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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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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기원전 6세기 힌두 개혁종교: 자이나교, 불교 야즈나발캬와 같은 『우파니샤드』 현자들만 기원전 7-6세기의 출가자들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스승들이 있었다. 『우파니샤드』의 저자나 스승들은 출가한 승려들이 하는 금욕적 수행을 ‘내적 희생제사’로 여기면서 그들에게 『베다』경전을 계속 암송할 것을 권했다. 이들은 금욕적 수행을 『베다』경전과 연결시킨 것이다. 같은 시기에 숲속에서 살던 어떤 스승들은 희생제사에 관한 『베다』의 가르침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가르침과 수행법을 발전시켰다. “아지타”(Ajita)란 스승은 윤리적인 가르침이나 죽음 이후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물론을 주장했다.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가 이끄는 “아지비카”(Ajivika) 학파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의 허상이며 이생의 삶이 전부라는 운명론을 고수했다. 위와 같이 극단적인 가르침도 있었지만 대부분 스승들의 가르침은 야즈나발캬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윤회 사상(Samsara), 현재 도덕적 행동이 다음 출생을 결정한다는 인연(Karman, 業), 윤회에서 해탈(Moksa)의 가능성 등을 받아들였다. 이런 기본적인 것은 일치했더라도 세부적인 사항들은 계속 논쟁이 되었다. 기원전 6세기에 인도 정통 종교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던 두 개혁종교, 불교와 자이나교가 탄생했다. 두 종교 모두 무사계급(Ksatriya)에 속했던 두 사람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버리면서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은 “마하비라”(Mahavira, ‘위대한 영웅’)로 불리는 “바르다마나”(Vardhamana, 기원전 599-527)와 “붓다”(Buddha, ‘깨달은 자’)로 불리는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 기원전 566-486)였다. 둘 모두 해탈하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엄격한 수도 생활의 길을 주창했다. 둘 다 베다적인 형식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베다 승려들에게 자이나 교도나 불교도들은 “베다 밖에 있는 자들”로 간주되었다.
“자이나”(Jaina)란 이름은 ‘정복하다’란 동사 “지”(ji)에서 유래한 명사로 자이나교의 종교적 특징을 내포한다. 자이나 승려들(Jains)의 목표는 모든 속박에서 자유하게 해주는 영혼의 순수성을 얻는 것이다. 이것 얻으려면 감각이나 인연(Karma, 業)을 정복하는 금욕적 전쟁을 싸워야 한다. 과격한 종교적 수련에서 성공한 사람을 “정복자” 곧 “지나”(Jina)라고 부른다. 이 지나를 따르는 자들을 “자이나”(Jaina)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자이나교의 최초 지도자는 “바르다마나 마하비라”(Vardhamana Mahavira)였다. 마하비라는 왕자였지만 나이 30에 가족과 가정과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옷을 벗고 머리를 뿌리 채 뽑아버렸다. 이런 극단적인 포기와 함께 그는 12년을 혹독한 금욕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42살에 해탈(Moksa)하게 되어 “지나”(Jina) 또는 “티르탄카라”(Tirthankara)가 되었다. 이렇게 해탈한 마하비라를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고, 그중에 브라만교의 『베다』경전 학자였던 “인드라부티 고타마”(Indrabhuti Gautama)가 개종하고 그의 첫 제자가 된다. 사실 마하비라의 중요한 열한 제자 모두 브라만에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자이나교를 최초로 후원한 왕은 “마우랸”(Mauryan) 황제 찬드라굽타(Candragupta, 기원전 321-297) 1세였다. 자이나 공동체는 평신도와 출가자 두 그룹으로 나눈다. 평신도 추종자들을 위해서 마하비라나 후기 자이나교 지도자들은 자기 절제나 맹세를 강조했다. 자이나교 평신도는 고기, 포도주, 꿀, 야식 등을 피해야 한다. 또한 사기, 도둑질, 폭력 등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금식도 해야 하고, 가난한 자들 뿐 아니라 비구승이나 비구니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자이나교는 티르탄카라 즉 지나나 다른 존귀한 인물들을 향한 수행법을 개발했다. 이런 방식 가운데 가장 알려진 예배의식이 “데바푸자”(Devapuja)이다. 자이나 승려들은 깊은 명상 자세를 하고 있는 지나(Jina) 형상들을 데바푸자 방법으로 숭배한다. 지나 형상 앞에 다가가서 절하고, 지나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 주위를 돌고, 지나를 목욕시키고, 그에게 예물을 드리고, 등을 흔든다. 그러면서 해탈한 지나의 초월적인 상태를 명상한다. 이들은 지나들이 그 형상들 안에 실제로 현존한다고 믿지도 않고 자신들이 드리는 예물이 지나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데바푸자는 다만 예배자들에게 지나들이 도달한 이상적인 상태를 기억나게 하고 또한 각자 그런 상태를 추구하도록 자극을 주는 명상 훈련일 뿐이다. 자이나교에서 평신도가 받는 윤리적이며 예식적인 엄격한 훈련들은 출가 승려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간주된다. 자이나 승려들은 영혼의 순수함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과정을 공동으로 돕기 위해서 종교를 조직한 것이다. 평신도가 세상적인 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게 되면 자이나교 공동체 안에서 큰 사건이 된다. 사회생활을 버리고 새로운 수도생활에 들어가는 예식에서 수도승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내고 자신의 이름도 포기한다. 이 시점에서 이 새로운 수도승은 지도자의 감독 하에 모든 폭력, 거짓, 도둑질, 성교, 개인 재산 등을 포기하는 다섯 가지 맹세를 한다. 엄격한 수도 생활을 통해서 이 수도승은 점차로 인연(Karma, 業)을 제거하고 최후의 승리를 목표로 영혼의 힘 안에 거한다. 자이나교에서 가장 극단적인 단계는 스스로 굶는 “살레카나”(Sallekhana)이다. 이 절정 단계에서 승려는 점차 영혼의 최상의 순결을 위해서 자기 몸을 포기한다.
불교도들은 사물의 본성을 완전히 깨달은 부처(Buddha)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미래에 부처가 될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는 무사계급(ksatriya) 출신으로 기원전 566년경에 히말라야 산맥 아래서 태어났다. 싯다르타는 첫 29년을 호화로운 가정에 편안하게 보냈다. 이후 해탈하기 위해서 금욕주의자로 방랑 생활을 하며 사회를 등졌다. 6년 동안 엄격한 생활, 학습, 명상을 한 후에 싯다르타는 기원전 531년 밤에 “보드 가야”(Bodh Gaya) 지역에 있는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날 밤 그는 열반(涅槃, Nirvana)에 이르고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된다. 깨닫고 나서 부처는 “바라나시”(Varanasi) 밖에 있던 다섯 승려에게 중도(中道), 사제(四諦, Aryasatya), 팔정도(八正道)에 관한 아래와 같은 법륜(法輪)을 굴렸다. 인간에게 고통(苦痛, Dukkha)이라는 것이 있다. 첫째, 태어나는 것(生)이 고통이고, 나이 들어가는 것(老)이 고통이고, 죽는 것(死)이 고통이다. 둘째, 근심, 애통, 아픔, 슬픔, 절망 등이 고통이다. 셋째,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는 것이 고통이다. 넷째,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이 고통이다. 다섯째, 원치 않는 것을 갖게 되는 것이 고통이다.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섞여서 뭉쳐진 것들이 고통이다. 고통의 원인은 아집(我集)이다. 쾌락을 얻으려는 욕망, 무엇이 되려는 갈망, 무엇이 되지 않으려는 갈망, 모든 것이 집착이며 고통의 원인이다(Samudaya Satya). 인간이 고통을 없애려면(滅), 모든 집착을 포기하고 끊어버려야 한다(Nirodha Satya). 모든 집착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가 열반(Nirvana)의 경지인 것이다. 집착을 끊어버리는 수행 방법이 바로 “8단계의 바른 길”(八正道)이다(Marga Satya). 부처와 그 추종자들은 자이나교가 했던 것처럼 『베다』종교에 대해서 통찰력 있는 비판을 가했다. 부처는 브라만들에 의해 주창된 공적 희생제사를 지나치게 낭비적이고, 폭력적이고, 결과가 불확실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브라만들이 주장하는 권위도 깎아 내렸다. 브라만들은 『리그베다』 10장 90절을 인용하면서 자기들은 푸루샤(Purusa)의 입에서 나온 특별한 계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처는 이런 주장을 비꼬면서, 누구든지 브라만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처는 심지어 힌두종교의 기반이 되는『베다』경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 했다. 불교에 초기 추종자들조차 “붓다 사캬무니”(Buddha Sakyamuni) 즉 석가모니 부처를 초자연적인 인물로 간주했다. 불교도들은 그의 모든 것들이 신통하다고 여겨 그의 재나 유물을 보관해서 “스투파”(Stupa, 佛塔)라고 불리는 무덤에 두었다. 불교 사원 내에 위치한 스투파 즉 탑(塔)들은 불교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불교 신자들은 탑 주위를 돌거나, 화환을 증정하거나, 향이나 등을 키고, 노래를 부르거나, 축복문을 암송하곤 했다. 최소한 기원후 1세기부터 불교도들은 부처의 신체 형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다른 중요한 불교 형상들도 예배의 대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투파나 부처 형상을 향한 이와 같은 신앙적인 행동들은 후기에 “푸자”(Puja) 예식으로 공식화 되었다. 기원전 3세기경에 “마우랸”(Mauryan) 왕 “아쇼카”(Asoka, 기원전 273-232)의 개종으로 불교는 남아시아의 제국 종교가 되었다. 아쇼카는 불교를 적극 지원하였고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포교사들을 해외로 파송시켰다. 아쇼카 왕은 그의 제국 전체에 기둥이나 바위 표면에 “자신은 ‘달마’(Dharma, 부처의 법)[힌두종교 문학에는 ‘달마(dharma)의 정의 또는 설명’을 뜻하는 "달마사스트라"(Dharmasastra)가 있다. "달마"란 본래 ‘지지하는 것, 유지시키는 것’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베다』 경전에서 달마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희생제사를 의미하였다. 불교 경전에서 달마는 부처의 가르침을 의미했다. 자이나교에서는 달마는 자이나 자료가 달마였다. 아쇼카왕은 자신의 종교 정치적 정책을 표현하는 데에 달마란 용어를 썼다.]를 추구한다”는 자신의 새로운 정책을 새겨 넣어 공포하였다. 달마를 추구한다는 것은 곧 관용, 조화, 자비, 비폭력 등에 기초를 둔 공동 윤리법을 뜻한다. 모든 종교인들을 향한 관용을 선포하는 반면, 그는 또한 비폭력을 강조하였다. 그럼으로 『베다』경전에서 가르치는 동물을 살생해서 드리는 희생제사를 실제적으로 배제하였다. 또한 달마의 비폭력 예식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불교승려들에게 예물을 보시하라고 가르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