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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한북천마지맥 종주기5
*지맥구간:먹치고개-예봉산-천주교공원묘지입구
*산행일자:2007. 7. 15일
*소재지 :경기남양주
*산높이 :갑산547m/적갑산561m/예봉산683m/직녀봉590m
*산행코스:먹치고개-갑산-적갑산-예봉산-직녀봉-천주교공원묘지입구
*산행시단:9시48분-18시18분(8시간3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24기 이규성, 27기 송기훈, 29기 박웅경, 유한준, 정병기)
어렸을 때 어른 들이 서로 족보를 따지는 것을 보고 할 일이 저리도 없으실까 정말 못마땅해 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족보논쟁은 양반과 상놈 논쟁으로 번졌고 양반가문을 몰라보는 이 세상이 말세라는 식으로 끝을 맺기에 족보는 사회이동을 가로막는 봉건적 잔재로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족보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바꾼 것은 자식들을 낳고 기른 후의 일로 족보란 제가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를 알려주는 좌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정치시킬 수 있는 좌표가 없다면 광장에 내던져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치감각을 잃어 자아를 상실하게 됩니다. 어려서 내버림을 당한 아이들이 성장해서 낳은 부모를 찾는 것은 효도하고 싶어서기보다는 스스로의 좌표를 확인하고 자아를 되찾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설사 다른 사람들 앞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족보라 하더라도 스스로가 자식들에 더 이상 부끄러운 족보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자성의 계기가 되는 것만으로도 족보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요즈음 부쩍 관심을 기울이는 족보는 가문의 족보가 아니고 한반도 산들의 족보입니다. 사람들이 오른 봉우리가 어느 산줄기에 속해 있고 그 산줄기를 타고 계속 가면 어디에 닿을까 하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을 주고 있는 족보가 있습니다. 정조 때 편찬된 신경준의 산경표가 바로 그 것입니다. 족보가 가문의 체계도이라면 산경표는 우리나라 산줄기의 체계도입니다. 우리 국토의 척추는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입니다. 이 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져 나오고 이 정맥에서 다시 분기된 지맥들을 일목요연하게 표를 만들어 정리한 것이 산경표입니다. 최근 지맥에서 갈라진 산줄기를 분맥 또는 단맥으로 명명하고 하나하나 밟아가며 족보를 보완해 나가는 몇몇 분들의 노력 덕분에 머지않아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가 대대적으로 증보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경동동문산악회의 족보탐방은 한북천마지맥 종주로 시작됐습니다.
시작은 지맥 종주로 미미하나 끝은 대간 종주로 창대하리라는 믿음을 공유한 것이 한북천마지맥 종주를 마무리하고 나서 얻은 가장 큰 보람입니다. 지난 3월 한북정맥의 수원산 아래 서파/포천/명덕온천으로 갈리는 고개마루 삼거리에서 한북천마지맥에 발을 들인 지 넉 달 만에 팔당변 천주교공원묘지입구에서 종주산행을 마무리하기까지 총 5회를 출산했습니다. 처음 종주에 참여한 5명의 대원들 모두 50여Km의 지맥 길을 빼놓지 않고 전부 밟아 완주를 한 것은 대간완주에 비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작은 시작으로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쾌거입니다. 무릎통증으로 첫 회부터 고전했던 송기훈 부회장은 영국출장으로 합류하지 못한 구간을 회사직원들과 함께 했고, 중국에서 비행기를 제 때 잡지 못해 불참한 유한준 동문도 하루를 날 잡아 혼자서 뛰었으며, 다른 산악회의 시산제에 참여하느라 한 구간을 빼먹은 이 규성회장 역시 두 구간을 연이어 한번에 뛰는 등 착실히 자율학습을 해 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했음은 분명 자랑할만한 새로운 기록입니다. 모든 대원들이 오는 9월부터 한북정맥 종주 길에 다시 나서겠다고 뜻을 모은 것도 지맥종주를 완주한 성공적인 기록덕분입니다.
아침 9시48분 먹치고개를 출발해 마지막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청량리역에서 8시38분 발 전철을 타고 덕소 역으로 가서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먹치고개까지 가는데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 먹치고개에서 서쪽으로 난 큰 길을 따라 4-5분을 걷다가 오른 쪽 산소를 지나 지맥 길로 올라선 대원들은 전 구간 완주를 예정한 5명과 새로 동참한 2명 등 모두 7명이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남진 길이 전혀 덥지 않았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걸어 다다른 해발378.3m의 큰명산(?)에서 숨을 고른 후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갑산으로 향했습니다. 무릎수술을 얼마 앞둔 송부회장의 고군분투를 돕고자 다른 때보다 더 자주 쉬었다 가기로 한 터라 모처럼 산행이 여유로웠습니다. 2년 전 4월 쏟아지는 폭우에 모든 동물들이 숨죽이고 숨어 있을 때 저 혼자서 이 길을 걸어 오르며 이 산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저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산경표를 편찬한 여암 신경준이 길은 지나가는 사람이 임자라고 일렀다는 얘기를 듣고 제 생각이 주제넘은 것만은 아님을 알았습니다.
11시 정각 해발 547m의 갑산에 올랐습니다.
큰명산에서 봉우리를 4개 넘고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헬기장을 막 지나 갑산에 다다랐습니다. 산불감시카메라가 바위 위에 세워진 갑산에서 조금 내려와 안부에 내려서자 시야가 탁 트여 가깝게는 운길산이 멀리로는 용문산과 북한산 및 도봉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갑산에서 밋밋한 길을 따라 걸어 헬기장을 지난 다음 다다른 새우재/구선동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새재고개 가는 길이 엄청 가팔라 그동안 조용했던 송부회장의 무릎이 말썽을 부릴까 염려되었습니다. 탈 없이 새재고개로 내려선 것을 보고 송부회장도 지맥종주를 깔끔하게 끝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12시6분 운길산과 예봉산으로 갈리는 삼거리봉우리인 459.3봉에 올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갑산에서 내려선 새재고개는 사통팔달의 십자안부로 의자가 놓여 있고 운길산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사시사철 물이 나오는 샘물이 있어 모두가 쉬어가는 고개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예봉산 지역이어서 이제껏 걸어온 갑산 길과는 달리 꽤 많은 분들이 산길을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새재고개에서 나무계단을 올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맥 길은 459.3봉까지 오름 길이 계속됐습니다. 봉우리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자 길도 넓고 오르내림도 별로 없어 오른 쪽으로 연세대농원으로 갈리는 안부삼거리로 내려서기까지 산행이 더 할 수 없이 편안했습니다.
13시41분 패러글라이딩활공장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굽이도는 한강을 조망했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한 두 봉을 더 넘어 적갑산 바로 못 미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방태산을 다녀오느라 밤늦게 집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해 다른 대원들이 해온 먹거리를 고루고루 얻어먹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25분을 걸어 오른 쪽이 탁 트인 활공장에 도착했습니다. 하남과 덕소는 물론 서울의 거의 전 지역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활공장에서 조망한 한강의 물줄기는 완연한 곡선으로 마냥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서울을 남북으로 가른 한강의 힘이 저 부드러움에서 나온 것이라면 한강이야말로 외유내강의 표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시9분 해발683m의 예봉산을 올랐습니다.
다산 정약용 삼형제가 올라와 학문을 논했다는 철문봉으로 올라섰다가 헬기장이 있는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다시 한번 숨 가쁘게 올라선 봉우리가 예봉산으로 북한강과 남한강, 그리고 이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모두 조망되는 훌륭한 전망지이고 간이매장이 있어서인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됐습니다. 오른쪽 길로 하산해 팔당 가서 딱 한잔하면 정말 좋겠건만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이번 산행이 지맥종주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루금은 동쪽 안부로 내려섰다가 해발 587m의 율리봉으로 이어졌습니다. 15시에 오른 율리봉은 안내문에 따르면 스스로를 철문으로 부르며 다산 정약용의 후학을 자처했다는 정화성 선사가 밤이 많은 산에 있는 봉우리라 하여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16시4분 해발 590m의 직녀봉에 올랐습니다.
율리봉에서 고도를 200m 가량 급격히 낮추어 내려선 사거리안부에서 직녀봉으로 오르는 길이 마지막 깔딱 길이었습니다. 일명 귀티 나는 예빈산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직녀봉은 조금 떨어진 견우봉과 마주하고 있어 자연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생각났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러브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에 감동을 주어 회자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딱 한번 만나고 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매일 밤 만난다면 까마귀와 까치가 매일 밤 오작교를 놓아줄 수도 없는 일이고 또 매일 눈물을 흘릴 수도 없어 칠월 칠석 날 비가 내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리되면 이들의 만남에서 감동적인 요소가 모두 사라져 전설로 승화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콩쥐밭쥐전에 나오는 대로 계모 배씨의 방해로 외갓집 잔치에 가지 못하고 겉피 석 섬을 마당에 널어놓고 베를 짜고 있는 콩쥐를 베틀에서 내려오게 한 후 순식간에 베 한필을 다 짜고 새로 지은 옷과 댕기 및 신발 한 벌을 콩쥐에 내준 직녀의 선행이 있었기에 까마귀와 까치들이 오작교를 놓아 주었을 것입니다. 7년 전에 먼저 간 집사람을 이제라도 만나볼 수 있다면 견우와 직녀의 연례적인 만남보다 훨씬 극적인 일일 텐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은 그동안 제가 남들에 베푼 덕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럴 것입니다. 견우봉은 직녀봉보다 고도는 낮았지만 한강전망의 최적지였습니다. 두물머리가 바로 아래 내려다보이는 견우봉에서 사진들을 찍어대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만, 빼어난 조망이 긴 시간의 산행피로를 한방에 날려 보냈습니다. 지맥완주를 눈앞에 둔 대원들에 제공되는 최고의 보너스인 견우봉을 내려서기가 정말 아쉬웠습니다.
18시18분 천주교공원묘지 입구 정류장에서 한북천마지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견우봉에서 승원봉을 거쳐 신당동 교회가 조성한 천주교공원묘지로 내려섰습니다. 다리가 아파 지맥종주에 참여하지 못한 24기 이길호 회원이 저희들의 완주를 축하하고자 벌써부터 덕소역에서 기다리고 있어 이회장을 비롯한 3명이 먼저 출발했습니다. 공원묘지 입구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누구보다도 힘들게 한북천마지맥을 완주한 송부회장에 하이파이브로 축하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자그마한 지맥종주기념패는 뒤풀이 자리에서 증정되었습니다.
이어서 술잔을 치켜들고 큰 소리로 지맥완주를 자축했습니다. 당연 환희의 자리였습니다. 감사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결의의 자리였습니다.
3월초 회장으로 취임하여 복잡했던 산악회문제를 쾌도난마로 풀어가고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24기의 이규성 회장께 우선 감사말씀 드립니다. 회장을 보필하며 총무 업무를 함께해온 27기의 송기훈 부회장에 훈장이라도 수여하고 싶은 것은 부실한 다리로 완주하느라 누구보다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29기의 유한준, 정병기 동문에도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같이 전합니다. 또 양주와 북한 술을 준비해 모두에 한 잔씩 따라 준 24기의 이길호 동기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두 구간을 같이 종주한 29기의 박웅경 동문도 고맙고, 한북정맥종주에 동참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한북천마지맥을 먼저 밟아 길을 내준 많은 분들도 고맙고, 언제고 그 자리에서 저희들을 반겨준 한북천마지맥의 수많은 연봉들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할 수 있도록 정맥과 대간 길 하나하나를 종주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한북천마지맥 종주기를 모두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