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를 향한 아버지의 뜻" (요 6:37~4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리고 그분의 마음속에 무엇이 가장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사역을 사람의 열심이나 계획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해야 더 잘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열매를 맺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역의 출발점을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사역은 내 뜻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MD 사역은 더욱 그렇습니다.
MD 사역자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와 세상 사이, 복음과 상처 입은 영혼 사이를 잇는 다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보다 먼저 보내신 이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뜻을 세 가지로 보여주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자기 뜻이 아니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주신 자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뜻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1. 내게 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를 내가 살펴보고 받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괜찮은 사람만 받겠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좀 더 나아진 다음에 오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대부분 정돈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상처를 안고 옵니다.
죄책감을 안고 옵니다.
낙심한 채 옵니다.
때로는 믿음보다 두려움이 더 큰 상태로 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런 자를 밀어내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완벽한 사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무너진 사람도 품는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정리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인생도 받아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MD 사역의 첫 번째 원리를 배웁니다.
그것은 수용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도 있습니다.
믿음은 있다고 하지만 공동체에 상처가 깊은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무너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이들을 향해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과거를 보고 결론내려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반응만 보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은 우연히 내 앞에 온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대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종종 사람을 문제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명으로 보십니다.
우리는 불편한 사람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맡겨주신 영혼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MD 사역자는 사람을 선별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우리 안에 “나는 너무 멀리 왔다”, “나는 이미 실패했다”,
“나는 주님 앞에 나갈 자격이 없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내게 오는 자를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누구보다도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2. 내 뜻이 아니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는 사역
이어서 예수님은 3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왜 내려오셨습니까?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보내신 이의 뜻, 곧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역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를 배웁니다.
사역은 내 열심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사역은 내 계획을 성공시키는 일이 아닙니다.
사역은 내 만족을 얻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해 흘러가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역하면서 자꾸 내 뜻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 경험이 기준이 됩니다.
내가 세운 계획이 흔들리면 쉽게 낙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역자의 본질입니다.
진짜 사역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보다,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먼저 묻는 사람입니다.
MD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것,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
차 한 잔을 마시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예배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다시 품고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오셨습니다.
그 자체가 순종입니다.
그 자체가 낮아짐입니다.
그래서 MD 사역자는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드러나는 자리보다 섬기는 자리를 택해야 합니다.
인정받는 자리보다 오래 참으며 품는 자리를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정말 보냄 받은 자라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 뜻보다 아버지의 뜻이 앞서게 하소서.
제 열심보다 주님의 마음이 더 크게 하소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는 사람이 아니라, 보내신 이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것이 순종의 사역입니다.
3.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책임
이제 39절을 보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 가운데 몇 사람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잘되는 사람만 붙드는 것도 아닙니다.
반응 좋은 사람만 챙기는 것도 아닙니다.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숫자를 보지만, 주님은 한 사람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님은 속사람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만, 주님은 공동체 주변부에 밀려난 사람을 먼저 보십니다.
이것이 목자의 마음입니다.
길 잃은 한 마리를 향한 마음입니다.
보이지 않게 사라져가는 한 사람을 향한 안타까움입니다.
MD 사역자는 바로 이 하나님의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은 이미 멀어진 사람,
교회 안에 있지만 늘 겉도는 사람,
상처받고 조용히 뒤로 물러난 사람,
누구도 찾지 않아 점점 사라지는 사람,
그 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역은 이벤트가 아닙니다.
한 번 만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등록시키고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라고 하셨고,
더 나아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진짜 사역은 한순간의 열정보다 오래 가는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처음 반응이 없어도 품는 것,
계속 무너져도 다시 세우는 것,
떠난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책임의 사역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영혼이 있지 않습니까?
말없이 멀어진 사람,
신앙은 있지만 상처 때문에 문밖에 머무는 사람,
다시 돌아오고 싶지만 돌아올 힘이 없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영혼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MD 사역자는 사람을 빨리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결국 하나님의 뜻은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40절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결국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교회 문 앞까지만 데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위로받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다”와 “믿다”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바로 보고, 믿음으로 그분을 붙들 때, 영생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역은 사람을 우리에게 묶어두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아니라 주님을 보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조직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생명의 주를 만나게 해야 합니다.
MD 사역은 결국 사람을 교회 시스템 안에 넣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 영혼이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거기서 끝나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주님이 받으신 영혼은 이 땅에서만 붙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까지 책임지십니다.
오늘 붙드신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역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고 품을 때,
그 배후에는 마지막 날까지 살리시는 주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잃어버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의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나는 사람을 쉽게 판단하며 밀어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품는 사람입니까?
나는 내 뜻을 앞세우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보내신 이의 뜻을 묻는 사람입니까?
나는 사람을 잠깐 만나고 끝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한 영혼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MD 사역의 본질은 기술이 아닙니다.
행사도 아닙니다.
보내는 이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떠난 지체일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성도일 수 있습니다.
아직 복음을 모르는 한 영혼일 수 있습니다.
그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내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품는 사람,
낮은 곳으로 가는 사람,
한 영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잃어버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의지가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사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