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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까? 물 머금기
전 5:1-20(7)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화요일 아침 오늘의 번제, 하나님 말씀 함께 봅니다. 전도서 5장 말씀 보겠습니다. 1절부터 20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가운데 우리는 1절부터 7절까지만 같이 읽습니다. 1절부터 7절까지 같이 읽습니다.
시작.
①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②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③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④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⑤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⑥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⑦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까? 물 머금기’ 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우리가 읽은 7절에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말 귀가 따갑도록 듣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사실 많이 틀리지 않은 말일 거예요. 내가 이렇게 말해도... 누가 매일 매일 일상의 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고, 하나님 경외를 의식하고 있고, 제대로 실행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
하나님 경외가 겉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쉽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전도서 전체 주제가 되는 해 아래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 전체가 다 그 어늘 것 예외 없이 허무하다 라고 하는 그것이 주게 아닙니까?
근데 그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하나님 경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허무함이 없이 내가 행복감을 누리며 오늘 하루를 산다는 것 이것이 진짜 우리에게 바람이라면 그러면 하나님 경외를 하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 경외는 의외로 간단해서 물 머금기만 잘 하면 된다 이겁니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이 물 머금기 라는 말은 어디서 가져왔느냐?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수도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남편에 대한 불평을 털어 놓습니다. 날마다 남편과 싸우고 날마다 남편에게 구박받고 집안이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어서 그냥 당장이라도 헤어지고 갈라지고 싶지만 뭐 자녀들도 그렇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마지 못세 살고 있다. 이때 수도사가 그 부인이 하는 말을 잘 보고 있다가 부인을 나름대로 그 성품을 깨닫고 그리고 답을 내줍니다.
이 수도원에 아주 신비한 물이 있다. 그 신비한 물을 떠가라. 잔뜩 떠가서 남편이 말을 하고 시비를 걸고 트집을 잡고 화를 낼 때마다 그 물을 한 모금 머금어라. 그리고 그 머금은 물을 당장 마시지 말고 남편이 말을 다 끝내고 화가 나서 뭐 무슨 짓을 하건 물을 머금고 있다가 남편의 말이 끝나고 남편의 성질이 끝나거든 그 물을 꿀꺽 삼켜라. 그러면 온 집안이 평강할 것이고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인이 꿈을 안고 그 신비한 물을 한 동이 싣고 갔습니다. 가서 남편이 시비를 걸려고 하는데 확 대들려고 하다가 수도사의 말을 기억하고 얼른 가서 그 물을 따라서 물 한 모금을 머금고 가만히 있습니다.
남편이 욕합니다. 남편이 트집을 잡습니다. 남편이 네가 사람이냐 그럽니다. 남편이 막 때릴려고 그럽니다. 그래도 물을 머금고 가만히 있습니다. 신비한 물에 기대하면서.. 그러자 남편이 싱겨워가지고 말을 그칩니다. 그때 물을 꿀꺽 삼킵니다.
그 다음 날도 그렇습니다. 그 다음 날도 남편이 달려들면 물을 머금고 가만히 있습니다. 믿어보는 겁니다. 한번 이 신비한 물의 힘을... 그리고 꿀꺽 물을 삼킵니다. 물을 머금고 삼키고 물을 머금고 삼키고. 그 고약한 성격의 남편이 건드릴 때마다 물을 머금고 삼킵니다.
웬일 입니까? 이 주 지나, 삼 주 지나 근데 가정이 갑자가 평강이 찾아옵니다. 너무 편안해집니다. 만사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느껴집니다.
이게 웬일 입니까? 어, 진짜 신비한 물이지요!
여러분, 그 물이 신비합니까? 뭐가 신비합니까? 말을 하지 않는 힘이 신비한 것이에요. 말을 하지 않은 힘이 신비한 것이에요.
하나님 경외를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경외는 간단합니다. 물을 머금고 있으면 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또 말이라고 하는 건 여러분, 그냥 입에서 튀어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마음의 생각이 있으니까 말이 튀어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 생각의 형태가 걱정의 형태건, 기쁨의 형태건, 근심의 형태건, 불안의 형태건, 분노의 형태건, 질투의 형태건 어떤 것이든 간에 생각에서부터 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건 간단합니다. 내 생각이 물을 머금어 버리면 됩니다. 생각이 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내 앞에 와 계신 것을 느끼며 하나님이 침 삼킬 동안도 나를 잊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물을 머금어 버리면 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왜 우리가 말을 많이 하게 됩니까? 내게 주어진 현실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나옵니다.
내게 주어진 현실이 이렇습니다.
아, 그러면 이 상황은 너무 안 좋아. 이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이 상황은 너무 좋아. 이 상황을 유지해야지.
이런 생각에서부터 나오는 거지요.
생각이 다 뭡니까? 나의 현실을 주관해가시는 하나님과 다른 또 다른 주관자가 있다는 거예요. 뭐가요? 내가 생각한다는 게. 내가 말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말이 생각에서 나오니까.
같은 거지요. 내 속에 있는 말이 생각이지요. 겉으로 드러난 생각이 말이지요. 그렇죠?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이 현실에 대한 판단자가 두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싸우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현실을 못마땅해 한다. 그러면 이 현실을 주관하고 있는 하나님과 다투는 겁니다.
내 마음이 왜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과 염려만 있고 평강이 없느냐?
하나님과 다투니까... 그 잘난 능력의 남편과 다퉈도 한 집안에서 평강이 없는데, 천지를 지으시고 주관해가시는 내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된 하나님과 현실에 대한 불평의 마음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데 ‘이건 이러면 안돼!’ 이게 하나남과 다투는 거라는 겁니다.
내 현실이 이 꼬락서니가 뭐야! 이런 생각이 하나님과 다투는 거라는 거예요.
내가 판단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미래의 계획을 짜고 하는 것들이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지요. 제1 주관자 되시는 한나님이 계시는데 제2 주관자로 나서서 제1 주관자의 생각과는 상관 없이 내가 계획을 세웁니다. 다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날 때마다 어떡하나? 물을 머금으면 된다는 거예요.
물을 머금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 한 주 지나, 두 주 지나, 세 주 지나다 보면 내 가정과 내 삶 전반에 평강이 찾아오기 시작을 합니다.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하나님이 이끄시고 하늘에서 준비한 은촌으로 채워주시는 평강의 나날들이 시작된다는 거예요. 물만 머그면 된다는 거예요. 생각이 나려고 그럴 때. 뭐에 대해서? 현실에 대해서 생각아 나려고 할 때마다.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인간관계, 가족관계, 뭐 배우자, 부모님, 자녀, 형제, 뭐 회사직원, 상사, 부하직원 다 가족관계요 사람관계요 이게 현실을 이루고 있는 것들 아닙니까?
또 돈이 있다 없다 이런 것들. 또 건강이 좋다 나쁘다. 다 현실이에요.
이것에 대해서 내가 생각이 날 때마다 물을 딱 머금어 버려요. 그러면 하나님이 평강을 주신다는 겁니다. 너무 간단하잖아요. 이게 하나님 경외에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7절 마지막 보면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꿈이 많다는 것을 앞부분에서 보면 일이 많다고 그래요. 3절에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계속해서 같은 뜻이 반복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경외와 내 말이 많고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고 염려가 많은 것은 반비례한다는 겁니다.
하나님 경외합니까? 그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생각이 없습니다. 왜?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다는 것이니까.. 내 생각이 있고야 하나님의 생각이 어떻게 들어오겠습니까? 내 계획이 있고야 하나님의 계획이 내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계획과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물 머금고 내 생각이 멈춰져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 신비한 힘을 갖고 있어요. 내 생각을 멈춘다는 게...
오늘 1절에 보면 그 주제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무슨 주제요? 말을 적게 함르로 말을 죽임으로 내 생각을 없앰으로 하나님을 경외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헛되지 않은 복락을 누리게 해주실 것이다 해서 마지막 우리가 읽지 않은 부분에 보면 20절에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깉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뭡니까?
자기가 살아가는 나날들에 대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면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라.
하나님이 기쁠 수 있는 일만 주신다는 겁니다. 내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여러분, 본문을 한번 자세히 한번 봅시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하는 말이 나옵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 경외에요. 하나님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우리 생각은 물을 머금어야 됩니다. 그런데 함부로 나가서 우리의 생각을 내뱉어버립니다. 하나님 앞에. 그걸 구해 달라고.. 그래서 발을 삼가라고 합니다.
발을 삼간다는 것은 우리가 걸어서 하나님 집에 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집에 가기 위하여 가는 발걸음을 조심해라. 함부로 다가가지 말라는 거예요.
어떻게 하고 함부로 다가가지 마요? 아직도 내 말을 키우고 있고 내 생각을 키우고 있고 내 계획을 키우고 있고, 내가 긍정적인 사람 긍정적인 요소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갖고 있고 이런 상태로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는 거예요. 발을 삼가라는 겁니다.
발을 삼간다는 얘기가 모세의 소명 이야기에서도 나오잖아요. 이제부터 신발을 벗어야 된다. 너! 왜, 왜 그래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야 되기 때문에 모세의 생각은 없는 겁니다. 모세의 생각대로 살았던 이제 과거가 80년 생애가 끝나지요.
이 모세 소명 이야기나 이렇게 발을 삼가라, 너의 행사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게 하라.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신걸이 나무 말씀 드린 기억이 나요. 옛날에 조선시대에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 고갯마루, 한 언덕을 통해서 마을과 마을이 경계를 이루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예를 들어 춘향이를 뒤로하고 이도령이 한양으로 남원에서부터 출발해갖고 과거시험을 보러 갑니다. 그러면 보통 그 남원에서 한양까지 그때 당시 짚신으로 말하면 한 15켤레의 짚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그 짚신을 봇짐 뒤에다 주렁주렁 매달고 가다가 한 마을을 지나게 됩니다. 마을을 지나서 고개를 넘어서 다른 마을로 들어가게 되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름을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수지마을에서 분당마을로 넘어간다 그러면 고개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 고개를 넘기 위해 그 고갯마루에 섰을 때 나무가 반드시 한 그루 서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거기서 신발을 벗고 다른 새 신발을 신고 가야 되요. 그리고 그 신발을 고갯마루 나무에다 걸어 놓습니다. 이게 신걸이 나무거든요?
그 이유가 뭡니까? 이쪽편의 마을을 지배하는 신명이 있어요. 그리고 저쪽편 고개 저쪽편의 마을을 지배하는 또 다른 신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쪽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신의 영역에서 적응되었던 그 신발은 저쪽 마을에서는 저쪽 마을을 지배하는 신의 영역에서는 거역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용납되지를 않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신을 벗고 새신을 신고 가야 됩니다. 그래야 탈없이 그 여행길을 지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거예요. 물론 미신이지요. 이쪽 마을을 지배하는 신이 누구며 저쪽 마을을 지배하는 신은 누굽니까? 미신이에요. 다 하나님께서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분명히 다른 영적 존재가 지배합니다. 누굽니까? 하나님께 대항하고 있는 권세 잡은 자 공중 권세잡은 자 마귀가 지배하고 있어요. 마귀가 지배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가장 독특한 방법이 뭡니까?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를 하나 들면 돈을 숭배하게 합니다.
뭐, 교회에서 문제가 많지요. 그 궁극적인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면 다 돈이에요. 제 말 안 믿어지지요. 여러분? 난데없이 봉사생활 잘 하고 신앙생활 잘 하던 장로님이 목사님의 흠집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거 왜 그런지 알아요? 십중팔구는 십일조 생활 안하고 헌금생활 제대로 안 하는 장로님들이 목사 흠집 잡기 시작해요. 그거 참 이상해요. 뒤가 구리면 근데 그 뒤가 귀린 이유가 뭐냐면 다 돈에 관계된 거예요. 자긴 몸으로 때운 내나? 몸으로 때워요.
헌금 돈이 없으면 못하는 거지요. 누가 뭐라 그래? 한 마디도 안 해요. 근데 자격지심 때문에 다른 사람 헐뜯기 시작하다가 목사 헐뜯기 시작하더라구요.
돈 문제예요. 깊이 들어가보면 다 돈 문제야. 뭐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뭐 하나님을 위해서 다 그러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교회 나와서 기도하고 봉사해요? 밑을 캐보면 돈 땜에 그래요. 혹시 돈 좀 더 잘벌릴까. 아니라구요?? 내 말이 맞을 거예요.
오늘 1절에 보면 우매자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이렇게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참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거의가 돈 문제야. 마귀가 그렇게 지배하고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발생된 문제로 인해서 내 계획이 생기고, 내 불평이 생기고, 내 마음이 생기고, 내 소원이 생깁니다.
근데 그 상태대로 이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돈이다, 일류대학이다, 아름다운 몸매다 이런 식의 세상의 가치관으로 지배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가 그 생각, 그 계획, 그 뜻, 그 불평, 그 식으로 살고 있다가 거기에 적응된 신발을 신은 채로 하나님께 나와서 그대로 그 생각과 말을 발설해버립니다.
내 돈이 없는데 이래 가지고 살겠습니까?
내 미모가 이 모양 이래갖고 시집이나 가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공부를 했으니까 일류대학 들어갈 수 있겠지요? 이러고 대듭니다. 하나님한테...
완전히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우리를 이끌어가고 우리를 학대하고 우리를 장악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가치관들을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인 채로 하나님께 나와서 교회가 어떻게 부추기느냐? 그걸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긍정의 힘으로 이룰 수 있고, 바라봄의 법칙으로 이룰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네가 원하고 있는 공중 권세 잡은 자의 귀신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가치관의 바램 가치관에 의한 판단 이것들 다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겁니다.
하나님 경외가 아니라 하나님 학대에요. 인내로 참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학대릭요 이거는... 핍박입니다. 하나님 핍박입니다.
하나님께 나올 때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더 낫다. 이거 뭐 사울에게 사무엘이 한 말 아닙니까?
여러분, 제물이 뭐예요 제물?
이스라엘의 제물. 구약 성경에 나오는 제물은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찢기신 몸과 피를 예표적으로 이룬 것이에요.
그럼 그 제물의 특징은 뭡니까?
동일시입니다. 동일시. 내가 양을 바친다 그러면 양과 내가 동일시 되어야 되요.
근데 우매한 자, 하나님 경외에 대한 생각이 의식이 움트지 않은 자들이 어떻게 하느냐? 제물을 드리는데 나와 동일시 해서 내가 죽는다고 하는 생각으로 제물을 드리는 게 아니라 나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제물을 드립니다.
귀신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가치관에 완전히 찌들어있는 나 자신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사업 잘 돼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자식이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내가 건강하게 장수해야 된다라고 하는 강박관념 이런 것에 싸잡혀가지고 그 날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제물 바치고 헌금하고 신앙생활합니다.
이게 우매함이라는 거예요.
기독교가 말하는 제물이 뭡니까?
내가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의 가치관에 찌들어 살 수 밖에 없어요. 사람이랑 살다보면 보고 듣는 게 마냥 그거니까.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께 나올 때는 제물을 들고 나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그렇게 공중 권세 잡은 귀신이 지배하는 영역 내에서 내게 파고 들어와서 나를 장악한 모든 가치관 그리고 그 가치관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나를 송두리째 제물로 바쳐버린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말을 하면 전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귀신이 가르쳐준 그 가치관에 지배된 말만 나오는 거예요. 그 가치관에 지배된 말만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모든 은혜의 산물들을 마귀는 어떻게 바꾸었냐? 하나님을 제외해놓고 그것을 추구하도록 만든 거예요. 하나님을 제외해놓고. 먼저 그것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이 주실 것에 먼저 사로잡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찾으라는 거예요. 마귀가 하나님 찾지말라고 그러지 않아요. 순서만 바꾸라는 겁니다.
먼저 돈으로 마음을 채워놓고 그리고 하나님 찾으면 돈도 벌릴꺼야. 이게 마귀의 설교에요. 마귀의 설교... 먼저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을 다 가져라. 마음에 소원해라. 그 닫음에 하나님 찾아라.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거야. 이게 바로 마귀가 하는 설교라 이겁니다.
순서가 다에요. 하나님을 먼저 모셔 들이고 하나님이 내 삶에 들어오셔서 제 1이자 제 마지막의 주체자가 되셔야 됩니다. 내 인생에 대해서...
그분만 말하시고 그분만 생각하시고 그분만 계획하시면 되는 거예요.
나는 그 계획을 듣고 그 생각을 듣고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경외이지요.
그러므로 발을 벗어요. 발을 삼가요. 함부로 이 세상 귀신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에서 통용되는 가치관에 먹힌 상태로 함부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마구잡이로 구하지 마요.
그러면 처음에 얘기했던 에피소드에서 그 수도사가 준 신비한 물이 우리에게 뭡니까? 하나님이 우리 앞에 와 계십니다. 하나님이 앞에 와 계시기 때문에 발을 삼가야돼요.
발을 삼간다는 게 뭐지요? 내 속에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귀신이 가르쳐 준 가치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말을 삼간다는 거예요. 그 말을 삼가기 위해서 뭘 해야 됩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생수를 머금어야 된다는 겁니다. 생각이 날 때마다, 내 걱정이 날 때마다, 내 염려가 날 때마다...
그러잫아요. 평강한 삶을 이루는 사람 하나님 마음에 기쁜 일을 허락하셔서 그런데, 이 사람은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나날들의 일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20절에. 그냥 하나님이 주시는 분복대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제가 돈 얘기 했어요. 그렇죠? 그 돈에 대한 언급이 오늘 본문에 그대로 나와요. 10절부터. 돈을 많이 벌어봤자 자기가 쓰지 못할거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이 자기에게 해가 될거라는 얘기를 10절부터 하고 있는 거예요. 10절 11절 12절에 보면.
왜? 그 돈이라는 게 이 세상 귀신이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서 가장 첫 번째로 내세우는 가치관이고 방법이니까. 가장 강력한 쇠사슬이니까요. 거기에 묶여가지고 우리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사는 거예요.
현실이 부족하다. 짜증난다.
왜 그래요? 돈이 없어서...
자식보고 공부 잘 하라고 그래요. 왜 그래요? 돈 벌어야 되니까.
왜 교회에서 불평불만이 많아요? 내가 돈을 잘 벌고 사업이 잘 되면 하나도 문제가 없어요. 교회도 문제가 없어요.
불평불만이 생기는 건 직업 없이 교회를 들락거리는 분들이 일을 다 만들어내요. 짜증나거든. 그리고 목사는 경제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나도 안 하는데 돈 받고 살아요. 이게 괜히 약 올라요.
다 돈 문제에 연결되어 있어요. 마음이 다...
남이 돈 쓰는 것 보면 약 올라요. 괜히.. 내 돈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 돈 문제에요.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과 돈을 나란히 세워놓고 누구를 선택할래? 물으신 겁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길 수 없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 옆에 올 수 있어요? 하나님 옆에 오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재물이라는 게 우리가 그만큼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묶여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경외하면 허무함이 없고 나날이 평강을 살 수 있습니다. 돈 번다는 얘기는 못하겠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받아요. 오늘 5장 잘 읽어보세요. 여러분?
그 18절부터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주시는 대로 받아 누리는 게 돈이라는 거예요. 재물이라는 겁니다. 주시는 대로 받아요. 그리고 자꾸 살다보면 듣고 보는 게 그런 거니까 이 세상 귀신이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발을 삼가야 되요.
이때 하나님 경외 어떻게 합니까? 주님의 십자가 생수를 머금는 거예요. 그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기억하는 겁니다. 머금고 있다가 그 생각이 자자들만 하면 나가서 일하는 거예요. 일하는 동안에도 계속 십자가를 머금고 있어요.
그래서 내 발을 삼가고, 내 말수를 줄여가고, 내 생각을 줄여가는 겁니다. 자꾸 내 생각을 줄여가는 게 하나님 경외에요.
내 생각 많은 거, 말 많은 거, 계획 많은 거, 불평 많은 거, 근심 많은 거 하나님 경외와 반비례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 경외아 반비례로 가면서 행복하기를 바랍니까? 천만의 말씀 안 되지요.
주님의 십자가 생수를 머금읍시다!
뭐 할때? 생각날 때, 불평날 때, 근심날 때, 걱정날 때, 짜증날 때.
말 수를 줄여요. 하나님께 받은 말이 아니면 가능한 하지 맙시다. 그러면 하나님 경외가 이루어지고 허무함이 없는 행복으로 꽉꽉 채워진 아주 옹골차게 실답게 채워진 하루하루를 살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경외를 위한 첩경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우리 주님을 마음에 기억하며 물 머금듯이 머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생각을 줄이고, 말을 줄이고, 불평과 걱정과 판단을 줄일 때에 하나님 경외가 이루이지고 우리의 하루하루가 행복함으로 꽉꽉 다져 채워진 복된 나날들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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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