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안에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자(2176.2023.1.22)
요1서4:7-1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설날에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설날을 맞이하면 고향을 찾아가고 또 부모님을 찾아서 이동을 합니다. 올해도 많은 인구가 코로나가 어느정도 진정되어 가고 있어서 많이 이동한다고 합니다. 명절에는 경제가 조금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집집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특히 농촌에 살고 있는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오면 줄려고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것들을 꾸러미 꾸러미 싸서 아들 딸들이 타고 온 자동차에 실어 주느라고 또 여념이 없습니다. 아무리 주어도 더 주고 싶은 마음 이것이 부모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설날 명절을 지내면서 신앙도 제쳐놓고 예수도 제쳐놓고 정신없이 명절에만 정신이 팔려있으면 안됩니다. 이제는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명절에 사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유월절 명절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설날 명절을 지내면서 혹시라도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깨어 경성하여 이번 설날 명절을 지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잃어버린 다음에 찾지 말고, 은혜 떨어진 뒤에 후회하지 말고, 믿음 식어진 후에 가슴 치지 말고 예수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은혜가 떨어지지 않도록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믿음이 식어지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등불이 꺼지기 전에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실 때에 어두움에 쫓겨나서 슬피 울며 후회하기 전에 신랑 되신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설명절에 모든 가족들을 만나는데 사랑으로 만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 줄지라도 내가 자랑 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천사의 말을 하고 가장 멋진 설교를 할지라도, 예언하는 능력과 갖가지 은사가 있을지라도, 정말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자신의 몸을 다 헌신할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이로움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랑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안에 이런 사랑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뜨겁게 사랑합시다’라는 말은 ‘마더 데레사’수녀가 생전에 남긴 말입니다. 가장 큰 병은 결핵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병입니다. 육체의 병은 약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독, 절망, 좌절의 유일한 치료제는 사랑입니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사랑 합시다’라는 말만 들어도 식상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있고 사랑이라는 주제로 한 설교도 수없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설교를 또 할 수밖에 없고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고 실제로 성경에도 수없이 명령형으로 강조되어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자꾸 강조되는 것은 사랑의 중요성에 비하여 사랑이 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수녀의 말처럼 ‘세상에는 빵 한 조각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설날이기도 하지만 2023년도에는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가정과 상주감리교회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한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어떻게 하면 진실하고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십니다. 본문에 요1서4:7-8절‘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대신 피 흘려주시고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사랑입니다.
본문 요1서4:9-10절‘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까?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늘나라의 모든 기업을 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합니다. 체험하여야합니다. 누려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의 체험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요1서4:11절‘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했습니다. 성도여러분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 참사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여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사랑이란 말은 통속적인 사랑이란 말이 아니라 ‘주안에서의 사랑’,‘신령한 아가페의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의 사랑이란 단어도 육적인 사랑인 에로스가 아니라 아가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육적이고 이기적이고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를 향하여 행하신 십자가의 사랑,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 가정이나 사회에나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한 사람의 사랑은 놀라운 큰 기적을 나타냅니다. 그러한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게 되는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오늘 본문 11절‘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원리를 친히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심으로써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 9절‘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이실 사랑의 궁극적인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낸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인간은 하나님께 속한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없기에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유한은 인간이 알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였습니다(롬5:8).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희생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그 사랑을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온전한 희생이며 그 희생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곤란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어려울 때는 도망을 치는 비급자들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용서하셨고 다시 부르셔서 위대한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용서하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본문 10절‘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는 말씀에서 ‘화목제’란 말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제물로 삼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하셨기에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변함없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랑을 보이셨고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이렇게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끝까지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한 것 같이 온전한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의 사랑을 세상에 증거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요13:34-35절‘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스승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성경을 달달 외울 수 있습니다. 날마다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날마다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엎드려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 표시는 ‘서로 사랑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기독교 교부인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데 있어서 유일한 표징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만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합니다. 그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표를 몸에 띠고 함께 아멘하고 화답하고 함께 할렐루야 하고 노래하고 세례를 받으며 교회 다니며 회당에 벽을 세울지라도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니 그 사랑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2.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합니까?
서로 사랑하면 행복하게 됩니다. 11절‘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는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죗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런 사랑을 여러분이 다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보입니까?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천국가기 까지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가 없습니다. 그냥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12절‘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여러분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럼으로써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빌립이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의심이 많은 제자입니다.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제자를 책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요14:9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교회 안에 영지주의 이단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영혼이 환상 중에 하늘 여행을 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여러분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12절‘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계신 예수=하나님이 보여졌습니다.
요1:18절‘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우 실제적으로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교회와 신자들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들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 나타나심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넘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교회 안팎에서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교회 안팎에서,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이 사랑이 온전히 완성됩니다. 12절‘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온전히 성취할 수 있는 방법, 다시 말씀드려서 여러분의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 또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대한 반응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교회 안팎에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고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습니다(잠 15:17). 서로 사랑하면 즐거워집니다. 서로 사랑하면 기쁨이 솟아납니다. 서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삶의 환경을 에덴으로 바꿔놓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며, 봉사하며, 기쁨을 주려고 노력할 때 얻게 되는 보상입니다.
가장 행복한 남편은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손에 무엇인가 들고 일찍이 퇴근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과 가족들의 식탁을 위하여 시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모습에서 행복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남을 슬프게 하고서는 결국 기쁠 수가 없습니다. 남에게 꽃 한 송이를 꺾어주는 사람에게는 자신에게도 향기가 묻어오는 것입니다. 남이 울고 있는데 내가 웃을 수 없으며 남을 괴롭게 하고서는 내가 즐거울 수 없습니다. 남을 즐겁게 해 주려고 할 때 내가 즐거워지는 것이고, 남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할 때 내 마음이 편안하며, 남에게 무엇인가 기쁨을 주려고 할 때 내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면 행복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3.서로 사랑하면 서로를 살리는 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최대의 사역은 ‘살리는 일’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전 사역은 한 마디로 ‘살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함으로 살고 그 가정의 자녀들은 그 사랑으로 인해 살아납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서로를 죽이고 결국 자녀들마저 죽이는 것이 됩니다.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가, 세계 역사가 살아남는 일은 서로 사랑하는 사랑 운동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랑 때문에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것을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나를 사랑하게 한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참으로 숭고한 것입니다. 사랑만이 살리는 힘이 있고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궁극적인 가치는 죄인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큰 사랑을 나타내셨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살려냅니다. 이것이 중요한 원리입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고, 부정한 자를 살려내고, 악한 자를 살려냅니다. 이 땅의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살려내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사랑의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롬5:5절‘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의 부은 바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의존하여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서로 사랑하면 행복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면 서로를 살리는 길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한 것 같이 내가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희생한 것같이 자기를 희생할 때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 성령으로 임재하셔서 나를 사랑의 화신으로 만들어 놓을 때 진정한 사랑이 실현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요? 바로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요한일서4:7-12절‘서로 사랑 합시다’라는 말이 무려 3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천이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기에 우리들 안에 사랑이 있기에 서로 사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들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11절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 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죄의 종노릇하면서 살 때, 죄의 종 된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죄의 댓가는 사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망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아들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댓가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들로 삼으시기 위해서는 동일한 아들을 내어 주셔야만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여러분을 종으로 삼고자 했다면, 종을 내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아들로 삼고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요1서3:1-2절‘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지금뿐만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군인이 제대하면 더 이상 군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영원히 불리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단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멸망의 자식, 앞에서 언급된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결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단들은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인 것은 아닙니다. 결코 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가족(권속)입니다. 벧후1:4절‘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사도 요한은 지금까지 ‘빛 가운데 행하는 참 신자의 조건 5가지’를 언급한 후에 ‘하나님의 자녀의 조건 5가지’를 똑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신자나 하나님의 자녀는 ➊범죄하지 않습니다, ➋계명을 지킵니다, ➌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➍서로 사랑합니다, ➎믿음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사랑해야만 합니다. 사도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는 요구로 그의 선포를 시작합니다. ➊하나님의 참된 자녀로 살기를 원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숫자가 많거나, 재정이 넉넉해지는데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사랑’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7절‘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하는 교회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 있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상주감리교회는 그런 사랑을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아는 신자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려 보내진 예수로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 곧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왜 보내셨습니까? 우리 때문에,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9절‘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여러분은 죽은 사람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여러분을 살려 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경험되어집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여러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에게도 베풀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12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어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서로 섬기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은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임재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매 주일 성도의 교제로 서로를 격려하고 가슴으로 안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가슴으로 서로를 안아주면서 깊은 사랑의 나눔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더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교인으로 끝나지 말고 이 땅에 방황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주님의 사랑을 성도들간에 충분히 느끼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충전을 빵빵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에 나아가서 그 사랑을 이웃들에게 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이 땅 구석구석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