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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신앙, 개천 통해 용 나기
(미 5:1~15)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메시아 신앙, 개천 통해 용 나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개천에서 용 나기’라고 하는 것, 뭐 뜻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피부에 닿게 예를 한번 들어보면, 배우들 중에 여러분 그 꽃 중년이라고 별명을 붙인 남자배우 다 아시죠,
윤 상현 씨, 인기가 굉장합니다.
근데 이분이 이렇게 카메라에서 정말 주목을 받고 드라마나 영화 속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끌게 되는 이 상황만 보면,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근데 그 분의 전직을 살펴보면 모 여대 앞에서 그 왜 라면팔고 떡볶이 파는 조그마한 분식점 있잖아요? 그런 거 하셨다 그래요.
그리고 페인트공도 하시고 또 뭐 옷장사도 하시고 여대 앞이었으니까 아마 거기서 옷 장사 하셨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리고 베트남 같은 데서는 거의 국빈대우를 받고 있는 김 남주 씨 있잖아요?
그분도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스타 아닙니까?
근데 경기도 평택인지 안성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마는 그 조그마한 시골도시의 한 동사무소 여직원이었다고 합니다.
하~ 그거 참, 이런 거보면 막 희망도 생기고 우리도 뭔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원 빈 씨도 정비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고, 톰 행커스 있잖아요, 그분도 호텔 벨 보이였다고 그러죠?
브래드 피트는 어느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닭 분장을 하고 손님들 호객행위를 하는 그런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개천에서 용 나기’에요 ‘개천에서 용 나기’
근데 오늘 이 본문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시면서 그것과 연관되어서 예수님 메시아 되시는 그분이 이 땅에 오시는 사실과 연관 되어서 메시아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신앙적 본질까지도 함께 예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태어나시는 것에 대한 예언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읽은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 같아요.
‘에브랏이라고 하는 족장이 살았던 마을이다’라는 그런 뜻인데 또 에브라다 자체는 ‘풍성한 열매’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여간 이 옛 이름과 함께 써서 베들레헴 너 옛날에 에브라다라고 불렀던 곳이여,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다시 말하면 개천이라 이겁니다, 개천.
근데 그 개천과 같은 베들레헴 그러니까 인구가 다운타운과 주변 흩어져 살고 있는 외곽의 인구를 다 합쳐도 1000명이 채 안 되는 1000명 미만의 고을이었다고 그래요.
촌락이지요. 아주 작은 촌락, 누구에도 관심을 받을 필요가 없는 그런 촌락이었는데 바로 거기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여기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혈통의 자손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교회에 소속될 모든 권속들을 다 가리키는 거지요.
‘그 모든 권속들 선민의 왕이 될 자가 왕이 너희에게서 태어날 것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거지요.
여러분, 용이라고 하는 말이 성경적으로 보면 나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사탄을 의미한다든지, 그래서 이 속담이 조금 마음에 거슬릴 수 있습니다만, 이게 비유에요, 비유.
용이라고 하는 게 이게 동양에서 상서로움의 극치를 상징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등용문이라고 하는 것도 용문, 용문에서 올라가는 어떤 숭어 그것이 바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말하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두고 하는 얘깁니다.
비유라고 하는 것은, 이건 좀 옆으로 지나가는 얘깁니다만 우리가 읽은 8절에 보면은 메시아 신앙을 갖고 있는 자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사자에 비유하고 있어요.
이 사자라고 하는 것은 베드로서신에 가보면 ‘우는 사자와 같이 사탄이 우리를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 ‘우리를 삼키기 위해서 돌아다닌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사자가 선민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한 것처럼 그런 얘기를 쓰는 거니까 마음에 걸려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비유에요 비유.
어쨌든 베들레헴은 개천입니다.
근데 그곳에서 온~ 인류 중에 선택 받은 자들을 다스리실 왕 중의 왕이 태어나신다는 거예요.
이게 개천에서 용 난 거지요.
근데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하고 끝내려고 하다 보니까 2절에 뭐라고 토를 다느냐 하면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개천에서 태어나서 이제 온~ 인류역사의 마지막까지 태어날 모든 선민을 다스리시는 왕으로서의 예수님이 출현하시게 될 것이라는 것까지만 보면, 개천에서 용 난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데, 근데 그 예수님의 근본을 따져보니까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시점부터 시작하시는 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베들레헴에서 ‘응애~’하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이 시작이 아니라 그의 근본, 그의 출신, 그의 뿌리를 살펴봤더니 영원 전부터 시작이 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작이라는 말이 없지요, 영원에는.
영원 속에서 그 뿌리를 두고 계시는 분이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개똥밭에서 인물 난다’ 같은 뜻 아닙니까?
이렇게 말을 바꿔서 말하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분께서 개천 같은 곳에 개똥밭에서 태어나셔 가지고 인물이 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시간의 흐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흘러가는 이 시간의 흐름 밖에 있는 영원의 세계 속에서 인물이 되신 상태에서 계셨다가, 개천을 통과해서 이 세상에 출현 하셨다 이 말입니다.
개천에서 출발해서 개천에서 태어난 지렁이가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용이 되서 승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승천해 계신 말이 안 되죠?
하늘에 계신 분께서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개천을 통해서 오히려 이 땅에 태어나시게 됐다는 거예요.
개천을 통해서 용이 나타나신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러면 왜 메시아의 출현이 이렇게 베들레헴이라는 개천을 통해서 영원의 세계로부터 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게 되었을까요?
이 시간 안에 들어오셔서,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활하시던 그 예수님의 마지막 지점이 바로 이 땅의 발자취의 마지막 지점이 십자가입니다.
그리고는 부활하시고 하늘로 다시 올라 가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가, 개천을 통해서 나타나시고 일을 하시다가 다시 본래에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신 겁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길을 내신 것이에요, 메시아가 길 내신 거예요, 길 내신 거.
십자가를 마지막 지점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지막 지점에서부터 모든 인간은 선택 받은 사람이라면, 그들은 마지막 지점에서부터 거꾸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길을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자들입니다.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개천 중에도 너무너무 열악한 개천이지요, 이 땅에서.
그 개천을 통해서 용이 나타나는 것이에요, 용들이 나타나는 것이에요. 하늘로 올라가는 용들이.
주님께서 개천을 통해서 원래 인물이셨던 분께서 이 땅에 출현하심으로써 이 땅에 태어난 지렁이와 같은 야곱, ‘너 지렁이 야곱아’ 그러시지 않습니까?
지렁이와 같은 야곱 선민들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진짜 용이 되는 그런 현실들을 실제로 은혜로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자, 이 사실이 파격적인 혁명을 우리의 삶에 일으켜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개천에서 용 났다는 것은, 개천이라고 하는 상황에 일단 집중이 돼야 되요.
우리의 주위가 이목이, 그리고 그 상황에서부터 정말 강물, 대하와 같은 상황으로 바뀌어 나가는 걸 말합니다, 실제로.
인물이 지렁이에서 용이 됐다고 하는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느냐?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냐? 아! 저 사람이 용이 됐구나,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냐?
동회 사무소의 여직원이었던 김 남주 씨가 베트남에서 국빈대우를 받는 스타가 된 그 현상에서 파악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현상에서.
그런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내 현실이 이렇게 개천 같으니까 이 현실이 바뀌어서 대하가 되요, 큰~ 강물이 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그래야 내가 용이 되는 거니까 인물이 되는 거니까 이 세상 기준으로 보자면, ‘그렇게 가자’ 이게 아니라는 거예요.
메시아 신앙을 통해 선민 안에 포함되어진 사람들은 이미 인물이 된 것이에요.
이미 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계신 그 하늘에 승천한 자들로서, 마음이 주님께서 내려오신 길을 거꾸로 올라가서 십자가로부터 그 길을 올라타 가지고는 거꾸로 올라가서 이미 인물이 된 사람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사는데, 그 말을 오늘 어떻게 비유를 하느냐 하면, 기가 막힌 표현을 써요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이 말은 많은 백성 가운데, 지금 다 숨겨져 있어요, 선민들이.
어떤 사람들이 메시아가 하늘에서부터 베들레헴을 통해서, 개천을 통해서 이 땅에 출현한 길을 거꾸로 올라가서 하늘로 올라가게 될 자들인지 알 수가 없어요.
지금 뭇 백성들 이방인들 사이에서 숨겨져 있는 상태로 자기도 모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십자가복음을 던져보면 거기에 발 올려놓는지 안 올려놓는지를 보면, 선민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다는 거예요.
십자가 복음을 던져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이 땅에서 당신의 개천 같은 현실을 큰~ 한강물 같이 멋진 환경으로 만들 것이냐?
포기해라! 포기하고 이제 이 땅에서 바뀌어 질 것을 포기하고 하늘로 올라가자!
이 땅을 마음에서 버려라! 이 땅에 대해서 죽자! 그게 십자가사건 아닙니까?
그 십자가를 전해 봤을 때 그 십자가에 턱하고 마음으로 올려놓는 사람들이 선민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 많은 백성들 가운데 지금 숨겨져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메시아 신앙은, 십자가에서 발을 들여놓자마자 십자가로 끝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그 길을 거꾸로 올라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미 인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 세상에 모든 황제들의 꿈이 천자에요, 천자.
하늘의 아들로서 인정받는 거였습니다.
모든 권력과 모든 재물과 그 나라 안에서 있는 모든 좋은 것이라는 건 다 available한 자기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황제들의 마지막 꿈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 주는 거였습니다.
천자가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메시아 신앙은 우리 모두를 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놓여 져 있는 상황이, 개천이든 뭐든 상관없이 전부 천자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께 경쟁이 없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도 메시아 신앙의 특징이에요.
왜 그래요? 이 땅에 내려오신 하늘이기 때문에 그 하늘에 우리 마음을 얹어놓을 경우에 이 땅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서 모든 사람이 가는 바람에 경쟁이 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우리는 이미 그 봉우리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하늘에 마음을 얹어놓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쟁을 하려고 할 거리가 없다는 얘깁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에요, 메시아 신앙을 갖게 되면 그 길을 거꾸로 가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셨던 길을 거꾸로 올라가는 자들입니다, 천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아직 메시아 신앙을 안 갖고 있는 거예요.
이 땅에서 황제들이 이루고 싶어 했던 그것, 황제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봉우리를 말합니다.
지금의 대통령보다 더 높아요.
근데 그 황제들의 꿈이 뭐였냐 하면 천자인데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에 마음을 얹어놓자마자 바로 그 천자가 된 겁니다, 인물이 된 것이에요.
이미 인물이 되었어요.
근데 내 몸이 살아 있지요, 그럼 어떻게 살아갑니까? 이제부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어제로부터 시작해서 오늘을 살고 내일을 향해 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은, 많은 백성들 가운데 숨어있던 남은 자들이 선민으로서 드러나고 발탁되고 확증 되게 될 때에, 그때 이 사람들의 삶은 어떠냐?
이슬과 같고 단비와 같다 이런 얘기입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이슬과 같고 단비와 같다’ 그러면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요, 7절에 보면 ‘이슬과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 한다’라는 말을 해요.
다시 말하면 아침에 나가보면 이슬이 내려있습니다.
또 단비가 내립니다.
이슬이 내리고 단비가 내릴 때 그 어떤 이슬의 어떤 한 방울도, 단비의 어떤 한 방울도 사람에게 묻고 ‘내가 내려갈까 말까’라고 묻고, 사람으로부터 이 땅에 내려오는 이유를 찾고 내려오는 단비는 없고 이슬이 없습니다.
그냥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것이에요.
마찬가지로 이미 메시아를 통하여 메시아 신앙을 통하여 하늘에서 천자가 됨으로써 인물이 되어 진 사람들은 이 땅을 어떻게 사느냐?
이 땅에서 말과 행동의 이유를 전혀 찾지를 못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이슬이 내리고 단비가 내리듯이 이 땅에 임하는 자들이라는 얘깁니다.
내가 어제 개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늘은 이무기가 되었다, ‘이제는 개천에서 벗어나서 큰~ 개울이 되어서 이제 이 개울에서 벗어나서 한강과 같은 대하가 되고 황하와 양자강 이런 큰~강이 되어야지’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영원의 세계 시간 바깥에 있는 영원의 세계로부터 이슬이 내리고 단비가 내리듯이 이 땅에 오늘 이 현실 속에 베들레헴과 같은 이 개천 속에 태어나는 것이에요.
개천 속을 통해서 삶으로 나가는 겁니다, 이슬처럼 단비처럼.
그 어떤 이 세상의 상황도 내가 삶의 행동과 말을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에요.
내가 자식을 야단칩니다.
자식이 이유가 되는 게 아닙니다.
난 자식이 어떤지 엄밀하게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식의 행동에 대해 아무 판단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내려 보내신다, 이슬과 단비가 내려오듯이,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말을 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너희를 향하여 판단해서 할 말이 무지하게 많다 그러나 나는 오직 아버지께서 내 입에 담아주시는 말씀을 너희에게 전할 뿐이다 아버지가 진리이신 줄을 내가 안다’
그렇죠, 우리도 이 세상에 할 말이 많아요, 세상에 대해서.
그러나 메시아 신앙으로 인물이 된 자들은, 이 땅에 이슬처럼 단비처럼 내려서 이 땅의 상황이 비판 받을 만해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이 땅이 이유가 되서 말을 하고 행동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말을 하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겁니다.
자, 그러면 내가 메시아 신앙을 갖고 그 근원이 메시아가 예수님이 영원의 근원을 두신 것처럼 나도 영원에 근원을 둔 자인가 아닌가, 이 세상에 아직도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인가 어떻게 압니까?
우리 마음을 살펴보면 알아요.
내 마음이 지금 기분이 좋고 안심이 됩니다.
그 안심이 되는 이유를 잘 살펴보세요, 뭐지요?
아! 통장이군요, 돈이 두둑하게 들어있는 통장.
아! 안심이 되고 마음이 기뻐요? 어디서부터 마음이 출발을 한 겁니까?
이슬처럼 단비처럼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그 하늘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평강한 겁니까?
오늘 본문에 평강이라고 그러잖아요? 평강, 예수님께서 평강이라고 그랬어요.
왜 영원에서부터 시간으로 들어오신 분이라서, 그래서 우리를 우리의 마음을 시간의 흐름에서 빼내서 영원으로 올려 보내시는 분이니까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분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평강과 안심의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메시아가 오시면 무슨 일을 하시느냐?
10절 이하에 여러분 가만히 집에서 읽어보세요!
10절에 보면은 네 군마와 네 병거를 부순다는 얘기가 나와요, 그리고 11절에 보면은 견고한 성을 무너뜨린다는 얘기가 나오고, 12절에 보면은 점쟁이를 없앨 것이라는 얘기가 나와요.
이게 다 무슨 말입니까?
10절에 군마와 병거를 없앤다는 것은, 그 당시 나라와 나라사이에서 침공을 받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안심하려면 군마, 말을 많을 키우고 기마병을 많이 양상을 해 냈습니다.
그곳에서부터 마음이 출발해서 안심하고 살아갑니다.
또 두 번째, 견고한 성읍이 있어요, 견고한 성읍, 견고한 요새.
그 견고한 요새에서부터 출발해서 마음이 안심을 합니다.
선민이라 그러면 하늘에서부터 출발해서 안심을 했어야 되지요.
하늘에서 출발해서 단비처럼 이슬처럼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평강을 유지했어야 되지요.
근데 이 땅에서 기마병을 의지하고 기마병에서부터 출발하고, 견고한 요새에서부터 출발하고, 점쟁이를 없앤다고 그래요, 점쟁이가 뭡니까?
미래에 대한 보장에서부터 내 마음이 출발해서 안심을 하고 있어요. 그
러면 아직도 메시아 신앙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내 상황은 베들레헴 개천이에요 개천, 돈도 없습니다, 기마병처럼 안심할만한 무슨 기댈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미래도 보장되어있지 않습니다.
근데 평강해요.
이걸 뭐라고 비유하냐 하면, ‘사자와 같다’고 비유해요.
8절에 ‘사자와 같다’ 이 세상을 이기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내 마음에 염려와 불안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들, 돈 없고 견고한 요새 없고, 기마병 없고, 미래도 불확실하고 이럴 때, 하늘의 평강으로 사는 자들을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해요.
그래서 사자 같다고 비유를 한 겁니다, 왕이에요 왕.
이 세상에서 왕이 되는 이유는, 내가 돈을 많이 벌고, 내가 성공하기 때문에 왕이 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없으면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염려할 모든 것들에 관계없는 평강을 누리기 때문에 사자 같다고 표현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메시아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삽니까?
이슬처럼 내려서 사자처럼 뛰는 자들이 메시아 신앙을 가진 자들이에요.
이슬처럼 내린다는 것은 ‘이 땅에서 내 말과 내 행동과 내 마음의 움직임에 이유가 되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이슬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처럼, 이 땅의 그 누구에도 허락 받고 먼저 양해를 받고 내려오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것처럼, 메시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모든 말과 행동과 마음의 상태는, 위로부터 내려와서 이 땅에서 사는 것이다’
근데 사자같이 산다 이거에요, 사자같이.
이 땅에 그 어떤 사람을 걱정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는 그 어떤 요소도 결코 메시아 신앙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먹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사자라고 비유를 한 것이지요.
주님께서 개천을 통해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일무이한 그러한 인물로 출현하셨습니다, 개천을 통해서.
그러므로 통해서라는 말은, 이 세상은 통과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궁극적인 목표도 될 수 없고 우리가 ‘잘 살아봐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현장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세상은, 통과하는 지점입니다.
우리도 그 예수님께서 통과하신 지점을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이 땅에 내려올 때, 이 땅의 현실이 개천이건 강이건 상관없다는 거예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도 어차피 여기에 휩쓸려 갈 사람이 아니니까, 이 시간의 흐름에 딸려갈 사람들이 아니고 매달려서 하늘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니까.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주님께서 영원의 세계로부터 시간으로 들어왔던 그 길을 거꾸로 올라갑니다.
우리는 개천에서 태어나서 용이 되도록 노력할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십자가 메시아 신앙을 통해 용이 된 사람들로서, 이 땅에 이슬처럼 내려서 이 세상의 모든 조건들 앞에서 사자같이 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내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개선해야 될 과제로서의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시고, 단지 영원의 세계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아버지의 집과 이제부터 이루어져야 할 이슬처럼 그리고 단비처럼 실현되어야 할 하나님의 뜻 사이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하늘에서 인물이 된 우리들이 이 보잘 것 없는 베들레헴과 같은 개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자들로 나타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안.젼.놀.ㅇㅣ.ㅌㅓ. 추.천.합.니다.
Z. M. M. 6 .9 닸.켬 (추,천,인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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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킬, 올ㄷㅏ이, ㅇㅣ벤.트.중입ㄴㅣㄷㅏ. 단/폴 ( 50 ) 모ㅂㅏ~일ㄱㅏ~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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