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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제 5 강 메시지_아산UBF
제목: 지혜로운 자와 의로운 자의 길
말씀 / 잠언 10장, 11장
요절 / 잠언 11:4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우리의 삶의 이슈 세가지를 정의한다면 첫째는 자신의 존재, 둘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셋째는 일의 성과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나가는 세 가지 도전이라고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크게 구분하면 자신과 관계에 대한 지혜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바라고 희망하는 성과는 지혜의 사람이 되고 지혜의 관계를 이루면 따라오는 것이라 약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잠언 10장은 개인의 성품과 언행에 드러나는 지혜의 가치를 강조하며, 잠언 11장은 올바른 관계와 공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공동체에서의 의로움을 다룹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지혜가 나의 삶 자체를 변화하는 역사가 이루어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의 모든 관계가 은혜로워져서 좋은 영향력의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1.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 (잠언 10장)
먼저 10장 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예술이나 학문에 대한 사랑, 친구간의 사랑, 이성과의 사랑! 이 중에서 가장 하나님의 사랑과 근접한 사랑이 부모의 자식사랑, 스승의 제자사랑입니다. 헬라철학에서는 ‘스톨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통하여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중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약속이 있는 계명입니다. 이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아들 딸이 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이 말씀에서 '지혜로운'이라는 것은 지식이나 총명함을 넘어서는 영적인 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아들 딸이 이렇게 살아갈 때 부모에게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십니다. 일반 사람에게는 부모가 있고 스승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목자가 있습니다. 유전적 친연성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양들을 부모와 같이 보살피는 목자에 대하여 그 헌신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하찮게 여기는 일이 있다면 주의하여야 합니다. 목자의 헌신과 희생은 예수님 이름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목자의 기도에 대하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은 예수님 이름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살아 감사가 있고 변화를 이루어 받은 사랑에 합당하게 살아나가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우리는 돈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돈을 모으거나 돈을 벌고자 합니다. 이 때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돈이 심판을 면하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돈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거꾸로 돈을 가지고 있다가 집착이 생겨 친구를 잃기도 하고 이웃에게 원망을 살 수도 있습니다. 돈을 버는 과정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돈을 벌 때 공정한 경쟁과 올바른 방법이 사용되어야 합니다. 편법, 불공정, 불합리가 개입된 돈은 오히려 낭패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공평과 정의를 대단히 기뻐하십니다. 노아시대 심판 직전 상황를 강포하고 패역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폭력과 부패가 만연하였다는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가 없는 사회는 심판의 대상입니다. 개인의 삶에서 공의는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공의는 마음에 품는 덕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 삶에서 공의를 실천하였는지 여부가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말씀은 공의가 죽음에서 건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 나의 존재가 공의가 실천되고 실현되는 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영혼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영생의 소망,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얻는 감사함,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로 인하여 솟아나는 이웃을 향한 사랑,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인내할 줄 알고 오히려 마음에 품는 희망과 비전!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믿음을 사는 사람의 영혼을 돌보시며 주시는 풍성함입니다. 조금 어려움만 있어도 환경탓, 조건탓, 사람탓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인간의 소원은 원망하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책임을 미루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며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부지런한 자의 손은 부하게 하느니라." '게으름'이란 히브리어로 '레미야'인데, 이는 단순히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소홀히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부지런한'이란 열정적으로 섬기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고 금방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왜 낙심하고 축 처지기를 반복하는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신다는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게으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흐트러진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면 결코 쓰러지지 않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은 나이가 많아도 청년처럼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이 일평생 청년으로 사는 것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거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란 때를 아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삶이 중요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추수 때에 잔다는 것은 분별력을 상실하여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의인의 머리'와 '악인의 입'이 대조되는 점입니다. 의인의 머리에 임하는 복이란, 생각과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궁리와 의지로 가득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인생길 위에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나타내 주십니다. 반면 악인의 입에서 나오는 독이란, 파괴적인 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악인은 입에서 왜 독이 나올까요? 여기서 악인이란 부도덕하고 형사상 범죄를 도모하는 악당으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 자기, 자기영광, 자기연민, 자기유익, 자기 즐거움을 가진 사람으로 보아도 됩니다. 이런 것이 마음 중심에 있으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나를 어필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나를 자랑할까? 어떻게 하면 나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컨트롤할까? 어떻게 하면 내 주장대로 다른 사람을 뜯어고칠까?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이 들어있는 머리-궁리에서 나오는 말을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은 독이되는 것입니다. 말의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머리에서 궁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고쳐야 악인의 말, 독있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늘 긍정의 말을 하며 믿음으로 산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늘 이웃에게 양보하고 희생한 사람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나를 기억해주세요. 나를 알아주세요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삶을 산 사람을 오래 기억나게 해주십니다. 반면 자기중심으로 살면서 자기 이름 기억하게 해달라며 자기 이름에 집착하는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비석치기라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는 고려 지방호족의 민간인착취를 막으려고 지방관리를 중앙에서 파견하였습니다. 조선말기에 벼슬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돈으로 벼슬 사서 나갔으니까 벼슬사는데 쓴 돈, 본전 뽑으려고 관내 백성들을 괴롭힌 것이지요. 선정을 베푼 목민관은 백성들이 감사하다고 공덕비를 세워주겠다 해도 그러지 마라며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반면, 백성들을 괴롭힌 지방관들은 떠나면서 ‘내 공덕비 안세워주나’한 것입니다. 강요에 공덕비는 세워주었는데 쌓인 원한이 있으니 백성들이 그 공덕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이들 놀이로 된 것이 ‘비석치기’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하여 살면 유명해지려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유명하게 해주십니다. 영향력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만 이루고자 하고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고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렇게 살면 숨어 살아도 하나님께서 유명하게 해주시고 감추고 살아도 하나님께서 큰 영향력을 갖게 해주십니다. 비석치기 당하지 않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8절에서 10절까지는 특별히 지혜로운 자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으나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여기서 '계명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수동적 수용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이카'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것은 일상생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고난이 있어도 이 평안을 뺏지 못합니다. 입이 미련한 자,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말과 행동이 문제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입이 미련한 자를 두 번 8절과 10절에서 거듭 반복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자기 자신도 망하게 하고 다른 사람까지 절망에 빠뜨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탐에서 돌아와 부정적인 말을 하여 백성들의 힘을 빼놓은 10 두령을 심판하셨습니다. 반면, 믿음의 말을 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나타내고 믿음을 심은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는 복을 주셔서 가나안 정복의 주역이 되게 하고 오래 살면서 이스라엘의 믿음의 본이 되도록 세워주셨습니다. 일생동안 한 번도 지는 일이 없게 축복하였습니다. 우리는 돈이 없습니다. 우리는 실력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은 있습니다. 이 믿음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말입니다. 믿음의 말! 용기를 주는 말! 이런 말을 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생활,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삶을 살아나가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생명의 샘'이란 히브리어로 '메코르 하임'인데, 이는 끊임없이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원천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물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열 두령이 한 말은 이스라엘 1세대 전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엎드러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의 초청을 받아 130명 되는 그 교회 목사님들 앞에서 특강 한 적 있습니다. 미국 청년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회사 1위 회사의 CEO가 저는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 분이 이 교회에 저를 추천하였다고 했습니다. 특강 마친후 이 큰 교회 당회장 목사님이 주일예배를 저의 이야기 가지고 설교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배 영상은 유튜브로 볼 수 있습니다. 저를 추천한 분도 그렇고 저의 특강을 들은 분들도 모두 서울대 나온 분들이고 부목사님들도 서울대 출신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더라도 연고대는 나온 분들입니다. 큰 사역을 이루고 대단한 스펙을 가진 분들이 저를 추천한 것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믿음의 말’을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 중에 부자가 있습니까? 강남부자는 1천억이 부자기준이라고 합니다. 부자 있으세요? 천사라 사모님 외에 좋은 학교 좋은 실력도 없지요? 돈도 없고 실력도 없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입을 생명의 샘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믿음의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입은 독을 머금은 입이 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이것은 신약의 베드로전서 4장 8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와 같은 맥락입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상처를 주지만, 사랑으로 말할 때 그것이 치유와 회복을 가져옵니다.
13절과 14절을 보십시오.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주목할 것은 지혜와 지식의 관계입니다. 지식을 '간직한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짜판'인데, 이는 보물을 소중히 간직하듯 지혜를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지혜의 말씀 성경을 주의 깊게 읽고 받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성경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말씀을 마음에 잘 간직할 때 올바른 선택할 수 있는 명철함이 있으며 입으로 나오는 말도 믿음의 말, 지혜의 말이 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감정이 앞설 때 인생의 쓴라린 아픔과 고통에 낙심하는 날을 겪어야 하고 결국 멸망의 날을 맞이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이 두 구절은 겉으로 보면 부와 가난의 현실을 단순히 서술하는 것 같지만, 깊은 영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견고한 성'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키르얏 우조'인데, 피난처나 안전한 보호를 의미합니다. 이 구절이 재물 자체를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재물을 자신의 견고한 성으로 믿는 것의 허상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뒤이어 나오는 16절과 연결되어, 진정한 안전은 의로운 삶에서 오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의로운 수고를 하여야 생명에 이르는 것이지 하나님의 방법을 어겨가며 얻은 소득 하나님 뜻에 거스리는 돈은 죄가 될 뿐인 것입니다.
17절 말씀은 이 진리를 분명히 합니다. "교훈을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들어가나니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여기서 '교훈'이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닌 삶을 바로잡는 징계와 훈련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다듬어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18-21절을 보면 다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말하는 입술을 가진 자요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니라.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여기서 말의 네 가지 차원을 보여줍니다. 첫째 진실성입니다. 미움을 품었으면서 이것을 감추는 위선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절제로써, 말은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합니다. 셋째는 가치로, 의인의 말은 정제된 은과 같이 가치 있습니다. 넷째 영향력으로, 의인의 말이 가진 교육적 기능을 말합니다. 진실한 말을 하는 것, 적은 말이더라도 덕이 되는 말을 하는 것,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말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생명이 살아나는 일에 쓰임받는 말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2절과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나니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미련한 자는 악행을 낙으로 여기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혜로 즐거워하느니라."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물질적 축복만으로 국하는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전인적인 은혜를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부는 늘 근심과 염려를 동반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참된 평안을 함께 가져옵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의인과 악인의 궁극적 운명을 대조합니다.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영원한 기초'라는 표현은 단순한 건물의 기초가 아닌,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반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 위에 지은 집의 비유와도 연결됩니다. 세상의 폭풍과 시험이 올 때, 의인은 예수님의 견고한 기초 위에 서 있기에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바람이 없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바람 불지 않고 파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인생의 바람과 파도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불어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바람이 오히려 기회입니다. 파도가 오히려 은혜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바람 불면 두려워하고 파도가 일면 낙심합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인생에게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날 예수님의 기초위에 믿음의 집을 지은 사람은 견고하게 남은 자가 됩니다. 자기 힘으로 집을 지은 사람은 그날의 불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26-30절은 의인의 소망과 악인의 결말을 더욱 선명하게 대비시킵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려니와 악인의 연수는 짧아지느니라.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여기서 사용된 '소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닌, 확실한 기대와 믿음을 내포합니다. 의인의 소망이 즐거움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31-32절로 10장이 마무리됩니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니와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지혜를 낸다'는 것은 열매가 맺히듯 자연스럽게 지혜가 흘러나옴을 의미합니다. 의인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하나님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패역한 혀'는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하는 교만한 말을 뜻합니다. 말은 사람이 품은 것의 열매입니다. 자기 중심인 사람이 배려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영광에 집착하는 사람이 영적인 말로 들리는 언사를 내놓는다고 하여도 결국 하나님보다 자신을 어필하려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외면당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많은 선교하시는 분들이 ‘선교역사의 침체기’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신 많은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대화하실 때 한 번도 ‘예수님의 이슈’를 먼저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의 이슈를 가지고 대화 해나가십니다. 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이슈는 대화의 끝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초점이 한 영혼을 살리고 영생을 주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화시작하자마자 우리가 하고 싶은 우리의 이슈를 먼저 꺼냅니다. 왜 우리는 양들과의 대화에서 우리의 이슈를 먼저 얘기하고 계속 얘기하고 끝까지 얘기하는 것일까요? ‘살리는 일’보다 ‘성과’에 대한 집착이 마음에 있기 때문은 아닌가요? 아니면 예수님의 대화방법에 관심이 없거나...
2. 관계에서의 지혜(11장)
10장 말씀이 각 개인의 인생 자체에서의 이슈를 다루었다면 11장은 관계에 대해서 더나아가 관계가 이루어져 만드는 공동체에서의 지혜를 다룹니다. 11장은 1절부터 매우 실제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저울'과 '추'는 단순 상거래 도구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집니다. 히브리어 '모즈네이 미르마'(속이는 저울)는 모든 형태의 부정직을 대표하는 표현입니다. 정직과 공정함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것에 분노합니다.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알고보면 본인은 공정한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공평하게 수고해야 한다고 열을 내지만, 자신은 안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대단히 관대합니다. 사람은 그런 문제를 모를 수 있고 알아도 뭐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다 아십니다.
2-3절은 교만과 겸손의 결과를 대조합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교만'(자돈)과 '겸손'(쯔니우트)은 단순히 사람의 태도 문제를 말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인간의 근본적 죄성을, 겸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신앙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3절의 '성실'(투마)은 온전함, 완전함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된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교만은 욕을 불러오고 패역은 멸망을 가져옵니다.
4-5절은 심판의 날에 대해 말씀합니다.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완전한 자의 의는 그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인은 그의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며 시작이 있었고 이제 그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12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심판의 순간에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진노하시는 날'은 단순한 어려움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 날 모아놓은 재물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힘입고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며 인생을 산 사람은 죽음에서 건짐 받습니다.
6-8절은 구원과 멸망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의인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걸려 들며 죽을 때에 악인의 소망이 끊어지나니 그의 기대가 없어지느니라.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그를 대신하여 환난에 들어가느니라."
'걸려 든다'는 표현은 사냥꾼의 덫에 걸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인은 자신이 쳐놓은 덫에 스스로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우리센터는 오랜 시간동안 그냥 서있는 것이 절실한 목표였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너무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이 지속되어 주저앉고 싶었고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던 긴 시간이 이어졌었습니다. 이런 괴로움, 이런 고통에 전혀 관심없이 신나는 분들, 고통스럽고 어려운 우리 모습이 그렇게 즐거웠는지 영광스러운 기도제목을 제시하며 확신으로 나팔을 불고 큰 소리 내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5년 지나고 10년 지나 놀라운 일을 보고 있습니다. 그 기도제목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혹은 앞으로 우리도 그 같이 예수님 이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을 외면하고 이웃의 고통에 관심없이 자기 주장만 일삼는다면 우리의 복도 남의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에 어찌하든지 자기 자랑, 자기 영광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9-11절은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불경건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쁨의 소리가 있느니라.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인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성읍'(키르야)은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한 사람의 의로운 삶이 전체 공동체를 세우고, 한 사람의 악함이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엄중한 진리를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만가지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우리가 믿음을 굳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믿음을 굳게 지켜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는 때에 오히려 100배의 복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2-15절은 지혜와 분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지혜 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여도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지도자가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여기서 '마음이 신실한 자'는 영적 성숙함을 나타냅니다. 이는 단순한 비밀 유지가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이곳저곳 다니며 사람의 허물을 말하면 아무리 은밀하게 말한다고 해도 그것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연약함 과거 실수는 묻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허물을 덮어주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로 성장해나갈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권위와 권위적인 것을 혼동합니다. 권위적인 것이 남기는 상처를 미워한 나머지 권위 자체까지 부정 합니다. 지도자의 권위는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지도자가 권위를 잃어버리면 사회전체가 손해 보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권위를 가지되 지혜를 발휘하도록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고 사회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지난 주 기획재정부 차관이었던 선배의 부친상에 조문 갔더니 여당,야당 없이 와서 서로 얼싸안고 감싸주고 하였습니다. 괜히 국민들만 진영 나눠서 자식이 부모와 싸우고 친구가 친구와 싸우고 형제가 형제와 격렬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분열과 증오의 시대에 우리 믿는 자들은 내가 지지하는 진영이 아니더라도 세운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믿는 사람의 비범성이 됩니다.
16-18절은 은혜와 인격의 관계를 다룹니다.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악인의 삯은 허망하되 공의를 뿌리는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여기서 '유덕한'이란 도덕성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삶 속에 구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자한 자'를 표현하는 '이쉬-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화내고 미워하며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격렬하지 말고 우리는 잔인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덕이 있는 사람,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 미움 많은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실제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양들도 그러합니다. 양들도 목자의 말을 배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식과 양들은 부모의 삶과 인격을 배우며 자라납니다.
19-21절은 의와 악의 궁극적 결과를 선언합니다.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마음이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적극적으로 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수동적인 선한 행실이 아닌,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려는 자세입니다. 이런 삶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선한 영향력이 지속되어서 그 자손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22-25절은 영적 원리의 실제적 적용을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이 말씀은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아름다움의 대비,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를 보여줍니다. '흩어 구제한다'는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식투자는 성장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와 그로 인하여 수익을 얻지만 하나님 나라 경제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장이 기대되지 않는 가난한 사람, 보답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때, 하나님께서 도움 준 사람을 더욱 부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원리는 주는 곳, 나누는 곳에서 더욱 풍요로움이 넘쳐나게 하십니다.
26-31절은 11장의 결론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어떻게 지속하고 발전시키는지 여부가 개인의 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세 가지 중요한 영적 원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이는 일시적인 성공이나 번영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둘째, 우리의 선택은 개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 사람의 의로운 선택이 많은 이들에게 복이 되며, 반대로 악한 선택은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셋째, 진정한 부요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인한 영적 풍성함이 참된 부요입니다.
우리가 의의 길을 선택할 때, 개인의 구원이나 축복에 그치지 않고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생명의 통로가 됩니다. '푸른 잎사귀 같다'는 표현(케알레 라아난)은 시편 1편의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와 같은 맥락으로, 하나님의 생명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31절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는 말씀은 히브리어 '에츠 하임'(생명나무)으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연상시킵니다. 의인의 삶은 마치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처럼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잠언 10-11장의 말씀은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영적인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의로운 선택이 당장은 어렵고 더디게 보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실제 삶에서 결단이 필요합니다. 첫째, 우리의 모든 선택에서 하나님의 의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작은 일상의 결정에서부터 인생의 큰 갈림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생명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참된 부요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성공과 풍요를 정의해야 합니다. 이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의가 되시며, 진정한 생명나무가 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의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아산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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