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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가
박이화
모르긴 해도 수로부인이 좋아했던 꽃은 아마도 그런 꽃일 걸? 때때로 몽유병자마냥 이 남자 저 남자 품 홀려 다닌 긴 철쭉처럼 벌건 대낮보담 밤꽃같이 혼몽한 안개 속이 훨씬 더 만만했을 걸? 그렇다면 당신 오늘밤 어때요? 수천 만 번도 넘는 마음의 월장 감감히 눈 감아 줄, 불빛보다 새기 쉬운 통정의 비밀, 밤꽃 향기처럼 슴벅이며 슴벅이며 빨아들일 안개, 흐벅진 밤, 당신 내게 잠시 들러 천정에 목맨 등불 꺼주고 가시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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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자들은 감히 상상조차 어려운 일.
그믐달, 담장이라도 넘고 싶은 생각이 모닥불처럼 피어오르는 보름날 밤.
헌화가의 시대적 배경에다 이 시대 물질문명에 익숙한 여성의 시간여행기가 아닐까? 헌화가는 수로부인이 지금의 강릉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어떤 늙은 노인이 절벽의 꽃을 꺽어 바친 노래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박이화 시인의 시 헌화가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수로 부인이 그 꽃을 꺽어 바치는 노옹의 위치이며 꽃을 꺽어 바치는 노옹이 바로 발칙한 화류계 여인의 위치가 되는 바, 이 시를 읽어가며 점점 껄덕지근한 야동소설같다는 기분에 빠지는 것이 무엇일까? 흐벅진 밤이란, 당신, 오늘밤 어때요? 되묻지만 그게 우리네 욕망의 일장춘몽임을 시인은 밤꽃처럼 피워되는 것은 아닐까? - 너무 과하면 혼몽한 삶처럼- 모르긴 해도 수로부인이 좋아했던 꽃이 이 남자 저 남자 품 홀려 피는 통정의 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 시의 마지막 그 여인의 목소리가 타인의 마음을 훔치려는 이 시의 제목 - 그 헌화가일 것 같기도 하다. 수천 만번 나를 벗어나고 싶은 그 월장을 누군들 꿈꾸지 않았으랴. 그러니 이 시의 마지막 천정에 목맨 등불 꺼주고 가시지 않겠어요란 말에 정신이 버쩍, 든다. 시인의 노래만큼 세상 만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