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KC Instructor 가 되기까지- SOM 체험기(2)
<2011.02~2011.11> RKC 인스트럭터 도전기 / RKC 2012/01/20 16:18
원문은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kamza01/60153476406 에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두서없이 글을 썼습니다.
가끔 글을 쓰다 이전 게 생각나서 갑자기 쌩뚱맞게 과거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려니 하시고 재미있게 봐주시길. ^^;;;;
------------------------------------------------------------------------------------------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
-탈무드-
5월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서 하자면...
6월이 되기 전까지 난 스쿨오브무브먼트의 선생님들이 쓰신 각종 칼럼들을 읽고 또 읽었다. 특히 칼럼 중에 파벨의 저서 <릴렉스 인투 스트레치>의 내용을 앞 부분만 간단히 번역해 정리한 글이 있는데 이 글은 최소 10번 이상 정독했던것 같다. (http://cafe.daum.net/gaiayoga/KroR/68)
이 글을 비롯한 다른 칼럼들을 여러번 읽은 뒤부터 스트레치, 유연성(flexibility) , 이완(relaxation) ,모빌리티가 의미하는 바가 서로 다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때부터 수련방식이 달라졌다.
이전 요가수련에서는 '이완 = 유연성'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있어서 동작마다 더,더,더 스트레치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더 스트레치 된다고 그것이 더 이완되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상을 입었다. 유연함이 이완이 잘 돼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뭐 어느 정도는 교집합적인 부분이 있겠지만.
이후로 더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애써 더 고통으로 몰아부치지 않았다. 목표였던 180도 스플릿따윈 이젠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적은 가동범위에서도 깊은 호흡으로 텐션을 덜어내려 애썼다. 시간이 지나고 이완이 잘 될 수록 유연성 또한 좋아졌다.
또한 클린을 배운 뒤로는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배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훗, 운동하는 남자라면 굳은살이 있어야G.'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 뒤엔 계속되는 클린 동작시 케틀벨 손잡이에 굳은살이 집혀서 케틀벨을 손에 쥐기도 힘들 만큼 통증이 찾아왔다. 결국엔 장갑을 끼워도 아픈 지경이 되었다.
이때부터 겸손하게 굳은살 깍는 칼과 사포를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밀었다. 물론 일반인들은 장갑을 끼면 되겠지만, 난 RKC 써트를 준비하는 입장이라 맨손으로 테크닉을 익히려 애썼다. (RKC 써트의 각종 테스트는 맨손으로 치름)
이제 6월.
프레스를 익힌 뒤로는 파벨의 저서 <엔터 더 케틀벨!>에 나오는 RKC가 되기위한 통과의례(Rite of Passage = RoP, 프레스래더 + 스윙 or 스내치)의 프로그램을 따라 수련해왔었다. 아직 번역이 되기 전이라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직접 나의 몸에 맞추어 그날의 프레스 래더를 정해주셨다. (SOM에 있는 케틀벨 수련실 앞에보면 'RKC가 되기위한 통과의례' 스프링 노트가 있다. 나의 햇병아리시절 프레스사다리 프로그램이 적혀있다.)
6월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되는 어느날. 몸이 덜 풀린상태로 바로 RoP를 시작했었다. 선생님이 16kg을 정해주셔서 16kg으로 래더를 타다가 가볍게 느껴져 20kg로 해볼까하는 욕심이 났다.(자고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한다.) 20kg으로 프레스를 하는 순간 목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런걸 '목이 물린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단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고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요가조차도 못했다. 잘 때도 뒷목이 타들아가는 느낌이라 계속 잠에서 깼다. 몇일이면 낫겠지 했는데 2주 정도 고생했고 여러 사정이 겹쳐 수련은 전혀 못했다.
난 축구를 매우 좋아한다. 목이 다친지 이틀째 되던날 축구를 하자는 유혹에 넘어가 결국 테이핑을 하고 축구를 하러갔다가 햄스트링까지 다쳐서 돌아왔다. 아아.... 이 무슨일이당가. 집, 한의원을 오가며 쉬면서 정말 많이 반성했고 예비군 훈련가서도 반성했다. 2박3일간 오랜만에 신는 군화때문인지 몸은 더 망가져만 가는거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몇 달간 파타고니아 마우이 목만 신고 다니다가 군화를 3일간 신는건 내 몸에게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써트는 11월.
남은기간 150일도 안 남았는데, 실력도 형편없는데 섣부른 판단으로 부상까지....
더이상 부상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정말 푹 쉬었다.
다행히 부상에서 회복세를 보이고 SOM에서의 수련에 올인했다.보름이나 수련을 못하니 몸이 근질근질하고 의욕에 불탔다. 이때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보름이나 쉬었는데 나의 근력은 줄지 않았다. 5월 말에 프레스로 처음 들었던 24kg도 보름이후 다시 들었는데 오히려 거뜬하게 들어졌다. 내 몸의 신경시스템이 24kg을 들 정도로 개발이 된 상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체험이었다. "Strength is skill."
오래 쉬면 근육량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제 그 근육따위 상관없다. 진정한 힘과 퍼포먼스는 근육의 크기에서 나오는게 아니다. 다만 오래 쉬면 모빌리티가 망가진다. 어깨도 몸통에 잘 박히지 않았고 척추도 다시 굽고 목도 앞으로 다시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이 중간단계의 모습처럼.
모빌리티 회복이 시급했고 또한 어서 스내치도 익혀서 스킬을 더 쌓아야하는 상황이었다. 11월에 써트에서 24kg 스내치를 5분안에 100회를 해야하는데 6월까지는 스내치를 할 줄도 몰랐다.
(SOM에서는 이전 단계 스킬이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전에 배운 스킬들을 내것으로 만들어야했다.
하루에 수업 3개씩 = 총 3시간, 월화수목금 5일간 매일 가려고했다(집에서 SOM까지의 거리는 왕복으로 두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가장 많이 수업들은 주는 총15 class를 수강한 것이다. 어떤 주는 4일, 어떤 주는 5일을 갔다. 그리고 집에서는 내 방 문앞에 24kg케틀벨을 놔두고 지나다닐 때마다 프레스를 1회씩했다.(GTG-Grease the Groove : 틈날때마다 짬짬이 운동하는 것) 그렇게 한달 정도 지냈던 것 같다.
프레스를 많이 할수록 체중이 늘었다. 73kg정도 였는데 프레스를 배우면서 77kg까지 늘었다.(11월 RKC서트때는 81kg 까지 늘었다. 지금 글쓰는 현재 76kg 정도) 몸집도 커졌다. (이건 싫다, 옷이 다 작아짐)
그리고 그 기간 동안 28kg도 프레스했다.
7월이 되면서 고질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바로 결핵의 후유증.
날이 더워지면서 후유증은 더 심해졌다. 일반적인 땀이 아닌 식은땀이 많아지고 기력이 떨어졌으며 잘 때는 흉통에 시달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SOM에서 수련하고 나오면 상쾌하고 힘이 넘쳤지만 언젠가부터 오히려 진이 빠지고 다음날 수련에도 피로가 덜 회복되어서 인지 집중도가 떨어졌다.
하루 일과는 SOM에서 수련하고 와서 집에서 자는 게 전부였다.
매주 금요일 즈음에는 몸이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원래 1년 넘게 마시던 홍삼을 더 많이 마셨다.(이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나중에 깨달았다.)
이 후유증은 8월까지 날 괴롭혔다.
7월 초.
SOM 대학생 간담회가 있었다. RKC 서트를 준비하는 대학생 SOMers와 선생님들의 대화의 시간.
(http://cafe.daum.net/gaiayoga/Lq63/293)
이 간담회 이후 SOM에서의 주당 수련 일수를 줄이거나 매일 케틀벨 수련을 하던 것을 수정했다.
월,수,금 은 ROP위주로 수련, 화목은 요가만 듣거나 케틀벨 수업시간에 맨몸 겟업만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과감하게 SOM에 안가고 집 뒤에 있는 산을 천천히 걷기 시작한게 이때부터다. 이전에는 산을 뛰거나 빨리 걸어서 땀을 빼려고만 했었으나 선생님과 이미 걷기의 매력에 빠져있는 SOMers 에게 조언을 듣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천천히 걸었던 건 이 때가 처음이다. (한번은 오전 케틀벨 수업때 다 같이 정 건 선생님을 따라서 잠깐 산을 걷다 온적이 있다. 겨우 30분이었지만 이 30분은 나의 '걷기'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브람 파이브핑거스를 정말 사고 싶어졌다.)
그리고 간담회 때 강상욱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몰랐던 것을 배우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 짧은 간담회 시간에 새로 배운 건 너무나도 많았다. 그날 부터 그의 블로그의 글들을(예전 글 포함) 몽땅 읽었다. 체육의 역사 수업을 인터넷으로 수강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수업 따위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http://kangsanguk.egloos.com/)
(http://blog.daum.net/uki-1 예전블로그)
간담회 이후 <발경의 과학>이란 책을 접했다(SOM에 있음). 이 책은 오래된 책 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앞 부분은 정말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할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운동종목에서의 퍼포먼스를 위해 어떤 식으로 근력 훈련을 해야하는 가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뒤로 갈수록 용어가 어려워지고 번역도 이상하고 이해가 잘 안되서 포기.(곧 다시 처음부터 읽어볼 생각임) 뭐.... 앞 부분에서 엄청난 걸 건졌으니 .... ㄷ ㄷ ㄷ. 이 발번역되고 오래된 꼬질꼬질한 책이 나의 수련 방향성을 확실히 제시해 주었고 하드스타일 케틀벨 트레이닝에 대한 신뢰감을 더 높여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스내치를 배우게 되었다. 스내치는 스윙과 클린을 잘하면 자동으로 잘하게 된다. 특히 스윙.
처음엔 12kg으로 배웠으나 14kg, 16kg으로 조금만 무게를 올려도 깔끔하게 되질 않았다. 24kg 으로 100번을 그것도 5분안에 하는 인간들은 정녕 인간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테크닉 익히기가 어려었다. 무게가 조금만 올라가도 테크닉이 부족함이 확연히 드러났다.
12kg으로만 2달 가까이 연습했다. 가끔 무게를 올렸다가도 테크닉 부족으로 팔꿈치에 통증이 오자 다시 무게를 낮추어서 테크닉에 다시 집중했다.
7월 말에는 삼척 선교수련회가 있었다. 2주정도 SOM에 못갔다.(왜 안오냐고 전화왔었음. 철저한 결석생 관리 ㄷㄷㄷ) 선교 준비기간과 삼척에 가있는 기간동안 다시 모빌리티가 저하되지 않기위해 필사적으로 틈틈히 몸을 움직였다. 생수병이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라고 이때까진 생각했다. 왜 인지는 곧 설명하겠다)
휴게소에서 클린연습-팔꿈치가 몸통에 붙어있지 못하다. 손목또한 전완부터 1자로 펴지지 못했다.
케틀벨 수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름 노력해보려고 한건데... 헛짓거리였구나 하고 오랜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연습이 완벽을 낳지 않는다. 완벽한 연습만이 완벽을 낳는다."
-빈스 롬바르디-
연습은 항구성을 낳는다. 연습이 좋은게 아니라 좋은 연습만 좋다. 어떤 연습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날이 좋아질 수도 있지만, 나날이 나쁜습관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8월에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8월 첫 주 SOM에서 RKC서트 도전자들의 테크닉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스윙시 가장 기본인 힙힌지가 제대로 안되고 복부압축도 제대로 안되서 목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치킨넥 증상에 정강이가 땅에서 수직으로 박혀있지 못해서 케틀벨의 부하를 엉덩이로 받아내는게 아니라 전부 햄스트링으로 받아내고있었다(이 때문에 햄스트링 부상이 많았음). 24kg 겟업은 롤링에서 일어나기 조차 못했다. ㄷ ㄷ ㄷ 동영상으로 나의 자세를 보니 확연히 보였다. 스윙시 몸이 일자로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왼쪽 견갑대 모빌리티가 너무 좋지 않았다. 동영상에서 왼팔 프레스할 때마다 모빌리티가 부족한 상태에서 왼팔을 몸통에 박은걸 유지하고 팔꿈치를 다 펴려고 하니까 복부압축이 풀리고 흉곽이 뜨는 걸 발견했다.
이 점검덕분에 나의 누수지점들을 정확히 파악했고 남은 기간 동안 누수를 막고 보완하는 것에 집중했다.
수련의 구성도 많이 변했다. ROP를 중단하고 인디언클럽, 겟업, 스윙 위주로 다시 기초적인 공사에만 시간을 쏟았다.
SOM 케틀벨 수련실에는 500ml 생수병들이 있는데 그것을 주먹위에 올려놓고 수시로 겟업을 연습했다.
결국 인디언클럽 스윙을 집에서 수시로 하기위해 인디언클럽을 구입했다.
인디언 클럽으로 견갑대 모빌리티가 좋아지고 스윙의 자세도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스내치 테크닉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스내치가 조금이라도 다시 자세가 나빠지면 다시 스윙으로 돌아갔다.
맨몸겟업, 무게겟업은 매일 최소 2회 이상씩은 케틀벨 수련 전후로 했다. 겟업이 케틀벨 수련의 시작이요 끝인 셈이었다.
그리고 정건 선생님의 고생끝에 파벨의 저서 <엔터더케틀벨> 의 번역이 완료되었다(건 선생님 감사합니다ㅠㅠ).
삼척에 다녀오느라 난 다른회원들 보다 뒤늦게 책을 받았다. 8월 한 달간은 이 책을 끼고 살았다. 정말 말 그대로 교과서다. 단순한 케틀벨 운동방법만을 가르켜 주는 책이 아니었다. 중국영화에 비유하자면 전설로만 전해지던 최강의 무술 비급서 같은 느낌이었다. (이연걸이 태극권 비급서를 보고 태극권을 수련해 무술최강자가 되는 뭐 그런... ㄷ ㄷ ㄷ )
덕분에 하드스타일 케틀벨 수련방식과 철학이 너무나도 잘 이해되었다. 이후로 스스로 ROP 수련계획을 짜게 되었고 RKC서트 전까지 준비되어야할 애매했던 목표치를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
8월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것이다.
음과 양을 통한 나의 몸에 대한 이해.
흰색이 양(陽), 검정이 음(陰)이다. 그런데 둘은 절반의 반원으로 나뉘지 않고 커브를 그리며 서로를 넘나든다. 즉 칼로 무 베듯이 나눠있지 않다. 심지어 흰색 안에 검은 색 작은 원이 있고 검정 안에 흰색 작은 원이 있다. 음양은 상대적인 표현일 뿐 음(yin)없이는 양(yang)도 , 양 없이는 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둘은 서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도움을 주는 존재다. 마치 해와달, 밀물과 썰물, 들숨과 날숨 같은 존재다.(참고- http://cafe.daum.net/gaiayoga/IipS/78)
앞서 말했듯이 결핵이 완치 되었음에도 후유증에 시달려서 RKC 서트를 준비하는데에 많은 장애물이 되었다. 8월까지 계속 그 후유증에 시달렸다. 가장 큰 건 피로회복이 잘 되지않았다. 땀도 굉장히 많이 났다. 양요가 한시간 하고 나오면 엄청난 땀을 쏟았고 몸에서 엄청난 열이 났다. 이상태로 3일간의 서트에 참석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피로회복이 되지 않는상태에서의 거듭되는 수련은 운동이 되기는 커녕 힘든노동처럼 느껴졌다. 케틀벨 스킬은 늘고 있지만 다시 건강을 잃고 있는 느낌.
이건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아니었다.
이때 즈음 피로와 관련해서 간이 안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한의원을 수소문하다가 어머니의 친한 집사님께 중의원을 소개받았다. 강남 학동역 근처에 있는 중의원 약처방 전문 약국(파낙스 약국: 강남구 논현1동175-1) 이다.그냥 약만 지으로 갔다가 원장님께 정말 뜻하지 않게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결핵이란 병 자체가 음기가 부족한 병이고 그 후유증 또한 같다는 것. 때문에 음기를 보충해주어 음과양의 밸런스를 맞춰줄 것. 우리 몸이 활동하는데에 산소가 필요하다. 폐결핵완치이후 폐가 산소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깊은 호흡을 하는 요가를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지만 놓치고 있는게 한 가지 있다고 하셨다.
오랜기간 폐결핵 약을 먹으면서 약의 독성(항암제보다 독함) 때문에 간이 굉장히 안 좋아졌는데
폐로 아무리 많은 산소를 받아들여도 결국 그 산소를 활동하는 근육에 운받하는 것은 혈액.
몸에 혈액이 많아야 산소를 더 잘 운반하는데 혈액을 만들어내는곳은 바로 간 이라고 하셨다.
또한 혈액이 잘 운반되려면 모든 혈관과 근육이 잘 이완되있어야 더 빠르게 운반되고 활동도 더 원할해지며 피로 회복도 더 잘된다고.
그리고 RKC서트를 준비중이라 케틀벨 수련은 중단할 수 없고 SOM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컨셉과 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자 양적인 요가는 당분간 중단하고 음적인 요가를 지속적으로 해주고 어느정도 몸이 회복되었을때 다시 양요가를 시작해서 밸런스를 맞춰주라고 조언해주셨다.
걷기도 천천히 명상하며 걷기를 하면 음기가 더해지니 천천히 걷기를 강추 하셨다.
계속 먹어왔던 홍삼은 양기가 가랑비처럼 조금씩 축적이 되는 거라서 1년넘게 먹었으니 당연히 지금 양기가 차고 넘칠꺼라며 홍삼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
결국 이 중의원에서 간의 회복을 위한 그리고 음기 보충을 위한 약제를 지었고 RKC서트를 대비한 수련 계획 또한 이 음과 양의 밸런스를 중심으로 다시 재구성했다.(중의원을 찾아가기전에 내 몸상태에 대해 SOM선생님들과 먼저 상담해볼껄 그랬다. ㄷ ㄷ ㄷ 결국 다 SOM에서 했던 이야기...)
이전에는 양요가를 케틀벨 수련전의 준비운동에 적절한 요가, 인(음)요가를 케틀벨 수련후 마무리 운동에 좋은 요가 정도로만 인식하고 수련했었는데 내가 잘 못 생각한 것이었다.
이 중의원에서 지은 약을 먹으며(총 두 달 먹음) 매일 집 뒤에 있는 산을 1시간 동안 천천히 걸었고 SOM에서는 한동안 양요가 수련을 중단하고 과감히 인요가 수련을 중심으로 했다. 집에서도 틈틈히 한동작을 오래동안 유지하는 인요가를 했다.(이전엔 집에서 요가수련을 하면 빈야사중심의 양요가만 반복했었음)
수련 방식을 조금 조정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점차 후유증이 사라지고 피로감이 사라졌으며 놀랄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 다시 컨디션이 끌어올려지자 월수금 오전에 SOM에서 3시간의 수련(요가2시간 케틀벨 1시간: 스내치 스킬연습위주)을 하고 집에와서 점심을 먹은 뒤 산에서 걷기를 했다.(화목은 쉬거나 SOM방문해서 요가와 겟업위주수련. 화목에도 산에감. 심지어 토요일도) 산에 다녀온 뒤에도 힘이 넘쳐서 ROP를 집에서 했다. 이렇게해도 다음날 피로감이 덜해지자 이 하루 종일 수련하는 수련방식이 몇 주간 유지되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
아는 만큼 보인다. 여러 관점에서 나를 보려고 하다보니 결국엔 건강을 회복할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음과 양. 단순히 내가 정복해야할 케틀벨과 요가를 케틀벨=양. 요가= 음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가 결국 나 자신을 음과양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니 손쉽게 답을 얻었다.
산을 걸을 때 8월까지 계속 파타고니아를 신었다. 결국 문제가 생겼다. 파타고니아를 신을때 항상 맨발로 신었었는데 여름 내내 신고다니고 산에 다닐때도 계속 신고 다녔으니 언젠가부터 발냄새가 엄청나서 일상생활하는데에 신고다니기가 다른사람들에게 미안했다. 게다가 산에 다니기엔 미끄럽기도 했다. 내 안에서 비브람 파이브핑거즈(발가락신발)의 구매욕구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9월의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기대하시라.
맛보기 <예고>
|
첫댓글 주현씨에게 이런 숨은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그래서 양요가 시간에 그렇게 땀을 비오듯 흘렸었던 거군요.
다음 이야기도 완전 기대되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