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서 부산까지 이어진 조선의 옛길, 작년 이월 초 시작했던 영남길 걷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코스는 용인시 원삼면 독성리에서 백암면 황새울마을까지 제7구간 구봉산길, 그리고 다시 안성시 죽산면소재지까지 제8구간 죽주산성길이다. 두 코스 각각 13km로 만만찮은 거리다.
기흥 전철역에서 탐방길 친구들과 합류했다. 경전철 에버라인으로 갈아타고 금학천이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 운동장-송담대 역에서 내려 버스터미널로 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도시가 몽환적이다.
노구봉 옆 경안천변에 위치한 용인공용버스터미널에서 10-4번 백암리행 버스에 올랐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버스는 승객들로 빈자리가 없는데 서로 중국말로 얘기를 나누는 중년 여성들이 그 절반이다. 예전 진천버스터미널에서, 또 돌아오는 길 죽산터미널에서도 동남아인들과 중국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배달의 민족이니 단일민족이니 하는 말은 흘러간 옛말에 불과해 보인다.
버스는 송담대학 국토정보교육원 와우정사 등의 표지판이 보이는 2차선 아스팔트길을 달린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밭과 얕은 산은 희끗희끗 잔설을 이고 있다. 와우정사 입구를 지날 무렵 일단의 무리가 도로를 따라 긴 줄을 지어 걷고 있다. 필시 문수산 마애불과 김대건 신부의 은이성지를 지나는 영남길 제6구간 '은이성지-마애불길'을 걷는 중일 터이다.
독성리에서 버스를 내려 영남길 가운데 가장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는 제7구간 구봉산길로 들어섰다. 초입 야트막한 언덕 옆 성리교회는 인적없이 고요한데 나무에 깃든 참새들만 지저귀며 야단법석이다. 가로수들이 가지에 이고 있던 눈을 머리 위로 툭툭 떨어뜨린다.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나무도 어제 밤에 내린 눈이 녹은 물을 눈물처럼 뚝뚝 떨구고 있다. 주택처럼 아담한 Y국제학교 건물 벽에 걸린 'Why not change the world! 공부해서 남 주자!'라는 말에 눈길이 간다. 얕은 느리재 고개로 이어지는 산줄기 언저리로 난 길은 평탄하고 순하다. 고개 아래 기숙학원 건물 벽 '환골탈퇴(換骨奪胎)’ 경구는 원생들의 결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둥지골 구봉산 초입에서 영남길 안내지도에 스탬프를 꾹 눌러 찍었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이곳서 만난 백구 두 마리와 어린 흑구 한 마리가 뒤를 졸졸 따라온다. 구봉산 능선은 오르락 내리락 구불구불 남쪽으로 이어진다.
구봉산은 온전히 눈에 덮여 있고 나무가지에 얹혀 있던 눈은 반쯤 녹아 비처럼 머리 위로 떨어진다. 지난 이월 남덕유산 산행이 금년 마지막 눈 산행이겠거니 생각했었다. 삼월 중순에 눈 덮힌 구봉산을 걷게 된 것은 정말로 뜻밖이다.
금새 바짓가랭이는 눈에 젖었고 등산화도 눈에 흠뻑 젖어 옮기는 걸음이 무겁다. 숲길 관목의 잔가지에 눈이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상고대 같다. 어린 흑구는 소리를 치며 으름장을 놓아도 돌아갈 기미 없이 우리 일행을 뒤 따른다. 눈 위에 선명한 발국을 남기며 해발 465미터 구봉산 정상에 올라섰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맏형 견공, 낯선 산객을 뒤따라 간 철없는 아우를 두고 돌아갔겠거니, 하고 의리와 우정을 얕잡아 본 우리 생각에 코웃음을 치듯 부리나케 구봉산 정상으로 달려온다. 나무 밑둥 곳곳에 오줌으로 돌아갈 길 표식을 하며 멀찍이서 뒤따르던 맏형 견공, 그의 인내와 의리도 한계에 다달았는지 달기봉 부근에서 결국 돌아서고 말았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홉 개 봉우리를 가졌다는 구봉산 눈길을 오르내리는 여정은 만만찮은 인내가 필요하다. 남쪽으로 달리던 주 능선은 '한남정맥 469m 삼각점 표지를 지나고, 해발 415미터 달기봉에서 돌연 방향을 동쪽으로 바꾼다. 달기봉 아래 평탄한 능선길은 온전히 눈이 녹아 걷기가 한결 편하다.
동쪽 기슭에 '반계수록'을 남긴 조선후기 실학의 비조 유형원(1622~1673)이 잠들어 있는 정배산, 그 능선마루 벤치에 앉아 김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주변 생강나무들이 노란 꽃망울을 틔웠고, 산은 덤성듬성 솟은 큰 키의 참나무들 사이로 낙엽이 쌓인 갈색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정배산 자락이 내려앉으며 조비산 자락에 바톤을 넘겨준다. 정배산에서 바라뵈는 조비산은 마치 매가 남쪽을 향해 날개를 펴고 나르는 형상이다. 머리가 왕도가 아닌 남쪽을 향하고 있어 '역적산'으로도 불렸다는 전설에는 왕정시대 중앙집권적 사고가 묻어난다.
영남길 코스에서 잠시 벗어난 조비산 중턱의 바위 절벽 아래에 암벽등반 매니아들이 모여 클라이밍 연습에 한창이다. 초크 주머니를 허리에 두르고 절벽 한켠 동굴 입구 천정에 박힌 볼트에 로프를 걸어 거꾸로 매달린 클라이머는 박쥐같다. 그 옆 수직 절벽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의 모습도 아찔해 보인다. 클라이머의 동작은 느리며 조심스럽고, 절벽 아래에서 연결된 로프를 잡고 등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빌레이어는 진지하다.
절벽 옆으로 난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길을 따라 해발 295미터 조비산 정상으로 올랐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드넓은 논밭과 평탄한 구릉지대에 홀로 우뚝 솟은 모습이 가히 용인팔경의 으뜸으로 손색이 없다.
조비산에서 황새울 마을로 내려가는 산 중턱 너른 자락에 근래에 조성된 듯 보이는 널찍한 김해김씨 묘역은 마치 조비산을 병풍 삼은 듯하다. 간간이 뒤돌아서 조비산을 올려다보며 논이 넓게 펼쳐진 들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백암면 황새울 마을에 닿았다.
이곳에서 제7구간이 끝나고 제8구간 죽주산성길이 시작된다. 사방이 툭 터인 벌판의 개울을 따라 난 길을 걷고 얕은 구릉을 빗겨 가고 묘목이 자라는 비닐하우스와 축사 옆을 지나고 작은 고개를 넘어섰다. 율곡천이 청미천으로 흘러들기 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길은 용인과 안성의 경계를 넘는다.
농사 준비로 바쁜 안성 삼죽면 내장리의 너른 들길을 가로질러 멀리 비봉산과 그 품에 안긴 봉정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팔트가 깔린 경사진 길을 올라 봉정사에 들렀다가 우측 기슭을 휘돌아 해발 372미터 비봉산 정상에 올랐다. 남쪽으로 남산과의 사이에 널찍하게 자리한 죽산면 마을이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1236년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 장군이 몽골군과의 15일간 전투에서 승리한 죽주산성이 맞이한다. 중성 외성 내성이 각각 차례로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축성된 것이라 한다. 가파른 가장자리를 따라 쌓은 약 1.7km에 달하는 성은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천연의 요새답다.
죽산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 시간에 맞추려 발길을 서둘렀다. 고려 때 조성된 미륵당 누각 안 '태평미륵'이라 불리는 5.6미터 매산리 석불입상은 모습이 온전하다. 고려시대 경기 3대 사찰로 태조 왕건의 초상화를 봉안했던 봉읍사, 그 옛터에 남아있는 오층석탑과 당간지주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죽산삼거리에 서있는 송문주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다. 죽주산성 아래 사찰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온 들판에 은은히 울려퍼지고 멀리 논두렁 태우는 연기는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죽산면 소재지로 들어서며 영남길 제8구간 걷기를 마쳤다. 말 그대로 '영남길 최고의 풍광' 제7구간을 가로지르고, 넉넉하고 한적한 들판을 지나 죽주산성으로 이어지는 제8구간 영남길 두 구간을 걷는 여정이 힘겨웠다.
집에 도착해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보니 양쪽 모두 엄지 발가락 아래 발바닥에 물집이 크게 잡혔다. 여덟 시간 넘게 거의 3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곰곰 생각해 보니 수많은 얘기와 전설을 간직한 이 길을 주마간산 격으로 서둘러 지나온 것이 아쉽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듯 빠르다고 해서 결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산을 '정복'하려 산정에 서는 것에 의미를 두다 보면 그 산의 진면목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지 않은 길은 다음을 위해 남겨 두면 그만이고, 설령 가지 못한다 해도 그 누구에게 해가 되거나 스스로에게 허물이 될 리도 만무할 터이니 말이다. 이번 탐방을 마치며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 술이 향그럽듯 탐방길도 느릿느릿 찬찬히 둘러봐야 제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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