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열전 2-2
제2대 정종(방과)의 여자들
무소유!
참 말로는 쉬운데 행하기가 어렵다.
정안왕후 김씨..
조선 왕비 중에서 넘버 3를 뽑으라면
꼭 그분을 추천하고 싶다.
소위 말하는 끝발도 없고 얼굴도 저 중국의
4대 미인인 서시, 초선, 왕소군, 양귀비들과
견줄 정도의 미인도 아니고 영조의 후처
정순왕후 김씨처럼 머리가 샤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수더분한 방과의 본부인으로
심덕과 후덕함을 겸비한 현처였기 때문이다.
정종은 무려 아홉 명의 후궁과
17명의 아들, 8명의 딸들을 두었다.
일반적인 아녀자 같으면 시기와 질투심이
극에 달했을 텐데 꾸욱 참고
남편을 내조하고 집안을 다스렸다.
자고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정종!
정안왕후 김씨의 말을 잘 들었다.
왜냐하면 남편에 대한
그녀의 진심과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다.
''땅과 여자는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이것은 옛날 버전이다.
영어로 하면 old fashioned proverb 이다.
지금은 남자가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
정안왕후 김씨, 정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마, 아니 서방님!"
초심을 잃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것은 하느님에게 가이샤 것은 가이샤에게!'
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 용상은 방원이 도련님 것이니
빨리 주인에게 돌려 줍시다.'
그러자 정종은 그렇잖아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인데 흔쾌히 OK 한다.
그래서 1400년 11월 방원이에게
옥쇄를 넘기고 훌훌 개성 백룡산 기슭에
인덕궁을 짓고 상왕 생활을 한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격구, 온천, 연회를 즐기며
현대의 골프인 사냥도 하면서 해피하게 살다
1419년 9월 63세로 해피하게 가셨다.
참 이런 저런 복도 많고,
처복도 많았던 왕이었다.
정안왕후 김씨,
여느 왕비처럼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부렸다면 방원이에게 찍혔을 것이고
정종을 비롯한 가솔들도 제 명에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일찍이 세상의 무상함과 무소유의 개념을
잘 터득하고 욕심을 내려놨던 정안왕후 김씨!
한 마디로
''존경합니다!''..
정안왕후 김씨는 정종보다 7년 앞선
1412년 6월 인덕궁에서 남편과 아홉 동생(첩)들,
그리고 25명의 양자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58세로 떠났는데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짝~짝~짝~'
박수를 보낸다.
유럽에서는 사자의 운구가 지날 때
문상객들이 박수를 친다고 한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그리고 저 세상에서 잘 살라고...
정안왕후 김씨에 글에서는
좀 표현이 저속스러운 것은 피했다.
글의 품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안왕후 김씨를 존경하기 때문이었다..
내일 또 계속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