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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잃어버린 성경의 아름다운 용어들
잃어버린 성경의 아름다운 용어 (youtube.com)
오늘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의 생활에서 도움이 될 성경 용어들을 잃어버린 성경의 아름다운 용어들이라는 제목으로 좀 살펴보려 합니다.
성경에 아름다운 용어들이 많이 있습니까?
특별히 아름다운 용어를 상징으로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니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정말 대단한 표현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이 아름답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한 말을 아름다운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름다운 용어는 무엇에 상징하고 있다고요?
아름다운 은쟁반에 금 사과...
무슨 말입니까? 경우에 합당한 말들이 그러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는 말씀입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말들 중에도 아름다운 용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아름다운 용어들이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성경용어들은 어떤 말이 있습니까?
한번 말씀들 해 보시겠습니까?
믿음, 소망, 사랑, 천국, 예수, 용서, 은혜, 회복, 영광, 천사, 영예, 찬양.등 등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부자라는 말도 좋아 하시나요? 돈도 성경에 있습니까?
아름다운 말이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성경에 나오는 성경용어들입니다.
저는 오늘 성경에 나오는 정말 아름다운 용어들 가운데 즐겨 사용하지 않는 귀중한 용어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면서 그러한 용어들을 즐겨 그리고 기쁨으로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 영성에 얼마 만한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잘 사용하지 않는 그래서 잃어버렸다는 표현을 제가 할 만큼 아름다운 용어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혹 교회들 마다 다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제 그 첫 번째 잃어버린 은쟁반의 금 사과 아름다운 용어 아멘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교회는 아멘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까?
우리 교회도 잃어버린 용어라는 느낌이 듭니까?
아니면 겨우 살아서 사라지지 않으려 사용하고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아멘도 분위기를 봐서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진교 열린교회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아멘을 잃어버린 성도님들이 있다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아멘이 회복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함께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은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그리고 우리 말처럼 느껴지는 히브리어입니다.
히브리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히브리어 아멘을 그대로 아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물론 다르게 번역된 용어들도 있습니다.
진실로 참으로 그리고 진리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아멘으로만 약 57회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아멘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기도 중간에 라든지 기도가 마칠 때에 아멘이라는 표현은 나도 그러한 기도를 원합니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라고 원합니다.
기도대로 응답하여 주옵소서라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고로 공중기도 시간에 비록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아멘 함으로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 하늘에 올라가는 의미로 우리는 이해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 드릴 때에 중간에나 마칠 때에 아멘이라는 말의 화답이 필요합니까?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기도 시간에 어떤 곳에 아멘을 하여야 적합할까요.
기도를 인도하는 자는 마칠 때 한번 아멘을 하지만 함께하시는 분들은 몇 번 합니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마다 혹은 나도 그렇게 이루어 지기를 원합니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마다 아멘 하면 됩니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아멘하면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남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고 믿으시는 분들은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이 왜 나에게 유익이 될까요?
①그것은 아멘 함으로 기도자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말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가 아멘 함으로 누구의 기도가 될 수가 있다고요? 나의 기도가 될 수가 있다. 아멘 많이 하여야 하겠습니까?
②두 번째로 기도자에게 용기와 힘이 됩니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됨으로 기도가 더욱 은혜 스럽게 되기 때문에 결국 나의 기도가 더욱 은혜스럽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아멘입니까?
③세 번째로 남에게는 어떤 유익이 될까요? 함께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데 내가 중간에 아멘 하는 것이 어떻게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까?
똑 같은 환경 가운데서 말씀을 듣는 것이 내가 아멘을 하는 것으로 어떻게 다른 분들에게 감동을 줄 수가 있을까?
여러분들은 다 공중 기도를 해 보셨고 들으셨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는 말씀이 틀리지 않음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설교를 하지 않아도 말씀을 들을 때 아멘이라는 화답은 또 다른 감동의 말씀 멧세지가 되어서 은혜로서 나에게 돌아올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이유가 은혜와 관계가 있기에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큰소리로 아멘하게 될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 27:12-15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
무슨 말씀인지 다 아시죠?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던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고 선포 되어 질 때마다 듣는 백성들은 아멘하라고 하죠?
오늘날의 그리심산과 에발산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여호수아 8장에 보면 성취되는 기록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여러분들은 복받으십시오 라는 말씀과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는 말씀 어느 말씀에 아멘 하시겠습니까?
축복이든 저주이든 하나님의 말씀에는 다 아멘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축복의 말씀이 듣기가 좋습니까? 저주의 말씀이 듣기가 좋습니까? 축복의
우리 성도님들 교회의 목사님들이 축복의 말씀을 많이 합니까?
저주의 말씀을 많이 합니까? 잘못하면 저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거의 하지 않으시죠?
에발산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는 말씀을 듣고도 아멘 이라고 화답하였는데 우리 성도님들 설교자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아멘하여 함께 은혜받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무슨 설교하나 하고 설교 논평가 자세를 하지 마시고 그리심산과 에발산 앞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어떤 말씀이 전포되어 지드래도 적극적으로 아멘으로 화답하여 함께 은혜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교회들 되길 축복합니다..
그럼 설교시간에나 예배시 구체적으로 어떨 때 아멘을 하면 좋을까요?
성경 본문을 읽을때는 대부분 부정적인 말씀보다 긍정적인 말씀들을 본문으로 합니다 고로 본문을 읽을 때 아멘합니다.
그리고 설교 도중에라도 축복합니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될 줄믿습니다. 라는 표현들을 설교자가 할 때 아멘 하시면 은혜가 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마치는 표현을 했을 때 그리고 말씀에 대한 깊은 감동을 느낄 때
아멘을 하되 속으로 하지 마시고 성도님들이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아멘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럼 이러한 아멘들은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성경보겠습니다.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아멘 입니까?
진짜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신다면 진짜 아멘이 됩니다.
설교 시간은 대개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된다고 하죠?.
그런데 우리가 아멘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하는 말씀은 무엇을 말 함일까요?
설교자가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였을 때 청중이 “아멘“ 함으로 믿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주실 줄 확신합니다 라는 표현이 됨으로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그렇게 원하시는데 백성이 대답이 없어 주지 못함으로 영광이 되지 못한다는 역설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멘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고 아멘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들의 삶속에 풍성이 이루어지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 은쟁반의 금사과 잃어버린 아름다운 성경 용어는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라는 말 좋은 말입니까? 좋아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까?
할렐루야는 신구약에 약 27회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 약 23회 그리고 신약에 약 4회로 신약에는 대부분이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 가사 속에 들어있습니다.
의미는 여러분들도 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찬양하라는 의미의 할렐루와 여호와를 가리키는 야가 합쳐져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로이해 되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시편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몇 절만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 더 올립니다.
시 115:18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이런 말씀이 시편이 많습니다.
말씀을 읽으시면서 들으시면서 말씀 중에서 무엇인가를 느끼셨습니까?
이젠 신약에 있는 말씀을 몇 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계 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한절 더 올립니다.
계 19: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무엇인가를 좀 느끼셨습니까?
말씀을 깊이 묵상 해보니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감동된 말씀을 전하고 난 뒤 할렐루야라고 외칩니다.
그러니 그 말씀을 받은 자들이 말씀에 감동함을 받아서 아멘 할렐루야 라고 화답을 합니다.
우리 찬미가에도 할렐루야가 아주 적절하게 들어 있는 찬미가 있죠?
우리찬미가 384장입니다.
1절 만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제가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큰 사랑 하면 여러분들은 주 영광 할렐루야 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줄도 그렇게 부르고 후렴은 함께 부르겠습니다.
근데 오늘날 이렇게 아름다운 용어가 너무 와전되어 너무 흔하게 사용되어 지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가 있지만 너무 사용하지 않는 것은 더 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다른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좋은 것은 우리가 취하는 것이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자가 감동된 말씀을 전하다가 할렐루야라고 외치면 청중들은 아멘하고 화답하면서 할렐루야 하면 훨신 더 은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저는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찬양하는 자들의 그리고 말씀을 전하고 받는 자들이 마땅한 것이라고 이해를 하는데 저의 생각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가 되신다면 다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말씀을 듣다가 넘 감동을 받으면 아멘 할렐루야 라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도자가 아멘이라고 화답하면 더 큰 은혜가 될 줄 확신합니다.
우리 옆을 보시면서 할렐루야 라고 한번 해 볼까요? 오른쪽 분이 옆을 보시면서 할렐루야 하면 앞에 계신 분은 아멘 할렐루야 이렇게 하겠습니다..
어색하지만 자꾸 사용하면 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사용하여도 하지 않아도 아무런 일이 없지만 우리가 하늘가는 일에 무리 될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 영광 들리시는 일이 될 수가 있다면 누가 하던 것이라 할 찌라도 과감하게 행할 줄 아는 성숙하고도 은혜 충만한 우리 진교 열린교회 성도님들 다 되길 축복합니다.
세 번 째 은쟁반의 금 사과 잃어버린 아름다운 성경 용어 축복입니다.
여러분들 다 축복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하시죠?
사용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제 말씀을 들으시면 이 용어가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이해하게 되실 것이라 생각 합니다.
축복과 복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은 축복이 더 좋습니까? 복이 더 좋습니까?
일전 다른 교회에 있을 때 한 분이 물었습니다.
축복과 복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라고요.
그랬더니 한 젊은 집사님이 손을 들고는 복은 그냥 복이고 축복은 좀 더 큰 복입니다 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이해를 하시나요?
오늘 잃어버린 성경의 축복을 찾아 나의 것으로 삼고 많이 축복하는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축복은 축자와 복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한문의 축복은 이렇게 씁니다.
祝(빌축)福(복복) 축복을 순수우리말로 풀이하면 어떤 말이 됩니까?
복을 빈다라는 말이 됩니다.
성경에 쓰여진 축복과 관련된 내용들을 좀 찾아보겠습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누가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입니까? 아니면 뭐라고 합니까? 복을주고
축복은 누가 합니까? 또 복은 누가 줍니까?
또 있습니다
창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이곳에 나오는 그가 라는 사람은 누굽니까?
예 살렘왕 멜기세덱입니다.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어떻게 축복합니까? 하나님이시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축복합니다.
이상에서 기록된 말씀들을 살펴볼 때 축복과 복의 개념이 아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느끼셨습니까?.
축복은 누가 합니까? 사람이 하고요.
그리고 복은 누가 줍니까?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근데 우린 남에게 축복하기도 싫어 하고요.
오히려 하나님께는 복을 달라고 드리는 기도보다는 축복해 달라는 기도를 많이 드리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들의 기도는 그렇지 않았습니까?
축복하여 주옵소서 라는 기도보다는 복을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가 더 바른 표현이라고 동의 하신 분들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고 기도를 하다 보니 우리가 형제들에게 축복 해주는 일을 아끼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축복은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인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사랑하는 재림 성도님들이시여 이웃들에게 그리고 교회의 형제자매님들에게 많이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네가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내리고 라는 말씀의 성취를 경험하게 될 줄 확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닌 복을 구하는 기도를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셀 수 없을 만큼의 복을 부어주심을 경험케 될 줄 확신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렇게 축복 하옵소서 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라고 생각하시고 축복을 넣어서 드리고 싶다면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께 기도하시면 될 줄 믿습니다.
이유는 그분들은 우릴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성령님도 축복하시는 것 보다는 복을 주시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말씀 더 찾아보겠습니다.
민 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이 누굽니까?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말씀이죠?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도 베드로에 의하면 우리 재림 성도들 모두가 다 백성들에게 축복하라 그리하면 내가 복을 주리라 라고 하시는 말씀을 잊지 마시고 복의 통로들이 다 되길 축복합니다.
축복을 많이 해야 될까요? 축복을 많이 달라고 해야 할까요?
하나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신다면 저는 하나님께서 축복은 너희들이 해라 그러면 나는 복을 줄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재림을 사모하시는 귀하신 성도님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자매님들을 많이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축복하지 않는 인생들 에게 축복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오시어 사람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축복의 제물로 제단위에 올리시고 우릴 위해 죽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을 받아 들인 모든 사람들이 다 축복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아 경험하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 전 잃어버린 용어라는 제목으로 세 가지의 용어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아멘입니다.
두 번째는 할렐루야입니다.
그 다음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언어들을 많이 사용함으로 그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귀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모두가 함께 받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