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수도 웰링턴에 가다
평소보다 두시간 일찍 민재가 운전을 마치고 노스쇼어 글렌필드 한인 상가에 들렀다. 운이 좋은 날이라 수입이 다른 날 두 배를 넘어섰다.
입구에 놓인 카터 하나를 빼서 밀고 안으로 걸어갔다. 여러 한국 상품들이 반가운 모습으로 손짓을 해왔다. 주섬주섬 카터에 담았다.
우선. 3kg 김치 한 통, 일회용 김 두 단, 라면 한 박스, 초코파이 세 박스, 돼지 불고기 1kg, 상추 한 단, 두부 두 모, 달걀 한 판, 소주 한 병, 5kg 쌀 한 부대... .
한쪽에 놓인 한인 교민 신문들도 집어서 넣었다. 뉴질랜드 타임스, 일요시사, 위클리, 일요신문, 프로퍼티 부동산 신문, 크리스천 라이프... .
오늘은 큰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택시 수입도 좋고, 한국 식품도 풍성했다. 집에 와서 샤워 후, 불고기부터 프라이팬에 올렸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상추를 씻었다. 김치 포기도 도마에 올려놓고 쓱싹쓱싹 썰었다. 전기밥통에서 고슬고슬한 밥을 한 그릇 고봉으로 담았다.
식탁이 풍성했다. 소주도 따서 유리잔에 따랐다. 상추에 밥 한 숟갈 얹고 그 위에 불고기를 올렸다. 쌈을 싸서 입에 밀어 넣었다. 볼이 터질 듯했다.
왕방울만 한 눈을 끔뻑거리며 야무지게 씹었다. 이어서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살아왔는데, 오늘따라 두 분이 떠올랐다.
창밖에 살랑대는 포후투카와, 크리스마스트리가 뉴질랜드 한여름의 성탄을 알렸다. 빨간 종 모양 꽃을 흔들어댔다.
고국에서 맞이했던 12월은 눈 오는 성탄도 있었는데, 계절이 반대인 뉴질랜드는 녹색 푸르른 여름이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불고기 파티에 포만감이 몰려왔다. 입가심으로 밀크커피를 한잔 마시며 가져온 교민 신문을 펼쳤다.
신문을 넘기던 민재 손이 멈칫했다. 로또 관련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뉴질랜드 로또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인 3천3백만 달러 행운 당첨자가 결정됐다.
그동안 파워볼 1등이 나오지 않아 누적 상금은 계속 상승했고 지난주 로또 추첨은 무조건 누적 상금을 가장 높은 당첨자에 수여 하는 것이었는데 행운의 당첨자는 단 1명이었다.
지난주의 로또 판매는 평소보다 66%가 더 팔렸다고 한다. 파워볼 1등 로또는 오클랜드 마누레와 뉴월드 상가에서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2번째로 누적 상금이 높았던 빅 웬즈데이 누적 상금도 지난주 수요일에 당첨자가 결정되었다.
누적 상금은 2천 2백만 달러이었고 당첨된 로또는 크라이스트처치 리카튼 파켄세이브에서 판매된 것이었다.
지난주에는 수요일, 토요일에 연이어 거대 금액 로또 당첨자가 탄생 한 것이다. 아직 행운의 두 당첨자는 당첨 금액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뉴질랜드 일요시사 제공‘
민재 눈이 번쩍했다. 혹시 이번 나에게도 행운이 안길 수 있지 않을까?
‘마누레와에서 팔린 것?’
‘아직 행운의 두 당첨자는 당첨 금액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고?’
민재가 남은 밀크커피를 마셨다. 은근한 기대를 걸어보며 꿈나라를 생각했다. 몸으로 고되게 일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근로자들의 기대와 바람~
‘가장 많은 금액인 3천3백만 달러 행운 당첨자?’ 는 언감생심이겠지. 단 백만 달러만 맞아도 시내 폰슨비 지역 집 한 채 값이다.
노스쇼어 지역에서는 집 두 채 살 돈이다. 배로는 포만감을 느끼며, 머리로는 꿈나라를 그리다 민재가 그대로 소파에서 나른한 잠에 빠져들었다.
***
이른 아침 민재가 다운타운 커스텀 스트리트, 웨스트 필드 쇼핑몰 앞 택시 정거장에 섰다. 손님을 기다리며 ‘사우쓰 앤 노쓰’ 잡지를 훑어보고 있었다.
뉴질랜드 택시 업계의 활약에 대한 기사에 빠져들었다. 럭비 월드컵과 아메리카스 컵 요트대회에 외국인들을 맞아 선전한 사연들이었다. 뿌듯했다.
“쿵~!”
그때였다. 택시 차체가 울리며 흔들렸다.
“뭐야? 이게!”
민재가 다급하게 차에서 내려 뒤를 살폈다. 뒤에서 기다리던 택시가 민재 뒤꽁무니를 치받은 상태였다. 뒤쪽 택시에서 운전사가 나왔다.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임 쏘리. 마이 미스테이크.”
목소리가 낯익은 색깔이었다. 여성 운전사였다. 뉴질랜드 현지인 키위는 아니고, 동양 아가씨였다.
목소리 음색으로 봐선 한국인 톤이었다. 민재 입에서 영어가 아닌 우리말이 나왔다.
“어찌 된 거요? 당신 차 라디에이터가 새는데~”
뒤차 앞 범퍼 아래로 라디에이터 액이 줄줄 새고 있었다. 민재차 뒤쪽에 달린 견인바를 치받았는데, 민재 차는 크게 문제없어 보였다.
그런 중에 뒤차 운전자가 자기 명함을 꺼냈다. 자기 차 넘버와 보험회사 번호를 써 주며 보험으로 처리하라고 조용히 내밀었다.
Jenny라는 이름을 보며 민재가 말했다. 민재도 혹시 몰라서 필요시 연락하기로 민재 명함을 건넸다.
“제니 씨. 제 차는 걱정 마세요. 보험처리 안 할 테니, 그 쪽 차나 어서 이동해 라디에이터 교환해야 해요. 범퍼도 찌그러졌어요.”
여긴 번화가니까 토잉차 불러도 복잡하니, 옆 도로 한적한 곳으로 일단 옮겨서 토잉차 불러요.”
“고마워요. 사실 어젯밤 늦게 시작해 수면 부족에 깜빡 졸다가 움직이며 악셀을 세게 밟았어요. 이 차는 빌려서 하는 남의 택시예요.”
울상 어린 우리말 목소리가 민재 가슴을 짠하게 했다. 민재가 코를 킁킁거렸다. 같은 동포끼리 이게 뭔가? 순간 민재가 코를 킁킁거렸다.
‘뭐지? 이게! 이 운전사 제니에게서도 진한 장미 향기가 풍겨오잖아. 이 한국인 아가씨도 좋은 사람인가 보네.’
그때, 마침 손님이 민재 차에 올라타서 민재는 그 자리를 떠났다. 운전사 제니가 떠나는 민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민재도 가볍게 목례했다. 손님이 행선지를 말했다.
“엡섬을 들러 공항으로 가 주세요. 국제선으로요. 좀 급해요. 서둘러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조금 전, 뒤 택시가 제 택시를 뒤에서 치받는 상태에서 이 택시를 탈 줄은 몰랐어요. 제 차는 문제없는데, 상대 차가 좀 걸리네요.”
민재가 서둘러 손님 원한대로 엡섬에 도착했다. 손님이 내려 오피스 빌딩에 들어갔다 나왔다. 바로 태우고 공항으로 급히 달렸다.
손님을 공항에 내려주고 공항 근처 카운트다운 쇼핑몰 주차장에 택시를 댔다. 출출하던 차에 스낵카페에서 라떼 한잔과 샌드위치를 사서 요기했다.
일어서려는데 로또 가판대가 보였다. 차로 가서 콘솔 박스에서 로또 용지를 꺼냈다. 마누레와 마오리 청년이 던져두고 간 파워볼 로또였다.
로또 용지를 건네받은 여직원이 로또를 확인하려고 로또 기기에 넣었다. 순간 특이한 소리가 났다.
여직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시 빼서 넣어보았다. 똑같이 특이한 소리가 났다. 민재도 덩달아 가슴이 요동쳤다. 혹시 당첨이라도 된 걸까?
“손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런 당첨금 확인은 처음이에요. 백십만 달러에 당첨됐어요. 이런 큰 당첨금은 오클랜드에선 지급이 안 되고요.
수도 웰링턴에 있는 로또 본사에서만 지급되니까 그곳에 가서 확인하고 수령하세요. 신분증, 여권이 필수예요.”
얼굴에 홍조를 띤 여직원이 민재에게 당첨 사실을 알리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로또를 돌려주었다.
웰링턴 로또 본사 안내도와 수령에 필요한 절차가 쓰인 안내서도 전해주었다. 이번에는 로또와 안내서를 받는 민재 손이 떨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민재가 택시 안으로 들어와 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거 마누레와 마오리 청년은 어찌한다? 그때 그렇게 매몰차게 떠나버리고 실망을 준 녀석?
지금은 그 집을 모른다. 택시 요금도 떼먹고 동네 입구에서 내려 소변을 봤으니까. 길거리서 탄 거라 인적사항 기록도 없다.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다.
크레딧 카드 결제도 없다.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날 새벽 얼마나 사람 속을 태웠던가. 그는 로또 발표일을 지나도 모르고 가지고 다니다 버렸다.
그것을 민재도 버렸는데 바람에 날려갔다 다시 돌아왔다. 그러길 세 번이나 하기에 그냥 콘솔박스에 담아둔 것이 복덩어리였다.
행운의 돈이 제대로 쓸 주인을 기다린 건가. 크게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행운의 돈은 잘못 쓰는 사람은 오히려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꽤 있지 않은가. 주춤하며 잠깐 반추해보는 민재 머리가 다시 평상을 찾았다.
‘그러면 언제 수령하러 가나? 이것 몸에 품고 다녀도 불편하고 불안하겠는데. 빨리 받아서 통장에 입금해야 안심이 될 것 같다.
마침 택시 안에 여권은 있고. 지금 여기가 공항 근처고, 이곳 쇼핑몰 주차장은 한가하니까 주차해두고 다녀오자.
당장 오늘 안에도 되돌아올 수 있으니까. 준비해서 바로 가자.’
민재가 여권과 필요한 것을 꺼내고, 택시 유니폼을 벗고 사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래봤자, 윗도리 가벼운 점퍼였다. 택시에서 내려 공항으로 걸어갔다.
마침 국내선 오클랜드 공항에 가서 확인하니, 비행기 좌석도 여유 있고 한 시간 뒤에 출발해서 충분했다.
Jetstar Airway 항공권을 $115에 예약하고 발권했다. 기다리다 비행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
“야! 이게 웬 행운이 나에게 이리도 계속 이어지지? 좋은 일 하라는 신호다. 20년을 되돌아온 회귀자에게 큰 자금은 엄청나게 유용한 자산이지.
2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정보로 지혜롭게 한세상 펼쳐보는 거다. 이 자금을 불려 택시 회사 설립과 향후 버스회사까지 인수해나가자.
좋은 일을 이웃들과 나누면서. 신은 제대로 방향 잡고 성실히 일하는 이를 돕겠지. 세상은 넓고 좋은 일도 많다.
한번 사는 세상, 열심히 맡은 일도 잘하며, 좋아하는 일에 빠져도 보면서 보람되고 즐겁게 사는 것. 이게 회귀한 민재의 삶이자 미션이다. 야호!‘
오클랜드 마누카우 하늘을 솟아오른 비행기가 웰링턴을 향해 바다 위를 날았다. 민재가 눈을 감고 비행기 창밖을 오랫동안 내려다봤다.
말 그대로 꿈같은 시간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비행기를 타니 온몸과 마음이 하늘 꿈속이었다. 2시간 만에 웰링턴에 도착했다.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듣던 대로 웰링턴은 바람의 도시였다. 거친 바람이 몰아쳐 왔다. 택시를 바로 탔다. 연로한 여성 운전자였다. 손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포근했다.
로또 본사까지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조곤조곤하게 웰링턴 이야기를 해주었다. 택시를 내리며 손녀에게 맛있는 것 사주라고 50달러를 팁으로 더 얹어주었다.
택시 운전사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민재가 예의 바른 미소로 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로또 본사 빌딩 5층에 올라서는데 가슴이 쿵쾅거렸다. 발걸음도 약간은 흔들렸다. 마음을 다잡고 들어갔다.
민재가 접수대에 서서 로또와 여권을 꺼내 밀었다. 이어서 입금 은행 통장 번호 메모지도 전했다. 선택사항인 비밀유지 여부에 비밀유지를 원한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접수 담당 여직원이 환한 미소로 응대하며 차분히 수속을 밟아주었다. 시원한 음료도 한잔 따라주었다. 대접받는 느낌에 민재 마음도 편해졌다.
여직원이 입금한 내력 서류를 민재에게 전해주었다. 세금을 떼고 난 후, 실수령액이 $1,000,000. 이었다. 0이 6개나 있었다. 백만 달러.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 확실하게 민재 통장에 입금된 것이다. 눈으로 확인하니 뿌듯했다.
‘내가 백만장자가 되다니! 예전에 백만장자 하면 닿을 수 없는 금액으로 보였는데. 쉽게 들어온 돈이지만, 알뜰하고 지혜롭게 활용하자.
신도 함께 지켜주고 배가시켜줄 거야.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을 위해 쓸 시금석이 되게 하자. 고맙고 은혜롭네. 이제 더욱 겸허히 감사하며 즐겁게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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