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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5 (아내)
사진설명: 여수 진례산(영취산) 진달래
“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
“ 때로는 보고파지겠지...
둥근달을 쳐다 보며는...
그 날 밤 그 언약을 생각하면서 지난날을 후회할거야 "
“ 산을 넘고 멀리멀리 헤어졌건만
바다건너 두 마음은 떨어졌지만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
사진설명: 춘천의 밤 하늘에 뜬 보름달
1970년 가을....
중추절을 맞아 고향을 찾았을 때 고향의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풍년을 맞은 고향의 농부들 입에서는
흥얼흥얼 콧노래가 흘러넘친다.
대부분의 농촌에서는 중추절을 전후해서 초등학교의 운동회를 열었고 동네 사람들은 연례행사인 운동회를
참관하기 위하여 명절의 일손을 놓고는 일 년 동안의 고달팠던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한껏 즐긴다.
가을풍경이 풋풋한 운동회 날은 또한 동네의 잔치이기도 했다.
중추절의 밤이나 운동회의 여운이 남아있는 운동회날 밤에는 여지없이 콩클대회를
개최하여 지역민들의 노래자랑이 시작된다.
그날만큼은 주변 동리의 주민들도 해당지역의 행사에 수 십리 밤길을 걸어서 노래자랑을 구경 하려고 몰려든다.
사진설명: 군대시절 야전무대에서 위문단을 유치하며 야전무대에서 노래 한 곡
서울에서 중앙선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는 콩나물시루와 같은 객차에 용케도 자리를 잡아
앉고는 선반위에 올려놓아도 되는 기타를 행여 부딪쳐 부서지기라도 할까하는 걱정에 차창 옆에 세워놓고 있다.
그 당시만 해도 기타가 그리 흔했던 시절이 아니기에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시절이다.
사진설명: 묵향의 뜰에 핀 금낭화
철커덕 철커덕 기차는 청량리의 프랫홈을 미끄러져 나오고, 고향땅을 밟을 몇 시간 후를 생각하며 승객들은 저마다
고향행 열차를 탔다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앞자리에 앉았던 중년의 남자가 말을 붙인다.
“ 어디까지 가세요? 기타를 치시나 보죠? ”
“ 네....원주까지 갑니다 ”
“ 아...그럼 지루한 시간인데...미안하지만 기타연주 좀 들려줄 수 있을까요? ”
“ 사람도 많은데 시끄러워 행여 실례가 될까 염려가 됩니다. ”
주위에서 이사람 저 사람이 괜찮다고 말을 걸어온다.
slow rock 에 속하는 패티 김의 <이별>을 연주하며 조용하게 노래를 불러간다.
객실 안에 있던 승객들이 점차 나누던 이야기들을 멈추고는 조용하게 기타와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느끼며
첫 곡을 마쳤을 때 박수소리가 이곳 저 곳에서 터진다.
머쓱해 하며 기타에서 손을 떼자 앵콜,,,하는 소리가 나온다.
사진설명: 묵향의 뜰에 심어놓은 난장이 달맞이 꽃
타향살이...고향역...울고 넘는 박달재... 주로 뽕짝이라 일컷는 트로트를 위주로 몇 곡을 불렀는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며 검표를 하는 역무원도 흥겨워 하며 지나가는 동안 어떤 이는 삶은 계란, 어떤 이는 오렌지 주스,
어떤 이는 오징어를 사서 주며 함께한 그 해 그 명절에 난 또 다른 횡재를 맞는다.
운동회 날 밤에 열린 노래자랑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고는 가마솥만한 양은솥을 부상으로 받고는 동네의 아가씨들
에게 아니...동네의 동생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한다.
기타가 흔하지 않던 시절, 농촌에서는 구경도 못하는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친구의 오빠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친구들과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존재를 알린다.
사진설명: 묵향의 화단에 자연으로 돋아난 일명 꿀꽃
“ 오빠~! 오늘 한턱 내셔야죠? 1등을 했는데...”
유난히도 고향을 찾으면 살갑게 굴던 내 친구의 동생이 하는 말이다.
넓은 사랑방에 내 친구 몇과 아가씨들이 꽉 들어 찬 한가운데에 앉아서는 추석의 음식들을
차려 온 친구와 동생 덕분에 떡이며 과자를 먹고 마시며 하하 호호 즐거운 밤이 깊어만 간다.
그렇게 기타를 치며 윤형주의 노래와 김세환의 노래 등을 불러가며 밤이 새는 줄 모르는 즐거움 속에 유독 배시시
웃음만 띄울 뿐 말이 없는 아가씨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의식하며 그저 모른 체 눈길을 피한다.
사진설명: 울타리 밑의 돌담 사이에 피어난 양지꽃
노란 가을국화와 같은 수줍음을 머금은 모습으로 간간히 그저 작은 미소만 지으며 다소곳이 요란하지 않은 자태가
좋았다.
훗날 아내가 될 친구의 동생의 모습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군대에 입소를 하여 6주의 훈련을 함께 받으며 같은 내무반 같은 침상에서 지냈던 친구의
동생이 바로 그녀이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2년, 군대생활 3년, 그리고 사회에서 1년을 사귄 사람이 바로 친구의 여동생인 지금의 아내이다.
6년여 동안 손목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연애를 해오면서 무엇이 그리도 좋았는지,
무엇이 그리도 그리움에 사무치게 했는지, 군 시절 단 일주일도 거르지를 않고 편지를 써가며 외줄 연애의 감정을
보냈던 사람이 바로 아내이다.
사진설명: 군시절 아내에게 받은 편지를 절친한 분대장과 대공초소에 올라 한가로이 읽고 있다
흑백사진 한 장을 수첩사이에 끼워 놓고는 달빛이 환한 밤 경계초소에 서서 희미한 달빛에 사진을 꺼내서는
한없이 들여다보던 사람...
보름달 둥글게 뜬 겨울밤 싸늘하게 식어가는 찬바람이 코끝을 에여도 캘빈 소총을 허리에 얹고는 검은 하늘에 뜬
쟁반 같은 달 속에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 추위도 지루함도 잊은 채, 어느새 경계근무 교대시간이 다가오곤 했던
그리움이 바로 아내이다.
아내....
아내란 말이 어떤 정의를 내리는지도 모른 채 젊음의 패기와 희망으로 아내란 이름을 짊어지고는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이것이 사랑이려니
그저 저것이 부부이거니 여기며 뜻 모를 인생살이에 몰두를 하며 살아왔다.
사진설명: 묵향은 155mm 곡사포 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대로 어머니가 보여준 대로 할아버지가 보여주신 가부장적 행위를 이어받은 그 가르침
<...니라>의 班常(반상법)에 물들여진 사고로 남자가 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최선을 다하며 自手成家(자수성가)에
박차를 가하는 고달픈 삶이었다.
내가 그리워했던 수많은 날들처럼 내 아내는 내게 그리움을 품었었을까...
가난한 자를 따라 힘든 삶을 살고자 아내의 길을 걷는 아내에게 난, 풍족치 못한 남자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겸손함으로,
훗날 왕비처럼 모시며 살겠다는 각오로 자신의 마음과 굳은 약속을 하며, 그 풍족하고 풍요로운 날들을 꿈꾸며
아내의 남자로서 최선을 다했다 마음 먹어 보지만, 늘 조금씩 미안한 마음이 저면에 틀어박혀 있음이 서럽다.
사진설명: 영취산의 진달래꽃 숲에서 아내와 함께 인증샷(새생명회 산악회)
부부라는 이름의 삶을 누리며 이어온, 그 수많은 날들에 얹혀 진 부부의 이름으로 쌓아놓은 삶의 업적들에
모두 만족하지 못함은 아내 역시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때로는 삶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을 눈물어린 날들이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아내의 자리가 벅차 뛰쳐나가고 싶었을 이별을 생각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라는 이름으로 가정을 이끌면서 가끔은 아내에 대한 아내의 마음을 읽어주는 배려
또한 삶의 틀 속에 끼워 넣지를 못하는 우매함으로 삶을 메워왔다.
아내란...
남편이란...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분명 아님인데...
그러나 아내와 남편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이 부부의 이치를 명확하고 틀림없이 이해하고 실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陰陽이란 그냥 끌리는 이치가 자석과 같은 자연의 법칙이요 과학적 논리이다.
-와 -는 씨앗을 잉태할 수가 없는 법칙이다
+와 +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同性은 결합이 불가능한 우주의 이치이다.
남과 여는 바로 +와 -의 관계임과 동시에 세상을 번식 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그러기에 사랑의 개념을 섞지 못하는 삶이 이어지지만, 하느님의 법칙에 의한 무의식의 결합이 바로 사랑이란 마음이
가득한 쌀자루 속에 든 쌀알과 같은 것이다.
운명과 숙명이 어울 어 진 삶의 틀에 묶여 여자의 길을 걸오 오고 가는 수만은 아내들의
속내의 아리고 쓰린 기억을 母性으로 인한 慈愛(자애)로 포용을 하는 것일 것이다.
반드시 존재해야 할 아내라는 이름 뒤에는 순종과 희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지만,
아내라는 이름 앞에는 분명 아버지 보다 더 높고 깊은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남편도, 자식도 그리고 부모도
안아 보듬어야 하는 거대한 산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내....
때로는 미움도 있었고
때로는 원망도 했었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목숨과도 같은 사랑의 마음이 가슴 한 가득 이었다고 넌지시 전하고 싶다.
사진설명: 묵향이 기르는 손바닥 선인장의 청초한 꽃
“ 하느님...
내게 주신 洪福(홍복)의 시간들이 모두 아내의 덕이었습니다.
내게 주신 吉凶(길흉)의 세월들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준 이가 바로 아내였습니다.
당신이 주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의 이름으로 아멘... “
사진설명: 중국 황산에 올랐을 때 운무에 휩싸인 소나무의 정경
*** 아내 ***
아내는 어머니였다.
축 늘어진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의기충천한 마음에 등 두드려 주는
아내는 어머니였다.
보채고 울어도 부끄럽지 않은 어머니였다.
아내는 천사였다.
갈대 같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앉아
바람에 날리지 않게 손잡아 주는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였다
성내고 도망쳐도 붙잡아 주는 천사였다.
어찌 아내를 탓하랴
때론 질책의 목청 높인들
어찌 아내를 탓하랴
내 마음이 늘 그랬듯이
아내 또한 내 마음과 같았을 것을
어찌 아내를 탓하랴
드높은 사랑인 것을....
사진설명: 중국 황산 정상에서 운무가 겉히고 난 직후의 모습
2013년 7월 11일 궂은비 주룩주룩 내리는 밤에
묵향: 글/사진
음악: 이별 /패티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