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엘칸나(제 4 일 2026.3.19.목)
출34:5-14 *찬송: 304장
새벽기도회에 오신여러분들 가운데서도 기억력이 깜박깜박 거려서 무엇인가 곧잘 잊어버리고 ‘벌써 내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하고 속으로 혼자 웃어본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상실증이라고 하는데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한 병적인 상태. 시간이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곧 잊어버리는 것을 ‘전진성 건망증’이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외상을 입었거나 졸도하였거나 머리에 전기충격을 받았을 때에 나타나는 ‘역행건망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일단 기억해내기는 하지만, 얼마 지나서 재생하려고 하면 과거를 더듬어 한참 동안 이것저것 따져야만 생각해내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어떤 일정한 시기에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의 경우는 그것만이 잊혀지는 ‘부분건망증’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합해서 ‘국한성 건망증’이라고 하는데, 대개 그 원인이 정신적인 면에 있다고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다른 것은 다 잊어도 하나님 섬기는 것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상주감리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도대체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인하여 어떻게 질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질투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단어인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의 가장 절실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는 질투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니 그는 그 질투 때문에 죽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범한 인류를 사단에게 내어주시기 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우리와의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인류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의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삶의 순간순간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십니다. 죄를 범했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회를 주시면서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출32장에서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동안에도 우매한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모세는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모세는 진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고 송아지를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삼천명이나 되는 우상 숭배자들을 죽였습니다. 모세가 다시 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을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삼사대에까지 보응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모세의 간절한 간구가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부르짖어야 할 것임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고 참된 성도들이 모세가 기도하는 것처럼 간구하도록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배울 하나님의 이름은 엘칸나 하나님이십니다. ‘엘’은 하나님을 의미하고, ‘칸나’는 ‘질투’라는 뜻입니다. 즉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질투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본문의 질투하시는 하나님, 엘칸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은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여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보다 더 클 수는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만큼은 사랑하고 계심을 ‘질투하신다’라는 표현으로 역설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너무도 빠르게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시선이 분산되고 맙니다. 그리고 곧 하나님은 질투하심으로 다시 자신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6:15절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엘칸나’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왠지 잘 안 어울리는 거 같지 않습니까? 그럼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표현이, 성경 이곳에만 나올까요? 출20:5절‘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34:14절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신4:24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신5:9절‘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수24:19절‘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표현한 구절이 생각보다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질투도 그냥 질투가 아닌 불같은 질투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질투’그러면 시기와 함께 부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신성한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했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질투의 국어사전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입니다. 곧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만약 남편이나 아내가, 어느 날 집에 와서 ‘여보 내가 당신을 95%를 사랑하는데 나머지 5%를 옆집여인을 사랑하고 있어, 옆집남자를 사랑하고 있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이 넓으니 그래 그렇게 해봐 합니까?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99%의 사랑도 용납할 수 없다고 나만 사랑하라고 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는데 너희는 여전히 나도 사랑하고, 우상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구나, 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구나’하고 강하게 질투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진노하시며, 노하기를 참지 않으며 벌받을 자를 반드시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그 질투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질투와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다릅니다. 질투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합니다. 밉고 화가 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미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질투는 연인 사이의 사랑의 질투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 마음에 질투가 불처럼 일어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이 클수록 그 질투는 억제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연인이라는 뜻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질투할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질투하는 분으로 표현한 것은, 그분이 우리를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질투가 얼마나 강렬하냐면, 그 질투 때문에 독생자를 죽는데 내어주실 정도였습니다. 사실 쉽게는 죄를 범한 인류, 타락한 인간을 사탄에게 내어주면 됩니다. 그건 포기입니다. 포기하는 것은 이처럼 쉽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보다 쉬운 포기를 선택하지 않고,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을 잘 아는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롬5:8절‘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질투는 열정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질투는 헬라어로 ‘젤로스’입니다. 젤로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질투라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열심, 열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의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성경이 뭐라고 했습니까? 약4:4절‘간음한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니라’영적 간음이라고 했습니다. 약4:5절‘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눈을 떼어 세상에 한눈을 파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질투가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부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가 우상을 섬길지라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를 비판하거나 공격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바로 여기에 ‘엘칸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간음한 신부인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간절히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엘칸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엘칸나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과거를 묻지 않고 돌아올 것을 간절히 외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인간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대가를 치르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받아야 될 모든 고통을 한 몸에 안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채찍질을 당하셨고 모욕을 당하셨고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앞에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짝하여 살면 ‘엘칸나’의 하나님은 반드시 예외없이 질투하십니다. 이것은 독점적인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먼저 우리를 독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올인의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시다.
그리고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질투하지 않으시도록 오직 하나님만 사랑합시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얼마나 고백했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제 오직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고백해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엘칸나의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간절히 요청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언제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