이다. 따라서 파스칼에 따르면 “이것은 빈 것이 없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놀이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실존주의에서 덧붙이기를, 이것은 “불안을 감추는 것”이라 하고, 이것은 생의 진솔한 감정일 것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기분전환이 주의의 영역에 영속적으로 침입하려고 할 때, 여기서 한정된 단계에서 기분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목하자. 반대로 순간적인 오락(délassement)의 단계에서는 그것은 적합하고 또 심리학적으로 필연적이다. 이 기분풀이[오락]는 창조적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참조: 현실 도피(l'evasion)(43UMD)
노동분업 division du travail
전문가들 사이에서 임무들의 배분(répartition)에 의하여 특징 지워지는 사회적 조직화이며, 이 분업의 첫째 이론가는 스코틀랜드 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이다.
노동의 분업은 기술자들을 고용하는 모든 산업사회에서 필수적이다. 이 분업은 다d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1. 사회학적이고 심리학적 문제들. 주어지 기계에 적응하여 특별한 작업활동(un geste particulier) 속에서 전문화된 노동자는 그 자신이 기계가 된다. 예를 들어 자동화 연쇄 벨트에서 작업처럼. 따라서 이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여가를 욕구 한다.
2. 교육학적 문제들.몇 살에 일반적인 교육 형성 과정을 마치고 전문화 과정에 들어가야 하는가? 교육학자들의 견해로는 (아주 역설적으로) 가장 늦게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산업의 기술이 사실상 영속적으로 변형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진보된 새로운 직업에 보다 빨리 스스로 “전직할”(reconvertir)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참조: 자동화(automation), 여가(loisir). (43U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