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딸 上
은수와의 첫사랑은 짧고 강렬했다. 그리고 평생 나를 따라다녔다. 그때 이랬을걸. 만약에 그랬으면 헤어지지 않았을텐데라고 되뇌이게 하며.
영화, 사관과 신사에 나오는 리차드 기어의 해군제복에 끌려 나의 진로를 일찌감치 해양대학교로 정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공부만 했기에 해양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 충분하고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어서, 고3으로 올라 가면서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학창시절 추억 하나 만들지 못하고 졸업하겠구나 하고. 나에게는 중학교 시절에 만난 절친 영운이가 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근육이 폭풍성장을 해서 그와 다니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당시 강릉의 삼대 써클인 아폴로, 카시오페아, 나이아가라 애들도 독고다이 영운이를 피했다. 영운이를 따라 고2 겨울방학 부터 디스코텍(클럽의 암모나이트)에 다니기 시작했고 고3 첫날부터 맨 뒷자리에 앉아 껄렁이들과 교우했다. 내 새짝꿍, 태준이가 토요일에 자신의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했다. 그때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서 만남에 있어 변수가 많았다.
새로 생긴 카페, 차임벨에 들어서자, 최신곡 I just died in your arms tonight이 들렸다. 그때 거기서 태준이 여자친구의 들러리로 따라온 은수를 처음 만났다.
“썬이 니 되우 귀엽게 생겼다.”
나는 청솔 담배를 입에 물고 콜라후르츠 위에 있는 생크림을 티스푼으로 뒤적이며 반말로 대답해야하나 마나 고민하고 있었다. 은수는 당돌하게도,
“우리 담에 만나면 사귀기다.”
태준이는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을까 의아해하며, 사실 은수는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다음 주 어느날, 나보다 늦게 등교한 태준이가 투덜거리며,
“니는 좋겠다. 친구 덕에 여자 친구도 생기고… 나는 은숙이(태준이 여친)에게 아직 이런 것도 못 받아 보았는데” 라며 종이봉투를 내 책상 위에 던져 놓았다. 봉투를 열어 보니 A4 용지를 코팅한 것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은수랑 써니랑”이라는 제목의 조잡한 시가 색연필 그림과 함께 쓰여 있었다. 뒷면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는데, “차임벨 토요일 네시”.
69년생 닭띠는 전두환 덕분에 교복을 입지 않은 세대다. 나는 옷가게, 빌리지에서 최근에 산 가장 날티 나는 옷을 입고, 머리는 웰라폼으로 손질하고, 토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시내 독서실에 죠다쉬 가방을 맏기고, 분홍리본을 두개 사서, 차임벨에 일찌감치 가서 기다렸다. 써빙하는 예쁜 누나가 옥수수 튀밥을 가지고 와서는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내게 물었다.
“은숙이요. 아니.. 은수요.”
누나는 튀밥을 먹고 있다가,
“니 아폴로 캡빵이 누구인지 아나?”
“네. 돼지”
“은수가 돼지하고 사귄거 아나?”
“...”
“니가 앉은 그자리에서 돼지하고 맨날 노닥거렸는데. 요새 뜸 하다가 니로 갈아 탄가 보다.”
속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혹시 은숙이가 함께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니 조심해라. 은수하고 돌아 댕기다가 아폴로 애들에게 걸려 맞지 말고.”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장님무사 영운이가 있기 때문이다.
옛 아식스 골목에는 25시와 ABC라는 디스코텍이 있었다. ABC는 자주 안가서 모르지만 25시의 시스템은 기억한다. 천원의 입장료를 내면 생맥주 500cc 와 탄산음료를 택일 할 수가 있다. 그날 우리는 차임벨에서 한참을 수다 떨다가 25시에 가기로 했다. 대화 도중 우리는 놀라운 인연을 발견했다. 은수의 아버지는 우리 형이 사고를 쳤을때 담임 선생님이었다. 은수는 내 엄마가 은수집에 찾아가서 퇴학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은수의 아버지는 이 다음까페지기인 나우가 평생에 걸쳐 가장 존경했던 스승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은수에게 좋은 아빠가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은수를 외롭게 했다. 은수의 엄마는 삼수하는 오빠와 함께 서울에서 지냈고, 아빠는 틈만 나면 산에 다니느라 은수를 집에 혼자 있게 했다.
우리가 25시에 갔을때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었다. 기도 보는 형이며 디제이, 모든 웨이터들이 은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오백 두잔을 시키고, 첫번째 음악, Modern Talking의 Atlantis Is Calling을 디제이 형이 틀자마자 은수는 미친듯이 뛰쳐나가 스테이지를 홀로 휘졌고 다녔다. 당시 나이트에서 모두가 말춤을 추었는데 그녀의 춤은 생소했다. 은수는 자리로 돌아와서 생맥주를 한모금 하고 나서는,
“썬이야 너도 나와. 내가 춤 가르쳐 줄께.”
그것은 당시 서울에서만 유행했던 최신 춤, 패션춤이었다. 한바탕 놀고 나서 블루스 타임이 되자 우리는 어색하게 자리로 돌아왔다. 블루스 타임은 디제이가 잠시 쉬는 시간이다. 그래서 두곡을 틀어준다. 두번째 곡은 The Manhattans의 Kiss and Say Goodbye로 기억한다. 오백을 다 비우고 내것까지 다 마신 은수는 허락도 없이 손목을 잡고 끌고 나가 내 어깨에 두팔을 올리고 내 목에 뺨을 묻고 음악을 탔다. 목에서 그녀의 눈물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후 오랫동안 눈물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으나 결론은, 지금 이노래를 들어도 슬프다.
나는 이제 은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와 보였다.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보다 더. 독서실에서의 밤샘은 합법적 외박이었다. 영운이가 독서실에 찾아 와서는 부모님이 안계시니 자기네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놀자고 했다. 밤새 놀다가 새벽녁에 영운이가,
“영애(영운의 누나)가 그러던데, 경포가 지금 난리대.”
“왜서?”
“벚꽃”
“벌써 폈나?”
“어. 근둔호 타고 보러 가자”
영운이의 88 오토바이 애칭이다.
“머스마 둘이서 뭘…”
“은수도 같이 가면 되잖아. 성완이꺼 빌려서”
나는 근둔호 뒤에 매달려 이명고개에서 포남동 로얄 아파트 뒷골목까지 이동했다. 새벽 네시라서 성완이 집은 캄캄했다. 영운이가 담을 넘자 개가 짖기 시작했다. 성완이 부모님이 깨시면 뭐라고 해야 할까하는 때늦은 걱정이 몰려 왔으나 개짖음이 멈추고 영운이는 개선장군처럼 대문을 열고 성완이 오토바이를 끌고 나왔다.
“땡칠이를 어떻게 조용히 시켰나?”
영운이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이랬다니.”
날이 밝아오고 있다. 오토바이 두대가 경포 벚꽃길을 달린다. 분홍리본을 꽂은 은수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린다. 선생님은 주말에 산에 다니느라 집에 없다. 가족의 부재가 나에게 기회인 셈이다. 나에게는 아직도 못버리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나는 은수에 대한 성욕을 정당화 하기 위해 내 자신에게 연민권법을 썼던것 같다. (연민(憐憫)은 타인의 고통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 연민은 앞으로 연재될, ‘어부의 딸’, ‘국회의원의 딸’, ‘대대장의 아내’, ‘장군의 딸’, ‘스님의 딸’, ‘타이 여대생’의 메인테마이다. 이륜차 즉, 오토바이는 노면에 취약하다. pothole(우리말로 모름)은 오토바이에게 최악이라서 바이크 라이더라면 시골길은 달릴때 노면바닥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87년도, 경포 호수를 둘러싼 4킬로 벚꽃길의 노면은 현재와 달랐다. 벚나무 뿌리가 도로 아래를 지나가면서 만든 root heave(우리말로 모름)가 고마웠다. 거기를 지날 때마다, 은수는 내 허리를 힘껏 감싸 안았다. 그녀가 내 통제 안에 있다는 치졸한 수컷 본능을 자극했으리라. 나는 처음으로, 아니… 엄마는 빼고, 풍만한 유방을 영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등짝이… 황홀경에 그만 pothole을 간과하고, 성완이 스쿠터와 함께 우리는 시속 69미터로 날아가 내동이쳐졌다.
첫댓글 흥미진진 합니다. 제가 완전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니 더욱 더~ ㅎㅎㅎ
디테일한 묘사들이 40년 전이 오늘 이야기 같네요.
기억력이 아주 아주 좋으신 듯...
근데 활자가 좀 커야 할 듯 합니다. 깨알 같아서 답답하네요...
부반장 정희 이야기가 왜 안나옵니까? 8살에 10년 후라고 했으니 나올 때가 지났는데~
"십여년 후"????
스포하자면 정희가 어부의 딸입니다요. 형님
@조몽(조용한 몽골로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