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시조 024
청조야 오도괴야
계단(桂丹) 지음 1/2
청조(靑鳥)야 오도괴야 반갑도다 님의 소식(消息)
약수(弱手) 삼천리(三千里)를 네 어이 건너온다
우리 님 만단정회(萬端情懷)를 네 다 알가 하노라
오도괴야 – 왔구나.
약수(弱手) - 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 속의 강. 길이가 3,000리나 되며 부력이 매우 약하여 기러기의 털도 가라앉는다고 한다.
어이 건너온다 - 어떻게(어찌) 건너왔느냐.
만단정회(萬端情懷) - 온갖 정과 회포.
알가 – 알까.
작가는 연대 미상입니다. 이름자를 풀어보건대, 달 속의 계수나무 느낌에 붉은 입술 아니면 굳은 마음이 돋보였던 기녀였으리라 짐작됩니다.
청조는 파랑새로, 소식을 전해준다고 믿은 새입니다. 그 청조가 왔군요.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중장의 익수는 아주 건너기 힘든 물로서 소식을 가져오는 데 대한 수고로움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그 새는 또한 님의 적어 보내온 소식에 더하여 자자세세 님에 대한 근황도 알 것 같다고 기대감을 부풀립니다.
흠흠시조 025
녹양홍료변에
계단(桂丹) 지음 2/2
녹양홍료변(綠楊紅蓼邊)에 계주(桂舟)를 느쳐매고
일모강상(日暮江上)에 건널 이 하도 할사
어즈버 순풍(順風)을 만나거든 혼자 건너 가리라
녹양홍료변(綠楊紅蓼邊) - 강가의 풍경을 묘사한 말로 ‘푸른 버들과 붉은 여뀌’가 피어난 물가라는 뜻.
계주(桂舟) - 계수나무로 만든 배.
느쳐매고 – 헐겁게 매고,
일모강상(日暮江上) - 해 저무는 강변.
하다 – 많다.
작가의 이름이 계단(桂丹)임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 속의 계주(桂舟)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날 저무는 시각, 강을 건너려는 이들이 많고도 많음에 저는 홀로 바쁘지 않답니다. 다만 순풍을 만난다면 혼자 건널 수도 있으리라, ‘바람’이 전혀 다릅니다. 그 순풍이 한 사내의 이름이라면, 계주가 태우고픈 사내가 어떤 한 사람이라면.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흠흠시조 026
오냐 말 아니따나
문향(文香) 지음
오냐 말 아니따나 싫거니 아니 말랴
하늘 아래 너뿐이면 아마 내야 하려니와
하늘이 다 삼겼으니 날 괼 인들 없으랴
오냐 말 아니따나 – 오냐, ‘말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싫거니 아니 말랴 – 싫은데 아니 말겠느냐. 싫으니까 아니 할 것이다.
내야 하려니와 – ‘내로라’고 뽐낼 수도 있지만.
삼겼으니 - (나도) 말들었으니.
괼 인들 -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인들.
작자는 생몰 연대 미상(未詳)인데, 선조조(宣祖朝)를 살았던 기녀(妓女)입니다. 이름을 뜯어보니 상당히 ‘문학적(文學的)’입니다.
작품 속의 ‘너’와 ‘나’는 대립적입니다. ‘나’는 여러 형편상 조금 ‘너’에게 밀리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너는 너대로 잘났다마는, 나는 나대로 나를 예뻐해 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니” 하며 참아내는 내용입니다. 초장의 첫 구절부터 요즘 잘 쓰이지 않는 구절이고 보니 해석에 긴장감이 듭니다. ‘오냐’를 생략된 상황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며 한 숨을 쉬고 보니 뜻이 통합니다. 오냐, 그래. 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용납하는 품새가 너그럽습니다.
흠흠시조 027
묏버들 가려 꺾어
홍랑(洪娘) 지음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窓)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묏버들 – 버들이긴 한데 야생(野生)의 뜻을 강조해서 부른 이름입니다.
가려 꺾어 – 아마도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을 법한 가지를 골라 꺾었나 봅니다.
보내노라 님의 손대 – 님에게 보내노라. 도치(倒置)의 수사가 돋보입니다.
자시는 – 잠자는. 주무시는.
곳 – 어기(語氣)를 고르는 기능을 하는 말.
날인가도 – 나인가.
작자는 생몰 연대 미상(未詳)인데, 선조조(宣祖朝)를 살았던 기녀(妓女)입니다. 실제적 인물인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1539~1583)에게 이 시조를 주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홍랑의 실존 연대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아주 유명한 ‘사랑가’입니다. 기생을 첩으로 들일 정도로 홍랑의 문해력(文解力)이 매력적이었나 봅니다. 조선시대 8대 문장에 들 정도의 고죽인데 그와 벗을 했으니까요. 북변 국경의 무장을 도와주는 종사관이었던 고죽에게 홍랑은 객수(客愁)를 달래기에 좋은 벗이었던 것입니다. 귀경(歸京)길에 죽은 고죽의 소식을 듣고 홍랑은 서울로 올라와 뒤치다꺼리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고요. 해주 최씨 가문에서는 서로 떨어져 있던 묘소를 아주 가까이로 이장해서 시비를 세우고 함께 기리고 있습니다. 답사를 통해 묘지의 비문에서 발견한 네 글자 ‘풍류도반(風流道伴)’만 보더라도 후손들의 ‘홍씨 낭자’를 위하는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고죽이 한시로 역(譯)한 칠언절구(七言絶句)가 전합니다.
折柳寄與千里人 절류기여천리인
爲我試種向庭前 위아시종향정전
一夜過雨新生葉 일야과우신생엽
憔悴愁眉是妾身 초췌수미시첩신
흠흠시조 028
장송으로 배를 무어
구지(求之) 지음
장송(長松)으로 배를 무어 대동강(大同江)에 흘리 띄워
유일지(柳一枝) 휘여다가 구지구지 매야시니
어디서 망령엣 거슨 소(沼)를 들라 하나니
장송(長松) - 키 큰 소나무. 크게 자란 소나무.
무어 – 만들어. 무으다 – 만들다, 짓다, 구성하다의 뜻을 가진 옛말.
흘리 띄워 – 흘러가는 물살에 맡겨 띄워.
유일지(柳一枝) - 버드나무 한 가지. 여기서는 지은이의 애부(愛夫)로 풀어진다.
휘여다가 – 휘어잡아다가.
구지구지 – 굳게 굳게.
작가는 기생(妓生)이라고 전해질 뿐 모든 게 미상(未詳)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동강으로 미루어 평양 기생이었겠습니다.
작품에 ‘구지구지’가 본인의 이름을 드러내는 초보적 은유가 있거니와, 장송으로 만들어진 배가 곧 작가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묶어두는 자가 ‘유일지’이므로 그와 저는 서로 은애(恩愛)하는 사이라는 점도 알겠습니다. 대동강 물결에 자유롭게 흘러가는 송목주(松木舟)일진대 뱅뱅 도는 늪으로 들라 유혹하는 사내들도 꽤 되나 봅니다.
한 수의 평시조 안에 비유와 상징이 여럿이긴 해도, 유일지에 묶인 송목주 둘은 떨어질 수 없는 형편이라는 주제는 선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