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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석 스크랩 마음의 오지를 벗어나는 일, 여행
바람 바람 추천 0 조회 135 15.10.03 13: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5102일에 쓴 글 (초고입니다.)

 

 

 

                                                                               마음의 오지를 벗어나는 일, 여행

                                                                                                                                                       김 채 석

 

  별 헤는 밤에서 첫 연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한 윤동주 시인은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 그리고 아름다운 말 한마디,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 이국 소녀들의 이름,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에 비둘기와 강아지, 토기나 노새, 노루를 비롯하여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라고 했는데 이는 한마디로 절절하도록 간절한 그리움과 함께 지난날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이름이다.

 

  누구든 지라도 마음속에 깊이 맺혀있는 사무치는 표현과 함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떠나고 싶은 계절이 사계 중에서 가을인 것 같다. 무언가 계절이 주는 의미가 쌀쌀하고, 쓸쓸하고, 스산하고, 소슬한 가운데 밀려오는 회한, 빙그르르 떨어지는 낙엽, 바람에 날리는 노란 은행잎, 논밭에 정나미 없이 무뚝뚝한 허수아비, 팍팍한 삶의 받침대 같은 정거장의 벤치, 푸른 달을 위에 두고 어둠을 비추는 가로등 아래 남폿불이 퍽퍽 거리며 사라져 가는 낭만의 포장마차 천막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아른거릴 땐 늙은 정거장을 뒤로하고 어디론가 떠나는 열차처럼 이유 없이 떠나야 한다.

 

  그 이유 없는 이라는 이유 속에 그리움이든 이상향이든 밤 열차에 몸을 담고 목적지가 호남선의 영산강을 따라 목포로 가는 곳에 무안의 몽탄夢灘역은 아니어도 꿈 여울, 꿈꾸는 여울, 꿈이 흐르는 여울 등 그 꿈이 어떤 꿈이든 무슨 꿈이든 간에 마냥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어떤 불순물과 같은 오염된 생각은 바람결에라도 스며들지 못할 것 같은 생각 속에, 어렴풋이 밝아오는 여명의 차창에 눈 돌리면 먼저 와버린 새벽 강의 물안개가 상처로 얼룩진 내 몸과 마음을 가벼운 이불이 되어 포근하게 감싸줄 것만 같다.

 

  한마디로 도시를 떠나는 여행은 잡지나 잡동사니, 잡식, 잡문, 잡초, 잡음, 잡기와 같이 잡것으로 버무려진 비빔밥과 같은 일상에 갇혀버린 마음의 오지를 벗어나는 일로 버스보다는 열차를 이용하곤 한다. 그것도 빠른 것보다는 오장환의 시 라스트 트레인에서처럼 최대한 더디게 느릿느릿 굼뜨게 가는 열차를 이용한다. 그중에서도 은근 밤 열차가 좋다. 어딘가 낭만적이면서도 어둠이 주는 편안함은 나의 태초가 되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따뜻하고도 포근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시를 읊조려보곤 한다.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 비애(悲哀)! // 개찰구에는 /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려 간다 //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 아직도 / 누굴 기다려 //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 목 놓아 울리라 //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오장환의 라스트 트레인전문)

 

  저무는 역 앞에서 비애를 보내고 병든 역사도 보내는, 보내고 싶어 하는 시인의 심정은 고통스러운 역사 강점기에 그리움과는 도무지 관련이 없는 뼈아픈 현실을 보내고 광복의 열망을 담기 위해서였을까를 생각하며 시골 역에 내리면, 예전처럼 북적이던 풍경을 만나보기가 힘들다. 그만큼 대도시 역과 시골 역은 극과 극의 양극화의 면모를 확실히 하고 있다. 차마 폐쇄된 역을 보면 잃어버린 옛 영화처럼 가슴이 찡하게 아려온다. 그나마 무인역이니 간이역이라는 이름으로라도 남아 있는 역은 다행이다. 그만큼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 여행 중에 전북 임실의 옛 서도역을 지나다가 반갑고도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까닭은 문학과 관련해서인데 최명희의 혼불에서 강모가 전주의 학교에 가거나 오는 곳, 효원이 매안마을로 시집오던 대문과 같은 곳으로 실지 문학적배경이 되는 곳인데 구불거리던 전라선 철도의 직선화공사로 인해 철도청에서 공매 대상 부지로 처분할 처지에 놓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렛포홈 벤치에 넋을 잃은 듯 앉자 녹슨 철길과 덩그러니 고개 숙인 신호기만 멍한 눈으로 바라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옛 모습으로 복원했다는 소식에 마음에 위안을 얻었던 바 크다.

 

  그리고 동안 수많은 작은 역을 거쳤다. 이른바 간이역이라 불리는 곳이다. 한결 모두가 작고 앙증맞고 예쁘다. 마치 길을 가다가 읍소하듯 무릎 꿇고,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여야만 예쁘고 화사하게 화답하는 흰빛 분홍의 슬픈 전설이 서린 며느리밑씻개 꽃이나 고마리, 꽃마리, 꽃다지와 같은 풀꽃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작고 낡고 초라하지만, 절대 초라하지 않는 기품이나 세월의 연민이 묻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경전선의 송정리역에서 곽재구의 시와 임철우의 단편소설 사평역과 관련이 있는 남평역 다음 역, 젊은 조광조의 넋이 머물렀던 능주역을 지나면 폐사지 같은 역 석정리역이 가장 기억의 깊이에 머물러 있다.

 

 

 

  석정리역은 가문으로부터 파문당한 자식처럼 폐역이라는 이름으로 흡사 낡은 사진과 다르지 않게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처럼 말없이 철길 주변에 배롱나무꽃이 핀들, 직박구리가 날아와 울고 간들 무관심 그 자체다. 역사도 없고, 매표소도 없고, 대기실도 없다. 다만 앞면이 환히 트인 농기구 창고 같은 낡은 건물 하나가 한편에 있을 뿐이고, 아무도 찾지 않는 반쪽짜리 플렛폼엔 낡은 벤치 몇 개가 그나마 외롭지 않게 저만치 예성산을 바라볼 뿐 죄다 움직이지 않는 정물 속에 철길건널목 차단기만 혼자서 오르고 내린다. 안 외로운 척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더 짠하다. 그래서 더 돌아서기가 힘들다. 시집가 몇 해만에 처음으로 친정집을 찾은 누이가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기 위해 보퉁이 머리에 이고 마을 어귀 돌아가다 몇 번이나 눈물 훔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돌리는 심사가 그럴까. 같은 폐역이라도 석정리역은 역의 얼굴이고 이름이라 할 수 있는 낡은 역 건물의 모습이 없으므로 더 그런 것 같다. 그만큼 없어지고 사라지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진다는 일이 참 쉬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윤동주 시인이 별 하나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그리 쉽게 잊히지 않는 것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감성이 죽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가 흔히들 감성이라는 말을 곧잘 하는데 여행이라는 자체가 무엇을 내려놓거나 버린 다기보다는 마음의 오지를 떠나 메마른 감성이나 감정을 일구고 찾는 일로 이 일이야말로 삶의 백신과 같은 것임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엔 가방에 낡은 책이라도 한 권 넣고 무조건 떠나야 한다. 딱히 어디라기보다는 어디라도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기실 만남도 부족한데 하필이면 이별하는 골짜기일까 하는 강원도 정선의 별어곡역이 그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음치임엔 분명하지만 채동선의 가곡 그리워를 목 놓아 부르고 싶다. 이 남자 왜 이럴까. ! 아무래도 정녕 가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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