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웨어우얼은 중국 입장에서는 특별관리지구다.
중국은 신장의 독립을 주장하는 일단의 그룹을 반국가 반사회 테러리스트로 지목하고 경계한다.
중국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극심한지 인터넷까지 통제되는 지역이다.
한국 통신사의 스마트폰 로밍도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로밍 없이 출국했다.
현지 호텔의 와이파이가 터져도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는다.
운 좋게 틈을 비집고 카카오톡 전화 통화에 성공했더니 삽시간에 일행들에게 전파되었다. 여행자가 중국정부를 너무 비판하는 것은 아닌지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흔한 말로 반중은 아니다.
부디 건전한 비판으로 받아주었으면 한다.
다만 여행자는 가능한 한 보편성의 원리 위에 서고 싶다.
객관적 관찰이라고 하지만 혹여 주관적인 의견이 섞여있을 수는 있다.
그러므로 말과 글에 지나침이 없도록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
신장에서 잠시 디지털 암흑시대를 맞기를 작정했다.
이참에 휴대폰을 손에서 놓아보자.
잠시잠깐만이라도 깜깜히 생활을 해보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손에 들린 휴대폰에 미련이 남는다.
디지털 이전 시절이 까마득하다.
어떻게 답답함을 견디며 살았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그 당시 여건 아래 불편이 없었던 것 같다. 자 이제 길을 떠나자.
오늘은 카스를 떠나 파미르 고원으로 간다. 오전 10시 버스가 호텔을 떠났다.
길은 금세 G314 카라코람 하이웨이(KKH) 푯말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아직은 시내를 통과하는 구간이다.
한국의 고속도로와는 전혀 다르다.
양방향 각 1차선의 좁은 도로일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사람과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동시에 사용하는 다목적 도로이다.
신호등에도 자주 걸리고, 어떤 구간에서는 트래픽 잼에 걸려 한참을 지체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달리니 교통량이 줄면서 드디어 곤륜산맥의 설산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쪽 차창 너머 산맥의 봉우리들이 행렬을 지으며 따라온다.
높고 낮은 키를 서로 재고 있는 연봉들이다. 눈 쌓인 산꼭대기들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다.
설산 봉우리는 아침 식탁의 흰 접시에 담긴 흰 요구르트처럼 맑고 신선해 보인다.
나는 접시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차가운 차창에 얼굴을 붙여놓았다. 파미르 고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들어선다.
아, 나는 파미르에 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가슴 떨렸던 파미르라는 단어.
거기에 고원이라는 단어.
나는 이제 이 두 단어의 조합에 친숙해지는 중이다. 버스가 파미르 고원을 달리고 있다.
세계의 지붕, 지붕 위의 도로. 이제부터 파미르 고원의 압도적인 풍경에 파묻히기만 하면 된다.
나는 차창 풍경에 빠져들었다.
그게 여행자의 도리다.
참 파미르의 영어(Pamir)와 한자(帕米尔) 표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생전에 내가 개마고원을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고비 사막이 한없이 펼쳐지다가 뜬금없이 무논이 나타난다.
어? 벼농사도 짓는다. 어디를 가든 벼농사는 반갑다.
내 피에 농경민의 디엔에이가 흐르고 있어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은 고원의 초입인 것이다.
파미르 고원은 구간별로 해발이 3,500에서 4,700미터에 이르니 평균고도가 4천이 넘는다. 백양나무들이 지치지 않고 길가에 줄을 서며 따라온다.
대추나무 과수원이 이어진다. 복숭아나무는 멀리서 홀로 분홍 꽃을 피웠다. 하이웨이는 여전히 우리의 지방도처럼 왕복 2차선의 협소한 길이다.
KKH는 중국이 파키스탄과의 우호관계를 고려해 건설한 도로다.
1966년에 시작해 13년의 건설기간을 거쳐 1979년에 완공한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동맥이다.
막상 달려보니 건설기간이 많이 소요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길은 험준한 산맥을 뚫고 구불구불 나아가고 있다.
강과 초원도 지나야 한다.
도로는 카스와 이슬라마바드 인근 도시까지 1.300 킬로미터에 이른다.
이번 여행길 내내 버스가 그리고 일행이 의존해야할 길이다.
길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수시로 언급해야할 듯싶다. 휴게소에 내리자 바람이 얼굴에 닿는다.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으로 보아 설산 꼭대기에서 발원해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듯하다. 스포츠시계로 맥박을 재니 70를 찍는다.
정교한 내 몸은 벌써 고산지대에 적응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60에서 65정도를 가리키니 말이다.
오늘은 고도 3.600미터 이상 올라가야 한다.
나는 재빨리 작동을 시작한 몸에 안심한다. 파미르 고원에 들어서는가?
버스가 ‘개자(盖孜) 변경검사첨‘이라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병사 한 명이 ‘앞에 총‘ 자세로 올라오더니 여권을 검사한다.
우리가 변방통행증을 발급받은 사실은 이미 통지받았을 것이다. 검문을 마친 버스가 화장실이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화장실에 가는데 가판대에서 경찰관들이 '무료(免費)'표지를 붙여놓고 뜨거운 차를 나눠준다.
제복 경찰관 3명이 일사분란 신속하게 종이컵을 돌린다.
사람들이 늘어서서 컵을 받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나도 한 잔 받아들고 뜨거운 중국차 한 모금을 음미했다. 검문에 시달리는 여행객을 달래는 위무 공작인 것이다.
중국정부의 섬세하고 치밀한 계산을 엿본다.
나의 괜한 트집이다.
그냥 선의로 받아들이고 넘어가자. 창가에 모습을 드러낸 단하오채봉(丹霞五彩峯)이 이채롭다.
햇빛에 물든 붉은 구름 아래 다섯 빛깔의 산봉우리라는 뜻이다. 버스가 정격속도 시속 40킬로를 넘기지 않고 서행 운행하는 바람에 백사호까지 4시간이 소요되었다.
아니다. 40킬로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도로 형편이 아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백사산(白沙山), 백사호(白沙湖) 이로구나.
백사호는 천연호수에 댐을 막아 호수 면이 넓어졌다.
호수 건너편 백사산은 과연 흰 모래가 산자락에 수북이 쌓여있다. 비현실적인 풍광이다.
그래 맞다.
세상에 없는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이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저 모래들은 어디서 날아왔을까?
누가 저렇게 밀어 올렸을까?
무슨 힘이 작동해 수면으로 미끄러져 내리지 않는 것일까? 백사산은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가 난다고 해서 ‘소리 나는 모래 산’으로 부른다.
바람이 산자락을 덮고 있는 모래를 쓸어내린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모래가 흘러내리는 일은 없다.
내가 하도 신기해서 나중에 다른 비슷한 지형을 살펴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멀리서 보면 모래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는 모래가 서로 엉겨 붙어 이미 암석이 다 된 상태다.
그러니 모래가 굴러 내리며 부딪쳐서 내는 소리는 없다.
사람들이 백사산을 보고 모래니까 으레 소리가 날 것이라고 추측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바람이 비탈진 표면을 스치며 내는 소리는 가능하겠다. 열두나한봉(十二羅漢峯)이 큰 품을 벌려 호수를 빙 둘러싸 안고 있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산봉우리의 수를 헤아려보았다.
열두 개의 봉우리를 다 세고 나서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송경희 일행에게 설명해 주었다. 점심때가 한참 지났으므로 버스가 일행을 식당으로 데려갔다.
시골밥상이지만 내 식욕은 지치지 않는다.
허기를 채우고 나오니 비로소 이정표가 보인다.
솟대처럼 높이 세운 장대에 팻말이 사방을 향해 붙어있다.
그렇다면 여기는 파미르의 요충지일 가능성이 높다.
왼쪽으로 가면 타지키스탄, 오른쪽으로 가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물론 내가 서있는 곳이 중심이다. 나는 아직 중국에 있다. 석두성(石头城)으로 가는 길에 카라쿨리 호수에 잠시 멈추었다.
카라쿨리는 투르크어로 ‘검은 호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칠천 미터가 넘는 세 개의 산봉우리들이 호수를 감싸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여행자는 도통 모르겠다.
‘만년설산의 아버지’ 무즈타그 아타,
파미르 고원에서 가장 높은 7,649미터의 콩구르 산,
그 옆의 콩구르 지우베.
그 이름들의 산이 책상 앞에 있는 내 눈에 아른거릴 뿐 나는 지금도 하나하나 구별해낼 수가 없다. 버스가 파미르 고원 깊숙이 파고든다.
산봉우리에 쌓인 눈이 널따란 평원에까지 내려와 쌓였다.
군데군데 보이는 작은 호수 면은 아직 얼음에 덮여있다.
나는 황홀하게 펼쳐지는 차창 풍경이 아까워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길 수는 없었다. 버스의 진동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나는 졸다말다 하는데 버스는 파미르의 깊은 속을 통과 중이다. 석두성에 닿았다.
오후 5시. 아직 해는 중천이다. 자꾸 지적하니 미안하기는 하다.
내일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면 해결될 문제다.
고구려 사람 고선지 장군이 머물렀던 성이다.
그는 당나라 장군이 되어 741년 교역의 요충지였던
타쉬쿠르간 지역을 평정하기 위해 출병하여 석두성을 전초기지로 사용했다.
고구려 멸망이 668년이니까 장군은 나라가 망한 다음 태어난 유민의 자식이 아닐까 싶다. 작은 언덕에 성터가 남아있어 올랐다.
해발 3,100 미터의 고원은 성지를 제외하곤 모두 평지인데, 넓은 습지가 언덕 아래 형성되어 있다.
나는 내성에 올라 장군의 심정이 되어 요새의 형세를 살펴보았다.
내성은 거의 무너졌으나 외벽은 아직도 굳건하다.
안내판은 최초로 이곳에 성을 쌓은 시기를 한나라 때인 2,200년 전으로 기록하고 있다. 신라 사람 혜초 스님은 인도에서 불법을 구하고 이 길을 거쳐 당나라로 들어갔다.
혜초는 723년 20세 나이로 광저우에서 배편으로 동천축국 인도로 들어갔다.
그는 당나라로 나오는 길은 육로를 택했다.
왕오천축국전은 그가 카슈미르 지방을 거쳐 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북부를 지나
파미르고원을 넘어 727년 11월 쿠차국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눈은 차가워 얼음과 겹쳐 있는데 바람은 때려 땅을 쪼개는구나.
(중략) 불을 가지고 땅 끝에서 읊조리나니 저 파미르고원 어떻게 넘어갈거나.’
혜초가 이곳을 지나며 부른 노래를 보면 그의 고행 길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가슴이 서늘해진다. 정신을 가다듬고 성 안을 두루 살폈다.
내성의 중심에 현장 스님이 귀국길에 들러 23일 동안 머물며 설법을 펼쳤다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현장 스님의 설법 장소를 본 김에 조금 더 들어가 보자.
현장은 파미르에 대해서
‘얼음산을 넘자니 추위와 허기가 극심하다(crossing icy mountains, men suffer from cold and hunger.)’고 했고, 마르코 폴로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이라고 묘사하면서,
‘너무 높고 추워 새도 볼 수 없고, 불을 켜도 밝지가 않다(Pamier…so lofty and cold that you do not even see birds. Fire does not burn brightly.)라고 했다.
그는 또 파미르에서 거대한 뿔을 가진 양을 관찰하고 서양에 소개했다.
그래서 그 양의 이름이 Marco Polo sheep이 되었다. 석두성 인근의 타지크족에 대해 말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들은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중국 내 유일한 백인 계열 소수민족이다.
태양의 부족이라고 자칭하면서 황금 독수리(金雕, golden eagle)를 숭배한다.
몸길이 1미터, 날개 길이 2미터의 거대한 독수리는 4,000미터 이상을 날아오른다.
습지 해발 3, 014미터이니, 그렇다면 7천 미터 하늘에 사는 것이다.
비행기가 보통 만 미터 상공을 나니 독수리의 심장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된다.
숭배할 만도 하다. 그렇다. 이 모두가 파미르 고원에 얽힌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아직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습지 쪽으로 내려가 데크 위를 걸었다.
습지는 과연 황금초원(Alar, golden grassland)으로 불릴 만큼 상쾌한 경관이었다.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고요히 머무는 곳.
천상의 고원에 있는 습지는 무수한 생명들을 키우고 있다.
오리 한 마리가 물 위에 외롭게 떠있다.
두 번째 왔다는 일행 한 명이 전에는 백조도 보았다고 자랑삼아 말해준다. 저녁은 야크 고기 샤부샤부였다.
얇게 썬 고기가 냄새도 나지 않고, 의외로 질기지 않아 흡족한 저녁 식사를 했다.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 옆의 비비안은 냄비 작업에 협력하지 않고 수확만 하고 있다.
내가 눈치를 준 탓인지 젓가락만 들었다 놓았다 한다. 마음이 배부른 저녁이다.
석두성 인근 타현(塔县) 영빈관 호텔 방에 갇혀있다.
밖은 아직도 밝기만 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나돌아 다닐 곳도 없는 여기는 황무지다.
그래. 파미르 고원 한복판에 들었으니 갇혀있어도 좋다.
매서운 바람에 창밖 나무가 흔들리는 저녁이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