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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二會
一次 普光明殿(六品) 十信分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中 辨因
卷 第十三
九, 光明覺品
1. 부처님의 깨달음이 뛰어남을 나타내다 1
(1) 부처님이 두 발바닥으로 백억 광명을 놓다 1
(2) 인간 세상이 나타나다 1
(3) 부처님의 8상(八相)이 나타나다 1
(4) 여러 천상이 나타나다 2
(5) 부처님의 법회가 나타나다 2
(6) 법회에 온 보살대중과 보살대중들의 이름 3
(7)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4
① 이치를 어긴 손실을 나타내다 4
② 이치를 보는 이익을 나타내다 5
③ 이치를 보는 이익을 나타내다 5
④ 부처님과 법을 평등하게 보다 5
⑤ 부처님과 중생을 평등하게보다 5
⑥ 오온(五蘊)을 평등하게 보다 6
⑦ 세간과 출세간을 초월하다 6
⑧ 마음을 내되 내는 바가 없다 6
⑨ 중생은 본래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다 7
⑩ 하나와 무량(無量)이 둘이 아니다 7
2. 깨달음의 인과(因果)를 나타내다 7
(1) 광명이 동방으로 열 세계를 두루 비추다 7
(2) 세존이 사자좌에 앉으셨다 8
(3) 미진수 보살들과 함께하다 8
(4)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9
① 깨달음의 인(因)을 나타내다 9
② 깨달음의 과용(果用)을 나타내다 9
③ 중생들에게 부처님과 같아지기를 생각하게 하다 11
3. 깨달음의 여러 가지 상(相)을 나타내다 12
(1) 광명이 동방으로 백(百) 세계를 두루 비추다 12
(2) 세존이 사자좌에 앉으셨다 12
(3)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13
① 덕(德)이 충만함을 표하다 13
② 부처님의 여러 자기 상(相)을 표하다 13
4. 깨달음의 체성(體性)을 나타내다 15
(1) 광명이 동방으로 천(千) 세계를 두루 비추다 16
(2) 세존이 사자좌에 앉으셨다 16
(3)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17
① 자비와 지혜를 함께 갖추다 17
② 세 가지 덕(德)이 안으로 원만함을 표하다 17
③ 성품에 의지한 자비의 작용을 표하다 18
5. 깨달음의 인행(因行)을 나타내다 19
(1) 광명이 동방(東方)으로 십천(十千) 세계를 두루 비추다 20
(2) 세존이 사자좌에 앉으셨다 20
(3)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21
① 큰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다 21
② 지혜를 닦는 업을 밝히다 21
③ 몸의 실상(實相)을 관(觀)하다 22
④ 중생을 평등히 관하다 23
⑤ 큰 작용을 밝히다 23
6. 부처님의 위덕(威德)을 나타내다 24
(1) 광명이 동방(東方)으로 백천(百千) 세계를 두루 비추다 24
(2) 세존이 사자좌에 앉으셨다 24
(3)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25
① 법신(法身)을 표하다 25
② 지혜의 몸을 표하다 27
7. 안과 밖으로 포섭하는 덕(德)을 나타내다 28
(1) 광명이 동방(東方)으로 백만(百萬) 세계를 두루 비추다 28
(2) 세존이 사자좌에 앉으셨다 28
오늘은 동화사 한문 불전 승가대학원의 화엄경 강의가 제 25강째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짝 열어놓고 마쳤죠?
오늘 하실 페이지가 29쪽부터 되겠습니다.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3)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그때 온갖 곳에서 문수사리보살이 각각 부처님 계신 곳에서 동시에 소리를 내어 이 게송을 말하였다.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3)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그때 온갖 곳에서 문수사리보살께서 각각 부처님 계신 곳에서 동시에 소리를 내어 이 게송을 말하였다.
거기서 이제 게송이 열 가지가 나오게 되는데
앞에 다섯 게송은
이 불법은 정말 불가사의 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뒤에 다섯 게송은
그 불가사의한 데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방편을 제시해서 보이는 부분이 되겠습니다.
먼저 이제 불법의 불가사의한 것을 찬탄하면
먼저 누구를 밝혀야 될까요?
불법의 주체인 부처님을 먼저 밝혀야 되겠죠.
그래서 제 1 게송은 부처님을 바로 곧 바로 밝히게 됩니다.
① 佛法 不可思議
如來最自在하사
超世無所依하시
具一切功德하사
度脫於諸有로다
① 불법(佛法)의 불가사의함을 찬탄하다
여래께서 가장 자재(自在)하사
세상을 뛰어넘어 의지함이 없으시며
온갖 공덕을 갖추사
모든 세간을 제도하시네
① 佛法 不可思議
如來는 最自在하사
超世無所依하사
具一切功德하사
度脫於諸有로다
① 불법(佛法)의 불가사의함을 찬탄하다
여래는 어떠신 분이냐?
여래께서는 가장 자재(自在)하시어
이 자유자재하다는 말은
정말 그 두 날개를 가지고 스스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남의 도움을 받아서 이래 날으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죠?
그런 것을 자유자재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세상에 다른 잡다한 것을 빌려서 힘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 正等正覺을 이루셔서
자유자재를 해탈에 열반 증득하신 분이라 이런 말씀입니다.
세상을 뛰어넘어서 의지함이 없으시다.
온갖 공덕을 갖추시어
그러니까 부처님을 흔히 표현할 때
歸依佛 兩足尊
복덕과 지혜가 圓滿具足 하셨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안쪽으로 내비돼 있는 지혜가 바깥으로 빛을 발할 때는 자비가 돼서
度脫於諸有로다
모든 세간을 다 제도하신다.
우리는 흔히 이제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같이 계 모임 하고
마음에 안 들면 즉시에 안 보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러니까 이런 데서
모든 세간을 제도하신다는 말씀이
지역색을 탈피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하게 되는데
우리는 사람이 미운 사람이 오면 이렇습니다.
현재 저 사람이 내게 아무 잘못도 끼치지를 않는데도 불구하고
옛날에 내한테 미운 행동을 한 번 섭섭하게 했기 때문에
지금 보는 즉시 어떻습니까?
계속 미워집니다.
그 사람의 이미 지나간 과거인데도 계속 미워합니다.
그리고 또 좋아하던 사람은 지금 또 보면 설렙니다.
지금 형편이 그럴 형편도 아닌데도 막 설레거든... ㅎㅎ
이게 이제 그때 우리는 공부인이니까
'아! 내가 지금 살아가는 것을 전부 과거로 살아가고 있구나!'
그렇게 알기는 알고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데
즉시에 사로잡힙니다.
미운 놈 있으면
절대 그 자리에 앉았다가도 밥도 안 먹고 나가버립니다.ㅎㅎ
그 미움을 견디지를 못하죠.
이미 지금은 밉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죠?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다 초탈하셨기 때문에 참 불가사의하죠.
度脫於諸有로다
정말 쓴맛 짠맛 단맛 가리지 않고
모든 중생을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다 도탈시킨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흔히 다른 말로는
無不知나 已捨라
이렇게 표현하시죠.
한 번 따라 해보십시오.
無不知, 알지 못하는 게 없다.
그렇지만 已捨, 이미 已이자, 버릴 捨사자,
이미 다 버렸다.
제대로 적멸의 세계를
생멸을 없애고 적멸한 것이 아니라 적멸마저도 없다는 것을
체득하신 분이 되니까
꿈속에서 가위 눌려가지고 헛소리하는
모든 중생들을 다 제도시키는 것이
부처님의 공덕이자 역량이다고 하는 말씀이
여기서 바로 부처님은 이러한 분이다.
그러니까 이 불법은 정말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한 번 앞에 언급을 하고 들어갑니다.
이제 그렇게 이해해놓으면 내용이 쉽겠죠?
無染無所着하시며
無想無依止하사
體性不可量이나
見者咸稱歎이로다
때도 없고 집착도 없으시며
생각도 없고 의지함도 없으사
체성이 한량없으나
보는 이가 다 찬탄하도다
無染無所着하시며
無想無依止하사
體性이 不可量이나
見者가 咸稱歎이로다
때도 없고 집착도 없으시며
생각도 없으시고 또 의지함도 없으사
생각이 없다고 하는거는
번거로운 생각, 이런 뜻입니다. 그죠?
다 모두 생각이겠지만
생각 자체가 사람을 번거롭게 합니다.
체성이 한량이 없으시나
보는 이가 다 찬탄하도다
光明徧淸淨하시며
塵累悉蠲滌하사
不動離二邊하시니
此是如來智로다
광명이 두루 청정하시며
번뇌를 다 씻어 제하사
움직이지 않은 채 이변(二邊)을 떠나시니
이것이 여래의 지혜로다
光明이 徧淸淨하시며
塵累悉蠲滌하사 ( 蠲견 ①
塵累를 다~
덜 蠲견자입니다. 덜 견자
若不觸矜약불견긍이면 誠難輪過니라
하는 치문 구절 있죠.
모든 번뇌의 때를 다 씻어 제거해가지고
不動離二邊하시니
此是는 如來智로다
움직이지 않은 채
舊來不動名爲佛
이변(二邊)을 다 떠나시니
유다 무다 또 생사다 열반이다
이와 같은 것을 다 떠나셨다고 하는 것이죠.
있다 없다 이런 邊을 집착하는 것이 이제 하나도 없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여래의 지혜로다
우리는 그렇지 않죠.
拈一放一이라.
하나를 잡고 또 하나를 놓고
그렇게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죠.
부처님께서 할 수 없이 이제 법문을 하실 때
以楔逐楔이설축설 하신 것 (楔설: 문설주 쐐기)
쐐기로써 쐐기를 뽑아내듯이
앞에 쐐기 잔 쐐기 있으면 뒤에 굵은 쐐기를 뽑아내고 뽑아내고
그렇게 방편을 쓰시기는 하지만
그러나 二邊을 떠난 자의 그냥 피치 못해서
중생을 위해서 쐐기로써 쐐기를 뽑아내고
조사의 설법은 어떻다 합니까?
마치 활 시위줄과 같이 직설로 얘기하고
부처님의 설법은 활과 같이 곡선으로 말씀하신다고
이렇게 흔히들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부처님께서는
二邊을 다 떠나신 이후에 방편으로써 중생을 위해서
그와 같은 모습으로 설법을 하시죠.
若有見如來가
身心離分別이면
則於一切法에
永出諸疑滯로다
만약 어떤 이가 여래를 보고
몸과 마음에 분별을 떠나면
온갖 법에서
모든 의심을 길이 벗어나리라
若有見如來가
身心離分別이면
則於一切法에
永出諸疑滯로다
만약 어떤 이가 여래를 보고
몸과 마음에 분별을 떠나면
온갖 법에서
모든 의심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니라
一切世間中에
處處轉法輪하사대
無性無所轉이시니
導師方便說이로다
온갖 세간 가운데
곳곳에서 법륜(法輪)을 굴리시나
성품도 없고 굴리는 바도 없으시니
도사(導師)의 방편의 말씀이로다
一切世間中에
處處轉法輪하사대
無性無所轉이시니
導師가 方便說이로다
온갖 세간 가운데
곳곳에서 법륜(法輪)을 굴리시나
성품도 없고 굴리는 바도 없으시니
도사(導師)의 방편의 말씀이로다
굴리시는 바가 왜 없겠습니까만 단지 뭡니까?
앞에 나왔죠.
집착이 없고 오직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그때 그 방편을 현시했기 때문에
그것 지나면 때는 또 다시 없는 것이죠.
코흘리개를 위해서 할 수 없이 수건 있잖아요?
그걸 앞에 달아줄 뿐이죠.
그 시절 지나면 앞에 있던 제 앞에 붙어 있던
코수건이 어디 가버리고 없어요.
그때만 필요한 것이라.
그런데 평생토록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하도 많죠.
강을 건넜으면 뭘 버린다?
뗏목을 버리는데 뗏목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또 한 번 더 건너보려고 ㅎㅎ
② 就入方便
於法無疑惑하고
永絶諸戲論하야
不生分別心이면
是念佛菩提니라
② 방편에 들어감을 보이다
법에 의혹이 없고
모든 희론(戱論)을 길이 끊어서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것이 부처님의 보리를 생각함이라
② 방편에 들어감을 보이다
於法에 無疑惑하고
永絶諸戲論하야
不生分別心이면
是念佛菩提니라
법에 의혹이 없고
모든 희론(戱論)을 길이 끊어서
모든 희론(戱論)이라고 하는 거는 말장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저 역시 내용을 뜻을 잘 모르면서
강설하는 자체가 참 부끄러운 일인데
법문을 혈맥론 같은 데는 그래 놨잖습니까?
폭우같이 쏟아지고 아~주 청산유수처럼
무애변재로 법을 설하고 경전을 설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해 못하고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법을 설한다고 하면
그거는 망설이라고 그래. 망설
그걸 희론이라 하죠. 희론
궤변, 있지도 않는 천당 붙여가지고
있지도 않는 극락까지 붙여가지고
사람을 현혹시키고 그러죠.
여기서 희론이라고 하는 것은 뭐라 할까?
분별심을 내면 곧 희론입니다. 그죠?
분별심을 내면 희론이고 분별심을 떠나면 卽菩提라.
念念菩提心 處處安樂國
무념 즉시 뭡니까?
보리라.
不生分別心이면
법에 의혹이 없고
모든 희론(戱論)을 길이 끊어서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보리를 생각하는 것이라
중생들로 하여금 방편에 들어가는 걸 보이는데 뭘 생각하게 합니까?
보리를 자꾸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了知差別法하고
不着於言說하야
無有一與多하면
是名隨佛敎니라
차별한 법을 잘 알고
말에 집착하지 아니해서
하나와 많음이 없으면
이것이 이른바 불교(佛敎)를 따름이라
了知差別法하고
不着於言說하야
無有一與多하면
是名隨佛敎니라
차별한 법을 잘 알고
말에 집착하지 아니 해서
꿰맞추기 식으로 어차피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서
말을 비유도 하고 조리 있게 하고
저도 많이 그래 합니다만
비유는 전부 다 어떻습니까?
아무리 잘된 비유라도 1프로도 맞는 게 없습니다.
다 틀린 것이라. 그죠?
이것은 마음을 어디에 비유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해가 안되니까 피치 못해서 그렇게 해놓은 것이지
이해가 안되니까 해놓은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저를 한 번 보십시오.
여러분들께서 제 목소리를 다~ 듣고 고개를 드시고
저를 쳐다 보셨습니다만
조금 있다 보살문명품에 또 갈지 안 갈지 거기 나오겠지만
이것 이해하고 넘어갑시다.
분명히 고개를 들고 저를 봤는데
귀가 들은 것 같은데 들은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들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을 일으키고 저를 보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그러나 우리는 보고 듣고를 항상 내가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모르거든요.
여러분들이 숱한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지금 이런 소리는 에어콘 소립니다.
엥~! 하면 중국집 짜장면 배달 오토바이입니다.
딸랑 딸랑 하면 뭐죠?
자전거입니다.
바람 소리 꽃 이름부터 사람 얼굴부터 해가지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기억하는 실체를 모릅니다.
여기 보현사 광명홀까지 화엄경 듣는다고
오늘 여기까지 제 자리에 다 앉으셨는데
자리까지는 알겠는데
자리를 아는 놈을 정말 모릅니다.
그 얘기를 여기 끝도 없이 해놨습니다.
왜 모르느냐?
답은 간단합니다.
본래 없습니다.
이것 궤변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경전에 이 얘기를 계~속 해놨습니다.
마치 바람이 절~대 볼 수는 없는데
수양 버드나무 가지가 요즘 아주 그래도 아직 이파리가 붙어 있죠.
이렇~게 흔들리면 바람 방향을 알 수가 있어요. 그죠?
이렇게 흔들린다.
'아~바람이 이리로 간다~ 저리로 간다~'
알 수 있듯이
저 사람의 마음은 절~대 볼 수가 없는데
마음은 불생불멸이니까 볼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 마음을 우리는 봅니다.
그 마음을 본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을 봅니다.
또 생각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게 목소리로 나오면 여러분들 듣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이게
백 퍼센트 제 말에 제 뜻이 실려 있습니다.
이거는 거짓말을 하든 참말을 하든 제 뜻이 이렇게 묻어갑니다.
이렇게 행동을 보이면...
봅니다.
제 생각을 봅니다.
'아~찌부둥~한 생각이 안에 일어났구나.'
'근지러운 생각이 일어났구나.'
눈을 막 부라리면
'아~ 화나는 생각이 지금 일어났구나.'
행동으로 이렇게 보면
아~ 저 사람의 지금 생각이 몸으로 보여지고
저 사람의 생각이 소리로 들려집니다.
그러나 생각은 마음이 아닙니다.
마치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아무리 흔들려도
그거는 수양버드나무 가지지 바람이 아니듯이
마음의 실체는 그와 같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반야심경 같은 데는
不生不滅이요 不垢不淨이요 不增不減이요 以無所得故니라.
업을 따라서 우리 끝없이 흘러가면서도
이런 방편에 대해서 이제 심각하게 잘 생각을 하지를 않죠.
우리가 이제 여러분들이나 저나 많은 것 기억해요.
참새 짹짹거리는 것도 알고 있고, 까마귀 짹짹거리는 것도 알고,
사람 얼굴도 다 알고, 아는 사람 이름도 알고, 모르는 사람 이름도 알고,
여기 길도 알고, 꽃도 알고, 아는 게 숱~하게 많습니다.
별도 보고, 별 걸 다 기억하고 있어요.
노란 것 빨간 것 해가지고...
그런데 그걸 기억하는 그 실체를 정~말 모르거든요?
그런데 그것 아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무생법인 알아야 이제 그 정도까지 이제 타고 들어가는데
대충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것은
8식이라고 하는 이것도 뭐 다 틀린 말씀입니다만
그 중에서 업상 전상 현상
현상이라고 하는 내면 속에서
찢겨진 과거의 기억과 현재에 찰라지간에 벌어지는 일을
딱 대입해가지고 판단해서
거의 여러분들이 지금 저를 보고 있으면
거의 과거의 지난 주의 저를 아마 이대로 보고 있을 겁니다.
지금의 저를 절대 못 보실 겁니다.
보고 있다고 하지만 절대 못 보실 겁니다.
그런 얘기들을 지금 여기에 쭉~ 써놨는데
지금을 못 본다는 얘기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니까
지금은 없는 것이니까...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것이 부처님의 보리를 생각하는 것이라
그 다음에
了知差別法하고
不着於言說하야
無有一與多하면
是名隨佛敎니라
차별한 법을 잘 알고
말에 집착하지 아니 해서
하나와 많음이 없으면
이것이 이른바 불교(佛敎)를 따르는 것이라
때로는 하나요 때로는 많은 것이라.
그런데 우리는 고정적으로 많다는 데 딱! 떨어져야 되고
하나라는 데 딱! 떨어져 있지만
얘기인즉슨 뭐라고 했습니까?
一切處에 文殊가 同時에 發聲한다.
多中無一性이요
一亦無有多니
如是二俱捨하면
普入佛功德이니라
많은 가운데 한 성품이 없고
하나에도 또한 많음이 없으니
이와 같이 둘을 함께 버리면
부처님의 공덕에 널리 들어가리라
多中無一性이요
一亦無有多니
如是二俱捨하면
普入佛功德이니라
많은 가운데 한 성품이 없고
하나에도 또한 많음이 없으니
이와 같이 둘을 함께 버리면
부처님의 공덕에 널리 들어가리라
이제 헷갈리기 시작하죠?
언제는 하나가 모든 것이라고
모든 것이 하나라 했다가
이제 하나에 모든 게 없다 하고
모든 것에 또 하나도 없다고 하니까
이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를 시설하든지 많은 걸 시설하든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하나의 분별심이고
그 분별심을 떨어지면 희론이 되고
그 분별심을 벗어나면 무생법인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죠.
衆生及國土가
一切皆寂滅이니
無依無分別하면
能入佛菩提니라
중생과 국토가
일체가 다 적멸하니
의지함도 없고 분별함도 없으면
능히 부처님의 보리에 들어가리라
衆生及國土가
一切皆寂滅이니
無依無分別하면
能入佛菩提니라
중생과 국토가
일체가 다 적멸하니 본래 없으니
의지함도 없고 분별함도 없으면
능히 부처님의 보리에 들어가리라
마음의 동요가 끊어지고
말의 희론이나 궤변을 다 떠나고 나면
말 장난 떠나고 나면 지혜에 계합돼서
그대로 무분별의 세계에 들어간다 이런 말씀이네요.
衆生及國土가
一異不可得이니
如是善觀察하면
名知佛法義니라
중생과 국토가
하나다 다르다 할 수 없으니
이와 같이 잘 관찰하면
불법(佛法)의 뜻을 안다고 이름하리라
衆生及國土가
一異不可得이니
如是善觀察하면
名知佛法義니라
중생과 국토가
하나다 다르다 할 수 없으니 법을 제대로 알면
이와 같이 잘 관찰하면
불법(佛法)의 뜻을 안다고 이름하리라
八, 方便의 德
(1) 光明徧照
爾時에 光明이 過百萬世界하야 徧照東方一億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8. 방편의 덕(德)을 나타내다
(1) 광명이 동방(東方)으로 일억(一億) 세계를 두루 비추다
저때에 광명이 백만 세계를 지나서 동방의 일억 세계를 두루 비추니 남. 서. 북방과 네 간방(間方)과 상방(上方)과 하방(下方)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하였다. 그 낱낱의 세계 가운데 모두 백억 염부제와 내지 백억의 색구경천(色究竟天)이 있는데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다 모두 분명하게 나타났다.
8. 방편의 덕(德)을 나타내다
(1) 光明徧照
爾時에 光明이 過百萬世界하야 徧照東方一億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8. 방편의 덕(德)을 나타내다
(1) 광명이 동방(東方)으로 일억(一億) 세계를 두루 비추다
저때에 광명이 백만 세계를 지나서 동방의 일억 세계를 두루 비추니 남. 서. 북방과 네 간방(間方)과 상방(上方)과 하방(下方)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하였다. 그 낱낱의 세계 가운데 모두 백억 염부제와
염부제 하나만 있어도 엄청날 건데 뭐죠?
백억 염부제와
내지는 백억의 색구경천(色究竟天)이 있는데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다 모두 분명하게 나타났다.
조금 전에 말씀은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이나 저의 존재가 허망하기는 하지만
있다고 하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백억 정도가 문제도 아니다. 그죠?
엄~청난 걸 기억합니다.
뭐 전기 다마 이름부터 시작해가지고
호롱불 이름까지 해가지고 천차만별
스치면 다 기억돼 있는 거라. 스치면 다
뭐가 다 기억됐어요?
눈으로는 뭐가 기억하죠?
보이는 것
귀로는?
소리 듣는 걸로
그리고 어떤 사람은 포도주 맛을 이렇게 보잖아요? 그죠?
맛을 혓바닥만 갖다 대면 몇 년산 몇 년산 기똥차게 알거든.
어떤 건 척!~ 보기만 해도 다 알아버리고...그죠?
이거 이게 굉장한 겁니다.
그래서 눈을 이렇게 제일 여기 갖다놓은 건 어떻습니까?
저~기 철새가 요새 기러기가 날아가면
저 창공 멀리 날아가면 까마득~히 날아가면
눈으로는 보이는데
그러니까 눈이 제일 멀리 가니까 뭐죠?
眼
그 다음에 저~ 멀어져버리면 소리는 안 들리잖아요. 그죠?
끼룩~ 해도 안 들리고, 적당한 높이에 있으면 소리는 들리죠?
耳
까마득히 멀어져버리면 비행기 소리도 안 들려요.
비행기 물체만 보이고
그 다음에 眼耳鼻, 그 다음에 뭐지? 그 다음에 鼻자인가...?
기러기는 여기 가까이 와야 냄새가 조금 나는 거라.ㅎㅎ
조금만 날아가버리면 소리까지는 듣지만
냄새는 맡을 수가 없는 것이라.
혓바닥에 갖다 대야 이거라도 한 번 볼까요?
맛을 보려면 어때요?
여기까지는...향기 나네요.
뜯었는데도 향기 나네.
맛은 어때야 돼요?
딱 갖다 대야...씹어야
짭찌리 하네요.
이것 비벼봐야...
이 몸뚱이는 金剛으로 爲地라
금강으로 다이아몬드로 돼 있기 때문에
독이 와도 그냥 꿀이 되게 돼 있어요. ㅎㅎ
여러분들 모든 마음이 우리 화엄경 읽다가 저 앞에
'其地는 金剛으로 爲地하고'
이래 돼 있잖아요.
그 땅은 정각을 이루고 나니까 전부 다이아몬드로 그 땅이 돼 있다.
이렇게 하잖아요?
해석을 조금 이제 낮춰서 하면
다이아몬드로 되면 벼농사도 못 짓고 꽃농사도 안되고
쇠덩어리에 돌덩어리에 뭐가 되겠노...이렇게 하지만
금강으로 돼 있는 데는 씨도 안 뿌려도 곡식이 저절로 자라는 거라.
땅 그대로가
그래 해야 바른 해석이요.
금강이라 하니까
'다이아몬드' 이런 해석이 아니고, 어떻게 해야 돼요?
악한 종자도 그냥 저 마음에 뿌려도 데바닷다를 뿌려도
부처가 석가모니가 탄생하는 게
금강으로 된 우리의 본심이라고 하는 얘기죠.
본래 마음
자~ 봅시다.
여기서는
남. 서. 북방과 네 간방(間方)과 상방(上方)과 하방(下方) 모든 백억 염부제와
내지는 백억의 색구경천(色究竟天)이 있는데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다 모두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 다음에
一一閻浮提 거기 넘어갑시다.
(2) 世尊坐座
彼一一閻浮提中에 各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2) 세존이 사자좌에 앉으셨다
그 낱낱의 염부제 가운데 다 여래께서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셨는데 열 불찰미진수의 보살들이 함께 둘러싸고 있었으며 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시방에 각각 한 큰 보살이 있고 그 보살들이 낱낱이 각각 열 불찰미진수의 모든 보살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니 그 큰 보살은 이르되 문수사리 등이며 쫓아온 바의 국토는 이르되 금색세계 등이며 본래 섬기던 부처님은 이르되 부동지(不動智) 여래(如來) 등이었다
(2) 世尊坐座
彼一一閻浮提中에 各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2) 세존이 사자좌에 앉으셨다
그 낱낱의 염부제 가운데 다 여래께서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셨는데 열 불찰미진수 보살들이 함께 둘러싸고 있었으며 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시방에 각각 한 큰 보살이 있고 그 보살들이 낱낱이 각각 열 불찰미진수의 보살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니 그 큰 보살은 이르되 문수사리 등이며
설판보살인가 보다. 그죠? ㅎㅎ
쫓아온 바의 국토는 이르되 금색세계 등이며 본래 섬기던 부처님은 이르되 부동지(不動智) 여래(如來) 등이었다.
그 다음에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3)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그때 온갖 곳에서 문수사리보살이 각각 부처님 계신 곳에서 동시에 소리를 내어 이 게송을 말하였다.
(3) 文殊菩薩의 偈頌이라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3)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그때 온갖 곳에서 문수사리보살께서 각각 부처님 계신 곳에서 동시에 소리를 내어 이 게송을 즉시에 말하였다.
즉시에
이런 말은 없지만 그렇게 얘기해야 되겠죠.
① 從體起用方便
智慧無等法無邊하시며
超諸有海到彼岸하시며
壽量光明悉無比하시니
此功德者方便力이로다
① 체(體)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방편을 찬탄하다
지혜는 짝이 없고 법은 끝없으며
세상바다 뛰어나서 저 언덕에 이르고
수명과 광명도 비할 데 없으시니
이것은 공덕 있는 이의 방편의 힘이로다
① 從體起用方便
체(體)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방편을 찬탄하는 대목이네요.
智慧無等이며 法은 無邊하시며
超諸有海到彼岸하시며
壽量光明悉無比하시니
此功德者方便力이로다
① 체(體)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방편을 찬탄하다
지혜는 짝이 없고
지혜는 이제 아~주 짝이 없으니까
낮은 데가 아니고 굉장히 높다고 하는 것이죠.
법은 또 무변하고
超諸有海라, 모든 諸有의 바다
그 많고 많은 윤회의 바다를 다 뛰어넘고
到彼岸이라, 저 열반의 언덕에 오르시고
수명도 광명도 견줄 바가 없으시니
이것은 부처님의 방편의 힘이로다
② 寂照方便
所有佛法皆明了하시며
常觀三世無厭倦하시며
雖緣境界不分別하시니
此難思者方便力이로다
② 고요히 비치는 방편을 찬탄하다
모든 부처님의 법을 다 밝게 알고,
항상 삼세(三世)를 다 관찰하되 싫어함이 없으며,
비록 경계를 반연하나 분별하지 않으시니,
이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이의 방편의 힘이로다
② 고요히 비치는 방편을 찬탄하다
② 寂照方便이라
所有佛法皆明了하시며
常觀三世無厭倦하시며
雖緣境界不分別하시니
此는 難思者의 方便力이로다
모든 부처님의 법을 다 밝게 알고,
흔히 우리 橫徧十方 豎窮三際라고 하죠. 그죠?
공간적으로도 다 알고
항상 삼세(三世)를 다 관찰하되 싫어함이 없으시며,
우리는 한 나절만 관찰하면 눈 빠진다고 책 안 보잖아요.
비록 경계를 반연하지만 분별하지 않으시니,
이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이의 방편의 힘이로다
비록 경계를 반연한다,
중생들을 비추고 반연하지만
비추기는 비추지만 분별하지 아니 한다.
마치 거울이 있으면서 흰 사람 검은 사람이 와서
거울 속에 얼굴이 비추지만
저처럼 이래 좀 못난 사람이 와서
거울 앞에 서면 거울이 기분 나쁘다고 싹 닫아버리면 그것 안되잖아요.ㅎㅎ
부처님 마음은 寂照無思라.
고요하고 비추는 것이 이렇게 분별하는 생각이 없다 이 말씀입니다.
③ 理事無礙方便
樂觀衆生無生想하시며
普見諸趣無趣想하시며
恒住禪寂不繫心하시니
此無礙慧方便力이로다
③ 부처님의 이(理)와 사(事)가 걸림이 없는 방편을 찬탄하다
중생을 즐겨 보되 중생이란 생각이 없고
여러 갈래 널리 보되 갈래란 생각 없으며
항상 선정에 머물되 매이는 마음 없으시니 이것은 걸림 없는 지혜 방편의 힘이로다
③ 理事無礙方便
樂觀衆生無生想하시며
普見諸趣無趣想하시며
恒住禪寂不繫心하시니
此無礙慧方便力이로다
③ 부처님의 이(理)와 사(事)가 걸림이 없는 방편을 찬탄하다
중생을 즐겨 보되 중생이란 생각이 없고
여러 갈래 널리 보되 갈래란 생각이 없고
항상 선정에 머물되 매이는 마음이 없으시니
이것은 걸림 없는 지혜 방편의 힘이로다
이거는 처음에 우리가 광명각품 할 때 게송에 나왔죠.
자 보십시오.
우리는 번뇌를 소진하고 나서
고요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흔히 생각을 하지만
광명각품에서 제시하는 본래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는
확실히 얘기를 하죠.
번뇌 그대로 적멸이다.
왜 그런고 하니
번뇌 본래 공하고
기신론 할 때 여러분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妄은 本空하고...네?
자... 그 다음에 여기서 이런 말씀입니다.
생사에 물드는 것을 생멸에 물드는 것을 잡념이라 합니다.
섞이고 오염되고 잡념이라 해요.
생사에 물드는 것을 잡념이라 하고
또 열반 세계에 청정하게 들어가는 것을
왜 常樂我淨이라 하잖아요. 그죠?
열반 4德
열반 청정한 것을 증득하는 것
그러니까 열반도 열반에도 선정에도 머무르지 아니 하고
선정에 머물되 매이는 마음이 없으시니까
선정에도 머무르지 아니 하고, 또 어딥니까?
그러니까 열반을 구하지도 아니 하고
또 번뇌를 중생이라고
중생을 봐가지고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도 아니 하고
그러니까 생사에 물드는 것도 없고
열반에 청정에 집착하는 바도 없으니까
그게 이제 제대로 된 적멸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판 사판에 걸림이 없다 이 말을 해놨네요.
④ 修而無修方便
善巧通達一切法하시며
正念勤修涅槃道하사
樂於解脫離不平하시니
此寂滅人方便力이로다
④ 닦되 닦음이 없는 방편을 찬탄하다
교묘한 방편으로 온갖 법을 통달하며
바른 생각으로 열반의 도(道)를 부지런히 닦으사,
해탈을 즐기고 차별을 떠나시니
이것은 적멸한 이의 방편의 힘이로다
④ 修而無修方便
善巧通達一切法하시며
正念勤修涅槃道하사
樂於解脫離不平하시니
此寂滅人의 方便力이로다
④ 닦되 닦음이 없는 방편을 찬탄하다
교묘한 방편으로 온갖 법을 통달하여
바른 생각으로 열반의 도(道)를 부지런히 닦으사,
해탈을 즐기고 차별을 떠나시니
이것은 적멸한 이의 방편이로다
이거를 해석을 잘못하면
열반에만 집착한다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그죠?
진정한 열반을 즐긴다는 말은 뭡니까?
열반마저도 잊어버린다 이런 말씀입니다.
⑤ 廻向方便
有能勸向佛菩提하며
趣入法界一切智하며
善化衆生入於諦하시니
此住佛心方便力이로다
⑤ 회향(廻向)하는 방편을 찬탄하다
능히 부처님의 보리에 향하기를 권하며
법계의 온갖 지혜에 나아가며
중생을 잘 교화해서 진리에 들게 하시니
이것은 불심에 머문 방편의 힘이로다
⑤ 회향(廻向)하는 방편을 찬탄하다
그런 것을 뭐라고 해야 됩니까?
眞寂滅이라고 해야 되겠죠.
진짜 적멸이라고 해야 되겠죠.
有能勸向佛菩提하며
趣入法界一切智하며
善化衆生入於諦하시니
此住佛心方便力이로다
능히 부처님의 보리에 향하기를 권하며
법계의 온갖 지혜에 나아가며
이제 법계에 나아가는 걸 趣入法界라 그래 해놨죠.
그 다음
중생을 잘 교화해서 진리에 들게 하신다.
이거는 뭡니까?
중생 회향이죠. 중생에 회향하시고
이것은 불심에 머문 방편의 힘이로다
어디에 이제 머무는 바 없이 머물러야 되는데
머문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제가 어디 가다가 내려서 중간에서 머물렀습니다.
머문다는 말은 무슨 말씀이죠?
거기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할 일이 있다 이 말이죠. 머문다는 말씀은
뭐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여기는?
중생 교화에 관심이 있다 이런 말씀이죠.
이것은 불심에 머문 방편의 힘이로다
해놨는데
불심에 머무른다고 하는 것은
마치 따뜻한 봄바람이 잠시 머물러서
나뭇가지 끝에 머물러서 지나가는 것은 뭡니까?
나무가지 끝에 꽃을 틔우기 위한 것이요.
그러나 서로 모르기는 하겠지만
그런 뜻으로 이제 비유하면 되겠습니다.
그래 이제 화엄경을 이 정도 보셨으니까
끊임 없는
화엄경 서문에 나오듯이
往復은 無際나 動靜은 一源이라 하듯이
지금 노랗게 빨갛게 단풍이 지고 있는데
잎이 하나씩 또닥또닥 지기도 전에 나뭇가지 끝에는 뭐가 있어요?
내년에 필 새이파리가 조롱조롱 달려 있죠.
보통 사람은 잘 모르고 ㅎㅎ
우리 화엄경 본 사람들은
'아!~ 끝 없는 新陳代謝'라 하듯이
代謝, 계속 이어지는 걸 代라 하고
하나 시들어 떨어지는 걸 謝라 하거든요.
몸에 먹는 걸 代고, 밑으로 배출 되는 거는 謝, 代謝라 하거든요.
그러니까 생성되는 걸 생이라 하고
없어지는 것을 멸이라 하고
기신론 할 때는 어떻게 했죠?
消息이라 했죠.
있던 현상이 사라지면 消요, 없던 것이 번식되면 息이라.
"니 누구 소식 들었나? "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게 바로 消息
아침에 해가 이렇게 떠오르면 消고, 저녁에 해가 지면 息이라.
생멸이라 하죠.
그런데 지는 즉시 뭐가 나와 있어요?
새 이파리가 벌~써 나와 있고
벚꽃은 벌써부터 펴서 있는 거라. 사실은
목련도 벌써부터 몽우리져 있죠?
활~짝 피고는
"목련 폈네~" 이러지만
피기는 그 때 필런가 몰라도 지금부터 열심히 피고 있습니다.
끝이 없는 거죠.
우리 마음도 그렇고 우리 생각도 그렇고 전부 다 이치를 보면...
동짇달에 보면
우리 대기만성이라고 흔히 얘기하는 국화,
요즘 국화 많이 있잖습니까?
저 국화가 조금 있으면 다 시듭니다.
동지 팥죽 끓여 먹을 때 되면
벌써 내년에 꽃 필 국화는 싹이 돋아납니다.
동지 섣달에 국화가 싹을 돋아요.
그래 다른 거는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꽃이 피고 이러지만
국화는 그때까지 꽃이 안 펴.
찬 이슬 내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싹은 제일 먼저 틔우고
꽃은 제일 늦게 피니까 대기만성이라.
그래 국화는 함부로 다루면 안되죠.
요새 국화도 막 모가지 비틀어가지고 분재 만들어놔요.
아휴~
그 국화의...뭐 꽃일 뿐이겠지만
국화의 품성을 아는 사람은 그래 하면 안되지...
난초 같은 것도 겨울에 분에 있는 거는 그런 거는 난초도 아니고...
돈 주고 받고 비싼 난초라 해봤자 그건 냄새 나는 것이고...
춘란 같은 것
산길을 가다가 겨울에 풀은 노~랗게 말라 죽었는데
새~ 파랗게 난초는 겨울에 있잖아요? 겨울 산에 그죠?
겨울 산행하다가 보면 난초!
그것도 좋다고 다 캐어 가버리대.
요새...지금...다 캐가지고
멀쩡한 난을 캐가지고 분에다가 심어놔요.
집에 가서 마당에 심어놓으면 또 몰라도
아이고... 참 답답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몰라...요.
梅蘭菊竹은 옛사람들이 해놓은 거는
다 의미들이 있으니까 한 번씩 잘 살펴보세요.
매화를 기다리고 난초를 기다리고...
요즘은 국화철이니까 양껏 국화를 또 즐기시고...
⑥ 證知方便
佛所說法皆隨入하시며
廣大智慧無所礙하시며
一切處行悉已臻하시니
此自在修方便力이로다
⑥ 증득(證得)하여 아는 방편을 찬탄하다
부처님의 설법(說法)에 다 따라 들어가며
넓고 큰 지혜 걸림이 없으시며
온갖 곳에 다니는 일 모두 이르시니
이것은 자재하신 닦은 방편의 힘이시다
⑥ 證知方便
佛所說法皆隨入하시며
廣大智慧無所礙하시며
一切處行悉已臻하시니 ( 臻진: 이르다, 미치다, 모이다 )
此自在修方便力이로다
⑥ 증득(證得)하여 아는 방편을 찬탄하다
부처님의 설법(說法)에 다 따라 들어가며
넓고 큰 지혜 걸림이 없으시며
온갖 곳에 다니는 일 모두 이르시니
이것은 자재하신 닦은 방편의 힘이시다
自在修, 자재~하게 닦는다는 것은
제대로 알고 제대로 닦는 것을 自在修라고 합니다.
좀 모자라는 사람이 초보가 닦는 것이 아니라
걸림 없이 닦는 게 뭐겠어요?
無礙修
無礙自在 한다 하잖아요? 그죠?
제~대로 알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제 닦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보통 사람은 힘듭니다.
닦으면 남이 하니까 그냥 안 할 수도 없고
체면 때문에도 하고... 뭐 형식적으로도 하고...
어디 끌려가듯이 막 그렇게 하는 거라.
징용 끌려가듯이 그렇게 예불 나가고...ㅎㅎㅎ
그 다음에
⑦ 寂用方便
恒住涅槃如虛空하시며
隨心化現靡不周하시니
此依無相而爲相이라
到難到者方便力이로다
⑦ 고요한 작용의 방편을 찬탄하다
항상 열반에 있어도 허공과 같으며,
마음대로 화현(化現)하여 두루하시니,
이것은 무상(無相)으로 상(相)을 삼음이라,
이르기 어려운 데 이른 이의 방편의 힘이로다
⑦ 寂用方便이라
恒住涅槃如虛空하시며
隨心化現靡不周하시니
此依無相而爲相이라
到難到者方便力이로다
⑦ 고요한 작용의 방편을 찬탄하다
항상 열반에 있어도 집착하는 바 없이 허공과 같으며, 그죠?
마음대로 화현(化現)하여 두루하시니,
진공이기 때문에 뭐든지 못 나투겠어요?
그런데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놓으면 하나도 제대로 못 나툽니다.
늘~ 견주다가 볼 일 다 보는 거지.
이것은 무상(無相)으로써 상(相)을 삼는다,
그죠? 거기 나왔네. 답이
무상으로 상을 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요.
이르기 어려운 데 이른 이의 방편의 힘이로다
到難到者,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범부와 소승은 참 알기가 어렵고
證智所知, 뭐죠? 非如境이로다.
고요와 비침이 아주~ 이제 둘이 아닌 것을
여기서 자세하게 드러내놨어요.
寂照를 잘 드러내놨네요.
⑧ 時劫方便
晝夜日月及年劫과
世界始終成壞相을
如是憶念悉了知하시니
此時數智方便力이로다
⑧ 시간의 숫자를 아는 방편을 찬탄하다
낮과 밤과 달과 해와 겁과,
세계의 시작과 마침과 이뤄지고 무너지는 모양을,
이러한 것을 생각하여 다 아시니,
이것은 시간의 숫자지혜인 방편의 힘이로다
⑧ 시간의 숫자를 아는 방편을 찬탄하다
⑧ 時劫方便이라
晝夜日月及年劫과
世界始終成壞相을
如是憶念悉了知하시니
此時數智方便力이로다
낮과 밤과 달과 해와 겁과,
세계의 시작과 마침과 이뤄지고 무너지는 모양을,
이러한 것을 생각하여 다 아시니,
이것은 시간의 숫자 지혜를 다 아는 지혜의 방편의 힘이로다
여기서 이제 제대로 시간적인 생멸을 다 요달해버린 것을
이제 다음 대목에도 그렇게 연결돼 나오겠네요.
그 다음에
⑨ 難思方便
一切衆生有生滅과
色與非色想非想의
所有名字悉了知하시니
此住難思方便力이로다
⑨ 생각하기 어려운 방편을 찬탄하다
모든 중생들의 생멸과,
색(色)과 비색(非色)과 상(想)과 비상(非想)의,
모든 이름을 다 아시니,
이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데 머문 방편의 힘이로다
⑨ 難思方便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방편이라
一切衆生이 有生滅과
色과 非色과 想과 非想과
所有名字悉了知하시니
此住難思方便力이로다
⑨ 생각하기 어려운 방편을 찬탄하다
모든 중생들의 생멸과,
색(色)과 비색(非色)과
色이라고 하는 것은 욕계, 색계겠죠.
非色이라 하면 무색계
상(想)과 비상(非想)과,
想이라 하면 三界九地가 있을 것이고
非想이라 하면 非想非非想處 이런 게 있잖아요?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죠.
三界八地를 想이라 할 수 있고,
三界九地라 하면 마지막 九地는 非想으로 얘기할 수 있겠어요.
무색계 九地
이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데 불가사의한 데 머무는 이의 방편력이로다
若不觸矜 誠難輪過
다시 푸는 경서 - 치문경훈<3>
僞山大圓禪師警策(위산대원선사경책) ③
-“사욕 번뇌다스려 인천삼유 구제하라”-
- 뽐내는생각 있으면 윤회굴레 못면해 -
或被輕言 便責後生 無禮
혹피경언 변책후생 무례
嗔心忿起 言語該人
진심분기 언어해인
一朝 臥疾在牀 衆苦榮纏逼迫
일조 와질재상 중교영전핍박
曉夕思忖 心裡徊惶 前路茫茫 未知何往
효석사촌 심리회황 전로망망 미지하왕
從滋 始知悔過 臨渴掘井 奚爲
종자 시지회과 임갈굴정 해위
自限早不豫修 年晩多諸過咎
자한조불예수 년만다제과구
臨行 揮藿 拍怖樟惶
임행 휘곽 파포장황
혹 업신여기는 말을 듣게되면 곧 꾸짖기를 ‘후생이 무례하다’하며 화를 벌컥 내면서 말로 억누르려 한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병들어 자리보전하고 온갖 고통에 얽혀 심신이 몹시 괴로우매
아침 저녁으로 헤아려 보아도 마음 속은 어지럽고 두려운지라 앞길이 아득하여 어디로 갈지조차 모르게 된다.
이에 이르러 비로소 허물을 뉘우치게 되나니 목이 말라서야 샘을 파는 격이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일찍부터 스스로 미리미리 닦지 아니하고 늑마에 허물 많은 것을 한스럽다 하나니
죽음을 맞아서 몸 부림치며 두려워 어찌할 줄을 모르는도다.
穀穿雀飛 識心隨業
곡찬작비 식심수업
如人負債 强者先牽 心緖多端 重處偏墜
여인부채 강자선견 심서다단 중처편추
無常殺鬼 念念不停 命不可延 時不可待
무상살귀 념념부정 명불가연 시불가대
人天三有 應未免之
인천삼유 응미면지
如是受身 非論劫數
여시수신 비론겁수
感傷嘆訝 哀哉切心 豈可緘言 遞相警策
감상탄아 애재절심 기가함언 체상경책
명주비단 뚫어져 참새가 날아가니(업식이 몸을 버리고 떠나가니) 식심이 업에 이끌리는 것이 마치 빚진 사람이 강한 자에게 먼저 끌려가듯이 마음의 실마리는 가닥가닥 수 없이 많건만 (생전에) 무겁게 마음 둔 자리로 (한이 맺힌 자리를 말함) 치우쳐 떨어지게 된다.
무상살귀(식심이 찰나찰나로 변함을 뜻함)가 생각 생각마다 머물지 않나니 명은 가히 늘리지 못하며 때는 기다리지 않는지라
욕계·색계·무색계(인천 삼유)를 돌며 다시 태어남을 면치 못한다.
이와 같이 몸 바꿔 돌고 돈 세월, 그 겁수는 논할 수도 없도다.
가슴 쓰리고 한 숨 짓고 애간장 끓이나니 어찌 입을 다물고서 서로 경책할 수 있으리오.
所恨 同生像季 去聖時遙
소한 동생상계 거성시요
佛法生疎 人多懈怠
불법생소 인다해태
略伸菅見 以曉後來
약신관견 이효후래
若不觸矜 誠難輪過
약불견긍 성난윤과
한탄스러운 것은 그대들이나 나나 상법·말법 시대에 태어난 것이라 부처님 멸도에 드신지 오래이며 불법은 생소하고 사람들은 많이 게으르매 간략하게나마 좁은 소견 펼쳐서 후학들을 깨우쳐 보고자 하노라
만약 ‘내로다’ 뽐내는 생각 없애지 아니하면 참으로 윤회의 바퀴돌이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夫出家者 發足超方 心形異俗
부출가자 발족초방 심형이속
紹隆聖種 震攝魔軍 用報四恩 拔濟三有
소륭성종 진섭마군 용보사은 발제삼유
若不如此 濫厠僧倫
약불여차 람측승륜
言行荒疎 虛霑信施
언행황소 허점신시
昔年行處 寸步不移 恍忽一生 將何憑恃
석년행처 촌보불이 황홀일생 장하빙시
況乃堂堂僧相 容貌可觀
황내당당승상 용모가관
皆是宿植善根 感斯異報
개시숙식선근 감사이보
便擬端然拱手 不貴寸陰
변의단연공수 불귀촌음
事業不勤 功果 無因克就
사업불근 공과 무인극취
豈過一生空過 抑亦來業無裨
기과일생공과 억역래업무비
무릇 출가한 이는 발길을 옮겨 세상을 뛰어넘고 마음과 모양새(행동거지)도 세속과 달리하며 불법을 이어 융성케하고 온갖 마장경계를 다스려 조복을 받으며 (나아가) 네가지 은혜에 보답하고 인천 삼유를 남김없이 구제하여야 한다.
만약 이와같이 하지 아니하면 외람되게도 승려 무리에 끼어들었을 뿐 말이 거칠고 행주좌와 위의가 가즈런하지 못하면서 헛되이 신심어린 시주만 나눠갖고 옛 성현들이 갈고 닦은 자리에는 촌보도 다가가지 않으면서 정신없이 한 생애 보내니 장차 무엇을 의지하고 믿을 것인가. 그럼에도 삭발염의한 겉모습만은 당당하여 가히 볼만한지라.
이는 다 숙생에 선근을 심어 이에 감응한 과보인데.
(거기에만) 의지하여 손을 잡아매고(닦을 생각 않고) 촌음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니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끝내 불과를 이룰 인연이 없으매
어찌 한평생 헛되이 보내리오. 그래서야 다가올 업연 또한 그대를 돕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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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分別心을 내면 戱論이고 分別心을 떠나면 卽菩提라..無念 卽時 菩提..
부처님 마음은 寂照無思라..
본래 깨달음은 煩惱 그대로 寂滅..
生死에 물드는 것도 없고 涅槃에 執着하는 바도 없으므로
이것이 제대로 된 寂滅이고 理判 事判에 걸림이 없다..
오늘은 곳곳에 깔린 다이아몬드를 많이 담아 갑니다..
고맙습니다..지선화 님!!
금강으로 돼 있는 데는 씨도 안 뿌려도 곡식이 저절로 자라는 거라. 금강으로 된 우리의 본심,
법에 의혹이 없고 모든 희론(戱論)을 길이 끊어서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보리를 생각하는 것이라. 진수성찬입니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항상 열반에 있어도 집착하는 바 없이 허공과 같으며...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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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