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어린 배움터가 새터전(구 해룡남초등학교)으로 이전해 오면서부터 해창슈퍼와 만나게 된다. 시내를 오가는 중에 마주치는 자그마한 시골점방이다. 내게는 가끔 담배를 사러 들렀던 곳이었지만 초창기 배움터엔 밤늦은 시간의 먹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었고, 지금도 출출한 시간이면 라면과 막걸리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곳이다.
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있는 든든한 후원인이기도 한 그녀와 배움터교사는 이미 언니, 동생의 연을 맺은 듯 대화에도 정이 묻어난다. 주인장 아주머니와 조그마한 가게가 인연이란 틀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학부모풍물패로 출발해서 현재는 마을풍물패를 지향하는 사랑어린 풍물패에 공연제안이 들어왔다. 배움터와 그러저러한 인연이 있는 해창슈퍼가 조그만하게 새터를 마련해 이전을 했는데 우리손으로 정성껏 터밟이를 해드렸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나는 쉽게 그러자라고 대답했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쉬운 대답이 나왔을까?
작년에 마을잔치를 위해 두어달 연습을 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간 손놓고 있다가 새로이 마음을 모아 활동을 시작한 사랑어린 풍물패는 겨우 한차례 모여서 소고춤을 연습하는 단계인데도 나는 "예~!"하고 대답하고 있었다.
9월 9일 사랑어린 풍물패-이후 사풍-2차모임에서 당시는 연휴주 토요일(9월 21일)로 예정된 그 행사에 대한 상황을 설명드렸는데 토요일은 연휴 중간이라 시간을 내기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가 강했다.
마음 모이는 만큼만 하자란 생각에 향후 진행될 구체적인 사항은 문자로 알려드리기로 하고 참석가능하신분들 중심으로 참석하자란 말로 마무리했다. 연습을 마치고 나오며 잠시 통통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요일날 당신이 학교에 나오니 낮에 학교에서 만나서 구체적인 사항도 점검하고 저녁에는 모여서 풍물을 맞춰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중간에는 두더지와 몇몇 선생님들과 같이 사전답사 겸해서 찾은 해창슈퍼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맛난 라면을 맛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와 이야기 나누면서 추석명절연휴 마직막날인 일요일 2시에 터밟이 굿판을 벌이기로 하였다.
아주머니가 "난 뭘 준비하꼬?" 하시길래 두더지가 손사래를 치신다.
"우리가 다 준비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말이다.
그러면 술과 안주는 당신이 내시겠다며 그날 몇명이나 오는지 물으신다.
9월 13일 금요일 학교를 찾은 통통과 만나서 당일 굿판에서 필요한것들을 점검하였고 저녁엔 참석가능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길놀이와 문굿 등의 연습을 하였다. 우리가 주로 치게 될 가락은 삼채라고도 하고 자진몰이 또는 덧뵈기 등으로 불리우는 가락과 이채인 휘몰이 가락이다. 제법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뛰어다녔더니 기분이 맑아진다.
상당히 긴 명절연휴를 나름 알차게 보내고 드디어 해창슈퍼에서 만나기로 한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일찌감치 그동안 넣어두었던 치복을 꺼내서 다림질도하고 고무신도 씻고 두엄자리에서 통통샘과 같이 꼬깔과 깃발을 가지고 왔다. 명절기간에 시간을 내서 연습을 북연습을 하시곤 했던 너구리이 표정엔 여유가 느껴지고 썬그라스를 쓰고 나타난 스컹크의 미소도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진주에서 예림아빠도 오늘 행사를 위해 달려오셨으며 브라보도 구슬댕댕이도 은하수와 현승맘까지 얼굴들이 환하다. 살림방에 활기가 가득찬것 같다.
모두 모이고 통통이 준비해오신 치복을 입고 삼색띠를 두르고 보니 전문꾼들이 부럽지 않다.
쇠-다슬기, 징-예림아빠, 장고-통통, 북-스컹크, 너구리, 브라보, 소고-은하수, 현승맘, 구슬댕댕이로 자연스레 자기가 잡고싶은 악기를 잡아 정했다.
그동안 준비된 수북, 기초가 탄탄한 수북 등의 유행어을 남길만큼 스컹크와 너구리의 수북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서 어떻게 되나 지켜보는 묘한 마음이 있었는데 줄을 세우고보니 스컹크가 수북자리에 서 있다. 어라 이렇게 쉽게 정해지는구나싶어서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썬그라스를 쓴 터라 스컹크의 얼굴표정은 읽기가 어려웠지만 정황상 당연이 이자리가 내자리라는 표정이다.
너구리도 얼굴에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짓는다.
한바탕 연습에 흥이 한껏 오른 우리는 악기를 챙겨 트럭 위에 올라탔다.
"오픈카로 가는거야?" "야~ 신난다."
트럭이 기분이 좋은지 씽씽 달린다. "나도 나름 오픈카야~" 하고...
먼저 고사상을 준비하고 계시던 구랑실이 반갑게 우리들을 맞아주신다.
수박꽃의 지도를 받으며 꼬깔 쓰고 해창슈퍼 간판 앞에서 기념사진 한컷!
동네 한바퀴 길놀이를 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손사레를 치신다.
당산나무에 가서 소리를 울려 고하고 복을 한가득 안고 슈퍼 앞마당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터밟이의 시작이다.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얼씨고나 절씨고나 지화자 좋다! 추임새도 내질러본다. 하지만 내눈엔 무언가 덜 발산된 무언가가 아쉬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지껏 놀아나 보셔요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제법 슈퍼 앞마당에 배움터 손님들로 둘러싸여 분위기도 잡혔으니...
"좋은날 좋은 자리에 모였으니 어디 치배별로 개인놀음이나 하고 놀아볼자!" 나부터 덩실덩실 춤을 추어본다.
다음치배인 통통이 화려한 개인기에 박수가 쏟아졌다.
즉흥 개인놀음에 북잡이들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러나 이런 무슨 조화인가? 잠시 스치듯 엿보았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신명난 발걸음에 힘차게 울려퍼지는 북놀음은 좌중의 마음을 흔들고도 남음이 있다. 참 재미진 판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잔치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어진 판은 소고춤이었는데 얼씨구 그간의 맹훈련의 덕분일까? 춤이 몸에 스며들어 소리로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사풍에 이렇게 끼가 있는 우리가 모였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넉넉하다.
그렇게 흥을 올리고나니 처음과 다른 기운들이 감싸고 돈다. 동네집들의 창문사이로 동네사람들도 구경하시고...
"쥔쥔 문여소 문안열면 갈라요. 문여소 문여소 문안열면 갈라요"
갠갠 갠지갱 갠지갠진 갠지갠
갠지갠 갠재갠 개갠갠지갠지갠
두어차례 주인장과 줄다리기를 하고서야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들고 있던 삼지창모양의 깃발도 길을 열어준다.
"자~ 문이 활짝 열렸으니 우리가 몰고온 온갖 복은 가득 안고 휘 들어갑시다."~
"그럽시다~!"
갠지갠지 갠지개갱 개갠갠지 갠지개갱~
우리가 그랬듯이 아이들에겐 이날이 추억속 한 장면이 되리라 싶다.
갠지갠지갠지갠지...
쇠, 징, 북, 장고, 소고의 소리로 가게안 곳곳을 누빈다.
사람들 발걸은 이어지고 머무르는 복된 공간 되어주십사고 우광쾅콩 엉마깽깽 지잉~~!
얼마간을 두드렸을까? 치배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가득하다.
손수건에 물이며 술이며 드시고 하라고 권하신다. "예!예! 아이구 고맙습니다!"
이제 우리는 고사상 앞에 둘러섰다. 가게안에 풍성히 차려진 상차림에 정성이 가득하고 두더지가 절을하고 주인장도 복을빌고 식구들이 돌아가며 절을 올린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을까? 와온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네분이나 오셨다. 이렇게 복된 손길들이 이어졌고 드디어는 고천문이 살림위원장님의 육성으로 울려퍼진다.
하늘에 아뢰는 글
유세차 단기 4346년 계사년 구월 스무이틀 해날,
순천 해룡면 너른 벌 입구, 끝없이 푸른 하늘아래, 앵무산을 뒤로하고 순천만을 바라보는 들녘에서 하늘님께 고합니다.
하늘님이시여!
해창슈퍼를 해룡의 너른 벌 초입 이곳에 일찍이 당신의 뜻대로 세우셔서 오가는 길 벗의 쉼터로 만드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지요. 더욱이 계사년 만물이 풍성한 한가위 즈음하여 바로 당신의 뜻이 있어 바로 옆으로 새터를 옮겨 다시 한번 해창슈퍼의 동무들과 함께 감사를 올리니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즐거이 웃음을 나누게 하옵소서.
일찍이 해창슈퍼를 해룡마을과 와온 해변의 입구에 두어, 우리 동네 소통의 공간으로 되게 하시고 멀리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길 안내자 되게 하시고 더불어 외로운 나그네 잠시 마음을 내려 놓고 쉬어 갈수 있게 하는 쉼터로 만드셨나니 이 그 온기와 정성이 지나가는 길 벗의 손길을 타고 널리 흐르게 하소서. 하늘이 뜻한바대로 새로운 터젼으로 옮기어 하늘과 땅, 산과 바다, 오곡백과와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한판 신명나게 살아가는 자연을 이루게 하옵서.
이 자리에 함께한 해창슈퍼의 벗들과 인연들 모두 그 뜻을 잘 받들어 불인으로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평화롭고 행복을 이루길 간절히 비옵나이다.
상향.
2013년 9월 22일
해창슈퍼의 새터를 하늘에 고하는 날 함께하는 모든 이들.
덩기덩기덩기덩기... 타오르는 고천문의 불꽃을 따라 휘모리 가락이 이어지고 타다 남은 신명을 몰아 한바탕 놀고 나서야 굿판은 끝이 났다. 참 신나는 시간이요 공간이다. 이곳 저곳에서 잔치판이 벌어지고 가지고 온 음식과 주인장이 정성껏 장만한 음식으로 부족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미리 풍물을 친다는 이야기를 못한터라 뒤늦게나마 마을회관을 찾아 사정을 말씀드리고 인사도 드렸다.
이제 잔치를 마무리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마음이 푸근하다.
해창슈퍼 아주머니도 방긋 웃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