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하오리다
제 1독서 : 다니 7,9-10.13-14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었다.)
복 음 : 요한 1,47-51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형상에 날개를 가진 사람을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착한 사람을 천사 같다고 표현하지요. 천사는 사람과 교회를 지켜주고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천사의 이미지가 교회에서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대신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또 일부 장사꾼들이 수호천사라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의미로 천사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요.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세상에서는 살아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요? 우리 천주 교회에서는 이 천사의 존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천사는 어떤 변천사를 밟아 왔는지, 또 요즘은 왜 천사를 보기가 어려운지를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천사는 창세기에서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靈的)인 존재를 일반적으로 '천사'라고 표현했지요. 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이 심부름꾼으로 천사들이 많이 파견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6장에 주인의 박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하가르 앞에 천사가 나타나 도움을 줍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16,9-10)
또 창세기 19장 1절-22절에는 멸망하는 소돔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며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고, 24장에는 늙은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얻는데 천사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편 천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처벌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사무엘 하권 24장에는 백성을 치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요.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2사무24,16)
그밖에 하느님을 모시는 군대로 천사들을 인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사의 역할은 신약 성경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싸고 처녀 마리아를 찾아오고(루카1,28), 약혼자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은(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이집트로 피신할 것을 일러주는 가 하면(마태2,13), 흰옷을 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며(마르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이라고(묵시22,6) 성경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곳곳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천사에 대하여 교회의 학자들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디오니시오 성인입니다. 성인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9품 천사에 달하는 천사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9품 천사란 천사의 등급을 치품(Seraphim), 지품(Cherubim), 좌품(Thrones), 권품(Dominantes), 능품(Principatus), 역품(Potestates) 주품(Virtus), 대(大)천사(Archangelus), 천사(Angelus)로 분류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아니고 천사에 관한 디오니시오 성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천사에 관하여 우리 신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요? 믿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과 감각을 초월하는 영원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천주교회는 745년 라테라노 공의회 때까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다른 천사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천사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지요. 천사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는 존재하며, 천사의 등급이 또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서는 권위 있는 해석을 유보한 채 다만 천사의 존재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증명해주듯이 예전에는 천사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천사의 존재에 관한 가르침도 확고했는데, 왜 우리 시대에는 천사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믿어야 되는지 믿지 말아야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천사의 존재가 퇴조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천사는 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하느님의 뜻, 즉 계시(啓示)의 원천이 성경에 그대로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새롭게 전달해 줄 이유가 없어진 셈이지요. 성경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 예언자들이 사라진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구약시대 많은 예언자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성경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시의 원천인 하느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예언자들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된 것이지요. 예언자들은 사라지고 성경을 해석해주는 율법 학자들이 존재하게 됐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맥락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또 성경을 해설해 주는 성직자와 수도자, 교리 교사들이 많아지면서 비교적 쉽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천사들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계시의 방법도 달라집니다. 이제 계시의 방법이 천사에서 성경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천사의 역할이 많이 퇴조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라테라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천사는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에 관한 축일로 오늘 9월 29일을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또 10월 2일을 '수호천사 축일'로 정하여 공경하며 장려하고 있지요.
오늘 축일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천상 군대의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12,7-8) 우리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다니9,21 이하 참조), 무엇보다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루카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토빗12,15) 우리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 9월호 참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습니다.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마치 천사 같다라고도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자주 접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천사 같이 사는 우리의 모습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착하게 사는 여러분이 바로 천사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