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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2월5일 주일오전설교
성경합독: 시편 125편
성경낭독: 마태복음5:17-32절
설교본문: 로마서10:1-3절
설교제목: 이스라엘은 지식이 없으므로 실패했다.
예배찬송: G시편 100편, G시편6편, 찬송58장, G시편134편.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7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1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이 행위를 의지함으로 실패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를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함과 열심을 가지고 의를 추구했지만,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를 추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망했습니다. 반면에 율법과 언약에서 외인이었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과 달리 이방인들을 어린아이와 같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영접했습니다. 그리스를 배척함으로 떨어져 나간 유대인과 달리, 이방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유업을 잇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의 의를 옷 입음으로 수치를 면한 것과 달리, 유대인들은 자기 의를 의지했다 부딪칠 돌에 부딪쳤습니다. 로마서9:31-33절에서 말합니다.
31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9장과 10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가 다룬 9:31-33절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실패의 이유를 오늘 10:1-3절에서 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부딪힐 돌에 부딪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약백성으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누렸던 그들입니다. 율법을 가졌기에 이방인들처럼 희뿌연 안개 속, 어둠에서 헤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살아갔던 그들이 왜 탈선했을까요? 왜 이스라엘이 실패했는지 10:1-3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요약합니다.
이스라엘은 지식이 없으므로 실패했다.
1. 이스라엘에 향한 소망 2. 지식이 없는 열심 3. 하나님 대신 자기 의
1. 바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소망했다.
바울은 1절에서 간절한 소망의 마음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여기에서 언급하는 ‘형제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동족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생명의 길, 유일한 구원의 은혜를 혈족들도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유독 동족들에게 미움을 받았던 바울입니다. 바울을 없이하고자 추격하는 이들도 전에 함께 했던 혈족들이었고, 형제들이었습니다. 증오와 미움은커녕 긍휼의 마음과 안타까움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한 때 잘못된 열심에 빠져 그리스도와 주의 백성들을 박해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리석음과 열심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한 간구이며, 소망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아 구원을 얻기를 갈망했습니다. 형제들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이 고집하고 있는 자기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기 의를 고집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일이 불가능함을 뜻합니다. 행위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약속과 율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깜깜하게 눈 멀어버린 이스라엘에 대한 안타까움은 이미 로마서9:1-5절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2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은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바울에게 그치지 않는 고통과 근심은 동족이었습니다. 양자됨과 언약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들을 가졌음에도,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유대인으로 나신 특별한 배려와 은혜 입은 백성임에도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눈 먼 작태 앞에 괴로웠고 슬펐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이 성취되고 새롭게 형성된 이스라엘 안에 동족들도 포함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예수 안에만 있는 구원,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부딪칠 돌에 부딪치고, 언약의 울타리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일까요? 바울은 보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살펴가기 시작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의 성취이심을 보지 못한 것인지? 왜 약속된 하나님의 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자기 의를 추구하는 일에 열심을 내면서 탈선해 버렸는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바울은 2절에서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른 지식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합니다.
2. 열심히 좇았으나 바른 지식이 없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에서 멀어져 버린 이유를 2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바울은 증언합니다. 이스라엘이 탈선한 이유는 열심과 수고가 있었으나, 올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었기에 망했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듣기에 충격적인 이야길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맡았던 민족이고, 율법을 가졌던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총량이나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지식에 따라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른 지식이 빠진 수고는 허망한 열매를 거둘 뿐입니다. 진리에서 떠난 열심은 자기 의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들의 열심은 선한 의도를 가진 것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다는 것을요. 하지만 칼뱅이 그의 로마서주석에서 잘 표현하는 것처럼 진리에서 떠난 선한 의도들이란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칼뱅은 말합니다. “선한 의도라는 저 헛되고 기만적인 변명을 집어 치우라.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자 한다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말합니다. “다리를 절면서 가더라도 옳은 길을 가는 것이 잘못된 길을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의 열심히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노력과 수고를 통해서 영생이 획득되지도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잘못되었다면, 더 악으로 기울어져 갈 뿐입니다. 유대인 거짓교사들이 열심히 모자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단들이 열정이 없어서 잘못되고 탈선한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의 열심을 그야말로 눈물겹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열심히 모자라서 그리스도를 대적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넘쳤습니다. 바울은 어떻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뜨거운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했습니다(행26:9-11). 예루살렘도 모자라 타국의 도성까지 핍박을 위해 달음질 했던 인물입니다. 마태복음23:13-15절에서 말합니다.
1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14(없음) 15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한 사람을 얻기 위한 열심히 특심입니다. 한 사람을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닐 만큼 노력하고 수고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얻으면 배나 더 저주 받는 지옥의 아들이 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거짓교사들을 열정적이었습니다(갈4:17, 18).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떨어내기 위해 열심을 내었고, 경건하고 진지하며 있는 정력과 힘을 다하여서 거짓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수고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열심들은 그릇되었습니다.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유혹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4:3,4절에서 경고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스승을 많이 두는 열심을 가집니다. 사욕 즉, 열심히 좇아 갈 것입니다만 바른 교훈에는 귀멀어 진리에서 돌이켜 달음질 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이 참된 복음에서 멀어져 망해간 것처럼, 교회들도 거짓복음에 마음을 빼앗길 때에 주의 생명과 상관없는 걸음을 하게 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이드존스는 그의 로마서강해에서 거짓된 열심의 특징을 11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 사람의 열심에 감동되어 좇아가는 열심입니다. 말씀에서 검증받지 않고 사람에게 감화 받아 쫓아가는 열심은 거짓 열심일 수 있습니다. 2.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열심이면 거짓 열심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3. 거짓 열심은 사람의 ‘존재’나 ‘됨됨이’ 보다, ‘일’과 ‘행위’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4. 진리의 지식보다 행동을 우선합니다. 5. 조직적이고 방법론이 탁월하고 구조가 또렷할수록 거짓열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6. 경박하고 육욕적인 데로 이끄는 열심입니다. 7. 자기 검증을 싫어하고 8. 가르침 받기를 원하지 않는 특징을 가집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있다고 말하지만, 지식을 좇아가기는 바라지 않습니다. 9. 진리보다 성공에 초점을 맞춥니다. 10. 균형이 결핍되어 경도되어 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한 가지에만 빠져 집중하는 경향입니다. 11. 쉼과 평안이 없습니다.
함께 참된 열심의 특징도 5가지로 설명합니다. 1. 참된 열심은 언제나 존재의 결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기질이나 사람의 특징을 따라 가지게 되는 외형적 열심히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자라난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참된 열심입니다. 2. 참된 열심은 언제나 진리의 복음의 파생물입니다. 바른 열심은 행동주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 활동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주의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분주한 종교 활동을 참된 열심과 혼동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가진 활동에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3. 참된 열심은 우직하고 끝까지 가는 열심입니다. 휘발유처럼 잠깐 확 피었다가 꺼져버리는 불같지 않습니다. 오래 견디고 쓸모 있는 섬김을 만들어가는 열심입니다. 4. 자기 확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흥분하지도 않습니다. 자신과 자기행위에 기초를 두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고전2:3) 하나님께 기초한 열심입니다. 5. 참된 열 심은 자기 의를 목표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고, 그 영광에 참여하는 생명으로 기뻐합니다.
70인 전도대가 주의 파송을 받아 사역하고 귀신들도 주의 이름으로 항복하는 것에 흥분했습니다. 전도의 열매를 가지고 기뻐 돌아왔을 때에 그들을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0:17-20절입니다.
17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일어나고 발생하는 일들로 인해서 기뻐하지 말고, 생명 얻는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7:22-23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열심히 노력했고, 수고했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 바른 진리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리에서 탈선한 열심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거짓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열정이 모자라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처럼 수고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향하여 살았던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 왜 실패했습니까? 바울은 지식이 잘못되었기 답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유는 구원 얻는 정확한 지식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원을 얻는 이름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떤 체험이나 사람의 노력과 수고, 도덕성의 특정 등급에 이르러서 구원받지 않습니다. 참된 복음의 지식,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지식을 몰랐기에 탈선했고 실패했습니다.
바른 지식은 구원에 필수요소입니다. 참된 믿음은 바른 지식을 반드시 포함합니다.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래서 죽고 사는 문제이고 사활적입니다. 설교는 진리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정확하게 틀림이 없이 바른 성경의 복음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 사람들의 여러 견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희마한 사람들의 관념과 교양을 전하는 일이 아닙니다. 정확해야 하고 분명한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 복음 설교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지식보다 느낌, 지식보다 활동을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성경교리보다 체험적 힐링과 치유, 행동과 성장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때입니다. 바른 복음의 지식에서 탈선함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바른 복음의 지식이 없음으로 생겨난 결과를 3절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 대신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함으로 실패했다.
율법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보여줍니다.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람의 행위규범으로 변개시키다 보니, 마음과 중심으로부터 일어나고 완전을 요구하는 계명을 사람의 전통과 행위규범을 졸렬하게 변개시켜버렸습니다. 3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의 복음이 상실되자, 하나님의 의의 요구에 눈멀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자기 방식의 의를 힘써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요, 생명의 길에서 탈선하는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바른 지식에서 떠난 결과가 바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쓰는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요구를 몰랐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들과 서기관들도 율법의 본의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 대신에 자신들이 정한 방식의 규범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결국 하나님의 의에서 떠나고 자기 의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으로 불리는 마태복음5-7장의 첫머리에서 주님께서는 팔복에 대해 말씀하시고 난 후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5:21-28절을 봅시다.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7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6계명과 7계명에 관한 이야깁니다. 유대인들은 살인하지 않음으로 6계명을 지켰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7계명은 간음하지 않는 행위적 규례로 다 지켰다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드러내신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소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요구 앞에서 절망하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붙들도록 이끄는 율법을 자신들의 의를 세우는 재료로 삼았습니다. 알기는 알되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의 육체와 행위를 의지하는 데로 빠져들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3장에서 자신도 예전에 하나님의 율법을 정말 다 순종했다고 착각했었음을 이야기합니다. 4-6절입니다.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도 여느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고, 육체를 신뢰했다고 말합니다. 바리새인의 열심을 가졌고, 율법을 준행함으로 의를 쟁취하려고 애썼다고 말합니다. 열심을 가지고 잘못되었다 판단한 복음을 비난하고 박해했다고 말하면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한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은 7-9절에서 고백합니다.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믿음으로 난 하나님의 의를 안 뒤에는 이전에 쫓았던 거짓된 열심을 해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배설물이요, 더러운 똥으로 여겼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깨달았기에, 소경됨에서 벗어났기에 더 이상 율법의 행위로 자기 의를 쟁취하는 눈멀었던 어둠의 행위를 버렸다고 말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의를 바르게 알았다면, 참다운 율법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힘써 자기 의를 추구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듣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끝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는 지금까지 잘못된 복음으로 인해서 현재의 교회들에서도 실패로 이끄는 무서운 열매들을 맺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살아갑니다.
가장 경건하다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위험들이 있습니다. 챨스 피니같은 부흥시대의 인물은 여러 사람들이 흠모했던 인물입니다. 제가 학창시절에 교회 선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둘 이었는데, 한 명은 사도 바울이고, 다른 하나는 챨스 피니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경건과 뛰어난 헌신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피니는 유대인들처럼 자기 의를 버린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붙든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요한 웨슬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모임을 만들어 경건함을 가지고서야 만족하고자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만으로는 족하게 여기지 못했습니다. 구원 얻는 의, 생명의 의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친히 선물로 제공하시는 의입니다.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고, 좋은 소식입니다.
이방인들은 이 은혜의 선물을 어린아이처럼 받아 수납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자기 의의 구조에 맞지 않은 하나님의 의는 도리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어린양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여호와께서 친히 예비하시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값없이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 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이 길 외에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주의 복음으로만 만족하고 누립니다. 이를 몰라 이스라엘은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의 만찬으로 나아갑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예비 하실 것을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로 오신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대속과 생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율법아래 나셔서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의를 부활로 증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로움을 얻으며,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음을 주의 만찬을 통해서 확인합니다. 보이는 복음을 먹고 마십니다.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시며, 우리를 보존하시며 생명의 양식으로 먹이시고 마시우심을 오늘 이 시간에도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며 확신합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의를 주장하며 실패한 것은 참된 복음의 지식이 없어서입니다. 우리는 오늘 참된 복음을 누리며 그리스도를 먹고 마십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우리의 의가 있음을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