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제5장 4
내맡김을 실천하고 사는 영혼들의 어두움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외적인 대립
하느님의 뜻만을 행하길 원하는 영혼에 있어서는
더 이상 아무런 고통도 없지만,
그 영혼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영혼의 완덕을 향한 계획이 어떤것이었는지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영적 조명을 받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완덕은 영혼의 모든 선입견과 그것이 느끼는 모든 것
그리고 영혼이 배워 알고 있는 모든 것과는 반대로 영혼에게 제시됩니다.
완덕은 이제
섭리에 따라 보내진 모든 고통의 형태로, 현순간의 의무들로,
죄로 이끌지 않는다는 사실 외에는
그들에게 전혀 선한 것이 되지 못하는 여러 갈등 형식으로
영혼에게 다가옵니다..
이는 온갖 숭고한 것과 특별한 성덕의 영광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처럼 보입니다.
가려지고 감추어진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은총을 생소하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베풀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십자가를 지기에는 너무 허약하다는 것을 느끼고,
의무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며,
매우 평범한 영적 수업에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화의 표상은
영혼이 자신의 방법과 비열한 본성에 대해 질책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는 성인들의 생애를 그리는 모든 영혼이
찬란한 성덕을 바라보기는하지만,
성덕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인해 비참해지며
하느님에 의해 있는 그대로 부과되는 대신,
소심함으로 인해 약함을 저지르게 됨을 의미합니다.
자신들의 공적(功績)으로 명성을 얻어 지적 수준이 높아진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그런 영혼을 경멸합니다.
그들은 "얼마나 괴상한 성인인가!" 라고 말하고,
불행한 영혼은 그들을 믿으며,
그러한 상황을 피하기위해 시행해 왔던 모든 무익한 노력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이런 질책들에 깊이 빠져 들어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만족한 만한 해답을 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 빠져든 영혼은 아무런 이끄심도 없어
길을 잃었다고 여깁니다.
영혼은 용기를 주고 조명해 주던 영적 묵상에서
더 이상 도움은커녕 은총의 역사하심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영혼은 이런 상실을 통하여 모든 것을 도로 얻습니다.
그와 같은 은총은, 말하자면 다른 형태로 취해져서
잃어버린 것보다 백배나 더해져
숨겨진 단순함으로 영혼에게 되돌려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