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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바티칸은 로마 시내의 티베레 강 서안에 있으며, 산피에트로 광장이 있는 남동쪽을 제외하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6개의 입구 중에서 광장, 대성당 정면의 종탑 아치, 북쪽 성벽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 입구 등 3개의 입구만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 성벽 안쪽의 작은 나라 바티칸.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4세기에 지어 16세기에 개축한 성베드로 대성당 이다. 바티칸시국은 독자적인 통신체계, 은행기관, 화폐를 비롯해서 우체국, 라디오 방송국 등이 있다. 소득세가 없고 자금의 유입이나 유출에 대한 규제가 없는 나라다.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은 하나의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들, 도서관 등이 모여있는 건물군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l,400 여개의 방들이 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대리석 조각들과 회화들이 있다. 아침 일찍 서둘렀으나 3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입장 할 수 있었다.
보통 리소르지멘토 광장에서 부터 오랜 동안 줄을 섰다가 바티칸로에 접해 있는 정문 둘 중 하나를 통해 입장하면 나선형 계단과 '솔방울 정원'을 거쳐서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게 된다
바티칸 시국의 상징물 중에 하나인 거대한 청동 솔방울(높이 4M)....그 아래는 재미있는 분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바티칸 시국. 바티칸 미술관앞 솔방울 정원에 있는 조형물로 지구를 상징하는 둥근 현대 조각이 빙글 돌고 있는데 이는 병들어 가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 이라 한다.
X-ray 검사대에 가방과 소지품 등을 검사 받고 바티칸 미술관에 입장 할 수 있었다. 처음 맞이 한 곳은 정원, 정원 둘레에 바티칸에서 유명한 미술작품 사진과 아주 간략한 설명이 여러 군데에 있는데, 이건 단체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가이드가 있는 단체관광객은 이 것을 앞에 두고 가이드의 대략적이고 일반적인 설명을 들은 후에 미술관 구경에 들어가는 것이다. 위 그림은 미켈란제로의 천정화 "창세기"로 이 작품을 그리다가 목디스크와 시력저하등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24세에 만들었다는 걸작 라오콘 상 외에도 여러 개의 대리석 조각 디오니소스상, 아폴로상 등을 볼 수 있다. 아폴로상 역시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대 작품이라고 한다.
하드리아 시대의 조각을 모방 한 것이라 한다. 바오로 3세가 전망대에 가져다 놓았는데 처음 발견 당시에는 머리와 오른쪽 팔, 왼쪽 손 등 여러 부분이 없었으나 미켈란제로의 감독 아래 모두 추가로 조각 되었다고 한다.
1506년 그리이스 고전에 대한 동경이 대단할 때, 로마 에스퀴리노 언덕에 있는 티투스제 궁터 발굴 작업에 미켈란젤로가 참여했다. 라오콘이 땅 속에서 발굴되어 나오는 것을 본 미켈란젤로는 기뻐 놀라며 "예술의 기적" 이라고 외쳤다. 고뇌적인 그의 성미와 괴로워 몸부리치는 라오콘의 모습의 어떤 합치점에서 오는 감동이었으리라. 트로이성 함락의 원인이 되었던 목마를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이 그 계략성을 경고한데 대해, 해신 포세이돈은 크게 노하여 큰 구렁이를 내려 보냈다.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은 구렁이에 감기어 몸부림치다 죽어 간다. 절망적인 몸부림을 하고 있는 세사람의 근육과 표정이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된 조각이라고 한다.
그리스 시대의 대리석 조각품으로 특별히 유명한 작품은 오래전 학교 미술시간에 배운 '토르소'(Torso, 머리와 사지가 없는 흉상)이다. 이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미켈란젤로가 카라칼라 욕장의 폐허에서 발견했다는데 해부학적으로 완벽하게 표현된 위대한 작품에 그역시 충격과 감명을 받았었다고 한다.
내부의 천전을 쿠포라 라고 하는데 이 사진은 "피요클레멘티노 전시관" 천정 돔 이다.
라오콘상 외에도 여러 개의 대리석 조각상으로 디오니소스상, 아폴로상 등을 볼 수 있다. 아폴로상 역시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대 작품 이라고 한다.
피오클레멘티노 전시관에는 헤라클레스, 쥬피터, 안토니우스, 하드리아누스 황제, 헤라, 주노 등의 조각상 들이.......
유명한 조각상들 외에도 그리스 로마 시대의 다양한 석관과 부조들이 전시 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은 전시실들마다 바닥, 천정, 기둥들도 색색의 대리석을 사용해서 각각 다르게 장식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이 더 한 것 같다, 아무튼 건축미가 뛰어나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미켈란젠로의 대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티칸 박물관을 둘러보고 가장 마지막 하일라이트를 장식하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위대한 천정 벽화 천지창조, 미켈란젤로가 4년에 걸쳐서 성당의 천정에 그린 벽화입니다. 아담의 창조에서부터 노아의 방주이야기까지 총 9개의 테마로 그려졌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문제의 생물학적 오류를 가지고 있는게 바로 '아담의 창조'라고 한다. 물론 아담은흙으로 빚어진 인간입니다. 배꼽이 있을 턱이 없지요.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신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장면 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생명이 아니라 지혜를 불어 넣어 주는 장면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한다.
로마의 일곱 개 언덕 중에 하나인 바티칸 언덕에 세계 최소의 바티칸 시국이 있다. 면적 13만3천여 평(0.44㎢)이다. 여기서 1000 여명이 사는 작은 나라지만 방송국도 있고 화폐도 있으며, 우표도 발행하고, 발전소, 난방, 전화망도 있다. 바티칸시국의 중심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베드로 대성당과 그 옆에 바티칸 궁전이 있다.
바티칸 박물관 내의 창에서 바라본 바티칸 시내는 평화롭기 그지 없다.
바티칸의 산 피에트르 대성당에 인접한 교황궁 내에 있는 미술관에는 역대 로마 교황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고문서 자료를 보관하고 있고 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대화가들에 의한 내부의 벽화가 있다고 한다.
베드로 대성당은 처음 완공되던 349년부터 현재까지 세계기독교의 성지 순례 장소로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길이 약211m, 천정높이가 46m 로 6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 이다.
성당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에 사람들이 발을 만지고 지나가는 청동상이 있는데 이것이 13세기 아르놀포 디 깜비오의 작품인성 베드로 상이다. 오른쪽 발을 사람들이 하도 많이 만져 맨들 맨들 해져 있었다.
대성당이 세워진 대지는 모두 약 85,000 평에 달한다고 하며, 중앙 통로의 길이는 187 M, 폭은 140 M, 높이는 46 M 이며, 중앙 제대 위에 있는 돔까지의 높이는 137 M 이다. 또한 대성당 내부에는 모두 44개의 크고 작은 제대가 있으며, 395개의 조각과 135개의 모자이크로 된 그림이 내벽과 돔 안쪽에 장식되어 있었다.
사도 성베드로의 무덤
중앙 제대 아래쪽의 작은 벽감 안에 은으로 장식된 작은 상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교황 베네딕투스 14세(1740-1758)가 봉헌한 것인데, 그 안에는 교황 리노(제2대 교황으로 사도 베드로 다음의 후계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오는 영대(카톨릭 교회에서 미사 전례 때에 사제가 장백의 위에 걸치는 것으로, 이는 사제의 직분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 위에 6개의 검은 십자가가 수 놓여져 있다)가 있다.
사도 성베드로의 무덤 위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네군데에 커다란 대리석상들이 있다. 이 대리석상들은 성녀 헬레나, 성녀 베로니카, 성안드레아, 성론지노 등의 석상이다. 성녀 헬레나 석상 이다.
피에타
미켈란젤로(1475-1564)는 그의 나이 25살 때에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피렌체에서 보관중인 다비드상, 그리고 로마 성베드로의 쇠사슬 성당에서 보관중인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작품에 들어간다. (피에타란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임). 이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유일하게 그의 서명을 남긴 작품이라고 한다.
성베드로 대성당 내부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는 300년경에 에수의 수제자이자 초대 교황이었던 성베드로가 묻혀있는 이곳에 처음 성당을 세웠다. 그 이후 120년 동안 미켈란젤로 등 당대 최고 건축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여러번 설게가 변경된 끝에 1600경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완성 되었다고 한다.
이 성베드로광장 중앙에 네로의 치하에서 순교할 때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자청하면서 순교한 베드로..... 지금은 관광객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는 이집트에서 뺏어온 해 시계처럼 작동하는 오벨리스크다. 1세기경 로마 황제가 경기장 한가운데에 장식으로 설치해 놓은 것을 그후 교황 식스투스 5세의 명으로 현재의 위치에 옮긴 것이다. 그 탑의 높이만도 25m요, 무게가 300 여톤 이나 된다. 이를 옮기는데 900여 명의 인부와, 말 140여 마리가 동원되어 4달이나 걸렸다니 이집트에서 로마까지 옮길 때는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초대 교황이라고 알려져 있는 성베드로 상
성 베드로 광장은 1600년경 베르니니 라는 사람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광장을 둘러싼 회랑 위로는 142인의 성인상이 서 있다. 이 성인상들은 모두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라 한다. 로마시대 이곳에는 폭군으로 잘 알려진 칼리큘라 황제의 경기장이 있었다. 여기서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였고 경기장 밖에 묻혀졌는데 성 베드로가 묻힌 그곳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처음 세운 성당이 오늘날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기원이 된 것이라 한다.
로마
포로 로마노(Foro Romano)는 베니치아광장(Piazza Venezia)와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 상업, 정치, 종교 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 이였다고 한다.
에밀리아 바실리카의 흔적... 410년 서고트족의 로마 점령시 불에 타고 기둥만 남았다는데 아직도 그때 녹아버린 화폐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로마의 중심지로써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 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으며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 제국의 바실리카 에밀리아(Bcilica Aminlia)와 시저 신전(Templum Caesar), 원로원(Curia),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신전, 바실리카 율리아, 베스타신전, 베스타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화재, 지진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유적들은 파괴 되어 건물들의 잔해 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오면 포로 로마노로 내려 가는 길에 개선문이 보인다. 티투스 개선문으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 이라고 한다. 티투스 개선문은 유태인을 학대한 베스파시아노 황제와 그의 아들 티투스를 위한 개선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태인들은 아직도 이 문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폐허가 된 시저의 바실리카~ 안토니우스가 케사르를 암살한 후...연설한 장소인 로스트리
현존하는 로마최고의 개선문으로 '티투스의 개선문'
베스타 신전(불의 여신 베스타를 모신 곳) 터와 베스탈(신성한 불을 지키는 6명의 처녀)의 집이 보인다
바실리카 에밀리아와 시저 신전, 원로원,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신전, 바실리카 율리아, 베스타 신전, 베스타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 등 다양한 유적들,,, 그러나 지금은 흔적도 알아 볼 수 없었는 것들도 많다.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의 신전
베스타 신전(불의 여신 베스타를 모신곳)
포로 로마노, 즉 로마 광장이 펼쳐져 있다. 좁고 긴 광장에는 조각난 대리석 기둥들이 흩어져 폐허 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곳은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의 정치와 경제, 문화가 역동적으로 펼쳐지던 공간 이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인의 생활상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시민들은 요구 사항을 상부에 전달 하는 공간으로 활용했고 정치가는 물론 학자 예술가 상인 그리고 시민 들이 모여 들어 로마 문화를 숙성 시켰다고 한다.
개선문 오른쪽 건물은 악명 높았던 로마의 감옥 마메리트눔 이다. 정치범,포로의 감옥 및 처형장소로 사도 바울도 이곳에 감금 되어 있다, 천사의 출현과 구출로 탈출했다는 일화가 전해 지기도 한 장소라고 한다.
그저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로 여기 저기에 보이는, 고대 건물들의 어지러운 모습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스페인 광장에는 보트 모양의 17C 대리석 분수가 있는데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르카시아 분수(조각배 분수)라 불리운다. 여행자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며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스페인 영사관이 있던 지역으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팩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다. 137개의 스페인 계단과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의 종탑이 보인다. 이 계단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앉아서 아이스 크림을 먹든 곳이다. 보수 공사 중이라 한다.
"트레비 분수" 동전을 2번 뒤로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분수로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분수 설계 공모전이 이루어 졌으며, 이때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다.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성되었으며,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 중앙에 자리한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신과 트리톤신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이다
작품이다
돈을 주면 로마 병정과 함께 분수를 뒤로 하고 추억의 한 컷을..........
트레비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등뒤로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돌아 가길 소원하며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동전을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빅토리아 임마누엘2세 기념관, 이탈리아 초대 국왕인 빅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즉위를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베네치아 광장 남쪽에 세워져 있으며, 정면의 기마상이 엠마누엘 2세. 이 기념관에는 이탈리아의 통일에 기여한 무명용사들의 묘가 있으며, 박물관에는 통일 운동에 관한 자료도 소장 되어 있다.
기념관 건물 제일 높은 층의 상부에는 이탈리아 주요도시의 상징물이 올려져 있고 양측의 커다란 두개의 문위에는 네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있다.
187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엠마누엘 2세를 기념에서 건설되었으며, 1911년에 완성된 네오클래식양식의 건물로 유명하다. 엠마누엘 2세국왕의 기마상 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전사의 묘가 있다.
제 1 차 세계대전의 무명전사 무덤 위쪽에 있는 엠마누엘 2세 기마상
이탈리아 통일 기념관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광장
대전차 경기장으로 영화 벤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1인승 이륜 전차 경기와 검투사들(글래디에이터)의 검투가 이루어진 곳이다. 지금은 무너진 흔적만 남아 있는데, 그 크기가 너비 664mX124m에 이르며 2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 이었다고 한다.
콜롯세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주변에 포로 로마노 등의 고대 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걸혼식을 마치고 신랑과 신부가 축복을 받으며........유적지를 배경으로 하는 풍습이라 한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로마 시대 개선문 중 가장 상태가 완벽하게 보존된 개선문이며, 규모가 가장 크고, 후기 로마시대의 문화 예술의 걸작품이다. 콜롯세움 바로 옆에 세워져 있으며,로마에서 가장 큰 이 개선문은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막센티우스와 치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으로 AD 315년에 만들어졌다. 높이 21미터, 너비 25m의 세개의 아치형 문이 있고, 코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리 개선문의 원조가 된 것이 바로 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라고 한다.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 연못에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칸칸마다 나누어진 맹수들의 우리위에 나무로 바닥을 만들어 지상과 지하를 분리시켰는데, 지하의 방에는 맹수뿐만 아니라 검투사, 사형수들이 갇혀 있었다고 한다.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 5000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다. 네로 통치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쿼바디스"에서는 기독교도의 박해장으로 사용 되기도 했다고 한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된 타원형 건물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 콜롯세움.....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 장면을 머리속에 그려보며.....내부를 둘러 보려면 우라돈 만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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