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안정태왕과 한주의 사랑 이야기
아들아, 아빠와 엄마가 만나 사랑하여 결혼하고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어
지금의 네가 있는 것이다.
먼훗날..너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빠와 엄마처럼 결혼도 하고, 또 너희를 닮은
아이들도 낳고 그렇게 하겠지..
옛날 사람들의 사랑은 또 어땠을까.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이겠지만, 그럼에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란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마음은 순수한 것이지.
때로는 사람은 사랑을 위해 희생하기도 하고, 또 엄청난 용기를 발휘하기도 해.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지.
그게 사랑의 힘이란다.
사랑얘기하면 서양에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우리에겐
춘향전이 있겠다. 그런데 이것은 소설이고, 우리 역사에도 보면 이들 못지않은,
아니 더 흥미진진하고 애잔한 얘기들도 많단다.
우리 판소리와 고대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춘향전'의 원형이 된 얘기가 아닐까 하는데
주인공은 고구려의 제22대 태왕인 안장태왕(安臧太王,~531,재위519~531)과
한(韓또는 漢)씨 미녀 한주(韓珠)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해상잡록(海上雜錄)을 참고하여 쓴 조선상고사, 삼국사기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전하는 얘기지.
안장태왕의 이야기를 다룬 어린이용 그림책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었던 장수태왕의 증손, 최대판도를 이룬 문자명태왕의 장자인
안장태왕이 왕에 오르기전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태자의 신분에 있을때의 얘기란다.
안장태왕의 이름은 흥안(興安)이라 했고, 태자임에도 몸소 적정을 살피러 상인의
행색을 하고 백제땅에 갔다고 해. 역시 이런걸 보면 안장태왕은 역시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 문자명태왕의 피를 이어 받아서인지 젊어서부터 이런걸 보면 영웅적인
모습이 있었던 것 같아.
그렇게 해서 지금 서울 옆의 고양, 행주땅에 이르렀는데..그때엔 개백현(皆伯縣)이라
불리고 있었지. 적정을 살피던 흥안태자는 그만 백제군사들에게 발각되어 쫓기다가
한 저택의 담을 넘어 숨어 들었는데 마침 그집은 개백현의 장로인 한씨의 집이었고,
한씨의 딸이 한주(韓珠)라 하여 아름다워 주변에 유명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숨어 들었다가 그곳에서 만난 흥안태자와 한주 아가씨는 서로 한눈에 반했고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부부의 연을 맺기로 맹세했단다.
그녀가 아름답기는 했던 모양이야. 이름도 구슬이라네. 구슬 주(珠).
그런데..고구려의 태자인 흥안이 위험한 적국인 백제 땅에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는
없었고, 곧 되돌아 가야 했어.
흥안태자는 한주 아가씨에게 이때서야 그의 신분을 밝혔지.
" 나는 고구려의 태자, 흥안이라오. 내 귀국해서 군사를 이끌고 이 땅을 취한 후에
그대를 고구려의 왕후로 맞아들이리다."
그렇게 흥안태자는 한주 아가씨에게 언약을 하고 떠났고, 한주 아가씨는 흥안태자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게 해를 넘기고 길어지고 말았지.
흥안태자가 귀국하고 오래지 않아 문자명태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흥안태자가 고구려의
새로운 태왕이 되었으니 이분이 안장태왕이란다.
안장태왕은 한주 아가씨와의 약조를 지키고자..수차례 장군을 보내 백제를 치고,
또 스스로 출전하기도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지. 이때의 백제는 동성왕을 거쳐 무령왕,
성왕의 시대가 이어지며, 다시 강한 백제의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어.
더이상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 때 연거푸 당하던 그때의 만만한 백제가 아니었단다.
그렇게 안장태왕도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지.
그 와중에 한주 아가씨에게도 큰 위기가 닥쳤단다. 개백현에 새로온 태수가 또 한주
아가씨에게 반해서 그녀에게 자신과의 혼인을 요구했는데, 한주 아가씨는 이미
혼인을 약조한 이가 있다며 거절했어.
태수는 노해서 그녀를 감옥에 가두고 매질도하고, 달래기도 하고, 또 죽이겠다고
위협도 하였지만, 한주 아가씨는 흔들리지 않았지.
이런 상황을 안장태왕도 전해듣고 초조해졌어.
그는 장수들을 모아놓고, 군사를 이끌고 가 개백현을 수복하고, 한주를 구해오는 자에게
천금(千金)과 만호후(萬戶侯)의 지위를 내리겠다 했지만..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았어.
그런데 을밀(乙密)이란 장수가 나섰단다. 을밀은 안장태왕에게 자신은 천금과 만호후가
아니라 안장태왕의 누이인 안학공주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그녀를 원한다 했단다.
안장태왕이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고 이를 허락하고 을밀에게 수군(水軍) 5천을 주었지.
을밀은 수군과 함께 출전하면서 태왕에게 자신이 먼저가 개백현을 수복하고 한주를
살릴테니 뒤이어 대군을 이끌고 오라 했지.
을밀은 또 그중에서 20명의 무사를 가려뽑아 변복하고 무기를 감춘채 개백현으로
숨어들게 한 후, 자신은 수군을 이끌고 곧바로 개백현으로 향했어.
마침 개백현 태수의 생일이 되어 잔치를 벌이는데 태수는 또 한주아가씨에게 수하를
보내어 자신과 혼인하면 살려주고 거절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지.
그런데도 한주 아가씨는 죽음이 눈 앞에 와있는데도 태수와의 혼인을 거부했고,
태수는 이를 전해 듣고 노해서 빨리 죽이라고 했어.
파주 오두산전망대에서(건너편 땅은 김포, 한강 물줄기가 서해로 이어지는 지점)
그런데 그 축하연 자리에 숨어들어와 있던 고구려 결사대가 곧바로 창검을 빼어들고
고구려 대군이 왔으니 항복하라 외치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살상하니 개백현의
성안은 혼란에 빠졌고, 그 틈에 감옥을 부수고 한주 아가씨를 구출하는데 성공했지.
때마침 들이닥친 을밀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개백현을 어렵지 않게 점령했단다.
이때 안장태왕은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남진하여 개백현을 향해 오고 있었어.
그렇게 한강 북쪽의 여러 성읍을 쳐서 항복을 받고 마침내 개백현으로 들어와
한주 아가씨와 만나게 되고, 그녀를 왕후로 맞아들였지.
물론 을밀도 안학공주와 결혼하게 되었고.
삼국사기 지리지의 개백현 항목, 주석에 따르면 '왕봉현(王逢縣)은 개백이라고도 한다.'
'한씨(漢氏)라는 미녀가 안장왕을 맞이한 땅이다.'라고 했고 달을성현 항목의 주석은
'한씨라는 미녀가 높은 산 꼭대기에서 봉화를 피워 안장왕을 맞이한 곳이기 때문에
후에 고봉(高烽)이라 불렀다'고 해.
이곳은 지금 서울 바로 옆 경기도 고양시 지역이고 행주산성이 있는 곳 주변을 말하지.
왕봉현이란 이름 자체가 왕을 맞아들인다는 뜻이란다.
아들아, 경기도 고양은 이번 여름휴가 여행때 그 주변을 지나쳤지.
그런데 아들아. 고구려 을밀 장군이 한주 아가씨를 구하러 왔던 그 길을 되짚어
헤아려 보니 재미있더구나.
강화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그곳..파주의 오두산성(烏頭山城)과 통일전망대를
기억하느냐? 이번 여름휴가 여행때 갔던 곳이 아니더냐.
파주 오두산성(관미성 추정지)
고구려 을밀 장군이 수군을 이끌었다는 것을 본다면..그는 분명 서해에서 강화도를
통해 한강 어귀로 접어 들었고, 오두산성을 지나쳐 한강으로 접어들어 거슬러 올라가
곧바로 행주산성 쪽으로 갔을거란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론해 낼 수 있단다.
그리고 그때 오두산성이 백제땅이었다면 군사를 5천이나 이끈 을밀 장군이 이곳을
은밀히, 그리고 빠르게 통과할 순 없었겠지.
아들아, 어때? 춘향전보다 안장태왕과 한주 아가씨 얘기가 더 재미있지 않으냐?
옛날 우리 조상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처럼 사랑 앞에서 용감했던 분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느냐? 때론 소설보다 역사 속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수 있단다.
소설은 지어낸 얘기지만, 역사는 진짜 있었던 일.
안장태왕과 한주 아가씨 얘기가 있었기에 춘향전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란다
작성자:방랑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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