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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수리공
경기 창조고등학교 2학년 이금희
열대야가 나무를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낡고 긴 길가마다 달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너머 끝자락 아빠가 올라간 깨진 가로등
잿빛 기둥은 오랫동안 구부러진 나이테를 지니고
고장 난 등불이 잎사귀의 양면처럼 흐려지고 있었다
함께 저물어가던 아빠의 여름밤
가장의 발판은 늘 아슬아슬한 못들의 나열이어서
곧 떨어질 나뭇잎처럼 매달려 있었다
공중에 앉아 뿌리부터 흔들리며 아슬했던 뒷모습
아빠는 거뭇해진 줄을 허리에 휘감아 걸터앉았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여름을 덜어내야 했고
수리되지 못했던 건 하루에 심어진 반짝이는 생계였다
얼굴에 닿는 얇은 하루의 흔적들을 치우면서
저물어버린 불빛만을 살피고 있었다
허리에서 닳아버린 줄을 계속해 묶어 보이던 풍경
밤에도 흐르는 땀방울이 가로등을 노랗게 적셔갔다
아빠에게 나무는 차가운 철제 기둥일 뿐이어서
초록빛 숨을 힘껏 내쉴 겨를도 없었다
가로등 위에서 땀에 젖은 머리칼이 흩날리고
깜빡이는 조명을 고칠 때마다 잊어버리던 세월이 있었다
시들어가던 나뭇잎과 크기가 작아지던 나무
다가올 가을과 겨울을 준비하던 아빠의 손끝
나는 집안에 따스한 햇살이 자라나길 기도했다
다음 계절의 단단한 잎사귀들을 기다리던 밤
낡은 거리에는 쓰라린 뒷모습이 떠다녔다
열대야의 고단한 바람이 높은 나무를 타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가로등 불빛
그 아래 아빠의 그림자가
커다란 나무의 모습으로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