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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전사의 고백
< 전사(戰士)의 고백(告白) >
(1) 살기 좋은 집
"어이! 기석이, 좀 도와줘야 것구먼 젓소가 새끼를 나려구 혀서.
.."
국민학교조차 허리어림에 끊겨 국문에 간신히 다다른 배움과 어깨너
머로 익힌 집터와 묘자리 잡는 법이 지식의 고작인 원모였다. 동네 어
르신들이 서 지관(地官)이라 칭하는 풍수쟁이의 세째 아들로 태어나 한
때는 아버지의 업을 물려받아 지관으로 나서려고도 하였다. 하지만 시
골 구석구석까지 찾아 드는 첨단문명의 발걸음들에 채여버린 지관이란
직업으로 살이를 이어가기에는 충분치 못했기에, 조그만 목장을 하시던
작은 아버님 댁의 목부로 들어왔다. 들어온지 12년째가 되는 원모는 나
와 동배였던 터에, 1년에 한 두번 내려가는 시골이지만, 가기만 하면
더없이 반겨 주었다.
"아저씨허구 숙모는 장에 나가셔서 말이지..."
"알았어. 지금 나갈께."
뒷 마당의 우물을 돌아 비탈진 경사를 오르니 19대째 내려오는 조선
기와들이 내려다 보인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명지대학에서 사진까지
찍어간 적이 있었던 보기에 위용있는 옛 집이었으나, 사람 살기에는 고
달픈 관계로 어느덧 세월속의 그림이 되어 갈 모양이다. 새 봄이 돌아
오면 이전에 있던 축사 자리에 새 집을 짓고, 사람들은 현대식 가옥에
서 살게 될 것 같다.
빈대떡같은 쇠똥더미들과 겨울철 햇살에 녹아진 눈자취가 드문드문
보이는 언덕위의 운동장에 접어 들었다. 겨울철에도 스러지지않는 수
풀들이 여기저기에서 두 어 뼘만큼 자라있었고, 나무판에 철조망이 엮
어진 경계선 바로 옆에 커다란 얼룩소가 서 있었다. 얼룩소의 엉덩이
쪽에는 까만 털이 보드라와 보이는 막대같은 것이 두 개 삐져나와 보였
다. 어떤 동물이건 새끼낳는 광경이 처음인 나에게, 얼떨떨한 신선함이
자신감을 보태주며 다가오는 듯 했다.
"축사에서 낳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낳고 있는 거야?"
"보통은 아녀. 허지만, 지금 옮기기는 힘들구먼. 그냥 여기서 낳야
혀."
"이게 송아지 다리지?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그냥 다리쥐고 댕기면 되는디, 두 다리쥐고 댕기자니 음수가 새서
상당히 미끄럽구먼... 여기 목 장갑끼구 하나씩 댕기면 되것어."
눈이 녹아 질퍽한 땅위에 미끄러질 듯이 힘을 주며, 원모의 구령에
맞추어 당겼다.
"음머어! 음머어! 음머어!"
표정으로 산모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소의 유일한 호소가 이
어져 갈 때였다.
"음머어! 음머어!"
애쓰는 엄마 소의 호소덕분인지 엎어놓은 사발같은 것을 시작으로 어
리둥절한 눈동자 두 개가 박혀있는 머리통이 미끌어져 나왔다. 아직도
깊숙이 박혀있는 송아지의 몸통을 당기며 엄마 소 밖으로 처음으로 드
러낸 아기 소의 눈동자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
았다.
-저 물기어린 하얀 것들은 뭘까?
앞 발로 누르는 것인가 보다.
저 쪽에 보이는 초록색 바탕에 삐죽삐죽한 것은 또 뭐지? 그냥 보는
것일까?
아닐꺼야. 씹어서 새기면 도움이 되는 걸꺼야.
앗! 씹는 것 사이에 둥그렇게 덩어리져 있는 것은 엄마 배속에서 본
것도 같은데... 어떻게 사용하는 것 일까?
알겠다. 얼굴로 비비는 것인가 보다.
얼굴로 비비는 것 뒤에, 이리저리 연결되어 얽혀져 있는 길쭉길쭉한
것이 보이네. 왜 저 곳에다 연결해 놓았을까?
배고플때 빨면 뭐가 나오는 것인가 보다. 하지만, 찔리면 아프겠는
데... 어쨋든 겁난다.-
어리뚱하게 껌뻑이는 송아지의 눈동자에는 신세계에 대한 신비와 낯
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어우러져 보이는 듯 했다. 앞으로 이 아기
젖소에게 다가올 어렵다면 어렵다 할 수 있는 세상살이가 떠오르자, 웬
지 모르게 어설픈 안타까움도 스물거렸다.
힘껏 잡아당겨진 아기 젖소는 쑥 빠져나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쳐졌
다.
"쿵!"
인간의 갓난아이 같으면 울부짖어도 한참을 울부짖었을 충격을 땅바
닥의 낯선 감촉 정도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이제 막 태어나와 축축하
게 젖어진 갓난젖소의 몸통에서는 아지랭이 같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
랐다. 송아지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원모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운
동장에서 어슬렁 거리던 대부분의 젖소들이 어느새 다가와 할타주며 도
리질 해주고 있었다. 젖소들도 탄생의 축복을 나눌 줄 안다는 것이 신
기하게 여겨지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뭉게 구름, 일렁이는 파도의 옆 모습같은
초록색 봉우리들, 알록달록한 젖소들의 등, 그리고 아기 소의 아지랭이
는, 상상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라 여겼던 목장의 낭만 그대로를 맛보여
주고 있었다. 어린시절 색종이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날카롭게 다가오
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은은하게 번져오는 정(情)같은 아름다움이, 이
울지도 않고 벌써부터 일어서려고 비척거리는 아기소의 전신에서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점심을 끝내고 한가해진 겨울낮 이불속에서 창호지문에 매달린 둥그
런 쇠문고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기소의 까만 눈동자가 아른거렸고
가물거리는 의식이 아지랭이처럼 스러지고 있었다.
-무선 전화기를 들고 낭랑한 목소리를 들었다. 용태였다.
"부다베스트에서 황 변리사한테 연락이 왔어."
무겁게 깔리는 목소리는 나 자신이었다.
"어떻게 되었니?"
숨을 고르던 목소리가 또박또박 말이 되어갔다.
"우리가 신청한 주대천(주파수 대역 천이장치)가 국제특허를 받아냈
어."
`주파수 대역 천이 장치`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대역을 들을
수 있는 영역으로 천이해 주기도 하고, 반대로 들을 수 있는 영역을 듣
지 못하는 주파수 대역으로 바꾸어 정보를 저장해 놓을 수 있는 장치였
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은 대략 20에서 20000헤르즈(HZ)
정도다. 우리가 듣고 있는 쥐나 새들의 지저귐은 사실상 그들의 저음부
일 뿐이고, 그들의 고음부는 인간의 가청주파수인 20000헤르즈를 웃돌
기 때문에 우리는 들을 수 없다. 개나 소등의 가축들이 만들어낸 음파
들도 우리의 주파수대역에서 상당한 부분이 벗어난다. 지구가 돌아가는
거대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주대천'의 응용 범위는 대단히 넓을 것이다. 기차나 비행기의 소음
을 포함한 여러 잡음제거에 기여할 수도 있겠고, 이제 까지는 들을 수
없었던 음향들을 합성해 음악의 한 분야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동물들과의 언어 소통마저 가능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고 여겨진
다. 하지만 대화하던 동물들을 잡아 먹어야 한다는 점을 되집어 보니,
이 대목은 좀 어색하다.
신기술의 개발은 긍정적인 면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부산물들을 수반
해 왔다는 데에 사고가 뻗치자, 어쩐지 마냥 기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좁은 머리로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용태와 함께 기뻐 하기로 했다.
"내일이 할아버님 제사니까, 마치고 올라갈께. 연구실에서 보자. 안
녀엉~"
"때르릉! 때르릉! 때르릉!"
이건 좀 이상했다. 용태와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때르릉`이라
니... 이 시골구석에서 통화대기 신청을 했을리도 없고,,, 게다가 어깨
어림이 붙잡혀져 흔들리고도 있었다.
아마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낮잠이 주는 입안의 텁텁함을 다시며 눈을 뜨자, 80을 바라보는 할머
니의 주름진 목소리가 재촉했다.
"기석아! 그만 어여 일어나! 서울서 전화왔어."
조선 기와집 안에는 무선 전화기는 없었다. 비칠비칠 일어나 옆 방의
버튼식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귓 속에서 느껴지는 싹싹한 부드러움이 낮잠이 주는 텁텁함을 씻어
주는 듯 했다. 은주였다.
수출 경쟁의 최전선에서 청춘을 바치겠다는 고교시절의 순진한 꿈을
대학 시절의 은근한 자부로 연결짓는데 성공은 하였다. 이웃들에 이바
지한다는 공대인의 사명을 위해, 눈자위에 핏발을 세운 적도 없지 않은
대학시절이었다.
그러나, 스물 아홉살에 과부된 어머니와, 시도 때도 없이 쓰러지던
만성빈혈의 여동생, 세월따라 누적되는 빚더미, 이런 것들 사이로 이어
지는 생계를 위해서, 무엇보다 우선,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끝도없
는 과외질과 강사질을 해야만 했다.
한가할 수 없는 대학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의 낭만 또한 바쁜 와중에
서도 챙겼다. 비록 중고차이긴 했어도 그 시절에는 흔치 않던 자가용족
이기도 했으니까... 자가용은, 정확히 황색 스텔라는, 몰래바이트(전
대통령 시절의 금지된 과외)의 행마(行馬)에서 시시때때로 이어지는 나
라시(불법 유임 승차)까지 생계의 도구로써, 분위기 좋은 연인들의 공
간에서부터 운우지정을 나누는 러브호텔까지 이어지는 낭만의 도구로
써, 제 구실을 충분히 해냈고, 잊을 수 없는 황색 스텔라였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일지라도 낭만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고 여겨진다.
대학시절을 생존과 학문 그리고 여자들에 짓눌려 보내고 졸업을 앞
둘 즈음,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덜나기 딱 좋은 50만원 짜리
봉급쟁이 질이었다. 턱 없이 오르는 물가와 아찔하게 치솟는 집 값은,
고교시절의 꿈이나 공대인의 사명 따위는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할 정
도로 나를 왜소하게 만들었다. 18평짜리 전세 아파트에서 연명하는 세
식구였지만, 월 50만원으론 여동생 시집보낼 자신이 없었다. 대학시절
내내 단 하루의 일요일도 허락하지 않았던 과외질로 간신히 마무리한
빚더미를, 다시 이고지고 살기는 더더욱 싫었다.
신(新)기술개발로 무역장벽의 굴삭기들이 되고자 청춘을 같이 했던
동료들에게는 몹시 미안했지만, 나는 돈 많이 주는 다국적 기업으로 갔
다. 석유찾아 세계를 떠돌다가 월남 참전당시 실종되었던 아버지를 만
났고, 작지 않은 테러 주식회사의 우두머리라면 우두머리랄 수 있는 아
버지와의 어쩔 수 없는 인연이 나를 엘리트 전사(戰士)로 만들어 놓았
다. 게다가, 소속했던 다국적 기업의 엔지니어로 종사하던 중, 이라크
영내의 주요벙커 시설물을 설치했던 것이 모사드와 CIA의 관심을, 아니
관심이상을 사게 되었다. 이미 엘리트 전사로서의 교육까지 마쳤던 나
는 그들에게 지극한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시작되고 사막의 폭풍작전이 일때까지, 5개월 여동안 모사드 아
카데미와 헤르질리아의 군부대에서 사람잡는 여러가지를 또 익히게 되
었다. 당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사드와 CIA로서는 그들의 비장의 수
법들을 전수하는 데에 아낄 겨를이 없었고, 마지막 훈련장이던 헤르질
리아의 군부대에서 `섬타임 점 섬타임 샷(SOMETIMES JUMP SOMETIMES
SHOT)'이란 해괴한 총쏘기를 끝낼 즈음, 테러와 대(對) 테러의 전문가
로서의 자격증(주:이런 세계에서는 인정(認定:ROCOGNITION)이란 단어대
신 자격증(資格證:CERTIFICATE OF PROFETIONAL QUALIFICATION)이란 어
휘로 찬사를 대신한다.)을 받았다. 그리고,쑥스럽지만, 모사드와 CIA
양 사(社)에서 동시에 자격증을 받은 사람은,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
나` 한 명밖에 없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 결과로, 같이 훈련 받던 이
스라엘 최고의 살인마들인 메트사의 키돈 대원 여섯 명과, 미군 최 정
예라는 101공수사단에서 차출된 고릴라떼들과 함께, 나는 후세인의 비
밀벙커속에, 나에게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과 돈에 의해서, 떠밀려 들어
가야만 했다. 그곳의 지하터널을 휩쓸며 후세인을 찾다가 찾지는 못했
지만, 내가 설치했던 장비들을 포함해서,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시설물
들을 쓰레기로 만들어 놓고 나왔다.
이라크 전(戰)이 끝나고 다국적 기업의 엔지니어로서 무사(無事)하기
에 껄끄러워진 나는 이듬해 안전한 서울로의 귀향명령을 받았다. 되돌
아 온 나에게는, 세검정의 예쁜 2층짜리 빌라가 생겼고 세 가지 구별되
는 '나'가 존재하게 되었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무스대신 스트롱 제리를 묻칠때도 있다.) 선
고운 마이를 입는다. 주로 아래 위 단색으로 입는다. 검정색, 곤색, 회
색, 아이보리도 있다. 단색이 아닌 경우는 연초록 체크마이에 검정색
바지다. 와이셔츠는 목카라가 좁은 어두운 계통, 검정색, 곤색, 남색,
남보라색등의 실크만을 고수한다. 신발은 굽 낮은 검은 쎄무 단화를 신
는다. 이 때의 나는 오렌지이며, 대하는 사람들은 많은 여인들(대부분
아름다운 여인들이다. 20대초반의 여대생들이나, 모델, 스튜어디스, 연
예인도 없진 않다.)이며, 그들과 재미있게 논다. 하지만, 이때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나를 부러워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나는 착
한 오렌지고, 언제나 신사이며 깔끔하다. 여인과 즐기되 탐하지 않으
며, 여인을 아끼되 욕심부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여인들은 부르면
나온다.
두 번째의 나는 소개하기 힘들다. 이해시킬 자신이 별로 없고 황당한
거짓말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소설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면 만족하겠다. 메마른 감촉의 검정색 점프복을 입을 때는, 중동지
역이나 제 3세계의 어느 하늘에서 스카이 다이버가 될 경우다. `원 투
드리 포`를 헤아린 후에 등 쪽의 자동 우산이 펴지지 않으면, 난 앞 쪽
의 보조 낙하산을 까게 된다. 하지만 아직 손수 까 본적은 없다. 덜컥
제껴지는 어깨의 진동이 잡히면 잠시 펼쳐진 우산을 올려본다. `시거-
훨윈드(CIGAR-WHIRLWIND), 우리말로 담배-회오리로 해석 되어지나 보
다. 바람없는 맑은 하늘에서 유영하는 스카이 다이버들처럼 기상 봐 가
며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깜깜한 하늘아래에서 이상기류에 대한 예보
없이 떨어지다 보면, 시거-훨윈드를 걱정하게 된다. 낙하산이 펼쳐지면
서 이상기류에 얽히면 낙하산 줄에 목이 날아가는 경우가 없진 않다고
한다. 깨끗한 목에 안도가 되면, 옆 구리에 걸린 우지 자동 소총을 내
려 보기도 한다. 착지후에, 공수된 박격포 우지가 어깨에 메어질 때가
간혹 있는데, 이 때의 `나` 또는 `우리`는 `사신(死神)'이다. 물론 두
번째의 `나`도 이런 무지막지한 출장만 나가는 것은 아니다. 착한 순경
아저씨처럼 어린아이를 찾으러 다닐 때도 있고, 강탈당한 돈이나 패물
들을 찾아다 주기도 한다. 하지만, 착한 경찰 아저씨보다는 나쁜 도둑
이나, 강도가 될 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의 `나`의 모습
은 가지각색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두드러지지 않는 무난한 샐러리맨같
은 모습이지만, 약간 특별한 상황이 오면, 우리 어머니도 `나`를 보고
나를 알아볼 수 없다. 영화속의 킬러나 첩보원들이 조그만 슈트케이스
에서 여러가지를 끄집어 내어 변장을 하는 모습들을 종종 본다. 머리를
염색하고, 혹은 염색 대신 가발을 하고, 눈동자의 색깔을 바꾸기 위해
색깔있는 렌즈를 바꿔끼고, 얼굴을 색색이 칠하고 주름을 만들고, 안경
을 끼었다 벗었다 한다. 뭐 그정도의 변장이면 대부분의 낯익지 않은
사람들을 속일 수가 있다. 70년대의 첩보전에는 통할 만한 분장술이고
실제로 통하기도 했던 변장술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80년대 정보
화 사회이후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런 일에 종사하며 맞딱드리는 얼굴
들은 서로가 잘 아는 경우가 보통이고, 이런 변장술로 그 바닥에서 밥
먹는 사람들을 속이지는 못한다. 90년대의 분장은 변장이 아니고, 변신
이다. 말 그대로 몸 전체가 변해야 속일 수 있다. 눈동자 색깔 뿐만이
아니라 둥그런 눈을 째진 눈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고, 홀쭉한 볼따귀
를 두리뭉실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해야하며, 나이나 성별은 물론 체격이
나 신장이 눈에 띄게 커졌다 줄어졌다해야 하고, 얼굴 색등은 칠로 바
꾸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변해야 한다. 안면,나이, 성별, 체격이나 신
장을 바꾸는 것은 몇 가지 비품들(모발,접착제,특별히 고안된 의류나
신발등등)이 필요하고 착용 후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격렬한 춤을 자연스럽게 출 수 있다면 합격이다. 얼굴색은 조잡한
크레용 분칠대신 곰팡이를 이용해서 바꾼다. 체질에 맞는 적당한 곰팡
이를 희석시켜 혈액에 투여하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 번 문지르면 한
두 시간동안 문질러진 부위의 색이 바뀐다. 곰팡이 종류에 따라 붉은
계통이나, 창백해 보이는 허연 계통으로 변해질 수도 있으며, 흙빛도
가능하다. 이런 곰팡이류의 혈액투여는 피부 알레르기를 응용한 것이
다. 이런 변신술이 필요할 때는 드물지만, 단 한 번의 필요를 위해서라
도 두번째의 `나`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다. 가끔씩 나 스스로가 질문을
던질 때가있다. 무엇때문에 두 번째의 `나`를 존속시키느냐고... 그럴
가치가 있느냐고... 대답하기 어렵고 하기 싫은 대답이지만 억지로 끄
집어 낸다면, 서양에는 로빈 훗이있고, 중국에는 소림사가 있으며, 일
본에는 미야모또 무사시의 전설이 있다. 하지만 조선땅에는 그들의 전
설에 자지러지는 독자들만 있다. 그래서 두 번째 `나`는 이 업을 포기
할 수가 없다. 피스톨 우지부터 박격포 우지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인간은 장담하지만, 이 땅에는 `나`하나다. 7-8장의 위조 패스포
트를 갖고 야마가따 사이찌란 가공의 인물이 될 수 있는 인간도 역시 `
나`외엔 없을 것이며, 모사드에서 궁금해하고 CIA에서 사고 싶어 하는
마술같은 추적과 변신과 증발 또한 내가 이 업을 포기하면 사라져 버린
다. 이 땅에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전설을 만들고 싶다. 근거없는 전설
은 전설이 될 수 없기에, 두 번째 `나`는 전쟁놀이가 있다면 마다할 수
없고, 끝까지 살아남아 `최후의 전사`가 되어 보려 한다.
세 번째 `나`를 소개하겠다. 뒷 머리에 착 달라붙은 감지 않은 머리
털은 윗 머리로 삐치고 더벅머리 스타일의 앞 머리카락도 자유분방하
다. 얼굴 생김새와 분위기는 머리털 다듬기가 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여자들은 거의 없지만, 아는 남자는 별로없다. 알고도 지저분한 남자
가 세 번째의 `나`다. 허름한 잠바에 구겨진 셔츠, 일년내내 바뀌지않
는 헐렁한 국방색 체크바지, 너덜거리며 헤진 구겨진 갈색 아저씨 구
두,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나`중에서 가장 깔끔해 보이는 도수없는 금
테안경. 세 번째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어린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안방 아낙네들을 상대로 주머니 돈을
터는 `수학 과외 선생님`이다. 이 세 번째의 `나`역시 첫 번째 두 번째
`나`와 마찬가지로 되고싶어 된 `나`는 아니다. 첫 번째의 `나`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대학 시절 사랑했던 두 여인을 하늘의 이간질로
잃고 만 `허탈과 인생무상`때문이었고, `허탈과 인생무상`의 분풀이로
시작된 두 번째의 `나` 또한, `자포자기`의 산물이었다. 대학입학과 동
시에 시작된 세 번째의 `나`인 과외 선생 역시 `가난`이 만들어 준 것
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저렇게 둘러대다 보니, `핑계 없는 무덤이 없
다`는 속담도 생각나고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라는 어구도
떠오른다. 되고 싶지 않았던 `나`라는 점에서 다른 `나`와 다를 것이
없는 `과외 선생`이지만, 고마웠던 `나`라는 점에서 다른 `나`와 구별
된다.
공대를 사랑했던 고교시절의 순수, 악전고투 하던 대학시절이었지만
언제나 은은히 간직하고 있던 공대인으로서의 자부 , 이런 것들이 지금
도 꿈속에서나마 주대천(주파수 대역 천이장치)이란 세계특허를 만들곤
한다. 돌이켜 보아도 나 자신 공대를 가장 좋아했고, 박봉에 쪼들리면
서도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라는 공인(工人)
의 정신을 최고의 멋으로 지금까지 여기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에
팔려 지구촌 곳곳을 시꺼먼 천연가스나 찾으며 헤메 다닐때는, 대열에
서 이탈된 부품조각같은 소외감이 우리곤 했다. 세상에는 잘 깍여진
조각같은 명예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공대인에게는 그런 명예가 따라
붙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고, 땀 방울이
맺은 열매는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지곤 한다. 그래도 슬쩍 한 번 웃어
주곤 남들이 보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또 땀을 흘린다. 그리고 박봉(博
俸)을 세며 만족한다. 그런 공인(工人)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읍습한 생존에 시달리며 생계의 수단에 허덕이던 가족들을
볼 때 되고 싶은 마음은 내가 가야할 현실에 가려져야 했다. 어떤 이는
날 보고 나약했었다고 조소할 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가난이 무어 그
리 대단하길래 그렇게 감동스러우리만치 사랑했던 공인의 길에서 벗어
낫느냐고 비웃을 지도 모른다. 맞다. 내가 겪은 가난이란 것은 별건 아
니었다. 나는 밥을 굶어본 적도 별로 없었다. 다만 국민학교 시절 다른
아이의 도시락 반찬에 계란부침된 쏘세지가 있는 것이 부러워서 어머니
에게 나도 쏘세지를 넣어달라고 한 적이 있을 뿐이고, 어머니는 매일은
넣어줄 수 없고, 금요일만 넣어 주겠다고 했으며, 금요일은 나도 쏘세
지 반찬을 싸 올 수 있다고 앞 뒤 내짝에게 자랑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 싫었을 뿐이었다.
어쨋건, 대학시절 몰래바이트에서 부터 이어진 괴외선생이란 인연은
나에게는 고마운 것이었고, 쏘세지 반찬 때문이어서인지 어쩐지, 지금
도 내가 과외선생이란 것이, 맥이 빠질 때가 없진 않지만, 누구에게도
미안하지는 않다.
"은주구나! 여행은 잘 갔다 왔니? 쿨럭!"
잠이 아직 덜깬 컬컬한 목소리가 좋지않게 느껴졌는지, 은주가 상냥
하게 물었다.
"네. 잘 다녀왔어요. 아직도 목 아프세요? 그렇게 담배 좀 줄이시라
니까..."
이라크 전 이후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
난다.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민선생님 소개로 처음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잔뜩 돋은 여드름의 여고 1년생이 웃으며 반겼었다. 지금
은 여드름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겨울방학만 지나면 곧 고삼이 되어
입시준비에 연연하게 될 실질적인 여고 3년생이었다.
"TV과외 좀 풀어놓고, 잘 안되면 답안지 보고 연구해 보고, 그래도
안되는 것만 체크해 놔. 모레 네시에 갈께. 그리고, 담배는 줄일께."
"네. 헤헤."
영어를 가르치던 민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은주네 집은 방배동에
서 서울 고등학교로 빠지는 도로 주변에 위치한 D빌라 104호 였다. 예
쁘게 지어진 빌라에는 커다랗고 깨끗한 거실 유리창 밖으로 잔디가 깔
려진 아담한 정원도 있었다. 두 시간짜리 수업사이에 갖는 담배 한 개
피의 망중한을 주로 이 정원을 바라보며 보낸다. 정면으로 모양새 좋은
향나무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연못을 앞에 두었으면 더욱 운치있어 보
일듯한 단풍나무가 있다. 높고 튼튼해 보이는 붉은 담장의 모서리에는
감나무가 개나리들을 주위에 거느리고 서 있다.
주위의 담장 때문에 양분을 공급받지 못해서 감이 열리지 않는다며
안타깝게 설명해 주시던 은주의 어머니는 E대 생태학 교수님 되신다.
웃으실 때면 20대의 미모를 고스란히 보이시는 교수님은 Y대 의대 교수
님을 지아비로 모시고 있다. 간신히 30대를 졸업하신 은주 어머니는 엄
숙한 교수님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소녀같은 순진무구함을 흔하게 노
출시키는 분이었다. 2년 동안의 인연에서 발견한 교수님의 천진함은,
희노애락의 변화가 어김없이 드러나는 예쁜 얼굴에서도 발견되었고, 중
학교 1학년의 막내딸 윤주와의 토닥임에서도 잘 나타났으며, 부군이신
의대 교수님의 호출에 착한 어린이 목청뽑아 대답하듯 `네`하시며 다가
가시는 다정함에서도 잘 표현되었다.
여인다운 교수님을 아내로 둔 의대 교수님은 후리후리하신 건장함을
지닌 분으로 교수님 답지않게 갱영화를 자주 보셨다. 때릴 것 같은 씩
씩한 목소리와 동시에 지어지는 개구장이 같은 희죽임은 이상하게 어울
리곤 했다. 시원시원해 보이는 성격의 그 분은 딸 둘을 자녀로 두고 있
었다.
인연의 시작이 되었던 맏딸 은주는 이미 잘록해진 허리와 성숙한 앞
가슴이 부풀어 오른 속눈썹이 길고 눈이 큰 여학생이었다. 내 앞에서는
갸날프고 얌전한 목소리를 들려 주었으나, 교수님들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동생 윤주를 가르칠 적에 문 밖에서 들려오는 남자다
운 여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은주일 수 밖에 없었다. 흡연과 여러 학생
들을 지도하며 기진맥진 해진 편도선을 부드러운 눈으로 걱정해 주는
것도 은주였다. 그런 은주에게 이제껏 보아 왔던 어떤 학생들보다 정성
을 기울였던 것은 아마도 편애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윤주는 5년 터울의 언니와 두 분 교수님들 사이에서 자라
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다. 깜찍하고 어여쁘고 새침한 이 집
안의 막내딸은 은주를 가르치던 중 덤태기로 맡게 되었다. 20분 정도
가르치다 보면 시계로 눈이 가 있는 이 아가씨는 노래와 그림에는 소질
을 보였으나 수학을 괴로와 했다.애들같은 농담으로는 웃길 수 없는 나
이에 비해 성숙한 윤주였으나, 집에서 자신이 제일 많이 먹는다고 자랑
하는 어린애다움도 있었다. 재미없는 수학과 지루한 산수임에도 불구하
고, 열심히 따라주는 두 자매는 나로 하여금 노란 신호등에서 성급한
악세레다를 밟게 하곤 했으나, 빡빡한 스케줄과 빈틈없이 막히는 교통
체증은 미안한 초인종을 누르게 할 때가 많았다.
그에 못지 않게 나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어떤 부
부들보다도 잘 어울리는 두 교수님들이었다. 자신의 길을 꾸준하고 성
실하게 밟아 가시는 두 분은 그렇지 못한 나에게 언제나 동경이 되었
고, 조각난 자부에 대한 질책이 되곤 했다. 그러한 질책때문인지는 몰
라도,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 쌈지돈에 가려져 있던, 전자공학도로서
의 구겨진 책임감이나마 펴 보일 기회를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칙칙하던 일상(日常)의 따위들을 비집고 터진 사건의 발단은, 아이들
겨울 방학이 시작된지 한 달 쯤 지난 1월 중순 어림의 살기 좋은 집의
윤주였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보통 은주의 목소리가 반겨 주었으나 오늘은 윤주였다.
"수학 선생님이야."
현관으로 들어서 보니 거실쪽에 못 보던 것이 켜져 있었다.
"왠 컴퓨터예요?"
소파에 앉아 계시던 은주 어머니에게 묻자 예의 팍 지어지는 웃음과
함께 어색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6년전에 구입한 IBM이었는데, 그 동안 쓰지 않다가 윤주 때문에 꺼
내 놓았어요. 유니콘의 만리안이라는 곳에서 아이들 교육 정보를 연결
해 준다기에..."
"만리안의 교육 정보요? 기종은 XT예요? AT예요?"
"XT였는데 오늘 AT로 바꿨어요. 안에다 부품 몇 개 갈아주고 30만원
받아가더라고요."
"하드는 몇 메가예요?"
"처음 살 때 20메가 였어요."
대충 얼버무리고 은주부터 가르쳤다.
"선생님도 컴퓨터 잘 치신다고 하셨죠?"
언젠가 대학시절의 유닉스(대학내의 대형 컴퓨터)를 치면서 동기들과
장난했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반 PC(퍼스널 컴퓨
터)들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회사에서도 최소한 중형 이상급을 다루
었기 때문에 일반 PC에 자신을 내세울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으로서의 미련한 체면과 졸업한 곳에 대한 얼룩진 책임
감 같은 것이 발을 빼게 하지 못했다.
"언제 시간나면 몇 가지 가르쳐 줄께. 숙제 다 했지."
고개를 지수그리고 살짝 옆 눈으로 훔치며 애교를 부리는 지연이었
다.
"아뇨 다하지 못했어요?"
"어째서?"
"엄마가 만리안에 연결하시다 잘 안되니까 저 보고 같이 하자고 해
서..."
"연결 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숙제를 못해?"
억울하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뜨는 은주였다.
"한참 걸렸어요. 어떤 아저씨가 오셔서 AT로 바꿔놓고 가신다음, 설
명서 보고 엄마랑 같이 연결해 보니 잘 안되더라고요. 컴퓨터 바꾼 곳
에 연락하니까 어떤 언니가 왔는데..."
"그런데?"
"그 언니도 잘 못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연락했더니 어떤 아저
씨가 오셔서 설명서 보시면서 연결해 주셨어요."
갸웃거리던 나는 자신없이 말했다.
"5분이면 할 수 있을텐데..."
얌전히 배우던 은주를 마치고 까불던 윤주를 끝냈다.
다음 집으로 향하는 막히는 차속에서 이런 저런 것들이 떠올랐다. 아
이들이 갖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신뢰며, 은근한 자부와 적지 않은 도
움을 주었던 학과를 배신해 가고 있는 나 자신이며, 박봉에 애쓰고 있
는 전 공대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PC에 대한 좁은 지
식등은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은주와 윤주에게 컴퓨터를 가르
치기로 했다.
퍼스널 컴퓨터에 어색했던 나는, 386시장이 이미 수그러들고, 486이
작업실에 이미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AT(286)를 한 대 구입했
다. 은주와 윤주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PC에 대한 습득이 필
요했기 때문이었다. 온갖 전자 제품들이 쌓여있는 S전자 대리점을 찾았
을 때, 대리점 직원이 컴퓨터에 대해 아는체를 하며 떠 벌려 주었지만,
그가 아는 지식이란 것은 자사 제품의 설치와 도스의 몇 가지 명령어가
고작이란 것이 간간이 얼버무리는 그의 어투에서 느껴졌다.
PC에 대해 자신 없는 나였지만, 다행히, 나는 PC를 가장 빠르고 정확
하게 배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설명서를 보고 전원하나 코드
하나를 스스로 꼽아가며 설치해 보고(고장이 나도 좋다. 산 직후에는
얼마든지 에프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까.) 기계에 대한 자신감을
배우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시작하고 빠져들면 두 어 달이면
일반인에게 컴퓨터가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혜택(대부분의 응용 소프트
웨어를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는 만족감)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굳이 AT를 구입한 이유는 나쁜 컴퓨터일 수록 하드웨어적이나 소프트
웨워적인 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PC를
배운다는 것은 안되는 것을 되게하는 수법에의 탐험이었다. 3-4일의 몰
두 후에, 이전부터 들락거리던 천리안이란 통신망의 채팅실을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공개방보다, 키워드를 알아야 들어가는 비공개가 더
많았다. 조그마하게 일기 시작한 장난기와 AT분석의 기념으로 채팅실의
키워드 방 몇개를 뚫고 들어갔다. 내 장난에 열 받은 어떤 사내가 게시
판에 내 욕을 써 놓은 것이 약간의 인연이 있던 컴퓨터 문단 담당자에
게 보인 탓으로, 나는 경고장을 받기도 했다. 불쌍한 천리안에는 그것
하나 깔끔하게 해결 할 만한 인물이 없었나 보다.
어쨋든, 나는 몇 일 동안의 AT에 관한 참고 서적과 실습을 바탕으로
PC의 습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과외가 없는 한가한 날에 살기 좋은
집을 찾아 갔다. 은주와 윤주를 위해 사운드 카드를 선물로 준비했다.
사운드 카드가 끼워지고 소프트 웨어를 복사하고 수행을 해보니 먹통
이었다. 뒷 뚜껑을 제끼고, 인터페이스에 꽂힌 사운드 카드를 도로 뽑
았다. 인터페이스에 꽂힌 여러 카드를 살펴보니 , MFM방식에 FDC(플로
피 디스크 컨트롤러:플로피 디스크를 꽂는 부위를 마더 보드와 연결해
주는 카드)와 HDC(하드 디스크 컨트롤러:하드 디스크와 마더 보드를 연
결해 주는 카드)가 따로 따로 꽂혀 있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위험한
상태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켜 놓은 상태에서 인터페이스에 꽂힌 카
드가 흔들린다거나, 약간의 전압 불균일(220볼트와 110볼트를 동시 사
용하는 집에서는 전압이 일정하게 110볼트를 유지하지 못 하는 경우가
십중 팔구다.)에도 마더보드 전체가, 다시 말해서, 컴퓨터 자체가 못
쓰게 되어 버릴 수 있다. MFM방식에서 플로피와 하드를 마더보드에 연
결할 때는 HFDC단일 카드를 꽂아야 안전하다.
사운드 카드가 먹통이 된 것은 인터럽트 라인끼리의 충돌로 인한 과
부하 때문인 것으로 여겨졌고, 이런 경우에는 COM1-4포트를 재조정해
주면 되는데, 간단한 스위치 동작으로 바꿀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모
뎀카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카드는 내장되어 있는 고유의 점퍼(플라스틱
또는 고무로 쌓여진 전원 연결용 덮개)들을 바꿔끼며 인터럽트 라인 번
호를 서로가 잘 피해 가게 조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것을 정확히
조정한다는 것은 사실 일반인들은 어렵다. 만일 누군가가 컴퓨터를 구
입하고자 컴전문점을 찾는다면, 이 부분의 에프터를 확실히 해 줄 수
있는 에프터 요원이 있는 곳을 찾았으면 한다. 아마 용산 컴퓨터 랜드
에도 서 너 곳 이상은 찾기 어려우리라 짐작되지만, 그런 곳을 찾으라
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곳에는 진짜 컴전문가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
다. 따라서, 그런 곳을 수시로 드나들다 보면, 컴퓨터에 대한 많은 것
을 비교적 정확하고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살기 좋은 집의 AT컴퓨터를 다 뜯어내고, 새로 조립하며 은주에게 컴
퓨터 구조와 간단한 몇몇 가지의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게 해주었고,
윤주에게는 몇 가지 오락과 그림 그리는 법과 만리안의 학습물 수신작
업 정도를 도와 주웠다. 그녀들은 사운드 카드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에
실려진 노래로 나에게 보답해 주었다. 그녀들의 노랫가락은 과외선생으
로서의 보람이 되어 귀로 마음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2) 반포의 아가씨들...
한 주일에 사흘 정도의 저녁 시간을 수학으로 머리를 식히며 어린 학
생들과 노닥거릴 수 있는 즐거움은, 두 가지 연유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수학이란 학문이 갖고 있는 퀴즈적인 숨바꼭질인데, 나는 제
자들에게 문제를 풀어주며 가장 빠른 해법을 생각해 본다. 학문으로서
의 수학에는 물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지만, 입시에는 도움이 되
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문제에서 그러한 해법들이 발견 되지는 않
지만 때때로 나만의 교묘한 해법을 찾아날 때의 희열을 즐기곤 한다.
예를 들면, 다섯 쌍의 부부를 서로가 한 쌍도 짝이 맞지 않도록 파트
너를 정하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나? 라는 문제가 있다고 해보자. 수형
도를 그려도 어렵고, 순열이나 조합 따위를 떠올려도 쉽게 해결되지 않
는다. 이런 경우 간단하고 빠른 해법을 찾아날 때의 야릇한 쾌감이 일
때면, 유치한 만족감처럼 보여질 지 몰라도, 배우는 아이와 함께 기뻐
하곤 한다. 그리고, 발견된 특이한 기법을 입시생에게 설명해 준다.
한 쌍의 부부를 짝이 맞지 않도록 파트너를 정하는 방법은 없다. 고
로 0가지다. 두 쌍의 부부를 짝이 맞지 않도록 파트너를 정하는 방법은
한 가지다. 여기까지는 국민학생도 알 수 있다. 그 다음 세 쌍은, 한
쌍과 두 쌍에서 얻은 결과를 더해서 두 쌍이 의미하는 2를 곱해주면 된
다. 즉, (0+1)2=2가 된다. 네 쌍은, 두 쌍과 세 쌍의 결과를 더해서,
역시 네 쌍의 바로 앞 쌍, 즉, 세 쌍이 의미하는 3을 곱해주면 된다.
(1+2)3=9
다섯 쌍의 경우도 구하는 방법이 동일하다. 세 쌍과 네 쌍의 결과를
더해서(2+9), 다섯 쌍의 바로 앞 쌍, 즉 네 쌍이 의미하는 4를 곱해 주
면 결과<(2+9)4=44>가 나온다. 여섯 쌍, 일곱 쌍, 백 쌍... 얼마든지
이어진다.
이런 해법이 아니라면, 10쌍 정도만 되어도, 초고교급 수학 실력을
갖춘 학생일지라도 제대로 해결 하려면 30분 이상의 복잡한 계산을 거
쳐야 가능한 문제다. 어찌해서 이런 해법이 나오는지에 대한 설명은 상
대가 1-3등급의 고교 3년생 정도 되어야 이해시키기가 가능하다. 따라
서, 평범한 제자에게 학문으로서의 도움을 주는 해법은 못 된다. 하지
만, 나올 수 있는 수학문제고, 알아두면 입시에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르
는 해법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방법은 나외에도 다른 사람이 혹시 찾
아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껏 나에게 배운 학생들외에 이 방법
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적이 없고 어떤 문제집의 해답집에서도 본 적
이 없다.
과외에서 얻어지는 두 번째의 즐거움은, 흔하게 접하는 것은 아니지
만, 제자들이 고마움을 표시할 때 느껴진다.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감사는, 말도 아니고, 선물도 아니지만, 그냥 와 닿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그들의 감사라고 확신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나는 착한 과외 선생이니까...`
과외질의 즐거움으로 한 사흘을 보내면, 한 주일의 나머지 하루 이틀
은 푸르죽죽한 해결사로서의 `나`의 업무로 보낸다. 두 어달에 한 번정
도 외지에서 날아오는 출장 명령이 떨어질 경우를 제외한다면,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정해진 일과는 없다. 그러나,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주위에는 나와 함께 팀웍을 이루는 동료들이 보통 여덟 명에서 열명
정도 있다. 그들 중 네 명은 레귤러고, 네 명은 아웃 사이더들이다. 서
른 살의 나는 어리지만, 미안하게도, 그들은 나에 의해서 움직여 진다.
정확히 설명 하자면, 네 명의 레귤러에게만 지시를 한다. 레귤러 네명
모두 내국인이 아니고 이방인 들이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의
호출에 두 시간안에 나와 접촉할 수 있는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 명의 시니어 레귤러가 나에게 연락할 수 있고, 두 명의 주니어가 시
니어와 아웃 사이더를 연결한다. 아웃 사이더들은 고정 멤버가 아니고
수시로 바뀌며, 레귤러와 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
이 어디에 소속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보수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네 명의 아웃 사이더들 중 서양 남 녀 한쌍은 중동의 본사에서 고용해
서 보내주고, 내국인 남 녀 한쌍(혹은 두쌍) 정도가 아웃 사이더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되는데, 이들을 채용하고 관리하며 잔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두 명의 주니어가 맡고 있다.
내 동료들이 국내에서 해결사 노릇을 할 건덕지는 없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네 명의 레귤러가 국내에 머무는 이유는 나 때문이다. 나는 회
사의 차기 보스로서의 대우를 받고 있다. 아버지가 보스인 까닭인지,
나는 아버지를 제외한 레귤러들에 의해 차기 보스로 지명 되었다. 얼핏
들으면, 무슨 재벌 회사의 후계자처럼 좋은 팔자 타고 났다고 부러워
할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소리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차기 보스 대우
를 받은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 보스가 되기전에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포기했다.
대부분의 일반 기업이나 조직들이 두뇌 플레이에 의해 움직여 지는
까닭에, 밉살스럽지 않은 잔머리를 잘 굴리다 보면, 꼭대기까지 올라가
서 호령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정당한 머리 다툼이고 혈연으로 물려
받은 자리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존경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총알
로 밥 먹을 때도 있는 테러 회사에서는, 혈연이나 안전지대에서 굴리는
머리만으로 떠오른 우두머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테러 집단의 차기 보스 대접이라는 것은, 무게 나가는 청탁을 선별해
서 비중있는 현장 출장을 책임지게 하는 것과 두 명의 노련한 시니어
레귤러를 붙여주는 것인데, 반길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괴롭기 그지
없는 것일 때가 많다.
비중있는 출장은, 대부분의 경우, 출장에 실린 무게만큼이나 다녀오
기 힘들어 지는 여정이다. 훗날이 애매해지는 곳에 가서 그곳 사람들이
대단히 싫어 하는 짓을 해야하고, 나올 때는 살살 도망나와야 하는 것
이 보통이다. 지저분한 귀로에서 달라 붙는 만만치 않은 모기들을 털고
출장을 끝내면, 현장에서 건진 실적만이 오로지가 되는 쌀쌀맞은 평가
로 마무리 지어 진다. 임무의 발자취들이 두드려 쌓아 놓은 실적의 가
치가 현재의 보스의 업적에 도달할 때까지 ,어려운 출장은 이어진다.
지구상에서 뻑쩍지근한 강도질을 조용하게 수행해낼 수 있는 테러 회사
라면, 그 회사의 우두머리는 반드시 이런 출장들을 겪어야만 하고 무사
해야 한다. 일반 기업의 조직원들은 머리나 근육으로 노동을 팔고 보수
를 받지만, 테러 회사의 종업원들은 목숨을 담보로 안전(安全)을 팔며
돈을 버는 경우가 없지 않다. 오래오래 버티며 살아 남는 기술을 제대
로 축척한 종업원들이라면, 혈연, 지연, 돈등을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생명을 저당잡힐 만한 전사의 발자취가 있는 회사를
찾아 온다. 그들이 다녀와야야 할 험로를 이미 거쳐온 전사의 경험 아
래 아니고서는, 아슬한 위험과 굵직한 돈의 흥정은 잘 이루어지지도 않
는다.
두 명의 시니어는 이곳에서 나에 의해 움직여 지고 있지만, 나의 과
외 선생 같은 사람들이다. 베셀은 이집트 출신으로 불어, 영어, 러시아
어, 히브리어까지, 구사할 수 있는 영리하고 침착한 40대다. 파아잘은
사막의 베두윈 족 출신인데, 인정 받는 저격수로서 말이 없는 대신에
웃음만 헤프다. 후세인 벙커 침투당시에는 내 백(back)을 맡아주기도
했었다. 두 시니어 모두 아버지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
다. 월남에서 포로가 되었던 아버지는 당시 월맹의 군사고문으로 와 있
던 북한의 남 정우와 인연이 닿아, 사회주의로의 귀순영웅 대접을 받으
며, 월남전의 경험위에 북한의 특수 8군단의 전술을 추가했다. 그 후,
중동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등지에서, 북한의 테러 수출 업무를 현장
담당했다. 각 지역의 훈련소에서 많은 테러 단체들의 요원을 훈련시켰
고, 그 와중에 베셀과 파아잘을 만났다. 그 후 고르바쵸프 저격미수건
으로 북한과 인연이 멀어진 아버지는, 친분이 두터운 동료들과 함께,
80년대에 들어서며 동 서간의 해빙 무드에 흩어지고 있던 몇몇 테러단
체들을 흡수했다. 베셀과 파아잘은 아버지의 중동 진출에 많은 기여를
했고 경험도 많은 터라, 나는 그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고 여러 가지를
배우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가 상전인 것은 사실이다.
나는 베셀과 파아잘이, 번갈아 가며 따끈따끈하게 가져 오는 세계 이
곳 저곳의 정치 경제적 불협화음과 이에 대한 분석을 읽는다. 여러 자
료를 읽고 나면, 베셀과 파아잘에게 내가 관심있는 자료에 대한 추가
정보를 가능할 때까지 요구한다. 그 다음에는, 어느 곳에 누구에게, 물
리적이나 인간적인 강제력이 사용될 수 있을지를 혼자서 찾아보고, 그
들에게 작업경로를 지시하며 얻어지는 가치등에 대한 결과를 설명한다.
물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단지 미래를 대비하는 훈련의 일
종인 `학습`일 뿐이다. 두 시니어는 내 해답에 동그라미를 보태주기도
하고, 엑스를 치기도 한다. 나는 아직 보스가 아니고, 그들은 나의 과
외선생이니까...
내가 무엇을 어떻게 공부 하는지 이 나라를 배경으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한씨는 많은 외국 생활을 했고, 여러나라의 많은 인사와 안면이 넓
으며, 통치권의 인사들과도 인간적인 유대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낙하산 인사라도, 외무부 장관이 될 자격
이 있다고 통치권에서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외무부 장관이 되었다.
홍씨는 총각 시절부터 외무부에서 뼈가 굵어 지고 살이 붙은 사람이
다. 그는 많은 나라의 대사를 역임했고, 전(全) 전대통령 랑군 테러에
서 살아 돌아온 몇 안되는 인사중의 한 명이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아파트(주:러시아의 우리나라 대사관이 아파트였음)에서 대사임무를 수
행하고 나서 외무부 차관이 되었다.-
위의 자료에 내가 관심을 가졌다고 치자, 그리고 지금부터 가상의 스
토리를 이야기 하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위 자료를 바탕으로 이
야기를 하면서 알 만한 사람을 내가 거론하더라도, 아래에서 거론 될
사건에서의 역할은 실제가 아니다. 단지 지어낸 이야기임을 밝혀둔다.
이 예속에서 나의 위치는 북한의 대남 공작원 정도로 맞추겠다. 공작
목표는, 외무부 장관이나 차관중 한 명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
록, 남한의 통치권에 접근해 있는 한 로비스트를 키워주는 것으로 하고
줄거리를 잡겠다.
나는 베셀과 파아잘에게 추가 정보를 요구했고 관심있는 정보를 뽑아
냈다.
-외무부 장관 한씨와 차관 홍씨 모두가, 좋은 말로 하면 소신을 굽히
지 않는 형이고, 나쁜 말로 표현하면 고집이 세다.
낙하산 인사인 탓에 장관 한씨는, 외무부에서 뼈가 굵고 살이 붙은
홍씨에 비해 외교적인 실무에 다소 경험이 떨어지고 나이도 홍차관 보
다 아래다. 그러나, 외무부 밖의 대외적인 고려에 있어 통치권의 인정
을 받은 듯 하다. 차관 홍씨의 외무부내에서의 위상이 장관 한씨의 위
상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 관계로, 차관 홍씨와의 정책 현안에 대
한 이견이 부담스러울 때가 한 장관에게 종종 있었다.
차관 홍씨의 외무부내에서의 업무 능력은 안정적이라고 평가받고 있
으며, 세간에 청렴하다고 매스콤에서 입질을 한 적이 있다. 고지식하리
만치 사생활이 깔끔하며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홍씨의 딸이 말단 판
사 김군과 약혼을 했다가 파혼을 한 적이 있다. 파혼은, 사위될 판사와
판사의 친구들이 과분한 함을 지고와 지나친 요란함을 떨다가, 차관 홍
씨의 고지식한 청렴성에 부딪쳐 발발했다.-
포섭 대상은 장관 한씨다. 이유는 홍씨보다는 한씨가 유연성이 있다
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해도 고집스러운 청렴함
에서는 공무를 빼돌리기 어렵다는 점이 홍씨를 포기한 이유다. 이제부
터 나는 공작지시를 내린다.
이미, 장관 한씨와 통치권의 귀에 싫증나게 들어간 차관 홍씨의 청렴
성을 다시 장관 주위에서 부각 시킴으로써, 장관 한씨로 하여금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운 차관 홍씨를 더욱 부담스럽게 만든다.
그 결과로 차관의 위상에 더욱 왜소해진 장관 한씨는 장관의 권위를
찾고자 차관 홍씨와의 이견에 더욱 공격적이 되어가고, 고지식한 차관
은 별로 양보하지 않는다. 차관에 비해 통치권과 가까운 장관은 통치권
에 차관의 불편함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남한의 통치권에 접근해 있는 북쪽이 이용할 수 있는 로비스트가 장
관 한씨에게 접근한다. 외무부내에서 장관 한씨의 독주하고 싶은 심정
에 긍정을 표하고, 차관 한씨의 청렴을 장관 한씨를 밟고 올라서려는
위선정도로 슬그머니 매도도 해준다. 그리고 조그마한 꼬투리로 도움을
암시한다.
로비스트의 로비는 차관 한씨의 사위가 될 뻔한 말단 판사 김군에서
시작한다. 사용가능한 압력으로, 김 군을 구석진 지방판사로 전출시켜
버린다. 주위에 입방아를 돌릴만한 귀를 찾아 다니며, 지방으로 날려간
말단판사 김 군과 차관 한씨와의 관계를 가벼운 농담조로 흘린다.
통치권에도 청렴을 시기하는 사람이 없진 않겠고, 통치권과 가까운
한 장관의 불편한 토로는 적당한 핑계로 차관을 경질시켜 버릴 수도 있
을 것 같으며, 나의 학습은 끝났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애국자라고 자처할 자신은 없지만, 매국노
는 아니라고 장담한다. 중동의 본사 역시, 남 북한이 개입된 청부에 관
해서는 불문율처럼 피해간다. 앞에서, 떠든 예제를 베셀이나 파아잘이
본다면 보나마나 엑스를 주고 말겠지만, 예제를 통해 내가 주절거리고
싶었던 것은, `시기하는 자는 영웅이 될 수 없고, 지나치게 깨끗한 물
에는 고기가 모여들지 않는다.`였다.
이런 저런 정보들의 분석과 두 시니어들과의 토론으로 일주일의 하루
를 보낸다. 팀웍을 다지는 모의훈련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실시될 때와
현장 출창이 떨어질 때를 제외하면, 이제 나는 자유다. 혼자남은 나는
습관대로 오전에 잠을 자고, 오후에 추억을 찾아 떠돌며, 해가 완전히
떨어질 적엔 새벽까지 오렌지가 된다.
저물어 가는 1월의 끄트머리에서 시름 거리는 빗줄기들이, 손바닥에
쓸려지는 어린아이의 장난감들 처럼 앞 유리의 윈도우 브러쉬에 밀려지
고 있었다. 검정색 에스페로가 인하대 정문을 거치자, 오른쪽으로 하늘
색의 대한항공 여객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객기 뒤편의 건물의 5층에
는 항공 운항과 과사무실이 있을 것이고, 아마도 인상이 뾰족한 엄조교
와 아르바이트 과순이가 한 둘 정도 있을 것 같았다. 건물 옆의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고 안개처럼 뿌우연 겨울비 속에서 한동안 망연히 서
있었다.
검정색 가죽잠바 위에서 동그랗게 말려지며 흘러 내리는 빗 방울들이
곤색 바지와 검은 쎄무단화까지 축축함을 이어주고 있었으나, 시선은
보잉 747에 매여져 굳어지고 있었다. 흐릿한 물연기 속에서도 깨끗한
고유의 빛깔을 늠름하게 보여주고 있는 창공의 여객선 이었지만, 마음
속으로 젖어드는 보잉 747은 우아한 하늘색 마차가 아니었고, 우울한
악마의 눈물속에 잠겨있는 녹슨 배였다.
대학 시절 사랑을 함께 했던 여인들이 있었다. 두 여인 중 영숙은 선
배의 아내가 되었고, 현주는 그녀가 기도하던 천주님에게 빼앗겼다. 이
제는 만져볼 수 없는 그녀들이지만, 그녀들과 나눈 사랑은 가슴속에서
화석처럼 쌓여져 마음으로 굳어져 버렸고, 그 마음은 외로움에 지지 않
는 힘줄이 되었다.
영숙과 다하지 못했던 사랑은 하늘의 이간질 탓으로 돌리면 변명이
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현주는 무정(無情)한 오해로 잃고 말았다. 스
물 네 살 시절의 스물 두살 아내였던 현주에게, 나는 한(恨)이 된 지난
날의 빚을 갚을 길이 없다. 그저 그녀의 흔적을 더듬어 보면서 우울한
시간을 적실 따름이었다. 저 녹슨 배안에서 현주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그려 진다.
-커튼이 쳐져있는 갤리(비행기 안의 주방)안에서 돌아가는 오븐에 고
기를 굽고, 서비스 할 와인을 차갑게 하고, 음료수를 준비한다. 탑 시
니어 언니의 매서운 텃세에 움찔거리다 쥬스를 쏟고, 음식이 준비된 밀
카트(음식 운반 수레)속에서, 떨어뜨린 와인 오프너를 찾아 허둥거린
다.
매끈한 종아리 위의 여리여리한 몸으로 가득 채워진 카트를 밀고, 깔
끔한 미소를 승객들에게 선사하며, 자신의 서비스 코스를 한 차례돌아
허리를 편다. 검정 구두는 편안한 균형이 잡히고, 목에 붙은 리본이 샤
넬라인의 제복 위에서 붉고 푸르고 하얀 나비가 되었다. 천사의 날개처
럼...-
"질퍽!"
"질퍽, 질퍽!"
질퍽 거리는 물길을 밟는 소리에 머리속에 그리던 그림이 깨졌다. 엄
조교와 과순이로 보여지는 젊은 여자 둘이 우산을 나란히 하고 건물 쪽
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항공운항과 과사무실의 문이 닫혀진 모양이
다.
3층의 커다란 거울 앞에서 머리를 털고 젖어 있는 옷들을 매만졌다.
5층의 잠겨진 항공운항과 과사무실의 손잡이를 살폈다. 파이프 렌치는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꺽쇠를 꺼내 구멍의 밋밋한 윗 부분
에 찔러놓고, 이쑤시개 굵기의 굵은 철사에 오돌도돌한 홈들이 불규칙
한 이빨처럼 붙어 있는 쏘시개들 몇 개를 꺼내, 열쇠 구멍에 어울릴 만
한 것을 골라냈다. 조그만 모터와 밧데리가 내장된 손잡이 부위의 암나
사에 쏘시개를 돌려 넣고, 오른 손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스르륵, 스르륵,"
시계 바늘 돌아가는 정도의 소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철컥, 철컥... 쩔그럭, 틱!"
왼손으로 사무실의 손잡이를 몇 번 돌리자, 열쇠 구멍에 맞춰져 돌아
가던 쏘시개가 손 안에 반가운 감촉을 선사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다시 잠그고, 사무실을 돌아 보았다. 캐비넷과
책상 서랍 몇 개가 더 잠겨져 있었지만, 열어 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몇 권의 졸업앨범들과 재학생 주소록을 뒤적이면서, 몇몇 알던 얼굴들
도 사진으로 만났지만, 그들보다는 현주들이 관심이었다. 현주들이 나
올 때는 그녀들의 얼굴을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집중을 했고, 인적 사
항들을 메모했다. A, B, C반의 모든 현주들(89학번의 D반에도 있었
다.), 31명의 주소와 전화번호, 본적, 가족사항, 주민등록번호, 학번등
을 주머니 안에 접어 넣었다. 92학번 A반의 현주가 현주처럼 돋보였고,
같은 학번 B반의 현주도 비슷했다. 두 현주의 성은 달랐다.
시간이 허락하는 날이면, 나는 주머니 속의 현주들을 하나하나 헤메
게 될 것이고, 그녀들 중 현주다운 현주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후
에, 우연한 기회가 닿아서 몇몇 현주들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를
만났다는 것을 눈치챌 기회가 온다면,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 그녀들이
만나게 될 나는 착한 학생이나, 항공사 직원일 수도 있고, 그녀들이 살
고 있는 아파트의 수위일 수도 있으며, 실속없는 제비일 수도 있겠다.
나는 스쳐지나 가는 많은 인간들중에 한 사람정도로 그녀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겠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 그녀들의 산타크로스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성실하게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어쨋든,
나는 현주다운 현주를 찾아 보겠다.
젖은 몸을 푸근한 식사로 말리기 위해, 인하대 후문의 `릴케`라는 까
페로 들어갔다. 3층의 유리창 가에서는 아직도 주룩거리는 빗줄기들이
부딪치고 있었다. `노이즈`의 가락들이 분위기와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앞 쪽의 테이블에서 까불거리는 두 아가씨들의 작지 않은 말소리들이
흥미있게 파고들어 왔다.
"과사무실에 있던 남자가 누군데 그렇게 딱딱거리니?"
"글쎄! 교수같지는 않던데, 조교쯤 되겠지. 뭐!"
두런 거리는 입방아 쪽을 돌아보니, 손등에 반창고를 붙인 아가씨가
이야기 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언제 봤다고 보자마자 반말을 찍찍해대구, 당나귀 같이 생겨 가지구
서..."
긴 머리의 입술도 움직였다.
"나한테도 그러던데... 나이가 좀 들어 보이니까, 이해해야지. 근데
너 손 덴데는 다 났니?"
"응! 거의 다 났어. 이것 때문에 면접할 때, 얼마나 조마조마했다
구..."
"에이 그 정도 가지구..."
"그래두, 치마 입고 면접 받는 것도, 종아리에 흉터있나 보기 위해서
라던데..."
그녀들의 오가는 말 속에서, 3월이면 항공 운항과 93학번이 될 신입
생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어리어리한 말투와 빗나가지 않은 차림새가
순수하고 귀여웠다. 오렌지 나라의 기사보다는 착한 오빠 정도로 남아
야 할 만남이라고 여겨졌다. 슬그머니 다가온 청바지 차림의 웨이터가
주문한 식사를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튀겨진 고깃덩이 에서 하얀 김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고기를 썰고 씹으며, 그녀들과 접촉할 방법으로 염두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긴 머리의 말소리를 시작으로 기회가 잡히고 있는 듯 했다.
"겨울에 왠 비니? 청승맞게..."
유리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긴 머리의 눈동자에 잠시나마 눈을 맞추
는데 성공했다. 조금씩 힐끔거리는 긴 머리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맞
받으며, 간간히 기분 좋은 웃음도 선사했다. 고기를 씹을 때는, 한 입
에 커다랗게 넣고 우걱거리며 정력적인 양 볼의 움직임으로 계속 시선
을 유도했다. 그리고, 간단한 미소와 함께 태연하게 말을 붙였다. 존대
말로...
"항공운항과 신입생들이신가 봐요?"
"......"
잠시 대답에 머뭇거리던 두 아가씨에게 무시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
해, 연속헤서 질문을 던졌다.
"엄조교가 좀 딱딱하긴 해도, 보기와 다르게 인정은 많아요. 성실하
고... 근데, 항공 운항과 신입생 맞죠?"
`엄조교` 운운하는 것에 낯 가리던 벽이 무너졌는지, 긴 머리가 냉큼
대답했다.
"네. 맞는데요. 그런데, 엄조교가 누구예요?"
"아까, 아가씨가 당나귀처럼 생겼다던..."
긴 머리가, 약간 억울해진 어조로, 반창고에게 눈길을 던지며 은근슬
쩍 물었다.
"내가 그랬니?"
긴 머리의 시선이 보채는 억울함을 모른체하며, 반창고도 대화에 참
여했다.
"과사무실에서 사무 보시던 남자분이 엄조교님이세요?"
`엄 조교`인지 `임 조교`인지 헷 갈리기도 하고 관심도 없었지만, 중
요한 것은 지금은 아는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두 아가씨
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일테고...
긴 머리의 이름은 희성이었고, 반창고의 이름은 교임이었다. 둘 다
집이 서울이어서, 검정 에스페로에는 세 사람이 타고 올 수 있었다. 서
울로 올라오는 경인 고속도로상에서 희성에게 전화번호를 묻자, 맞춰
보라는 희성과 숫자 맞추기를 했다.
"이제 마지막 자리만 남았네. 마지막 숫자를 생각해."
"생각 했어요."
"그 숫자에 둘을 더해."
"더했어요."
"셋을 또 더해."
"더했어요."
" 다섯을 또 더해."
"더했어요."
"십 삼을 빼."
"뺐어요."
"남은 수가 얼마지?"
"삼이요."
"그럼 전화번호 끝자리 숫자는 육이네."
전화번호의 마지막자리까지 모두 맞추자, 희성과 교임이 탄성을 지르
며 물어왔다.
"앗! 맞아요."
"어머! 어떻게 맞추는 거예요? 속임수죠? 제 것도 맞춰 보세요."
이번에는 교임의 전화번호 맞추기였다.
"첫 자리를 생각해."
"생각했어요."
"하나를 더해."
"더했어요."
"셋을 빼."
"뺏어요."
"십 칠을을 더해."
"잠깐! 볼펜 좀 꺼내고요. 더했어요."
"구를 빼."
"뺏어요."
"하나를 또 더해."
"더했어요."
"남은 수가 얼마지?"
"십 사요."
"전화 번호 첫 자리는 칠이네."
"어머! 맞아요."
아둔한 딸네미들을 자식으로 둔 부모를 걱정하며 희성과 교임의 전화
번호들을 암기했다. 현주들 사이를 헤집자면, 도움이 될 만한 인연이
고 암기였다.
주소가 바뀐 여덟 명의 현주들은, 주민등록 번호와 본적지 조회와 간
단한 사기등으로 연락처를 다시 적었다. 시집 간 열 명의 현주들은 이
미 믿음직한 보호자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제외했다. 세 현주들이
놀고 있었고, 두 현주들이 전공과 무관한 일에 종사중이었으며, 여덟
명의 현주들이 항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재학중인 현주들이 일곱으
로 꽤 많았다. 92학번에, 오, 김, 이, 최 현주가 있었고, 93학번에,
윤, 김, 박 현주들이 있었다.
현주들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수집하는데, 아웃 사이더들이 도움
을 주었고, 자료가 보여주는 그녀들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나의 주관적
인 것이었다. 나는 현주다운 현주를 찾고 있을 뿐이었다. 찾아서, 무
엇을 어떻게 하려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러 현주들의 처한 상황들이 수집 되어 지다 보면, 흔하지는 않았지
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주들이 없진 않았고, 가끔씩 도와주게도
되었다. 산타크로스가 되었던 것은 내가 착해서도 아니었고, 남 일에
끼어들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지난 날의 현주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라고 변명한다면, 나 자신이 너무 치사하게만 느껴진다. 따라서, 그것
도 이유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그녀들의 프라이 버시에 대한 침해가
미안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 다시 생각해 보면, 남의 프
라이 버시를 침해했다고 해서 가슴 아파 하는 선량한 사람과, 나와는
거리가 한참이다. 따라서, 프라이 버시 운운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
았다. 그래서, 그냥, `그녀들이 예뻐서...`에 갖다 붙이니, 마음이 편
해졌다.
그녀들과의 관계에 있어, 내가 노출된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들킨 경우도 없진 않았다. 내가 현주들을 도운 것들은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었고, 사실, 불필요 했던 것들도 적지 않았다. 또, 사람을 돕다
보면,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다행스러운 것은 현주들에게
는 피해를 입힌 적이 없었다고 여겨진다. 대신, 그녀의 동료나 친구들
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힌 적이 왕왕 있었다. 그들에게는 정말 미
안하다. 그녀들의 너짢은 기분을 약간이나마 덜어 주기 위한 시도로,
공개해도 될 만한 경험을 들어 보겠다.
-외국 항공사에 근무하던 30살 짜리 노처녀 현주는 홍콩에 거주하면
서, 독일인과 사랑에 빠졌었다. 34살 짜리 독일인 역시 홍콩에 거주 하
면서, 가방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현주양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성실한 교육열이 자랑인 그의 집안을 살펴 보니, 큰 형이 소설
가였고, 둘 째가 변호사였으며, 그가 막내였다. 현주양의 어려움은, 막
내의 부모님들이었다. 서구인 답지 않게 완고했던 서양 시댁 사람들이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명동에 있는 모 호텔에서 현주양의
친지들(주로 시골 어른들)과 약혼식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희희낙락했다.
여기서, 내가 개입했던 부분은, 그의 소설가 형이었고, 노처녀 현주
양을 따라다니던 안동 권(權)이라는 성(姓)씨 였다. 그녀의 자료를 접
했을 때, 족보 따지는 독일인의 전통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갸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골몰할 수 있었고, 현주양의 집안 쪽을
두루두루 살펴 보던 중, 도와 줄 꼬투리를 건질 수 있었다. 현주 양의
족보, 그러니까, 안동 권씨의 지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신라시대의
왕족이 된다는 것을 나는 찾고야 말았고, 간접적인 경로로, 독일인 소
설가에게 짤막한 독일어와 몇 가지 자료를 슬며시 흘려 넣을 수 있었
다. `안동 권(權)씨는 코리아의 옛 왕국, 고대 신라의 로열 패밀리`라
는...-
지어낸 이야기 같겠지만, 실화다. 마티아스라는 이름의 독일인 남편
과 안동 권(權)이란 성을 갖고 있는 한국인 부인은, 세계에서 가장 아
름다운 섬 중의 하나인 모리셔스 섬으로 신혼 여행을 다녀왔고, 유부녀
가 된 이 여인은 지금도 홍콩의 영국 CPA 항공(CATHAY PACIFIC AIR)에
근무하고 있다. 단, 지금은 비행기를 타지는 않는다. 교육을 맡는 사무
장으로 출세했기 때문이다.
이런 류(類)의 일들을 나나 내 동료들이 장난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긴급한 출장이 없을 시라도, 열 명의 동료와 나는 언제라도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매끄러운 팀웍을 점검해 두어야 하고, 이런 점검이
우리들의 모의 훈련이며, 이 모의 훈련을 이곳의 책임자인 내가 `현주
찾기`에 가끔 적용시키고 있을 뿐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실행되는
모의 훈련이 두, 어 차례 흘러 갔을 때까지, 나는 내가 촛점을 기울일
만한 현주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주는 있었다.
이제 신입생 때를 벗은 항공운항과의 93학번 박 현주였다. 재수를 경
험했고 반포의 아파트에 산다는 점과,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또
다른 항공운항과 친구, 정은이가 살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짧은 치
마가 잘 어울린다는 점이 지난날의 현주와 비슷했다.
그녀에게 처음 접근하기 위해, 약간의 출혈을 했었다. 오토바이를
몰면서, 그녀 앞에서 자빠지며, 복사뼈 부위의 살갖을 조금 긁힌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넘어진 이유가 그녀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압구정 현대 백화점 맞은 편의 `자자`라는 커피 전문점은 압구정의
정통파 노는 물이 흐르는 길목은 아니었지만, 백화점 맞은 편이란 위치
가 한 몫을 해서인지, 서빙하는 아가씨들과 꼬여드는 남녀들의 꼬고앉
은 자세들에서, 그럭 저럭한 개성들이 감지되고 있었다. 입구에, 청바
지 하나와 짧은 치마 둘이 나타나자, 그저 그렇던 물은 순식간에 좋은
물로 바뀌어 졌다.
"오빠! 미안!, 오래 기다렸어?"
밥풀떼기 선그라스로 눈을 가린 치마는 옆 자리로 앉았고, 맞은 편으
로 앉는 치마는 정은이었다. 들어와서도 바쁜 청바지, 성미는 손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반포에서 여기 오는데도, 사십분이 걸리지 뭐야!"
말로만 미안해 하고 있는 현주를, 예의 바르고 약삭빠른 정은이가 도
왔다.
"저 때문에 늦었어요. 저희 집에서 같이 나오는데, 어머니가 은행에
심부름을 시켜서..."
잔잔하게 담배 피던 내 모습이 그녀들에게 부담으로 남지 않도록, 나
도 웃으며, 그녀들 편이 되었다.
"막히는 길에 삼십 분 늦는거야 기본이잖아. 신경 쓰지 마. 씁쓸한
그림들로 맛 없던 커피였는데, 그래도 너 네들을 보니까, 물 맛이 달콤
해진다. 짭짭! 아 맛있다."
"깔깔! 나두 마셔 봐야지."
"호호호! 왠 물 맛! 오빠! 나 눈 어때?"
염색대신 미장원의 손질로 머리 색깔에 노리끼리한 개성까지 넣고 다
니는 현주가, 선그라스를 내리며 얼굴을 들이 밀었다.. 기본으로 넘어
가 주면 되는 쌍꺼플 수술이었다.
"부기가 깔끔하게 빠졌네. 이쁜데..."
현주를 처음 만났을 당시, 오토바이에서 자빠진 채로, 허탈하게 웃으
며 그녀에게 건넨 첫 마디가, `쌍꺼플 없는 미인을 만나서 반갑군요.
'였다. 그녀를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녀가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간 곳
이 `자자` 뒤 쪽의 `민 승철 정형외과`였다. 나는 병원 복도에서 여성
지를 읽었고, 읽기를 끝낸 내가 해야 할 일은 부축이었다. 반창고와 선
그라스에 두 눈이 겹겹이 가려진 말릴 수 없는 아가씨를...
"정말 이뻐?"
"정말 이뻐."
"진짜?"
"진짜루 예뻐. 여자들 째진 곳은 다 예쁘잖아..."
"킥킥킥! 뭐라구요!"
"이런! 다른데는 안 예뻐?"
"거기만 예쁘면 다 예쁜거야. 넘어 가자."
째진 곳에 대한 다짐을 해 주자, 얼굴 뜯어 먹고 사는 스무살 아가씨
들 이어서인지, 이번에는, 날렵한 콧날들에 시비를 걸고 있었다.
"나 코도 해야할까 봐. 정은아! 성미 어디서 했다고 했지."
"잘 기억안나? 성미 오네. 물어 봐."
때마침 화장실에서 돌아온 성미가 끼어들었다.
"뭘 물어 본다구?"
"너 코 어디서 했어?"
현주의 궁금증에 똘똘말린 코 끝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성미가 대답
했다.
"울 엄마 친구 소개로 했어. 신사동에 있는... 근데 왜?"
"나도 할까해서..."
청바지의 성미도 두 치마들과 항공 운항과 동기였지만, 현주의 고등
학교 후배였다. 그래서인지, 치마들에게 `언니`라고 불렀다.
"언니도 모을려구?"
"아니. 난 약간 매부리기가 있잖니. 그거나 좀 어떻게 해 볼려구."
"그럼 거기서 하지 마. 나 한 곳은, 코 끝에 동그랗게 살 모아주는
것만 잘하지, 딴 건 잘 못한데..."
세 아가씨들 중 가장 날씬한 콧날의 주인인 정은이도, 얼굴에 남들
대 본 칼 못 댄 것이 부끄러운지, 뒤졌다고 여겨지는지, 거침없이 동참
하고 나왔다.
"난! 어딜 만지면 좋겠니? 약간 더 세울까? 오빠! 전 어딜 고치면 좋
겠어요?"
성형 외과 의사에게 돈 못 갖다 주는 것이 고민인 세 아가씨들에게
서, 두꺼운 담배똥 부러워하는 소년원 아이들이 떠올랐지만, 나도 만난
지 얼마 안되는 처지 인지라, 눈치를 보아야 했다.
"요새, 안면 마취가 유행이니?"
슬쩍 던진 질문에 현주가 웅얼거렸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두, 남들 튀는데 못 튀면, 초라해 보이는
것 같아서..."
"음냐... 그러니까, 얼굴에 남들보다 덜 썼으면 심사가 뒤틀려지는
거네."
눈만 굴리고 있던 정은이가 아픈데를 찔렸는지, 재빠르게 나섰다.
"마자요! 바로 그거예요."
"그래... 돈 많은 우리 아빠! 알고 보니 X도 없다던데... 아버지가
벌어 주는 돈, 써야지..."
욕 같기도하고 편 같기도 한 말로 대충 얼버무릴 때였다.
"삐삐! 삐삐!"
이번엔 삐삐였다. 최첨단 날라리들 답게, 세 아가씨들 모두 삐삐를
달고 다녔다. 그녀들의 삐삐에는 잘 나가는 카페와 나이트들의 전화번
호 정도 쯤은 메모리 되어 있었고, 자신들 전용의 집 전화에는 자동 응
답기도 설치 되어 있었다. 자동 응답기는, 그녀들이 없기만 하면, 언제
나 친절하게 그녀들의 삐삐 번호를 앵무새보다 정확한 발음으로 들려
주었다.
"언니! `사가(강남의 나이트 이름)`에서 삐삐왔어. 재만이 오빠한테
온 모양인데, 동전 있어?"
`나이트`라는 영어에 어울릴 만한 국어 단어 찾기가 매우 어렵다.
고우 고우(GO GO)스텝이 판을치던 아주 옛날 옛적에는 고고장이라고
불렀다. 고고장을 꼬꼬장으로 경음화 시켜 부르다가, 유래된 은어가 `
닭장`이었다. 그러나, 고우고우(GO GO)스텝이 유행의 뒷 전으로 팽개쳐
지고, 디스코(DISCO)라는 좀 더 자유분방해진 스텝이 한동안 세상을 주
름잡는 동안, 수많은 `디스코 텍`이 생겨났다. 대학의 춤써클(UCDC,
UCD, URCD)등이 로버트 춤과 허슬을 선 보이자, 종로( ABC, 미스터 리,
마부, 뉴욕뉴욕, 등등)와 무교동(코파카파나, 파레스, 123, 다운타운,
등등) 그리고 영동(바나나, 월드컵, 머치모아, 스튜디오 80, 등등)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디스코 텍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 당시의 디
스코 텍은 가격이 저렴해서, 천원 이천원 기껏해야 삼천원이면,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다. 이 당시의 디스코 텍에는 거울이 많았다. 허슬이란
휘어지는 동작이 많은 춤이 유행이었는데, 이 춤은 거울보며 혼자추며
연마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이 허슬시대의 날라리
들이야말로 가장 건전한 날라리들이었다. 매케한 연기속의 디스코 텍
안이었지만, 허슬자체가 주는 격렬, 유연, 흥건한 땀은 좋은 몸을 가꾸
기에도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로운 젊음에 쌓이던 찌부드드한
낭만의 화려운 분출이 되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숙련(熟練)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당시의 날라리들 세
계에서 떠오르는 별은, 허슬의 고수였다. 비싸야 삼천원인 저렴한 비용
덕에 돈이 행세하기도 힘들었고, 어두운 조명아래 잘 드러나지 않는 외
모나 학벌도 뒷전이었다. 그래서, 열심히들 돌렸다. 이 당시의 디스코
텍에는 부킹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남녀간의 만남은 디스코 타임
사이사이에서 잠깐씩 주어지는 부르스 타임에서야 가능했다. 휘두르고
돌리는 허슬의 율동으로 점찍어둔 여인에게 신호를 보내고, 부르스 타
임이 돌아왔을 때, 여인의 눈치를 본다. 디스코 타임에서의 율동이 여
인을 만족시켰다면, 그녀는 스테이지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기회를 주었
을 것이고, 다듬어 지지 않은 발악으로 그녀에게 비쳐졌다면, 여인은
쌀쌀맞게 스테이지를 벗어 낫을 것이다.
허슬이후, 브레이크 댄스의 열풍이 돌자, 노는 바닥의 물결은 이태원
과 강남으로 밀려갔다. 가격이 저렴하던 종로나 무교동의 디스코업계에
찬바람이 몰아쳤고, 이국의 향락과 어울어진 이태원과 강남의 비싼 디
스코 텍들이 떼 돈을 벌었다. 콧대 높아진 디스코 텍은 이제부터는 디
스코 텍이 아닌 나이트였다. 이것이 내가 생각해 본 `한국 나이트`의
탄생이다. 물론 이전에도 `나이트`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의미
하는 `한국 나이트`는 이전에 불리던 `나이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
다. 내가 되 돌아본 `한국 나이트`의 시작은 다수의 가난한 날라리들의
눈물에서 비롯된다. `한국 나이트`는, 가난하지만 잘 놀고 싶은 다수의
날라리들을 외면했고, 대신에 부자 집 날라리들을 손짓했으며, 편한 것
좋아하는 귀한 집 자식들에게 부킹이라는 고가품을 팔기 시작했다. 부
킹의 등장으로 나이트돌이들은 더 이상 춤을 숙련시킬 필요가 없어졌
고, 따라서, 이제 부터 나이트는 춤을 추는 장소가 아닌 부킹을 하는
장소로 전락했다.
초기의 부킹은, 비싼 양주와 안주들이 많이 쌓여 있는 테이블의 남자
들을 여자들 테이블에 앉혀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태원마
저 고가(高價)의 술값을 감당 못하고, 그 권위를 강남과 호텔 나이트
(유니콘, 니꼴, 바바렐라(지금의 사가), 포인테, 레인 앤 폴리스트, 휘
바 등등...)로 빼앗겼다. 이 때부터 웨이터가 여자들을 잡아 끄는 요즈
음의 부킹이란 것이 히트를 쳤다. `돈` 따라 다니는 여자들의 부킹은
웨이트의 줏가도 치솟게 했고, 몇 명의 스타급 웨이터(사가의 돼지엄
마, 나티나의 마영달, 공공칠, 등등..)들을 탄생시키도 했다. 웨이터
는, 대부분의 경우, 나이트에 놀러 오는 아가씨들로 부킹을 충당하지
만, 때에 따라서는 비방(秘方)도 있다. 어려울 때마다,봉이 되어 주던
손님의 난처한 요구에 부응할 아가씨를 긴급하게 모셔와야 할 때가 없
진 않다. 이 긴급한 수송을 대비해, 웨이터들은, 그들이 일 끝나고 접
촉할 수 있는 아가씨들(술집 종원원, 매춘부, 집 없는 아가씨 등등)과
연계를 맺고, 그녀들을 나이트 온 손님으로 포장시켜서, 침대까지 이어
지는 테이블에 앉혀 주기도 한다. 웨이터는 팁을 벌고, 아가씨는 물주
를 물고, 남자는 X병을 얻는 거래다.
어쨋거나, `한국 나이트`는 너무 비싼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이 `비
싼 나이트`가 아니었다면, `오렌지` 설화도 배아프게 이어지지는 않았
을 것이다.
`오렌지`라는 외래어에 어울리는 국어단어 찾기도 어렵다. 찾을 필요
도 없고... `오렌지`라는 단어는 외래어 지만, 뜻은 국어니까, `오렌지
`는 한국 고유어가 되어 버리고 있다.
우선, 오렌지에 대해 들은 것을 대충 열거해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
어울릴 것을 요구할 때, 오렌지 쥬스를 시켜 보낸다는 데서 유래 했다
고 하기도 하고, 여자가 승락할 때 오렌지 쥬스를 시키는 데서 유래 되
었다고도 한다. 여기까지는 낭만도 있고 나쁘지 않다. 따라서 이런 것
들이 `오렌지`의 욕이 될 수는 없겠다. 아마도 `오렌지`가 욕이 되는
이유는 `오렌지`의 자격 조건에 있지 않나 싶다.
차는 그랜저 이상, 일주일 용돈 백만원 이상...등등으로 번지는 까다
로운 조건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배아프게 할 것이다. 이런 이유
들로 `오렌지`를 욕할 수는 있겠지만, 대놓고 욕해서는 안된다. 속으로
욕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들 또는 그들의 부모가 나쁜 짓을 해서, 돈
을 벌었을 수도 있겠지만, 떳떳하게 땀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땀을 오렌지가 누리고 있다면, 욕이 나와도 퍼 부어서는 안 된다. 그들
은 누릴 자격이 있는 부분을 누리고 있을 뿐이고, 빨리 망하겠다고 서
두르는 것 뿐인데, 그들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 밖에서 `이놈 저놈`할
짓이 아니다. 함부로 해대는 가치 없는 욕은, `하는 놈이나 듣는 놈이
나`가 될 때가 많다.
이제 오렌지가 `진짜로` 욕 먹어야 하는 이유를 들어 보려 한다.
지면이나, 화면, 그리고, 주위의 입들을 통해, 오렌지를 향해 퍼붓는
대다수 사람들의 욕들을 접했다. 하지만, 오렌지를 떳떳하게 욕할 수
있는 이유를 제대로 찾아보고, 정직하고 옳바르게 던졌다고 여겨지는
욕을, 접해 본 기억이, 아쉽지만, 없다.
어지럽게 피었다가 의미없이 사라지는 아궁이의 연기는 시큰둥한 재
채기로 요란만 떨게 하고는 침보다 지저분한 그을음을 얼굴위에 남겨
줄 뿐이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이유들보다는 불꽃같이 따끔한 이유가
필요하고, 그을음같은 욕지거리들 보다는 보약같은 해결책을 찾아야 한
다고 여겨진다.
씨앗 같은 이유와 낫 같은 해결책을 누군가가 간단하게 찾아내었다
면,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명석한 사람일 것이다. 나도 이유와 해결책
을 근접하게나마 찾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 스스로가 명석하다고 자
화자찬 해버린 꼴이 되었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명석해서 찾았다기보
다는 실제로 이 땅에서 오렌지라고 부르는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
고 있어서 해답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정보의 구체성을
단편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언젠가, 부모 몰래 유학 중 귀국해서 교통
사고를 내고 사고 친, 귀한 집 자제들이 있었다. 매스콤에 오르내리고,
고생하다 풀려난 그들을 아는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들 중 붙잡히지 않은 한 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름의
끝자가 `협`으로 끝나니까, 편의상 `협`이라고 하겠다. 난 협은 물론,
협이란 사람의 누나, 형,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엊그저께 협의 누나
가 제왕절개해서 낳은 협의 조카(딸이었다.)까지 알고 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누가 나에게 오렌지에 대해서 갖고 있는
모든 정보 중 가장 중요한 정보를 꼽아 보라면, 나는 주저없이 `왜 그
들이 오렌지가 되었느냐?`에 관계된 정보를 꼽는다. 얼핏 생각하면, 오
렌지에 대한 어줍잖은 동정이요, 시시콜콜한 주둥아리의 현학적인 낭만
정도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왜 그들이 오렌지가 되었느냐?`에
대한 정보 수집과 분석은 그들의 족보 뿐만 아니라, 그들 개개의 특수
성까지 가까이에서 세세히 살펴야 하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
다. 그러나, 그 대답은 간단히 두 글자로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방황
하는 오렌지들의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답은 `무능`이다. 그들
은 하나같이 무능해서 자신은 물론 가족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
었고, 집안에서조차, 귀로는 욕을 먹고, 입으로는 눈치 밥을 먹어야 했
다. `오렌지`가 오렌지가 된 이유인 `무능`때문에 그들은 욕을 먹고
있고, 먹어야 한다. 또 그 진절머리나고 거머리같은 무능 때문에 오렌
지의 부모들이 자식인 오렌지를 욕하고, 다른 사람들로 부터 마땅한 욕
을 먹고 있다.
그들의 무능을 조기 치료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욕 먹는 오렌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얼마전 이상하게 생긴 도피성 유학생이 자신의 부모
에게 칼 질을 한 적이 있다.
많은 매스콤들이 그 아이의 난폭성을 부각 시키고 있다. 입질로 밥
먹다 보면, 입 놀릴 때는 많고, 시간은 없고 그럴 것이다, 재미도 없진
않을 게고... 하지만, 하고 있는 일은 제대로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접한 매스콤에서 말하고 쓰기를, 한상이란 아이가 `돈 때문에`
부모를 영화에서 힌트를 얻어서 `칼`로 찔러 죽였다.고 했다. 그 외에
구질구질하게 따라 붙는 것들은, 대학에 떨어져서 도피유학 어쩌고 해
가며, 한상이란 아이는 오렌지니 죽어 마땅하다.등이었다.
대부분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들이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틀렸고, 중
요한 핵심이 빠져 있다. 한상인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인 것이 아니고,
`자신의 무능`때문에 부모를 죽였다. 그리고 한상의 부모는 칼에 맞았
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자식을 칼로 만들었기 때문에` 죽었다.
그리고, 가장 우려되는 점은, 자식한테 칼 맞을 수도 있는 사람이 세상
에 널렸다는 점이다. 다만,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서 안 맞고 있다고 여
겨진다.
부모가 자식 칼 맞는데 필요한 여건들을 들어보면, 많은 재산, 인격
적 모멸, 학대, 변태,등등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첫째는
자신의 자식의 무능이요, 둘 째는 막다른 길로 모는 것이다.
막다른 길에 몰린 무능한 자식이, 자신의 살 길은 오로지 부모를 죽
이는 길 뿐이다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상이는 부모를 죽인 것이다.
도박 빚을 갚기위해서도 아니었고, 유흥에 빠져들고 싶어서도 아니었
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모든 부모들에게, 자식을 무능하게 만들어
막다른 길로 모는 일이야말로, 바로 자식에게 칼 맞을 일이라는 것을
한상이가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왜 오렌지가 되느냐?`에 대한 해답을 `무능`이라고 했다. 이제부터
핵심을 이야기를 하겠다. 무능의 조기치료에 관한 치료법이다. 간단하
고 수수하게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치료법이다. 더 쉽고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고는 장담 못 하겠고, 누군
가 찾아 내기를 부탁한다.
`무능`이란 난치병에 대한 치료가 `학문`으로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
겠지만,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경우가 문제인데, 돈 있는 사
람은 돈 가지고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사실 이런
경우 돈은 무능의 치료에 해가 되면 해가 되었지, 별 도움은 되지 못
한다. `학문`으로 안되는 `무능`은 `훈련`으로 고쳐야 할 것 같다. 의
사는 물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어야 하고 엄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집안이 망한 흉내도 내야 한다. 어떻게 그런 짓까지 해야 하느냐고 주
저한다면, `한상`이를 생각하면 된다. 자식을 무능하게 만들 권리는 부
모에게도 없다.
`훈련`이란 말을 썼는데, 무엇에 대한 훈련인지를 일일이 들기는 어
렵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개성이 다르다. 그리고, 이 `훈련`을 실
행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포기도 반드시 따른다. 훈련의 역점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가 비데오를
좋아하면, 비데오 방 종업원으로 취직시키는 것, 당구를 좋아하면 당구
장의 종업원으로 취직 시키는 것, 컴에 빠져 있으면 용산 전자랜드의
종업원으로 밀어 주는 것, 이런 것들이 훈련이며, 가족이 반드시 지켜
야 할 것 두 가지는, 첫째는, 그들에게 그들이 버는 돈 이외에 땡전 한
잎이라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둘 째는, 그들에게 그들이 무슨 일
을 하고 있던, 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단할 수 있는 용기를 실행해 보았고, 인내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훈
련을 묵묵히 견딘 사람이라면, 대학을 거치지 않아도 욕 먹는 오렌지는
되지 않을 것이고, 인생에서 실패하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며, 실패한
다 하더라도 오뚜기처럼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처해진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재빠르게 적응하면서 오뚜기처럼 끝까지 일어 섰는데도 모든 일
에 실패 했다면, 그는 가장 큰 것을 성공한 것이다. 인생 그 자체를...
"나 동전 없는데, 오빠 동전 있어?"
"한 닢이면 되니?"
자자 입구의 공중전화 속으로 빨려들어 갈 동전을 성미에게 건네 주
었다. 성미에게 삐삐를 친 재만은 30살짜리 나이트 DJ였다. 물론 성미
가 재만이의 나이를 알진 못 한다. 성미에게 재만이가 있듯이, 현주에
게는 성군이가 있고, 정은이에게는 병준이가 있다. 성군이나 병준이 역
시 DJ다. 보통 잘 나가는 나이트 DJ들은 한 업소에서만 일을 하지 않는
다. 한 업소에서 한 타임 틀어주고, 다른 업소로 이동해 간다. 경력에
따라 보수가 다른데, 초보자는 월 60정도 받고 이른 시간을 담당하고,
밤 열시 이후 등장하는 연륜이 제법인 DJ들은 평균 105만원 정도 받는
다. 하지만, 나이트의 특성상, 물 빠지면 한동안 문을 닫아야 하고, 딱
지떼면, 또 영업 못하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하기때문에, 정기적인
수입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성군은 인천 체고에서 배구를 하다 무릎이
안좋아서, DJ가 되었다. 70년생으로 가장 어리고, 사가, 단센에서 일을
한다. 경력이 짧지만, 허여멀건 외모와 순박한 함박웃음으로 인기가 있
다. 병준은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가장 인정 받는 DJ로 사
가, 젬마, 나티나, 단센에서 일을 하고, 음악을 잘 튼다. 재만 역시 잘
나가는 DJ이지만 병준에 비해 한 수 아래 대접을 받는다. 사가, 젬마,
단센에서 일을 한다. 보통 손님이 없고, 자신들의 타임에서 봉사를 다
하고 나면, DJ들은 물좋은 아가씨들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
나, 스테이지가 비면 춤을 추기도 하며, 소속된 나이트의 판촉을 도울
때도 있다. 셋 다 외모가 출중하고, 미남계에 능한 관계로, 강남 나이
트 DJ 업계에서 이들 트로이카를 93년도에 따라 잡을 DJ는 없을 것으로
본다.
현주와 성군, 정은과 병준, 성미와 재만, 이들은 상당히 가까운 사이
들이다. 속된 말이지만, 즐기고 맞먹기 위한 연인사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세 아가씨들은, 내가 세 DJ들을 그녀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한다. 다만, 세 DJ 중 비
교적 순진한 성군이 나를 보면, 외면하지 못하고 다가와서 인사하는 것
에 호기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사가로 가야 겠네."
전화 걸고 돌아와 앉는 성미에게 말을 건네자, 정은이가 내 말을 이
었다.
"화요일엔 젬마를 갔으니까, 오늘은 사가에 가요."
말을 끝내고, 내 옆자리의 현주를 힐끔거리는 정은이었다. 아마도 현
주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처음 한 두번 그녀들과 나이트에 갔을 때는, 나는 그녀들에게 `
적당한 쪼다`로서 였다. 최첨단 날라리 아가씨들과 잘 나가는 DJ그룹이
서로를 즐길 때와 장소는, 나이트 영업이 끝나고 그들과 인연 있는 가
라오케 같은 곳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DJ들의 일이 끝날 때까지, 보통
나이트에서 뭉기적 거리며 기다린다. 하지만, 비싼 나이트는 아가씨들
의 주머니로 자주 올 곳이 못 되고, 따라서, 그녀들의 테이블을 책임져
줄 봉을 억지로 찾지는 않겠지만, 마다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
렵지 않게 그녀들을 위한 `오렌지 나라의 기사`가 되었다. 나이트가 끝
나고 내가 그녀들의 부담으로 남겨질 기미가 감지된다 싶을 때면, 나는
솔선해서 그녀들의 집 앞까지 태워다 주며 그녀들의 염치(廉恥)를 세워
준다. 그녀들도 자신들의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척하며, 나의 자존심
을 동정해 주는 간교 하지만은 않은 여심(女心)을 남긴다. 물론, 내 차
가 떠난 것이 확인되면, 즉시 빠져 나와 택시를 잡고 DJ들이 기다리고
있는 2차로 향한다.
이런 정도의 여심(女心) 때문에, 숨어서 살피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
여금 살피게 한다거나, 하는 식의 뒷 조사는 하지 않았다. 여타의 사내
들도 마찬가지 겠지만, 나 역시 여인에게 사내로서 부끄러운 짓을 하기
싫어 한다. 귀찮아서도 아니고 어려워서도 아니라,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의 여심(女心)을 모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들을 몇 번 만나는 동안, 어떤 류(類)의 아가씨들인지 그녀들 자신
들을 통해 직접 보고 들으려 했고, 그녀들도 자신을 별로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이제 스무살들이다. 자존심과 쑥스러움으로 거짓말
은 할 수 있되, 사람을 속이려는 사악함이나, 속일 수 있는 연륜은 없
다. 게다가, 성군, 병준, 재만을 포함해서 내가 알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녀들 주위에 널부러져 있는 상황이다 보니, 나는 저절로 그
녀들을 제대로 알고 말았다. 세 DJ들의 노는 경로에 나는 이미 빠삭했
고, 그들과 나와의 인간 관계에는 이미 전적(戰積)도 있었다.
물 좋은 참신한 영계들이 나이트 무대에 오를 때면, 잘 빠지고 능력
있는 DJ들은 접근을 한다. 그 곳을 찾는 스무살 아가씨들에게, DJ들과
의 관계가 지속적인 선망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나이트 조명 아래에서의
DJ들은 스타처럼 보여 지기도 한다. 더우기 미래가 먼 한때의 젊음인지
라, 그녀들은 DJ들의 특별한 관심 속에서 짜릿함을 만끽하다 보면, 스
타의 연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착각에, 몸뚱아리 전체에 헛 바람을 실
어 날려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군, 병준, 재만등은, 나이트 조
명아래에서는, 확실한 바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그물에 걸린 몇몇 아
가씨들의 `오렌지 기사`였었고, 성실히 나의 역할을 수행했다.
나는, 그녀들이 좋아하는 DJ들의 음악을 들으며 흔들 수 있는 공간을
그녀들에게 제공했고, 그녀들의 부킹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도
왔다. 보기에 괜찮은 사내들이 놀고 있는 테이블이 보이면, 웨이터를
시켜서 그녀들을 그리로 보냈고, 그녀들이, 부킹 갔다 온 테이블에 앉
은 사내들의 신상명세를 뽑아대며 재잘거릴 때면, 나는 귀기울이며 들
어 주었다. 그녀들이, 다녀온 다른 테이블의 사내에게 호감을 표시하
는 기미가 엿 보이면, 나는 사내를 불러 주었고, 욕을 할 때면 같이 씹
어 주며 예리한 뒷다마로 그녀들을 자지러지게 해주었다. 분명한 것은,
나는 언제나 그녀들 편이었고, 그녀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인
심좋은 `오렌지 기사`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들이었다. 몇 번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고
나면, 그녀들이 나이트에 찾아온 주 목적, 즉, DJ들 혹은 다른 오렌지
들과의 2차는 계속 불발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DJ들이나 사
귀던 오렌지들 대신 기사에게 2차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녀들의 충성
스런 기사인 나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것들이 `오렌지
기사`로서의 `나`와 DJ 혹은 다른 오렌지들과의 전적(戰積)이었다.
병준과 재만은 판을 돌리다가도 나를 볼때면, 인사를 외면하지는 못
하지만, 낯색이 굳어지고 음악까지 신경질을 부린다.
하지만, 성군은 나를 보면 웃기도 하고 양주도 한 병 슬그머니 갖다
주며, 지난날의 어색함을 눈웃음과 한 잔으로 가린다. 아직 순수한 면
이 남아 있어서인지, 깔끔한 전적(戰積)에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신사
(紳士)이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영리해서 인지...
"사가는 싫어. 그냥 젬마에나 가."
가장 먼저 기사의 약효에 차도를 보이고 있는 현주였다. 은근슬쩍 그
녀를 건드려 보았다.
"사가에서 너가 안보이면, 2차에서 성군이 노래에 빵빠레가 뜨질 않
을텐데..."
슬그머니 헤집은 2차와 성군이가 현주를 자극했는지, 약간 치켜 올려
진 눈꼬리를 보여주고 나서, 정은이와 성은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꼬리에 압력을 잔뜩 실어 동의를 구했다.
"오빤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성군이하고 나하고 별 사이 아니지?"
현주의 말꼬리를 정은이와 성미가 재빨리 알아 들었나 보다.
"응! 그냥 몇 번 우연히 자리나 같이 한 정도지."
"맞아!"
정은이와 성미의 동의에 자신이 붙었는지, 이번에는 아예 그녀들에게
떠 넘겼다.
"오빠하고 젬마에서나 놀다가 집에 갈래. 이제 2차는 안 갈꺼야. 얘
네들이 병준이 하고 재만이 하고 친해서 2차에 몇 번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성군이 몇 번 만났어. 그게 다야."
진위(眞爲)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패기만만한 스무살 아가씨의
천방지축 속에서, 나는 언짢은 여심에 부끄러워 하는 여인의 옆 모습을
보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현주의 여인으로
서의 발뺌이 `오렌지 기사`로서의 보람으로 다가 오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도 성군이 없는 젬마에서나 놀아야 겠네."
"응! 그리구, 나 내일 아침 일찍 학교에 좀 데려다 줄래? 레포트 써
야 할 것이 있어서..."
"하하하! 내가 데려다 줄 것 같니?"
"오빤 우리의 기사니까... 검정 에스페로의 흑기사..."
(3) 잔인한 군대
파아잘의 손에서 건네 받은 딱딱한 표지로 쌓인 우편물을, 책상밑에
놓여져 있는 백과 사전 크기의 트럭위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헤트라
이트에 녹색 신호가 켜졌다. 안전 표시등이었다. 이 트럭 모형의 전자
감응기는 두 가지 혜택을 주고 있다. 나외에 다른 사람이 이전에 우편
물을 개봉했었다면, 황색 표시등이 들어온다. 또, 모사드에서 고안되고
그들의 테러 행위에 가끔 이용되었던, 편지의 개봉과 동시에 폭발하게
되는 편지 폭탄의 가능성이 트럭위에서 인식되면, 빵빵거리는 크락션
소리와 함께 적색 표시등이 켜지게 된다.
중동의 본사에서 지난 4, 5월 내내 날라온 전문들은, 해체된 구 유고
연방내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내전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
세르비아계, 회교계, 크로아티아계로 삼분되어 치고 박고 있는 보스
니아 공화국의 내전은, 민족, 종교간의 갈등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내전의 발발은, 공식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빈약하지
만, 그리스 정교도와 로마 카돌릭에 뿌리가 깊은 세르비아인들의 `인종
청소`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라고 여겨진다.
내전 이전의 보스니아 공화국에는 전체인구의 44퍼센트에 달하는 회
교도들이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들과 함께 뒤섞여 살고 있었다. 내전
이 발발하면서 회교도들은 세르비아계의 무력에 의해 강제 이주되었고,
세르비아계는 세계의 공분을 사기 시작했다.
내전 발발후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 공화국의 70퍼센트에 달하는 지
역을 점령했고, 크로아티아계가 20퍼센트, 나머지에서 회교계가 버티고
있다. 세르비아계의 월등한 무력은 이웃 세르비아 공화국의 대통령 슬
로보단 밀로세비치와 무관하지 않다. 구 유고연방의 최대민족인 세르비
아계를 묶어 대 세르비아를 건설하려는 만족주의적 야심을 갖고 있는
밀로세비치는 보스니아내의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와 밀월
관계를 갖고, 무기와 연료를 공급해 주고 있었다.
유엔 본부 2층에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본회의장이 있다. 회의장 중
앙에는 대형 회의용 탁자가 있는데, 이 탁자가 말굽모양으로 생겨서 이
곳을 `말굽 회의장`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보다. 하지만, 그보다는, 유
엔에서 가장 바쁘고 붐비는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지역은,
대개 군화발에 짓밟혀지고 있는 곳이란 점이 말굽의 이미지를 더욱 또
렷하게 형상화 시켜 주는 것 같다. 보스니아에도 수없이 말굽이 찍히고
있었다.
보스니아 영공내의 비행 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난민들에게 구호물자
의 수송이 이어졌고, 세르비아계에 대한 지원을 중지 시킬 목적으로 신
유고연방에 대한 경제 제제 조치가 내려졌다. 유엔 평화 유지군이 파견
되었고, 사이러스 밴스 유엔 특사와 오웬 EC(유럽 공동체)특사가 마련
한 밴스-오엔 평화안이 제의 되었다.
그러나, 내전은 전혀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계에 의해 봉쇄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탈출하려다
총탄에 맞아 서로 부둥켜 안고 숨진 모습으로 발견된 비극의 `사라예보
의 연인들`은 세게인의 슬픔을 자아냈고, 구호물자 공수를 해대던 유엔
소속 수송기가 사라예보 공항 활주로에서 총격을 받았다. 경제 제재 조
치 시행 1년만에 신유고 연방으로 하여금, 8400퍼센트라는 세계 시장
사상 최악의 인플레를 겪게 했고, 1억 디나르화를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2달러로 잡았지만, 세르비아계의 포사격은 미사일도 되었다. 평화 유지
를 위해 파견된 유엔군은 구호물자에 탄약상자나 실어 나르다가 들켜
체면만 깍였고, 세르비아계에 영토의 양보를 요구하며 다민족 중앙정부
하에 10개의 자치주를 두고자 한, 벤스-오웬의 평화안은 세르비아 주민
들의 국민투표에서 여지없이 무시되었다.(국민투표 참가자 1백 27만중
1백 6만(96퍼센트)이 반대했다.)
수 만명의 회교계 여인들이 세르비아 점령지역에서 감금되어 성폭행
당했고, 시장바닥까지 날아온 포탄에 의해 어린아이들의 머리가 깨졌으
며, 수십만이 죽었다. 그래도 세르비아계, 회교계, 크로아티계는 해결
책은 오로지 `무력`뿐이라며 치고 박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이 우왕 좌왕하며 공습이니, 지상군 파견이니
으름짱을 놓다가, 세르비아계가 점령지역 한 두 곳에서 철수한다고 성
명만 발표하며 체면을 세워주면, 슬그머니 머뭇거리고, 다시 또 포격이
이어지고, 백악관 성명이 나오고 들어가고... 난민들은 맞아죽고 아사
하고 시름한다. 이런 것이 보스니아 내전이다.
서방이 이라크 전때 보여준 단결력은 보스니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
다. 미국내에서 강경대응으로 무력 도발자들을 응징하자는 뼈대있는 입
들이 설칠 때도 있지만, 클린턴 특유의 우유부단은 세계의 경찰로서는
어림없는 배짱으로 보여진다.
이라크 전은 공중전이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막전이었고, 보스니아 내
전은 그럴리가 별로인 산악전이다. 미군은 월남에서 월등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와 정글전에 패배했다. 세르비아계의 민족주의와 산
악전도 미국으로서 결코 만만하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종이 호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다지 위력적인 호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베트남전에서 보여준 미군이 아닐까 싶다. 이라크 전에서 체면을 만회
했다고는 하나, 정확하게 말해서, 이라크 전 역시, 미국이 승리한 전쟁
이라고 장담 하기에는 무리가 없진 않을 것 같다. 2차대전 이후, 전쟁
다운 전쟁의 지상전에 있어서, 미국이 군소리 없이 승리한 예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기로는 패배한 전쟁과 얼버무린 전
쟁들이 주로 였다. 전쟁이라는 것은 지상전이고, 아직까지는 보병이 고
지에 올라가서 깃발을 꽂아야 내땅이 된다. 지상전에 자신없는 군대는
강한 군대일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현대화 된 군대는 물론 미군이
겠지만, 솔직히 미군을 푹신하게 신뢰하기는 어렵다. 잔 돈 몇 푼에 팔
린 헐렐레한 직업군인들이 산악이나 정글에서 사상이나 종교로 정신적
인 무장을 완비한 군대를 이길 수는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군대
를 알만한 사람들이라면, 정글전의 최강을 꼽을 때 베트콩을 꼽을 것이
고, 사막전의 강자로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떠올릴 것이며, 산악전
에서는 보스니아군을 생각해 볼 것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미군도 세계
최강으로 자부할 수 있는 영역이 없진 않다. 공중전에서 최강이고, 영
화속에서도 미군은 항상 최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타 지역의 전
쟁에서는, 매서운 독수리로 구름위에서 때때로 주름잡을 수는 있을지라
도, 지상을 평정하며 포효하는 확실한 호랑이는 되기 어려우리라고 여
겨진다. 미국도 그 점을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 사료된다.
보스니아 내전에 서방이 개입하기에 껄끄러운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걸프전은 서방의 이권과 직결되는 전쟁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서둘러
개입들을 했다. 반면에 보스니아 내전은 인권만이 관련 지어지는 전쟁
이다. 서방과 무관한 사람들만이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전쟁에 개입한
다고 해서 얻어지는 이익이란 거의 없다. 그래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멀리서 보고 눈만 돌려지면 잊혀지고 마는 동정심으로 별 부담 없는 잔
돈 몇 푼 던져줄 뿐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위협이 무관한 곳에 그들이
나설 이유는 없을게다. 이것이 세상 돌아가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실리가 아닌 인정(人情)과 의리(義理)에 좇아 민의(民意)가 모아지고
그에 따라 통치권에서 정의(正義)가 수행되는 민족이나 국가는, 현실에
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 세상이 여기에 있노라고 단 한 번
만이라도 보여 준다면, 어느 누가 그런 세상의 종이 될 것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현재까지 명멸했던 강국들 중에 이런 역할에 어울리는 인간성을 보여
준 국가나 민족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강국이 되어 보지 못한, 그러
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는 국가나 민족중에는 없다고 장담 못
하겠다.
6월 1일, 회교계 6만여 주민이 갇혀 있는 보스니아의 고라제시에 세
르비아계의 전면공격이 시작 되었다. 민간가옥이나 호텔이 무차별 포격
되었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 속에는 열 여덟명의 으깨진 어린아이들
시체도 있었다. 그들 위에서 오열하는 어머니의 눈물은 견디기 고통스
러운 분노였고, 분노는 핏물이 되어 찡어진 자식의 살속으로 파고들어
차가워졌다. 고라제시 전체가 전장의 울부짖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6월 2일, 회교국 51개국가로 구성된 이슬람교 회의 기구(OIC)가 소집
되었다. 하미드 알가비드 OIC사무총장과 시디크 칸주 파키스탄 외교담
당 국무장관이 주축이 되어, `행동공약`을 발표했고 `특별공약`을 다짐
했다. 회교권 국가에서 1만 8천명 규모의 병력을 보스니아에 파병시키
겠다는 `행동공약`은 공표될 수 있었지만, 공표될 수 없는 `특별공약`
은 복수를 다짐하는 7개 이슬람교 회원국의 밀약이었다.
그들은 `지상에서 가장 잔인한 군대`를 사기로 했다.
딱딱한 표지안에는, 서울에서 디트로이트까지 직행하는 놀스웨스트
항공권 세 장, 소집과 여정에 관한 백색 암호문 넉 장, 그리고 노란 바
탕의 출장 명령서가 들어 있었다. 파아잘과 베셀, 두 시니어 레귤러까
지 포함된 무거운 출장이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다섯 명의 제자들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여보세요?"
"은주구나? 수학 선생님이야. 잘 있었어?"
"네. 안녕하세요."
은주는 가장 오랫동안 가르친 제자였고, 나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제
자이기도 하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 통신망의 아이디를 들락거
릴 수 있는 유일한 아가씨이기도 하다.
"응. 은주가 집에 있는 줄 알았으면 오늘 은주집에나 놀러 갈 껄..."
"치! 입에 침 발랐어요. 맨날 맛있는 거 사준다구 거짓말만 하구..."
"다음에 꼭 사줄께. 윤주도 집에 있니?"
"네. 2층에 있어요. 근데, 무슨 일로 전화거셨어요?"
"그것이..."
"또, 편도선?"
"응. 어쨋든 이번 주에는 수업 못하고, 다음 주말에나 할 수 있겠
다."
"숙제는요?"
"발전문제까지 포함해서 A마이너스(참고서 이름) 미적분 풀어 놔. 거
기서 질문 받고 테스트 할 꺼야."
"윤주는요?"
"최고 수학하고 하이레벧 1 2 포함해서, 함수 풀어 놓으라고 해. 역
시, 질문받고 테스트 한다고 하구."
"네."
은주 윤주외에 균오 승일 혜연 나머지 세 제자에게도 비슷한 전화를
걸었다. 균오는 현대 고등학교 3학년이다. 관찰력과 성실성에서 남다른
면모를 갖고 있는 균오지만, 공부에는 그다지 재질을 보이지 못 하는
관계로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수업을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가 않다. 가
끔씩 균오가 던지는 질문에는 공부말고 다른 길로 인생을 개척해 보고
자하는 의도가 언뜻언뜻 비칠 때가 종종있다. 승일은 구정 고등학교 2
학년으로 고지식한 면이 돋보이는 학생이다. 아직은 확실하게 결심한
단계는 아니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심정을 내비치곤 한다. 성적은 우수
한 편으로 대부분의 과목에서 `수`를 받고 있는데, 수학이 `우`다. 그
래서 그런지, 수학에 히스테리컬한 면을 가끔씩 노출시킨다. 수학시험
을 앞 둔 날에는 아침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고 승일의 어머니가 귀뜸
해 준 적이 있다. 혜연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르친다. 혜연은 언북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서울 과학고에서도 여학생들 중에선 늘
일등이다. 2학년이지만, 수학은 이미 전 과정을 끝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혜연을 만나는 이유는 그녀에게 물리를 도와주
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고등학교와는 달리 과학고에서는 PCCR 이라고
하는 두꺼운 원서까지 동원해서 물리를 공부시키는데, 그곳에는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제들이 약간 있다.
은주와 혜연 중학생 윤주는 일주일에 한 번 수업하는 관계로 한주일
정도의 출장에 무리가 없는 반면에, 균오와 성일은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착한 과외 선생이라 수업을 빼먹지는 않는다. 내가
빠진 한 주일 혹은 열흘 정도의 기간에는 나의 육촌동생 서웅이가 대신
가르친다. 육촌동생 서웅이는 전자공학과 후배이기도 하다.
디트로이트에서 놀스웨스트 항공 소속의 프로펠라 20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로우녹(ROANOKE)에 도착했다. 베셀 파아잘과 함께 도착한 쉐라톤
호텔에서 밤을 보냈고, 호텔 맞은 편 오른쪽에 위치한 `가부키 레스토
랑`이란 일식집에서, 칼잽이들이 철판 위 아래로 휘 돌리는 칼재주들을
구경하며 점심을 먹었다.
`가부키 레스토랑`이란 일식집에는 아주 얌전하고 공손한 지배인이
한 명있다. 우리가 `아론`이라고 부르는 이 지배인이 이곳에서 하는 일
은 새로온 웨이트리스들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식당 문을 열기 전에 테
이블 셋 업을 지시하는 것등이다. 이 식당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단정한
금발머리의 푸른 눈 아론은, 앞으로 한주일 정도는 `가부키 레스토랑`
에서 테이블 식탁보의 무늬가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시
를 내리지 않아도 되겠다. 아론은, 다가올 한주일 동안은, 파아잘 베셀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저격수다.
그가 저격수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들려준 적이 있다.
"전투에 경험을 쌓은 군인들 이라면 한 두번쯤은 망원렌즈에 비친 이
제 곧 죽어야할 상대의 얼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두번
의 경험에 그칠 그들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전혀 모르는 렌즈속의 얼굴
에서 양심을 떠올리는 불행한 여유가 없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사람
을 눈으로 죽이다보면, 공포를 의식하지 못하는 렌즈속의 얼굴들은 절
망적인 얼굴로 보여지게 된다. 대부분 그 시점에서부터 줏어들은 저격
수의 의지력에나마 기대어 보려고 허우적 거린다. 격발과 동시에 빗나
갔으면 하는 후회가 냉정을 몰아 세우고 양심을 찌른다. 임무에 따른
살인이란 변명으로 뒤틀리는 양심을 진정시키기도 어렵다. 이것이 보통
저격수들이다. 그들은 결코 영원한 저격수는 될 수 없다. 적당한 선에
서 발을 빼야 한다. 진정한 저격수는 자기 합리화를 시도도 하지 않는
다. 양심을 생각하는 대신 지옥에 갈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그곳에
가서도 역시 저격수가 될 것을 다짐하는 것이 영원한 저격수라고 할 수
있다."
레이녹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에는 플로이드 카운티(FLOYD COUNTY)라
는 산골짜기 마을이 있다. 카운티(COUNTY)란 시로 승격되지 못한 행정
구획들 몇 개가 군집을 이룬 한국의 군(郡)에 가까운 형태를 말한다.
우리는 산골짜기로 이어지는 비포장된 비탈길을 따라 블루리지 마운틴
(BLUE RIDGE MOUNTINE)을 올랐다.
애팔래치아 산맥 최 남단에 위치한 블루 리지 마운틴은 존 뎀버의 노
래에도 나온다. 버지니아의 웨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이 첩첩산중에는
트레일러를 개조해서 만든 집이 한 채 있다. 버지니아 산골 깊숙한 곳
에 양철 쪼가리로 만들어진 집이지만, 몇 가지 첨단 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집이다. 자동 경보 장치와 경보 카메라가 설치 되어있고, 워크 스
테이션급의 컴퓨터도 있다. 이 집에는 여덟명의 사내들이 생업에 종사
하고 있다. 이들이 이곳에서 하는 사업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산삼을 캐는 일이고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들중 한 명은 4대째 이곳에
서 산삼을 캐는 가업을 물려받은 사람이다. 나머지 일곱명은 그가 고용
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심마니들이지만, 역시 나의 동료들이다.
이들이 블루 리지 마운틴에서 산삼을 캐고 있는 덕에 나도 산삼을 꽤
나 얻어 먹었다. 새까만 흙이 더덕더덕 달라 붙은 엄지 발고락 굵기의
산삼을 식빵 봉지로 한가득 채워서 선사받은 적이 있다. 버지니아 산삼
이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삼의 한 가지 효과는
뚜렷하게 경험했다. 산삼을 달여 먹은 날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
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것외에 산삼이 장담하는 효과들에 대해서
는 산삼을 수십뿌리 먹어본 경험으로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들이 들려준 바로는 산삼 주위에는 백사, 흑사, 홍사등의 독사가
많다고 했다. 꼿꼿하게 머리 세운 독사가 풀 잎처럼 보일 때가 많아서
산삼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들뜨지 말고 주위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 양철 집에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에는 이들이 산삼을 캐었던 지역이
나, 아니면 발견 하고도 나중을 위해 일부러 캐지 않은 산삼의 위치등
이 입력되어 있다. 몰래 한 번 들여다 보았다가 죠지 웨이즈에게 매우
혼 난 적이 있다. 웨이즈는 이 별장의 주인이다. 별거한 아내의 이름이
낸시라서 우리는 그를 레이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버지니아 산삼이라
도 한 번 왕창 자시고 싶다면, 버지니아의 산 골짜기 도시 플로이드 카
운티에 들러서, 산삼캐는 트레일러 집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죠지 웨
이즈에게 부탁하면 매우 싼 가격에 충분한 산삼을 구입할 수 있다. 주
고객은 중국인들이 대부분 이지만, 웨이즈를 찾는 한국인이나 미국인들
도 없진 않다. 트레일러 집을 다녀가는 미국인들은 산삼을 달여 먹는
대신 가루로 만들어 차에 타먹는다고 한다.
웨이즈가 산삼을 믹서로 갈아서 동양에서 온 사내들에게 한 잔씩 대
접했다.
웨이즈는 중무기 사수다. 야전 박격포로 많은 사람들을 살상하는 학
살자다. 우리는 그가 듣고 있는 곳에서 학살(SLAUGHTER)이란 단어를 아
예 쓰지 않는다. 여러가지 화기 제어 기술이 뛰어나다. 그는 18살에 월
남전에 참전했고, 30대에 상사가 되었으며 이스라엘과 서독의 특수부대
를 모방해서 창설 되었던 델타포스에서 제대했다. 하지만, 그의 학살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는 언젠가 어째서 아직도 사람을 죽이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답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동부에서 태어 났지만, 악한을 잠재우는 서부의 사나이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살인에 괴로워 하지 않아."
내가 다시 악한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자, 서부의 사나이는 흔들리
지 않는 음성으로 대답해 주었지만 그의 얼굴에 잠깐동안 지어진 미소
에서 곤혹이 머물었던 흔적을 한나절 내내 지우지 못했었다..
"내가 탄착을 관측했을 때,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악한이야."
심마니 헥토르는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파나마계 미국인 이었다.
노동과 격투로 단련된 흔적들을 곳곳에 드러내 보이고 있는 그의 육체
는 총을 사용하지 않고도 70명 이상을 살해한 파멸의 증표라고 할 수
있겠다. 석궁과 칼은 물론, 그가 스스로 고안해 낸 갖가지 쇳조각들은
그가 살아온 삼십여 년의 거울이다. 그의 가운데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
역시, 장식용이라기 보다는 살상용이다.
그는 나에게 맨손으로 사람의 목을 부러뜨리는 법을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오른쪽 턱 밑으로 감긴 왼손을 오른쪽 상방으로, 후두부에서 왼쪽
귀에 걸은 오른손을 왼쪽하방으로, 젖은 수선을 잡아 채듯이 두 번 `
뱅! 뱅!..."
심마니 데오도르는 속사권총과 이동 사격의 명인이다. 헥토르의 칼날
과 데오도르의 소음권총에서 발사되는 덤덤탄(몸에 박히면 산탄처럼 확
산되어 살상력이 배가 된다.)이 한 조가 되어 펼쳐지는 침투공격은, 적
진 깊숙한 곳에서 갑작스럽게 대면하게 되는 적 앞에서도, 소음을 발생
시키지 않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조용한 죽음들만 쌓여갈 뿐이
다. 파라오의 후손인 데오도르는, ELP게릴라 시절 북한에서 훈련 받아
서인지는 몰라도, 동양의 여인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나에
게 신통치 못한 발음이지만 조선말로 한 여인을 소개시켜 달라고 만날
때마다 조른다.
"아적도 `서녕` 어디메 사는지 몰라? 찾아서 내래 산삼준다고 해..."
`서녕`은 한국의 어느 양궁선수의 이름인가 보다.
심마니 살레는 PFLP게릴라 시절 특수 공격대에서 병기계를 맡았었다.
각종 중화기에 능숙하고 그가 모르는 병기 모델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니다. 7형제 중에 막내인 그는, 그의 나머지 여섯 형제 모두를
게릴라전에서 잃고 떠돌이가 되었다. 그는 그의 대부분의 형제들을 자
랑스럽게 여겼지만, 그의 맏형만은 늘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의
맏형 역시 PFLP게릴라 였는데, 이스라엘 북부 마아로트(MAALOT)촌의 한
학교에서 백 여명의 어린아이들을 인질로 삼고 팔레스타인 동지들의 석
방을 요구하다가, 이스라엘 특공대의 기습으로 교전중 수류탄에 맞아
사망했다.
어째서 맏형이 수치스러우냐는 내 질문에 얼굴이 조금 붉어진 그가
대답해 주었다.
"어떠한 이유로든,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는 행위는 전사(戰士)로서
할 짓이 절대 못되고, 그를 자랑으로 여기던 사람들에게 끔직한 수치만
을 남겨주지. 형이 남긴 얼룩을 지우기 위해, 우리 형제 모두는 진짜
전사가 되고자 했어. 그러다가 나만 남은거야..."
각이진 붉은 얼굴로 인디언 혈통임을 주장하기도 하는 심마니 피어네
스는 빠른 눈과 날렵하고 소리나지 않는 움직임으로 척후에 능하다. 고
고학을 전공하면서 세계의 구석진 곳곳을 수 없이 돌아다닌 덕에 여러
지역의 풍물과 풍습에 익숙하며 반자동 카빈소총에 절대적인 솜씨를 갖
고 있다. 하지만, 산삼을 매우 좋아하는 덕에 심마니로서의 자질은 형
편없다.
"신은 오늘도 나에게 산삼을 보여주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모두에게 던지는 말이지만, 우리 모두는 그가
가장 많은 산삼을 캐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있다. 캐면 그자리에서 먹
는다는 것도...
심마니 챠오룽은 러시아인 어머니와 중국계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구소련의 스페르나츠에서 한 시절을 보낸적이 있다. 병기광인
그는 모든 중무기에 헌신적인 애착과 욕심을 보인다. CIA에 포섭될 때
도 자신의 개인병기고를 허락해 줄 것을 포섭조건에 포함시킬 정도였
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자신도 CIA에서 요구한 자료
들에 게으른 성의와 잠적으로 대응했다.
어떤 중화기가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눈을 빛내며
자신이 개조한 캘리버 50을 자랑했었다.
"이것은 개틀링식 중화기 모델로 구형이긴 하지만, 신형보다 화력에
있어 월등하지. 단점이라면 수냉식이라 이동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는
데, 내가 공냉식으로 바꾸면서 그 부분에 대한 난점들을 개선했어. 또
여기 양쪽으로 접혀 있는 날개를 펼치면 총알받이가 되어서 엄폐할 필
요도 없어. 최고지?"
심마니 엘 아스카는 이집트 출신이지만 회교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 엘 아스카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명한 이슬람교 사원에서 따
온 것이다. 이집트의 정보 부대 소속으로 있으면서 무선 통신 부분에
발군의 재질을 보인 적이 있었다. 각종 도청장비에 숙달되어 있고, 전
화선 바이패스 기법(전화도중 추적하거나 따돌리는 기법)에도 능통해
있다. 각종 정보 수집에 큰 도움이 되었고 사격도 제법 숙달 되어 있
다. 이 보물 단지가 우리 회사에 흘러 들어온 것은 그의 우스운 분노
때문이었다. 정보 부대 요원으로 군 생활을 마감했을 때, 그에게는 생
활 수단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그 때문에 ECC(이집트 통신 위원회) 면
허를 취득하려고 했지만, 번번히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그
는 통신 전문학교를 찾아 수업을 들었지만, 교사들보다 월등한 그의 실
제 경험들은 교사들을 창피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그 덕에 교사들의 시
샘섞인 무시와 학문적인 자만같은 조롱을 되받아야 했다. 어쨋든 교실
에서의 형식적인 수업은 그 자체가 그에게는 모욕이었고, 이 희한한 학
생은 재미없고 지루한 강의에 더 버티지를 못하고 ECC면허를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어째서 회교도도 아니면서 이슬람교 사원에서 이름을 따다 지었
느냐고 묻자, 그는 불만에 가득찬 어조로 대답했다.
"지난 십 여년동안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무선 장비들을 실제적
으로 다루어 왔지만, ECC면허를 따지 못했지. 면허를 주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거든... 내이름도 마찬가지야. 비록 내 이름이지만, 내가 지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심마니 다얀은 팔레스타인인이었다. 10살 때 돌을 들어 이스라엘 군
인에게 던진 이후부터 그의 손에서 총기류와 화약은 끊임없이 다루어
졌다. 대형 폭탄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폭발물이란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치고 그 내부구조를 다얀이 모르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다얀의 가치는 폭발물 제조및 설치 뿐만이 아니라, 열 살
이후부터 쌓여진 게릴라 전사로서의 그의 경험에 있다. 그가 들려준 게
릴라 전사는 나에게도 감명 깊은 것이었다.
"게릴라는 야간 전사다. 그는 야간 작전에 필요한 여러 자질을 갖추
고 있다. 그는 교활하며, 전장의 언덕과 골짜기를 누비고 다녀도 존재
를 노출시키지 않는 조심성을 지니고 있다. 기습의 공포를 적들에게 이
용할 줄 알고 있으며, 동료들 앞에서는 나약함을 보이지 않는다. 귀순
한 포로에게는 친구처럼 너그럽고 부상병에게는 아버지처럼 부드럽지
만, 폭풍처럼 적을 습격해서 심판 받아야 할 이를 가차없이 처단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대담무
쌍하지만 작전의 위험과 가능성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알고, 환경에 대
한 적응능력이 있으며,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약삭 빠르다.
굶주림과 갈증, 의복과 은신처의 부족, 자연 치유력 하나로 버텨야만
하는 부상과 질병, 극도의 피로가 몰려올 때 지금까지 걸어온 길 보다
더욱 먼 거리를 가야만 하는 절망... 이 모든 것들을 입가에 띄우는 씁
쓸한 미소 정도로 극복한다. 정신적으로 언제나 강하며 따라줄 수 있는
육체의 단련 역시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가 전사(戰士)다."
버지니아의 산골짜기에서도 해는 서쪽 봉우리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붉은 노을이 어린아이의 낼름거리는 혓 바닥처럼 흔들거리며 바람같은
구름사이로 휘파람을 그려주고 있는 듯 했다.
블루 마운틴 골짜기의 인적없는 어느 절벽아래에 열 두 명의 사내들
이 도착했다. 블루 마운틴의 대부분의 흙은 검고 곱고 부드럽지만, 이
절벽아래의 흙만은 예외다. 투명하고 굵고 거칠다. 조심스럽게 흙들을
살피다 보면 어린아이 새끼 손가락 굵기의 육각형 수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 회사의 기초기지가 마련되어 있다.
내가 포함된 열 두명의 전사들은, 블루 리지산중의 깊숙한 절벽아래
에서, 각종 화기및 장비들과 더불어 자신들의 감각을 정비했다. 삼각측
정으로 거리와 높이를 재어 보았고, 몇 장의 표적지에 서 너개의 구멍
을 뚫어 주면서 사격을 했으며, 스코프와 탄도 그래프로 탄착 지점을
재조정했다. 만지작 거리던 화기들에 새로 기름을 먹여주고 필수장비와
부대장비들을 챙겨보며 목록도 만들어 갔다.. 나이론 방수우의는 맨 밑
으로, 그 위에 그물침대, 침대를 덮는 막사지붕으로 이용될 나이론은
그 위에, 나이론의 네 귀퉁이를 묶어 작은 야영텐트를 만들어줄 수 있
는 노끈 뭉치는 가솔린 통과 함께 오른쪽 주머니에... 아프리카 지역
출장시에는 반드시 챙겨야 할, 풍토병과 말라리에 대비한 키니네는, 보
스니아에선 필요 없을 것 같았다. 페니실린, 아스피린, 설사약, 항독제
등은 나침판과 함께 왼쪽 주머니에...
물론 이런 장비들을 보스니아로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이용할 화기들과 장비들을 점검해서 사용 되어질 것들의 목록만을 작성
할 뿐이다. 이 목록들은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전에 중동 본사로 팩스될
것이고, 회사와 보스니아 회교계의 긴급한 협조로 사라예보 인근의 베
이스 캠프에 목록대로 마련되어 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로우녹 에어포트에서 오후 6시 55분 발 놀스 웨스트 항공으로
저녁 9시에 디트로이트에 도착했다. 디트로이트에서 저녁 9시 40분에
암스테르담행에 올랐고, 하늘에서 놀스 웨스트가 서비스한 쇠고기 튀김
을 먹었으며, 네덜란드 시간으로 오전 11시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오후 2시 45분에 유로피안 캐리어(KLM)를 이용해 로마
로 날았다. 이태리 시간 오후 5시 5분에 로마에 착륙한 열 두명의 사내
들은 `아프로 다이테` 대중탕에서 X랄 사이에 잔뜩 낀 때를 왕복 운동
으로 밀어냈고, 하루를 쉬며 여독을 풀었다. 다음날 오후 4시 50분에
하루에 한 번 밖에 없는 리미니(RIMINI)행 에비아 노바(ABIA NOBA:이태
리 항공사 이름)를 탔고, 오후 6시 15분에 리미니 공항에 내렸다. 리미
니에서 7마일 떨어진 산마리노까지는 택시로 10분 정도 걸렸고, 맨 몸
으로 도착한 산마리노에서 곧바로 바이킹 밀수 라인에 몸을 재워, 아드
리아해를 가로 질렀다. 달마티아 제도 끄트머리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우
리는 마침내 보스니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제 곧 사라예보 인근의
어느지역에 마련된 베이스 캠프에서 육백만불 짜리 청부가 시작되겠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철도와 도보로 베오르가드에 스며든 열 두명의 군
대가, 회교계 자선 단체가 준비한 식량을 적십자 마크가 찍힌 여섯대의
트럭에 나누어 싣고, 사라예보와 공항간 도로의 중간 지점을 통과할 때
였다. 노란색 바리케이트가 도로를 막고 있었다. UN 평화 유지군이 설
치한 프랑스 검문소였다.
"어디로 가십니까?"
황갈색의 제복을 입은 초병이 영어로 묻자, 운전석의 베셀이 불어로
대답했다.
"사라예보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회교계 자선단체의 식량 수송 차량
입니다. 여기 통과증과 구호품 명세서..."
베셀이 능숙한 불어로 대답해주자, 프랑스 병사가 하얀 치아를 드러
내고 구김살 없는 미소를 보여 주었다. 미소 띤 병사는,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회교계의 적십자 도장이 찍힌 통과증만 자세히 들여다
보았을 뿐, 구호품 명세서와 트럭안의 구호품은 간단하게 둘러 보는 듯
했다.
"통과!"
불어였다.
사라예보 TV 중계소가 그리 멀지 않은 젤라스니카 산 아래 숲 길에
서, 회사에서 파견한 길잡이 베고비치와 접선했다. 나머지 수송은 베고
비치와 동행한 회교계 자선단체에서 보내온 열 두명이 대신했고, 트럭
에서 필요한 장비들만 꺼내어 챙긴 열 두명의 전사들과 베고비치는 젤
라스니카산 안의 계곡에 마련된 캠프에 도착했다.
캠프에는 회교계에서 보내준 나단이라고 하는 작달마한 보스니아인이
알아 듣기 애매한 지역 방언과 함께 눈물까지 흘리면서 다가와 인사했
다.
"나단은, 회교계의 모든 병사들 중, 사라예보 인근지역의 세르비아군
진지에 대해 가장 정통해 있읍니다. 지금 몹시 반가와 하고 있어요. 고
라제시의 포격으로 그의 어머니와 형이 포탄에 사망했고, 아버지는 중
상을 입었지요."
회색눈의 베고비치가 나단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끝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인사보다 절실한 휴식이 필요했다. 나단도 그
점을 이해하고 있는 듯, 침구가 가지런히 준비 된 캠프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2조로 나누어 교대로 잠을 자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휴식을 가졌다.
피로를 정리한 전사들은 지도 읽기에 들어갔다. 회색 눈동자의 베고
비치가 준비한 석 장의 지도에는 키릴문자(보스니아에서 사용되는 러시
아 문자) 가 빨간 줄로 그어진 대신, 그 밑에 영어로 첨자가 새로 매겨
져 있었다.
목표는 사라예보 인접 전략 고지인 이그만 산내의 세르비아군 진지였
다. 고라제시 민간인 포격의 선봉이기도 했던 이그만 산의 깡패들이 없
어지면, 세르비아 군에게 포위되어 고립 상태에 빠진 사라예보에 이그
만 산 밑으로 두 개의 통로가 새로 열려지게 되겠고, 찡어진 자식들의
시신을 부등켜 안고 울던 어머니들을 달래줄 수도 있겠다.
나단이 시토 방언(세르보-크로아티아 언어로 베오그라드 지방을 중심
으로 사용되어지는 언어)으로 지도상의 이곳 저곳을 가르키며 알아 듣
지 못하는 지엽적인 설명을 하면, 회색 눈동자의 베고비치가 영어로 알
아 듣게 설명해 주었다.
"약 오백명의 대대 병력으로 이곳에 다단두 로켓포, 요곳에 야포, 저
곳에 중포, 그리고 여기엔 기관포 참호가 있고, 가로 400, 세로 300,
120000 평방 미터의 진지내의 요 곳엔 헬기 1대, 이 곳과 조 곳에는 감
시용 망루..."
지도 읽기를 마치고 침투경로를 숙의했고, 미안했지만 내가 결정했
다.
"젤라스니카산 능선을 따라 팔레를 돌아 이그만 산을 오른다. 이동
은, 21시에서에서 06시 이내에, 밤부터 새벽까지..."
트럭에서 꺼내 온 장비들에 마지막 기름칠을 했다.
나와 베셀 파아잘 그리고 아론이 매만지고 있는 저격용 라이플은 중
동의 무자히딘이라는 노인이 유별나게 만든 것으로, 총열은 M-18보다
길고, 방아쇠와 노리쇠, 총알 뒷 부분의 장약을 때려주는 공이쇠는 아
카보(AK) 스타일이며, 개머리판은 괴목을 이용해서 아카보보다 4센티
정도 길게 만들어져 있다. 격발시 총구의 화염을 줄이기 위해서 소염기
는 앞 쪽에 붙였고, 이동 편의를 위해 가스활대는 떼어냈다. 총알은 충
분히 긴 장약에 특수화약을 넣어 만든 5.5미리 납탄으로 장거리 저격용
이었다. 사 오백미터안에서 반지름 1.5센티의 타겟이 전자 야간 투시경
에 걸려들면 그 즉시 사망일테고...
중무기 사수 웨이즈가 등짝에 비스듬이 메고 있는, 길이 1.52미터,
무게 15 키로그램의 길쭉한 물건은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사가 종래
의 로켓포인 `레드 아이`를 대체한 것으로 미사일 발사관 제동장치등으
로 나뉘어 지는 스팅어 미사일이겠고...
중화기 전문가 살레 역시 박격포 우지를 어깨에 걸어 메었고, 병기광
차오룽 또한 자신이 개조한 캘리버 50을 짊어 졌다.
폭발물 전문가 다얀은 길이 25센티의 길쭉한 막대형의 중앙에 둥근
쇠구슬 모양의 뇌관이 들어 있는 플라스틱 폭탄을 조심스럽게 챙겼다.
방탄 헬맷에 달려 있는 PNVS(야간 투시경)를 눈에 붙이고 있는 척후 담
당 인디언 피어네스와, 덤덤탄의 마가로프 9미리 소음 권총을 엉덩이에
찔러넣고 있는 데오도르를 포함한 나머지 동료들 모두는, 옆 구리에
G11 자동 소총을 걸었다. 서독의 헤글러사와 코흐사에 의해 제작된 G11
은 가볍고 짧지만 명중률이 높고, 탄창을 끼우지도 않으며 탄피도 튀어
나오지 않는다. 6백 14발이 장전되어 있고, 무게는 7.35키로그램이며,
전자 야간 투시경도 붙어 있다. 자동 소총이지만, 동료들은 수평으로
혹은 45도 하방으로 무식하게 긁어대는 짓 따위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대부분 수동에 걸어놓고 한 방에 한 명씩으로 자존심을 지킨다.
밤길 산길을 헤치면서 40키로 그램의 장비들을 이고, 별 빛과 PNVS
(야간 투시경)의 신세를 지며 우리는 9시간 동안 50키로미터 정도를 이
동했다. 세르비아 군 진지가 내려다 보이는 이그만 산 팔부 능선에서
나뭇가지들을 자르고 노끈으로 이어 은신처를 만들었을 즈음, 해가 떠
오르기 시작했다. 안내인 나단을 포함해서 열 두명은 은신한 나뭇잎들
속에서 코만 내놓고 잠이 들었고, 파아잘이 나무위에서 보초를 섰다.
두 시간 뒤에는 파아잘 대신 내가 섰고, 또 두 시간 뒤에는 베셀이, 마
지막 두시간은 아론이었다.
오후 네 시에 우리는, 인스턴트 깡통들이었지만, 충분한 식사를 했
고, 나무 이파리 속에서 어기적 거리며, 두 어 시간동안 세르비아 진지
와 고사포와 기관포가 배치된 참호들을, 지도에 표시된 방어초소들과
비교해 보며, 세세히 살폈다.
병풍처럼 휘어진 언덕 중앙부 두 곳에 대포 2문이 정면을 겨누고 있
었고, 대포가 위치한 언덕에서 이백여 미터가량 내리막진 곳이 끝나는
곳에, 세르비아군 진지가 평탄하게 펼쳐져 있었다. 언덕 가까이 진지
오른쪽에는 다섯개의 반원통 모양의 막사가 나란히 줄지어 보였고, 그
왼쪽 오십미터 지점에 식당일 듯한 통나무식 건물 두 채, 다시 왼쪽 백
여미터 지점의 철조망 옆에 기관포 참호가 망원렌즈에 잡혔다. 왼쪽 철
조망 바깥에는 사백미터 정도 평탄하게 구릉져 내려간 곳에 야포 산호
참이 포문을 겨누고 있는 것도 보였다. 진지내 중앙의 덩그런 연병장
앞에 헬기 한 대와, 헬기 앞 육 칠십미터 지점에도 기관포 참호가 있었
다. 언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정문 초소의 왼쪽 오른쪽 백여미터 지
점에, 높이 솟은 망루가 비탈져 내려간 철조망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두 망루 사이에 설치된 다단두 로켓포가 겁을 주었고, 막사들
바로 앞 오른쪽에도 기관포 참호가 또 있었다. 안내인 나단이 언급한
대로, 진지 바깥 오른쪽과 정문 초소 전방 500미터 지점에도 중포 산호
참이 있었고, 부대 바깥 좌 우의 두 곳에도 방어초소들이 내리막진 정
면을 겨누고 있었다.
정찰을 끝낸 열 두명의 군대는 부대 주변의 지형을 논하며, 부대 바
깥의 기관포 곡사포 참호등의 방어초소 공략을 위한 1차 공격 계획을
세웠다. 1차 공격 작전에 따른 위치 배정과 임무 할당을 끝내고, 철조
망내 진지의 포위 섬멸에 관계된 2차 공격 계획을 논의했다. 위치 설정
과 타겟에 대한 순 번이 매겨지고 작전을 완료하자, 두 시간 가량이 더
흘렀다.
짙은 어둠은 이그만 산을 벌써부터 덮고 있었다.
어둠과 나무 이파리에 숨겨진 전사들이 야간투시경의 도움으로 움직
이고 있었다. 산 중의 밤은 캄캄했고 조용했다. 산 거머리 한 마리가
검은 전투복의 어깨를 가린 나뭇잎 위에 달라 붙어 있었다. 잎사귀를
뜯어 조용히 내려 놓고 포복을 가만히 계속했다. 공중 전화 부스처럼
서 있는 경비초소와 기관포가 설치된 통나무 바리케이트를 살폈다. 초
소안의 두 명과 통나무 바리케이트안의 두 명은 이미 확인 되었다. 통
나무 바리케이트와 초소의 간격은 5미터였다. 바리케이트 7. 8미터 전
방의 어린아이 키만한 소나무에 걸려있는 전구 빛이, 초소 좌측에도 희
미하게나마 전해오고 있었지만, 노끈을 이용해 나뭇잎으로 전신을 가리
고 있는 터라, 초소 좌측의 창 옆으로 조심스럽게 붙을 수 있었다. 후
덥지근한 날씨탓으로 유리 대신 방충망 만이 닫혀져 있어서, 창 깨지는
더러운 소음을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왼 손으로 받쳐 든 오른손
에 쥐어진 마가로프 소음권총이 제 역할을 하는데 지장없는 위치였다.
통나무 바리케이트 뒤 쪽으로 접근하고 있던 살레 역시 뒤 쪽 통나무
밑으로 위치를 잡았다. 사 십여 미터 떨어진 고목나무 위에서 PNVS로
상황을 엄호하던 파아잘이 야광판으로 OK사인을 보냈다.
총을 든 병사가 대응 사격을 할 수 있는 간격은 보통 빠르면 1-2초
정도다. 따라서, 현장 상황의 실시에 있어, 1차 사살의 시작과 마감은
1초를 넘기지 말아야 하며, 2차 확인 사살 역시 1초내에 끝내야 안전하
다. 1차 시작과 2차 마감을 2초 내에 완결 지을 줄 안다면 프로겠다.
"퓨슝!퓨슝!"
"커억! 컥!"
두 명의 목 부위를 겨냥한 1차 사살이었다. 간격없이 2차 확인 사살
로 이어졌다.
"퓨슝!퓨슝!"
죽어 가고 있던 두 병사의 이마에 덤덤탄(살속에 산탄처럼 파고들어
치사율이 배가된다.) 두 발이 추가로 적중되었지만, 이미 성대가 구멍
난 두 세르비아인은 아무런 소음도 만들지 못했다. 창 옆 맞은 편의 의
자에 앉아 있던 한 명은 목과 이마 한 복판에 덤덤탄을 한 발씩 맞았
고, 창 옆에 있던 한 명은 목과 머리가 옆 쪽에서 뚫렸다.
"퓨슝!퓨슝! 퓨슝!퓨슝!"
"억! 허억!"
초소에서의 실시와 동시에 실시된, 통나무 바리케이트 안에서도, 살
레가 저지른 상황은 비슷했다. 다만, 바리케이트 안의 두 시체는 뒤 쪽
에서 앞 쪽으로 구멍이 났다는 점이, 초소안에서 종료된 결과와 구별되
었다.
언덕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대포를 사수하는 또 한 군데의 반대편 바
리케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이동했다. 이동의 와중에서 잡담하던 보초
두 명을 잠잠히 제거했고, 반대편 초소에 무사히 접근했다. 현장 상황
은 조금 전과 비슷했고, 실시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사살의 시작
과 마감이 약간 더 빨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일한 상황에서의 반
복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제는 대포가 남았다.
카멜레온의 껍데기같은 나무 이파리 속에서 검은 전투복과 마가로프
를 지형에 감춘채 우측에서 접근해 갔다. 조심스러운 포복은, 정면을
겨누고 있는 대포의 아가리 밑으로 기어드는데, 성가신 문제점을 만들
지 않았다. 대포의 왼 편에서 기어든 살레도 자세를 잡았다. 오십여미
터 뒤쪽에서 저격 렌즈에 눈을 맞추고 대포 입구를 엄호하는 파아잘이
야광판으로 OK사인을 보냈다. 밧데리에 의지한 희미한 전구 불이 대포
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사각으로 반듯하게 뚫려진 구멍으로, 머리
통 두개와 마가로프 소음 권총을 따로따로 쥔 손 두개가, 동시에 파고
들었다.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에 얌전한 소음이 있었다. 오른쪽에서의
두 번은 내 것이었고, 왼쪽에서의 두 번은 살레 짓이었다.
"퓨슝!퓨슝! 퓨슝!퓨슝!"
"학! 컥!"
오른쪽의 졸다가 눈을 번쩍 뜬 한 명과 왼쪽의 자면서 그대로 영원한
잠속으로 빠진 또 한 명이, 목부위와 이마 한복판에 덤덤탄을 박고, 간
결하고 조용한 신음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이승에서 하직했다.
3-4분후, 약 이 백여미터 우측의 언덕위에 설치된 또 한 군데의 대포
아가리 밑에서도 나와 살레는 똑같은 소음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퓨슝퓨슝! 퓨슝!퓨슝!퓨슝!퓨슝!"
"큭! 끄윽! 헉!"
다만, 살레가 두 번 더 추가했고, 이번에는 오른쪽에 한 명 왼쪽에
두명, 도합 세 명이 출세(세상을 떠남)했다.
부대 바깥의 대포 기관포 곡사포 방어 초소들이 있던 다섯 곳의 장소
에서 PNVS(적외선 야간 투시경)를 착용해야만 알아볼 수 있는 적외선
야광 사인들이 반짝 거렸다. 소음없이 치루어 내야만 하는 1차공격은
실수가 없었나 보다. 이제 그다지 어려울 리 없는 철조망 안의 청소만
깨끗히 해주면 되었다.
나와 열 한 명의 동료들은 2차 공격계획에 따른 위치를 만들며, 자신
의 화기들을 점검했다. 위치 선정과 병기설치가 완료되었다는 신호가
떠올랐다.
진지 뒤 쪽의 언덕은 진지 내의 병사들에게는 잔인한 언덕이 될 것
같다.
언덕에서 정면 마이너스 15도 각도로 내려다 보이는 병영은, 스팅어
미사일의 웨이즈, 우지 박격포의 살레, 베셀, 파아잘, 아론, 그리고 나
를 포함한 네 명의 장거리 저격수에게는 너무나 편안한 위치였다. 게다
가, 석회질 성분이 많은 이그만 산의 카르스트 지형은, 저격수들이 가
장 좋아하는 `서서 쏴` 자세에 안성마춤인, 볼록한 바위에 가려진 오목
한 장소들을 드물지 않게 제공하고 있었다.
진지 중앙에서부터 눈대중으로 사백 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의 왼편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계로 정확히 측정해 보니, 가장 가까운 왼편 언덕
아래에 설치된 부대 왼쪽 철조망이 184미터 였고, 부대 왼편 중앙에
위치한 기관포 참호가 342미터 였으며, 정문초소 왼쪽의 망루가 437미
터였다. 이곳까지가 저격수로서의 나에게 할당된 영역이다. 내가 위치
한 곳의 100미터 오른쪽 언덕에는 파아잘이, 파아잘의 오른편 100미터
지점에는 베셀이, 그리고 가장 오른쪽 언덕에는 아론이 자리를 잡을 것
이고, 네 저격수의 전방 500미터 내에서 지름 3센티의 표적을 보이는
세르비아 병사는 죽게 된다. 네 저격수의 사정권 안에 부대 전체가 담
겨져 있었다.
스팅어 미사일의 웨이즈 역시 부대 뒤편의 언덕위에 자신의 중무기를
옮겨 놓았다. 베셀이 위치한 곳의 뒤쪽 500 여미터 떨어진 곳, 그러니
까, 부대 중앙 으로부터 800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웨이즈는 다단계 로
켓포, 중포, 헬기, 기관포, 막사, 순으로 미사일을 쏘아댈 것이다. 박
격포의 살레는 파아잘 뒤쪽 100 여미터 지점에 자리를 잡게 되겠다. 그
역시, 2차 공격 계획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참호들을 순차적으로 때릴
것이고, 부대 내에서 네 명의 저격수의 탄알을 가려줄 수 있는 모든 엄
폐물들을 가루로 만들어 놓고 말 것 같다. 언덕 아래 병영을 두르고 있
는 철조망내에서는, 어떤 벽도 미사일과 박격포에 견딜 수는 없을테고,
두 중화기 전문가들의 조준 또한 빗나갈 리 없겠다.
부대 앞 쪽의 내리막 200미터 지점에는, 중앙에서 차오룽이 캘리버
50으로 정문초소를 노려보기로 했고, 차오룽의 왼쪽 오른쪽으로 나머지
동료들이 분산배치 되어 철조망 주변을 겨누기로 했다. 부대 정면의 시
야를 차단하는 나무들을 세르비아 병사들이 이미 베어 버린 탓에 아마
도 나의 동료들은 손쉬운 사냥을 하게 될 것 같다. 뿌리채 뽑힌 나무
들이 남겨 준 오목한 구덩이들은 동료들에게 적당한 사격장소가 되겠
고, 그곳에 자리한 동료들이 나무들의 뿌리뽑힌 한(恨)을 갚아줄 지도
모르겠다.
"콰앙! 쿠앙!"
웨이즈의 미사일이 병영안의 다단두 로켓포를 때린 것을 시작으로,
살레의 박격포가 거의 동시에 왼쪽 기관포 참호를 박살냈다. 웨이즈의
미사일이 부대 오른쪽의 야포진지를 때리고 박격포가 부대 오른쪽의 기
관포를 때렸을 때, 비로서 내가 할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에 걸려 있는 라이플의 저격렌즈에 비해, 시야가 넓은 왼쪽
눈의 PNVS(야간 투시경)로 병사들을 찾았다. 허둥거리는 병사 하나가
PNVS에 걸렸다. 착시였다.
오른쪽 눈에 걸려 있는 저격 라이플의 적외선 렌즈를 병사에게 이동
시키고, PNVS의 왼쪽 눈을 감았다. 병사의 머리끝에서 슬며시 내려가던
지름 3센티의 원안에 병사의 치명적인 부위를 담았다. 조준이었다.
손가락을 가만히 당겼고 병사의 허물어진 이마를 확인했으며, 병사에
게서 불안한 공포를 해방시켜 주었다고 자위했다. 사살이었다.
저격렌즈의 오른쪽 눈을 감은 대신, PNVS의 왼쪽 눈을 다시 떳다.
착시-조준-사살, 착시-조준-사살, 착시-조준-사살...
사살과 착시의 간격은 3-4초, 착시와 사살의 간격은 1초.
네 명의 저격수들이 위치한 곳으로부터 500미터 안에 있는 병사들이
4-5 초마다 한 명씩 쓰러져 갔다. 웨이즈의 미사일이 막사들을 때리고
있어서 인지, 저격수들은 조금 더 바빠졌다.
착시-조준-사살, 착시-조준-사살, 착시-조준-사살...
사살과 착시의 간격은 1-2초, 착시와 사살의 간격은 변함없는 1초.
가만히 당기고 있는 여유로운 손가락이었지만,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
는 눈동자는 한가할 수가 없었다. 연이어 전해지는 어깨의 반동에 조준
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코프에 눈을 더욱 바싹 가져다 대었다.
진지내의 병사들도 이리뛰고 저리뛰며 발악같은 총질을 해대며, 깜박
이는 불꽃들을 열심히 튀기고는 있었지만, 반격이라고 하기엔 너무 애
처러워 보이는, 포위된 공포를 지우기 위한 겁먹은 푸닥거리 같은 것이
었다. 언덕 저편에서 고요히 날아드는 죽음의 알맹이에, 하나씩 죽어
가는 전우의 옆 모습은, 진지내의 병사들에게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공포 였을게다. 병영안의 중화기들은 이미 못 쓰게 되었고, 그들의 구
닥다리 소총만으로 열 두명의 군대를 겨눌 수는 없었다. 그저 날아가는
파리에 총질하듯이, 죽어가는 병사들은, 그렇게 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엄폐할 곳을 찾기도 했지만 살레의 박격포와 웨이즈의 미사일은
개미집을 쑤시는 개나리 작대기 처럼 그곳에서 그들을 죽이거나 뛰쳐
나오게 만들었다. 사방으로 흩어지며 공포에 발버둥치는 개미들을 네
명의 저격수들은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죽이고 있었다.
진지내의 개미 같던 병사들이 부대 정문쪽으로 도망해 보겠다고 애쓰
기도 하였지만, 부질없는 시도였다. 차오룽의 캘리버 50은, 정문쪽에서
쏟아져 나온 쑥색 군복들을 걸레조각 처럼 뚫어 놓았다. 몇 명의 운 좋
은 병사들이 저격수들의 시야를 벗어나, 부대를 둘러싼 철조망까지 접
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의 운은 철조망에 걸린 채로 넘어가 주지
를 못했다. 철조망 바깥에서는 G11에서 쏘아져 나오는 한발 한발들이
그들의 운을 정리해 주고 있었다.
사살과 착시의 간격이 다시 길어지고 있었다. 포위된 적들에게 가장
가공스런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살레의 박격포가, 미사일이 만들었던 구
덩이들을 이곳 저곳 다시 때리자, 몇 번 더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웨이즈의 미사일이 무너진 건물들을 재차 난도질을 해대었을 때, 역시,
몇 번 더 방아쇠를 당겨 볼 수 있었다. 도살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사격을 잠시 멈추고 왼쪽 눈의 PNVS자리에 시야가 훨씬 넓은 거리계의
파인더를 갖다 대었다. 무너진 통나무 더미들 사이와, 부서진 건물 구
석 몇 곳에 살아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완벽한 시체가 되지 못한 쑥
색 군복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맥주 캔만한 조명탄을 진지 중앙 하늘위로 쏘아올렸다. 부대안을 대
낮처럼 비추며 하강하는 불빛들이 이국의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지
면으로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착시-조준-사살, 착시-조준-사살...
간격은 필요 없었다. 정확한 조준으로 불편한 몸뚱아리들을 완벽한
시체들로 바꾸어 주는 작업이었다. 몇 명의 살아 남은 병사들이, AK소
총의 개머리판에 군복 상의를 벗어 걸고, 부대 가운데의 공터로 걸어나
왔다. 열 두명의 군대는 사격을 중지했다. 세 명, 네 명, 다섯 명...
기어 나오기도 했고, 부축 받으며 나오기도 했다. 패잔병의 수가 열 다
섯이 될때까지 10여분이 걸렸고, 30여분을 잠잠하게 더 기다려 주었지
만, 부대 중앙에는 여전히 열 다섯 뿐이었다.
착시-조준-사살, 착시-조준-사살.
사살과 착시의 간격은 1초, 착시와 사살의 간격도 1초.
잔인한 언덕에서 다시 시작된 사격은, 초침이 열번을 움직이기도 전
에, 가련한 열 다섯 명을 완전한 시체로 만들어 버렸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병영안의 수색은 수색이랄 것 까지 없었다. 부상
자도 없었고 생존자도 없었다. 오백여구의 시체들만 오로지였다.
열두명의 군대는 청부를 끝냈고, 이그만 산을 떠났다.
젤라스니카 산 밑의 숲 길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호물품 운반 트럭은
비워진 채로 열 두명의 군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을 대신 몰고 왔
던 회교계의 심부름 꾼들이 안내인 나단에게 몰려 들어 크로아티아 방
언으로 무엇인가를 묻자, 안내인 나단이 고개를 떨구어 흔들며 반복해
서 중얼거렸다.
"나하니아트 게로아 보이트 두다시. 니하니아트 게로아 보이트 두다
시..."
내가 의아해진 얼굴로 베고비치를 쳐다보자, 베고비치가 신음같은 통
역을 해주었다.
"지상에서 가장 잔인(殘忍)한 군대..."
전사(戰士)들의 탄알은 돈에 팔릴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전사들의
잔인(殘忍)은 돈으로 거래 되어 지지는 않는다. 오백이 넘는 대대 병력
의 세르비아계 병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몰살해 버린 잔인(殘忍)은,
육 백만불에다, 파편으로 찡어진 어린아이의 쓰라린 살점과, 어머니의
눈물을 보태 준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것이었다.
하지만, 전사들은 차원 높은 지옥에 가게 될 지라도, 잔인하기로 했
었다.
잔인(殘忍)은, 보스니아 내전은 물론 지구상의 어떤 전쟁에서라도,
고의적으로 민간인에게 포격을 한 깡패는 살아 남기 어려울 것이란 경
고였을 수도 있겠다.
그럴듯한 변명으로 세계인들에게 적당한 우연으로 위장하는데 성공했
을지라도, 민간인 포격이 고의적인 것이었다면, 전사들의 잔인(殘忍)
은, 단 돈 육 달러에 팔릴 수도 있을 것이고, 포격을 즐겼던 사람은,
죽어야 할 것이다. 이그만 산에서 흙이 되고있는 오 백여구의 주검들처
럼...
회교계가 전사(戰士)들의 잔인(殘忍)을 보았고, 세르비아계는 경험했
다. 그래도 지구상에 알아야만 할 사람들이 더 있다면, 알았으면 한다.
잔인(殘忍)은, 민간인 지역에 대한 고의적인 포격이라면, 팔릴 만한 것
이란 것을...
사라예보를 왼쪽으로 끼고 흐르는 사바 강변을 따라 회교 점령 지역
인 두브로부니크항까지는 트럭과 도보였고, 두브로부니크에서 비행 금
지 구역 밖인 부다섬까지는 쾌속정을 이용했다. 부다섬에는 회사에서
준비한 전세기가 마중 나와 있었고, 열 두명의 군대는 하늘을 날아 로
마에 무사히 착륙했다. 나는 로마에서 서울로 가는 하늘의 여객선 대한
항공에 몸을 실을 수 있었고, 좋아하는 아가씨들의 풋풋한 서비스를 받
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료수는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카트를 밀며 다가온 두 스튜어디스 양들의 생김생김이 좋았고, 그녀
들이 들려준 모국어도 반가왔다. 그리고 목이 약간 말랐다.
"있는대로 한 잔씩..."
"몽땅요?"
여인들의 활짝 웃는 얼굴을 마주보며 나 역시 상큼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부터 한동안은, 전사(戰士) `야마가따 사이찌`일 필요는
없겠다. 날렵한 오렌지 기사나 착한 과외 선생 `한 기석`이면 될 것이
다. 앞 좌석의 뒤에 붙은 받침대를 무릎위에 펼치자, 친절한 아가씨들
은, 한 잔씩, 한 잔씩 성의껏 따라주고 있었다. 고개숙인 그녀들의 목
덜미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내가 엉큼해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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