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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9월 8일 일요일. 덥지 만, 초가을 날씨. 최저 20℃.
제마알프나 광장으로 걸어간다. 넓은 입구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사람들과 더불어 어수선하다. 광장에 들어섰다. 태양열과 빛이 광장에 가득하다. 이 광장의 이름은 다소 으스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거 무라비트 왕조 시절에 이곳에서 공개 처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죽은 자의 집회' 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광장은 처형의 장소라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낮에는 과일, 향신료, 전통 의상 등을 판매하는 노점상들로 가득 차고, 밤이 되면 음식점, 거리 공연, 음악가들로 북적인다. 수세기 동안 이곳은 단순한 시장 이상의 역할을 하며 마라케시의 문화와 역사를 이어왔다.
제마 엘프나 광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메디나 안에서도,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될 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주변에는 카페와 식당, 숙소와 다양한 가게들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거기에 박물관 건물도 궁전처럼 버티고 있다. 골목길을 선택해 우리는 바히아 궁전을 찾아간다. 워낙 골목길이 많아 골목길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않다.
바히아 궁전(Palais de la Bahia)은 아름다움을 뜻하는 바 `아름다운 궁전`이란 의미로 19세기 건축되었다 19세기에 흑인 노예 출신의 시무사가 권력을 잡고 건축한 장소로, 술탄의 지위에 오른 후 4명의 아내와 24명의 첩을 거느리며 호화롭게 거주했던 곳이다.
모로코 건축 양식과 이슬람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곳으로 아랍 궁전 특유의 아라베스크 문양과 내부 장식이 특징이며 분수가 있는 넓은 중정과 오렌지 나무가 있는 정원이 아름답다.
작은 분수대와 주변의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이 조화를 이루며, 햇볕에 비친 화려한 타일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벽과 천장은 섬세한 조각과 타일로 장식되어 있으며, 각 방마다 독특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색채로 장식되어 있다.
겨우 찾은 궁전은 입장료가 비싸서 그냥 돌아섰다. 입구에서 분위기만 파악하고 나왔다. 골목길을 걷는 것이 더 재미있고 흥미롭다. '메디나'는 마라케시의 구시가지다. 골목 골목이 거대한 미로 같다. '수크'는 메디나 안의 위치한 전통 시장을 말한다.
메디나의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가다보니 재미있다. 메디나는 꽤나 복잡하지만 활기가 넘친다. 얽히고 설킨 골목,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수많은 상점에서 상인들의 호객소리까지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걷다보면 조용하고 좁은 골목도 지난다.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집들은 외부에서 보면 정말 단순하고 소박해 보인다. 창문도 거의 안 보인다. 메디나 안에는 이러한 집들이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적인 목적도 있단다. 하지만 내부는 완전히 다르다. 건물의 중심에는 정원이나 분수, 작은 연못이 놓여 있고, 천장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서 자연광이 가득 들어온다.
덕분에 내부는 시원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 방과 복도는 모두 이 중심 공간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벽과 바닥은 모로코 타일과 목조 장식으로 화려하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단다.
겉보기엔 외부 침입을 막는 방어적인 설계지만 내부는 넓은 정원과 여유로운 생활 공간을 제공하는 효율적인 주거 방식이다. 골목길은 정신이 조금은 산만해질 수도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싫지 않다. 심심하지 않아 좋다.
길을 걷다 보면 향신료 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눈앞에는 수공예품과 향신료, 가죽 제품들이 펼쳐진다. 평소 기념품에 크게 관심이 없는 저조차도 이곳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게 된다.
무엇보다 상점마다 진열된 물건들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것처럼 보이지 않아 좋았다. 정성이 담긴 듯한 것들이 꽤나 있었다. 특히 알라딘 램프를 닮은 전통 램프들은 메디나의 분위기를 완성시켰다.
사실 여행 전, 메디나에서의 호객 행위에 대해 다소 걱정을 했다. 겁을 주는 유튜브나 블로그 후기들이 꽤나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메디나는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물론 상인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말을 걸거나 가게로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모습은 있었지만, 그 방식이 과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는 예상보다 순박하고 밝은 사람들 덕분에 골고목길 여행이 즐거웠다.
한국인 젊은 부부를 처음으로 만났다. 내일 출발하는 2박3일짜리 사막투어를 신청했단다. 노르말은 90유로, 럭셔리는 170유로란다. 투어사무실에서 흥정하여 예약했단다. 대충 가격을 알려주어 고마웠다.
우리는 내일 모레 가려고 맘 먹고 있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다. Dar Si Said Museum쪽으로 걸어간다. 골목길은 이제 비슷한 것 같다.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는다. 신나게 철판 요리 쇼를 보여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막 요리한 고기와 야채를 넣은 샌드위치를 먹는다. 식당 안은 좁다. 아주 맛있다. 다시 골목길을 간다. 다음은 '마드라사 벤 유세프' 를 찾아간다. 입구에 도착하니 잠시 망설여진다. 소박한 간판과 예상보다 긴 대기 줄 때문이다.
마드라사 벤 유세프는 14세기에 설립된 이슬람 교육기관으로 무려 1960년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기숙사 방까지 갖추고 한때는 수백 명의 학생이 이곳에서 머물며 코란을 암송하고 이슬람 학문과 법학을 깊이 있게 공부했다고 한다.
단순한 학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곳이다. 마조렐 정원 (Majorelle Garden)을 찾아간다.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1923년 프랑스에서 건너온 예술가 자크 마조렐(Jaque Majorelle)에 의해 만들어졌다.
모로코 특유의 푸른 하늘을 사랑한 마조렐은 정원 곳곳에 코발트 블루의 파란색 건물을 배치했는데 이로 인해 이 푸른색은 `마조렐 블루`로 명칭 되었다. 마조렐 사후 황폐해진 이곳을 1980년 알제리 태생의 디자이너 입생 로랑이 사들였다.
그의 동성 연인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이곳에 머물며 정원을 복원했다. 입생로랑은 정원에 머물며 많은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사후 유골을 정원에 뿌려달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입생 로랑 박물관(Musee Yves Saint Laurent)도 있다. 입생로랑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영감을 받은 곳이 파리와 모로코인데 이 두 곳에 입생로랑 박물관이 있다.
모로코에서의 삶이 그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며 아프리카적 색채가 더해진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사진은 없다. 다르 엘 바샤 궁전에 가야하는데 시간과 체력이 안 따라준다.
아내가 꼭 가봐야 한다며 점찍어둔 곳인데 다음에 가기로 했다. 꽤나 유명한 커피 브랜드, '바샤 커피'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바로 '다르 엘 바샤 궁전' 이란다. 궁전 안에 커피가게가 있단다.
1910년의 지어진 이 궁전은 한때 마라케시의 지도자이자 바샤(총독)였던 타미 엘 글라우이의 저택이었다. 프랑스의 식민 통치 시기에 그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며, 이 궁전은 그의 부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궁전은 고위층과 세계적인 인물들의 사교적인 장소로 이용되었다. 여기에서 손님들에게 커피를 제공하던 것이 'bacha coffee' 의 시작이란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브랜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궁전 사교 문화 속에서 제공되던 것이었다.
이곳을 방문했던 인물들의 명단은 정말 화려하다.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루스벨트, 찰리 채플린 같은 세계적인 인물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궁전은 문을 닫았고 'Bacha Coffee'라는 이름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랬던 바샤 궁전은 2017년 복원작업을 거쳐 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단다. 그리고 바샤 커피는 2019년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T.W.G 라는 회사에 의하여 부활하게 된다. 모로코가 아닌 '싱가포르'에다.
지난번 싱가포르를 방문해서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한 고급 티 회사가 모로코의 유서 깊은 이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바샤 커피'라 명명한 뒤, 싱가포르, 한 호텔에서 첫 번째 매장을 열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이 궁전에 분점을 열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브랜드가 브랜드의 영감이 된 장소로 거슬러 올라가 뿌리를 내린 셈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티 브랜드로 유명한 TWG, TWG는 전 세계적으로 고급 차 문화를 선도하는 브랜드다. 이 브랜드를 만든 프랑스 사람 타하 부크딥(Taha Bouqdib)이 바로 2019년에 모로코 커피 문화를 재해석하여 바샤 커피를 만든 사람이란다.
바샤 커피의 브랜드 로고에는 '191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이 숫자는 다르 엘 바샤 궁전이 처음 건축된 해를 의미한다. 마치 '1910'을 로고에 포함시켜 전통과 역사의 깊이를 더한 것처럼 보인다.
TWG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로고에 '183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하지만 TWG Tea는 실제로 2008년에 설립된 브랜드란다. '1837'은 싱가포르 상공회의소가 설립된 해를 나타낸다.
마치 브랜드가 오래된 전통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헤리티지 브랜딩 전략이다. 두 브랜드 모두 설립 연도보다 훨씬 이전의 연도를 로고에 사용하여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인터넷에서).
사디안 무덤(Saadian Tombs) 방향으로 가려니 구시가지 밖에 있다. 사디안 무덤(Sadiaan Tomb)은 16세기 후반 모로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디안 왕조의 술탄 아흐마드 알 만수르(1578~1603)에 의해 건축되었다.
사디안 왕조 로얄패밀리의 네크로폴리스로 사용하고자 만들었다 네크로폴리스( necropolis)는 고대 도시 가까이의 많은 묘로 형성된 묘지를 가리킨다.
이후 등극한 술탄 이스마일이 사디안 왕조의 흔적 지우기에 나서며 이 무덤의 입구를 막아버려 오랜 시간 동안 대중들에게 잊혀진 곳이었다가 1917년 재발견되었다
사디안 왕조 시대 모로코 건축물의 절정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엘 바디 궁전 (Badii Palace)도 메디나 밖에 있다. 엘 바디는 `비견할 데 없는`이란 뜻이다.
1578년 사디안 왕조의 술탄 아흐마드 알 만수르(Ahmad al-Mansur)가 크사르 엘 케비르에서 `삼왕전투`를 승리한 후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양식을 기본으로 건축했다.
이탈리아 대리석, 인도산 마노, 아일랜드산 화강암, 수단에서 들여온 금박이 등으로 360개의 방을 호화롭게 장식하여 술탄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건축비의 일부는 포로로 잡은 포르투칼 귀족들의 몸값으로 충당하였다.
전통적 모로코 양식과 유럽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500여 명에 이르는 술탄의 여인들을 위한 거처였다. 1603년 만수르가 죽은 후 방치되었고 사디안 왕조의 쇠퇴와 함께 폐허가 되었다.
1683년 새왕조의 물라이 이스마일은 엘 바디 궁전의 호화로운 장식 재료들을 떼어내 새 수도인 메케네스로 옮겨 자신의 궁전을 장식했다 따라서 역사상 최고의 장관이었던 엘 바디 궁전은 현재 뼈대로만 서글프게 남아 있을 뿐이다.
직사각형 형태로 거대한 안뜰은 크기가 135 x 110m인데 중앙에 90 x 22m의 풀장 주변으로 오렌지 나무가 주를 이루는 4개의 정원이 조성된 형태이다.
향료가게에 전시된 향료가 색상과 모양이 정말 예술이다. 해가 많이 가울었다. 다시 광장으로 섰다. 광장에는 정말 많은 주스 가게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아주 예쁘고 질서 있게 과일을 전시하고 있다.
모로코는 오렌지를 비롯해 많은 과일을 재배한다. 그런 신선한 과일로 만든 주스를 바로바로 갈아서 팔고 있다. 가게들 사이 경쟁이 어마어마하다.
저 멀리서부터 시식해보라며 손짓하고 목청껏 부른다. 에너지가 넘치는 청년들이 있는 가게에 끌려간다. 가격은 한 잔에 2유로 정도다. 광장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곳곳에서는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리고 헤나를 그려주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호객하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정신없게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가 제마 엘프나 광장의 매력이다. 커다란 낚시대로 페트병을 넘어뜨리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코브라 뱀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모습이 제일 눈길을 끈다.
원숭이도 주인과 함께 등장했다. 축구공을 가지고 페트병을 쓰러뜨리는 게임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도전하고 있다. 모두들 열심히 아둥바둥하는 모습이 참 재밌고 인상적이다. 버스를 타고 다시 역으로 간다. 5번 버스다.
어딜 가나 기차역은 전부 깔끔하게 잘 되어 있다.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버스 터미널. 이곳에서 내일 에사우이라 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내일 오전 7시 40분 출발, 두당 100디르함(15,000원)이다.
마라케시 다음 목적지는 에사우이라다. 까르프 마켓에 들러 요플레와 물, 사과를 구입했다. 숙소로 들어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실내 수영장에서 아내와 수영을 한다. 왠지 우리 둘 밖에 없어서…. 좋았다.
그런데 수영장 이용시간이 지났다고 직원이 조용히 알려준다. 오후 7시 부터는 Close다. 쑥스러운 웃음을 남기고 숙소로 들어왔다. 그래도 수영을 했다는 것이 위안을 준다.
*9월 8일 경비 – 마라케시행 버스 짐값 9, 숙박비 이틀 918.22, 시내버스 16, 점심 30, 슈퍼 41.75. 계 152,245원. 누계1,976,000원. *모로코 1디르함=1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