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만들어 지는 인간의 삶
인생을 달관한 듯한 선배는 육효-역(易)에서 점괘(占卦)의 여섯 가지 획수를 통하여 보는 점술중의 하나-에 능했다.
괘가 그려진 막대를 항상 품에 넣고 다니며 그것으로 일진이나 월진, 혹은 일년 운세까지도 점 쳐 주기도 하였다.
그의 미래에 대한 예지력은 상당하여 누구나 그에게 돗자리 하나 깔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그는 돗자리는 커녕,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일종의 취미?생활을 잡기나 오락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는 점쟁이도 아니면서 육효에 심취되어 점을 쳐주고 있었을까?
그가 물었다.
"인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별말없이 답하였다.
"뭐.....삶은 계란? 아닐까요? 흐흐...."
선배는 그 말을 받아치듯이 말하였다.
"맞아....인생은 좃도 아냐...어쩌면 계란일지도 모르지."
그는 내가 가지고 있던 호기심만큼이나 인생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하였던 듯 하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선배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학문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정확도를 시험해 보는 듯 하였다.
그가 육효에 빠진 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을게다.
그런 선배와 만나면 선문답하듯이 대화가 이어졌다.
그 대화의 본질은 언제나 일정한 범위와 수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중에 인간사가 정해진 운명대로 살 수 밖에 없는 불우한 배경에 대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어느 산에서 오랫동안 수련한 도통한 위인도 아니었음에도 그는 항상 까무잡잡한 얼굴에서 무엇인가 빛나는 철학을 내뿜어 주었다.
물론 스스로는 개똥철학이라고 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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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역을 공부했고, 자미두수나 토정비결을 공부했다.
그의 스승이 되는 어느 선배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 버렸다는데, 그것이 바로 주역 이전의 학문때문이었단다.
- 주역의 주나라의 역술로 원래 바탕은 우주론적 철학을 담고있다.
우주의 원리를 통하여 인간의 길흉이나 기타의 운세를 점치는 기본적인 역술학문의 기본이라고 하겠다.
그것을 그는 사문통리, 혹은 수리학, 아니면 사문수리,사리사문이라고 하였다.
이 개 떡같은 학문은 듣도 보도 못한, 말 그대로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 교주 쯤 되는 인간이 만들었음직한 것이었다.
자신이 배웠던 그 어떤 역술보다 가슴에 와 닿은 것은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 때문이었단다.
소위 말하는 점쟁이 등이 근거없이 나불대는 것과는 매우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것 같았다.
자신이 후배나 교수에게, 혹은 미팅자리에 꼽사리 껴서 이러쿵 저러쿵 씨부릴때 그 내용이 아연실색+경천동지 할 만큼 천기누설과 같이 느껴지며 "기가 막히다"라고 여기며 기립 박수를 칠 수 있었으리만치 매우 대단한 것이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하여 나와 몇몇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그 댓가는 늘 술이었다. 죈장...
그의 종교관은 무교였다.
반 기독교에 비 불교인 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굳게 믿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귀신과 영혼의 존재와 외계인의 존재,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와 부처의 존재를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괴이했다.
종교인은 아닌데 그런 것을 믿다니.....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도 션찮을 이빨과 지식과 폼새를 고스란히 가슴에 침묵으로만 담아두었다.
그의 철학은 오직 "바르게 살자"였고 그것이 그의 인생 목표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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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학에서 우주는 그 시작이 숫자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도 우주와 지구,인간세상은 이 숫자로 부터 자유로워 질 수 없다고 말한다.
숫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며, 어디든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글자와 그림은 각기 뜻하는 코드가 있고, 각 물건들이나 동물, 심지어 식물 까지도 숫자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로 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간단하게 보이는 숫자로 움직여 지는 모든 시스템은 제어자(관리자)를 매우 편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느 수와 어느 수가 만나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는 가를 이미 연산화 시킨 것이다.
마치 우리가 프로그래밍을 하듯이....
매우 편리하게 우주와 인간세상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매우 새로워 보이는 그 숫자놀음에 푸욱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학습했다고 생각될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는 거의 도사에 가까운 꼬라지를 갖추고 그야말로 대중을 녹이는 이빨을 깔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숫자놀음이 가져다 준 확신할 수 있는 과학적 논리와 타당성이 그러한 자신감을 가져다 주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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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그 숫자놀음에 푸욱 빠져서 지냈다.
그가 그의 선배로 부터 숫자놀음을 배웠듯이, 나도 그에게 숫자놀음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주었고, 그것은 상당히 괜찮아 보이는 점쟁이의 예지력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신의 능력을 도움삼아, 혹은 감으로 읽혀지는 인간학습법에 따른 것이 아닌, 적어도 내가 생각하건데 비교적 과학적인 방법이었다는 것 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때, 그것은 다른 몇가지의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고민에 빠졌었다.
이 숫자놀음의 정체는 기존 종교가 말하는 "신의 부정"임과 동시에, 신의 다른 해석을 갖추고 있으며 과학적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지구상의 모든 운명들이 비교적 정해진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매우 맥빠진 운명론이다.
세상의 많은 점쟁이들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분명한 미래를 점쟁이로 부터 듣고 그것이 확실하게 맞았다면...(결코 우연이라는 가정속에 맞추어진 것이 아닌) 당신의 미래는 누군가가 엿볼 수 있게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로 부터 정해져 있는지 모른다.
그것이 신인지, 혹은 다른 존재인지는....
사람들은 그리하여 자신의 정해진 미래를 알기 위해 3만냥 이상의 돈을 지불하고 점을 보게된다.
왜? 미래가 알고 싶으니까....
그것은 내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친절한 자동해석"이다.
그런데 그것이 숫자로 정해진 것이라니....
그리고 그것은 타로나 자미두수,역학(주역),명리학,당사주...등등등의 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따지고 보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 수리학은 모두 가지고 있다.
모든 역술에 관한 지식은 그 기초가 숫자라는 것은 확연하다.
다만 그 숫자에 대한 의미와 해석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숫자에 의한 것이건 뭐건 그것은 심심풀이로 인생을 살펴보기에 좋은 하나의 오락거리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인간에겐 0부터 9라는 숫자만을 쓰게 되었을까?
인간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공히 열개인 것은?
왜 일년은 열두달이며 하루는 12시간씩 24시간일까?
왜 사람에겐 별자리와 12띠가 부여된 것일까?
인간의 체온과 일년이 365라는 숫자를 갖고 있는 이유가 있을까?
링컨과 케네디가 갖고 있는 공통점은 우연일까? 억지로 꿰맞춘 우연일까?
괘와 컴퓨터의 진법이 2진법이었던 이유는?
왜 인간에겐 미래에 바코드라는 것이 붙여질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바라보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수리학에 있어 보인다.
바로 0부터 9까지의 숫자에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상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단지 앞으로 얼마나 벌며, 얼마나 살 것인가에 대한 이기주의적인 관음증이 아닌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자세를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리학은 숫자에 대한 공부다.
그것을 나는 사람공부라고 칭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역술과 함께 그다지 효과만점의 대단한 새로운 역학도 아닌, 그저 심심풀이로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교과서의 바른 생활처럼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혔으면 한다.
우리는 상식의 세상을 살아야 한다.
죽음,돈,인생,종교.....
그런 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종교인이 아닐지라도, 돈이 없을지라도, 인생의 패배자 일지라도, 혹은 이미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모든 행위는 상식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리학은 바로 상식이다.
그 상식은 과학적이고 자연적인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만들어진 꽤나 괜찮아 보이는 것들이다.
그것이 신이건 누구건 간에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래밍이라면 그대로 살아줘야 한다.
착하고 정의롭게? 혹은 다른 좋은 모습으로라도...
그것이 <수리학의 철학>이란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