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몸채와 별채라
민재가 로또 본사 빌딩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바람의 도시 수도 웰링턴이 세찬 바람을 날렸다. 잘 정비된 계획도시, 수도로서 면모를 그대로 보여줬다.
뉴질랜드 12월 한여름이 시원한 바람과 깨끗한 공기로 가득했다. 한참을 걸으니 뾰쪽한 첨탑을 한 성공회 성당이 앞을 딱하니 가로막았다.
“저절로 성당 안으로 발길을 이끄네. 옛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시 들렀던 야고보 대 성당이 떠올라. 중간쯤 좌석에 앉아볼까?”
민재가 혼자 말을 하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교회나 성당은 안 다녀도 감사하는 마음을 올리고 싶었다. 인간의 심성인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때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울려 퍼졌다. 마치 민재를 위한 서곡 같았다. 민재 가슴에 형용할 수 없는 격정이 소용돌이쳤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항시 마음 한 쪽에 자리한 화두가 오늘따라 새로운데.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사람은 왜 사는가. 무엇이 행복인가.”
성당 밖으로 나오자, 마침 택시 한대가 서며 손님이 내렸다. 민재가 손을 들어 바로 올라탔다. 젊은 청년 운전사였다.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있었다.
“에어포트 플리즈.”
“쌩큐 포 유어 라이딩”
공항까지 가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인도 스리랑카에서 온 젊은이였다. 택시 수입 중 절반은 병 투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고국에 보내드린다고.
효성이 지극해 보였다. 사람은 누군가의 끊임없는 후원자로도 산다. 민재 마음이 짠했다. 공항에 다다라 택시 요금에 백 달러의 팁을 얹어 주었다.
어머니의 병 쾌유도 빈다며 악수했다. 인도 청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택시에서 내려 떠나가는 민재에게 청년이 손을 흔들며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평일이라 운 좋게도 오클랜드 올라오는 비행기 좌석이 꽤 비어있었다. 수월하게 수속을 마치고 몸을 다시 비행기에 실었다.
백만장자의 현실을 느끼며 내려다보는 하늘 아래 세상은 맑고 쾌청했다. 오클랜드가 발아래 펼쳐지자 고향에 도착한 듯 반가웠다.
민재가 세워둔 택시 가까이 다가서자, 153번 택시번호가 반겼다. 153! 베드로가 잡은 기적의 153마리 물고기가 그물에서 퍼덕거렸다.
다시 택시 유니폼을 갈아입고 모뎀을 켜자, 바로 택시 콜잡이 울렸다. 모뎀에 메시지가 떴다. 10분 뒤 국내선 도착, 3번 출구. 앤드류.
“목적지는 노스쇼어 트리스트램이네. 퇴근길에 집 근처로 가는 장거리 손님이라니. 역시 오늘은 운수 대통한 날이야.”
민재 얼굴에 고마움의 미소가 번졌다. 공항 택시 대기 선에 차를 대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A4 사이즈 화이트 안내판에 마카 펜으로 앤드류라고 썼다.
3번 출구에서 화이트보드를 들고 기다렸다. 한 손에 캐리어를 끄는 장년의 신사가 손을 흔들며 민재 앞으로 왔다. 민재가 다가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앤드류. 전 존이라고 합니다. 이리 주시지요, 캐리어.”
민재가 캐리어를 받아 끌며 출국장을 나왔다. IRD(뉴질랜드 국세청)에 근무하는 슈퍼 매니저였다. 웰링턴에 출장 다녀오는 중이었다.
이야기 중에 웰링턴으로 승진 발령이 나서 집을 곧 팔고 다음 달에는 내려가야 한다고. 민재 눈이 번뜩 빛났다.
“집을 판다고? 노스쇼어 지역이고. 트리스트램 애비뉴면 학군도 좋은데. 초 중 고등학교가 잘 돼 있는 곳이니.
어쩜 저 집을 사라고 내 택시에 연을 붙여줬나. 성공회 성당에서 기도한 응답이 이렇게 연결되는 건가?“
그때, 또 장미 향기가 진하게 흘러나왔다. 민재에게 좋은 인연으로 맺어질 사람에게서 나오는 이채로운 향기였다. 그럼 민재야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 집에서 15년 살았는데, 애들도 다 대학 졸업하고 독립했어요. 지금은 아내와 강아지, 셋이서 살아요.
방 셋인 몸채는 가족이 살고, 방 둘이 딸린 별채는 렌트를 주었어요. 25년 된 집이지만, 대지가 1,200스퀘어 미터라 나중에 개발 여지는 커요.
지난달 팔려고 내놓았는데,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성사되지 못했어요. 매수자의 자금 융자 승인이 은행에서 안 돼서요.”
대충 이야기를 듣고서, 민재가 관심 있게 물어보았다.
“원하는 가격이 얼마지요? 지난번 계약 직전까지 간 가격은 얼마였어요? 제가 봐서 맞으면 사려고요. 마침 그런 결정을 오늘에야 할 수 있게 됐어요.”
20대 젊은 민재의 말에 50대 후반의 앤드류가 화들짝 놀란 눈치였다. 가감 없이 솔직히 대답하는 듯했다. 민재도 그런 믿음이 들었다.
“원하는 가격은 55만 달러고, 지난번 계약 직전까지 간 가격은 52만 달러였어요. 분명 잠재력 있는 가격이라 확신해요.
오늘 웰링턴 출장 후, 그곳에 살기 딱 좋은 집을 조건부로 계약하고 올라오는 중이거든요. 내 사는 집이 팔리면 사겠다는 조건으로요.
존 당신과 직접 계약 체결하면 부동산 비용은 제가 빼 줄 수도 있어요. 제가 IRD에 근무하니 향후 세금 관련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움 줄게요.”
“일단 도착해서 한번 전체 둘러보고 결정하지요. 전 결단 내리면 현찰로 살 거거든요. 은행에서 융자 내고 시간 걸리는 과정 같은 거 없이요.
앤드류가 이야기한 대로 둘이 직접 계약 체결하면 부동산 중개료도 절약되니까 좋은 가격에 주세요.
그 집이 아니면 전 다른 집 내일부터 찾아볼 생각이었어요. 마음에 들어 만약 그 집을 사게 되면 방 둘 있는 곳엔 제가 살 거고요.
방 셋 딸린 몸채는 렌트 줄 생각인데요. 장기간 투자용으로 사려는 계획입니다.“
민재의 적극적인 매수 의지를 듣고서, 앤드류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좋아요. 둘 다 기꺼운 마음으로 계약을 하면 되겠어요. 2만 달러 깎아서 50만 달러에 넘기겠습니다.
부동산 업자 중개 없이 개인 간에 프라이빗 계약을 하는 겁니다. 장기간 보유하면 분명히 큰 폭으로 올라 투자이익을 얻을 거라 믿어요.”
“좋습니다. 앤드류. 어서 가서 집 전체를 확인하고 마음에 들었으면 합니다.”
앤드류와 존의 대화는 급물살을 탔다. 앤드류가 집에 전화해 아내더러 집을 좀 치워두라고. 곧 집 살 사람 데리고 간다고 했다.
그런저런 이야기 끝에 앤드류 집에 도착했다. 앤드류와 존이 택시에서 내렸다. 평편하고 넓은 대지위에 집이 두 채 보였다. 몸채와 별채라. 꿈만 같았다.
“여기입니다. 자 바깥부터 먼저 둘러보시지요.”
앤드류의 안내로 몸채 바깥부터 별채 바깥을 둘러보았다. 두 채 모두 벽돌로 지은 집이었다. 집 뒤에 또 한 채의 집도 지을 충분한 공간이 되었다.
“집 골격이 매우 탄탄해 보이는데. 위치도 좋고. 남북을 관통하는 1번 모터 웨이 진입로까지 가깝고. 초 중고등 학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네. “
민재가 내심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다음은 몸채 내부를 둘러보았다.
기다리던 앤드류 아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 내부 시설도 탄탄했다. 최근 리노베이션 한 주방 싱크대와 화장실 시설이 집의 품격을 높였다.
“거실과 안방 창유리 틀도 넓은 것으로 다시 교체한 상태인데. 무엇보다도 집 외부에 ㄴ자로 설치한 데크, 테라스가 아웃도어 생활에 편리해 보여.”
거실은 카펫 바닥을 걷어내고 원래 바닥 재료로 쓴 리무 나무(뉴질랜드 최상 건축용 소나무)를 잘 살려서 니스까지 칠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깔끔해 보여 좋네. 큰 방 안쪽에 딸린 화장실과 옷장도 쾌적하고. 거실, 방들의 내벽도 은은한 연둣빛 페인트가 조화를 이루는데.”
몸채는 합격. 다음은 사랑채, 별관으로 갔다. 앤드류 먼 친척되는 아가씨가 사용 중이었다.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역시 합격점이었다.
앤드류 아내인 린다가 이브닝 티를 들고 거실로 나오며 인사했다. 뭐야? 린다에게서도 진한 장미 향기가 흘러나왔다. 더는 따지지 말자.
“존. 우리 집을 구입할 귀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15년 동안 살며 우리 가족들 좋은 일 많이 있었어요.
행운이 따른 집이라 오래 살았어요. 부디 존 마음에 들어 다음 주인으로 오래 살며 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랄게요.
우리 집을 산사람이 잘 살아야 저희 부부도 좋은 일이니까요. 저희가 이 집을 살 때 15년 전에 주인도 저희한테 그렇게 했어요.
그런 식으로 저희도 존에게 그대로 물려줬으면 참 좋겠어요. 제 생각에 집도 그런 기운을 품고 있다고 봐요. 존도 선해 보이는데요. 행운이 따를 거예요.“
민재가 린다에게 목례하며 예의 좋은 미소를 띠며 말문을 열었다.
“앤드류와 린다 두 분을 만나 뵈어서 감사드려요. 느낌이 좋습니다. 조건 없이 캐시로 계약하겠습니다.
이 집에 필요한 생활 정보 잘 적어서 주시지요. 이를테면 더 손봐야 할 곳이나, 조심할 사항 그리고 유용하게 쓸 집 관련 정보 같은 것 있을 거예요.“
앤드류와 린다 두 내외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앤드류가 부동산 계약서를 가져와 민재와 얼굴을 맞댔다.
역시 IRD 직원이라 문서 작성에 노련미가 넘쳤다. 앤드류와 린다 부부는 전형적인 키위(뉴질랜드 현지인. 주로 백인)였다.
영국 아일랜드에서 조부가 이민 와서 일군 가정이었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이런 좋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큰 자산이었다.
앤드류가 꼼꼼하게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금은 5만 달러, 잔금은 2 주일 뒤에 주기로.
그 간 이 집 LIM Report(부동산 내력. 시티 카운슬에 신고한 이 집 허가 사항. 법적인 하자 유무 가리는 증서)를 떼 주기로.
2 주일 뒤 본채와 별채 다 비워주기로, 가능한 한 본채 렌트도 주선해 주기로. 이 집에 딸린 시설물은 그대로 두고 가기로.
(커튼, 히터, 주방용품, 스토브, 디쉬워터, 필요하면 붙박이식으로 맞춘 냉장고, 냉동고, 전자레인지.
집 외부 데크와 가든에 있는 큰 화분들도. 가드닝 도구와 잔디깎이도 창고에 두고 가기로.)
필요하다면 거실 소파도 두고 가겠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남 렌트 들일 때 집에 생활 집기가 갖춰있으면 몸만 들어와도 살 수 있으니까.
앤드류 부부는 웰링턴으로 이사하면 새집에 맞는 걸로 전자제품이나 소파를 구하겠다고 했다. 민재가 흡족하게 계약서에 서명했다.
다음 날 오전 9시에 민재랑 만나, 앤드류가 아는 변호사의 서명을 받고, 은행에 들러 계약금과 잔금 지급을 진행하는 것으로 했다.
린다가 구워온 쿠키를 티와 들며 간단한 여담도 즐겼다. 민재가 자신의 포부도 밝히며 필요하면 도움을 달라고 요청도 했다.
“앤드류와 린다 두 내외분을 만나 뵙고, 보금자리까지 얻게 되어 감사드려요. 전 5년 이내에 택시 회사를 오클랜드에 만들려고요.
10년 안에는 버스 회사도 하나 인수할 생각입니다. 전 뉴질랜드에서 운수사업을 하고 싶어요. 그걸 기반으로 다른 관련 사업도 펼쳐갈 계획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두 분의 도움이 제 일에 큰 활력소가 되리라 믿습니다.”
앤드류가 일어나서 민재 두 손을 꼭 쥐여 주었다. 린다도 그 위에 두 손을 얹었다.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진한 장미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
5화 끝(5,21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