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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피정 순례길 답사-4일째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살까?”, 심지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하고 전전긍긍하면서도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영혼의 심한 갈증을 느낄 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영혼의 갈증을 느낄 때 스스로를 성찰하고 침묵 속에서 걸으면 어떨까요? 기도하는 순례길에 나서서 영성에 젖어 봅니다. 순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등불이 되어 분명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제4일(2013. 3. 25) 오늘은 성주간 월요일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답사에 나서면서 '지치지 않고 꺾이는 일 없이' 이번 답사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님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바깥은 기온이 뚝 떨어져 속옷을 끼어 입었습니다. 양념분말소스를 넣지 않은 맑은 라면 국물과 햇반으로 아침을 먹은 저희들은 마을 철물점에서 산 작업용 장갑을 한 켤레씩 나누어 끼었습니다. 숙소, 절물자연휴양림을 나서는 길에 삼나무 가로수가 그림처럼 이어졌습니다. 10시 15분 성산포 성당을 출발한 저희들은 해안도로와 1132번 국도를 번갈아 가며 표선 성당을 향해 걸었습니다. 저희들이 지나는 곳에는 자전거를 탄 하이킹족, 배낭을 멘 젊은 부부, 커플파카를 입은 연인들을 간간이 스쳐갔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등을 밀어줘 걷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성산읍 고성리 섭지코지와 신양해수욕장 입구를 지나 해안도로에 접어들었습니다. 해안선 따라 길게 늘어선 석성이 이어지는 환해장성로에는 왼편으로 눈부신 바다가 따라왔습니다. 아침 햇살이 내려 앉은 윤슬 핀 먼 바다는 켄버스에 페인팅을 한 오일이 채 굳지 않은 나이프 끝에 머물고 가까이에서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팍팍한 그들의 삶을 짐작케 했습니다. 10년 전 수술한 무릎은 이상이 없는데 가끔씩 발목이 시렸습니다.
수평선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바다는 막막했습니다. 흔히 바다에서는 수평선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주에는 어딜 가나 소설가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표현했던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다운 바다"가 열렸습니다. 제주를 두고 바람, 돌, 여자가 많다고 삼다(三多)의 섬이라고 했다지만 제주의 바람은 더 알아줘야 했습니다.
온평리에 접어들자 바람은 다소 잦아들고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이 따사로워 남해안의 어느 해변을 거니는 것 같았습니다. 환해장성로로부터 시산리 삼거리까지의 해안도로는 11.3km에 달했습니다. 제주의 해안도로는 작은 포구마다 정겨운 갯마을이 바다를 향해 나직이 속삭이듯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자고 따뜻한 갯마을 온평리에는 해녀들이 많았습니다. 올해 일흔네 살의 공춘자 할망은 평생을 물질을 해온 현역해녀로 온평리 해변에 ‘원조 해녀의 집’을 열고 갓 잡아올린 해물을 썰었습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 일은 온평리 앞 해안도로를 걸을 때 생긴 일이었습니다. 빨간색 승용차를 탄 중년부부가 저희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불렀습니다. 그 부부는 카페 회원으로 올해로 결혼 30주년을 맞아 제주도로 여행을 온 박 사비노와 국 실비아 부부였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함께 점심을 나누는 자리에서 노란 순례 안내리본에 축하메시지를 담아 전달했습니다.
표선면이 들어서자 시골 면소재지 치고 번화한 분위기였습니다. 제주의 모래는 화산석이 풍화작용으로 만들어낸 검은 모래가 흔한 데 표선 해비치 해변은 제주에서 가장 넓은 백사장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흰 모래가 덮인 해변에는 열대야자수가 심어져 남국의 정치를 더 했습니다. 성산포 성당까지 18km를 걸은 답사대는 오후 5시쯤 표선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2011년 5월 28일에 준공한 표선 성당은 '제주특별자치도 건축문화 대상'을 받을 만큼 현대 감각을 살린 설계에 아름다운 성당이었습니다. 표선 성당에는 100년 넘은 늙은 소나무 숲이 자랑거리고 제주 이미지를 살린 종탑이 더욱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따뜻한 남쪽 나라 서귀포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됩니다. 이번 순례길 답사를 통해 저희들은 평소 먹고 잠자며 편히 쉬는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를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라산에서 절물로 내려가는 길목에 울창한 삼나무 숲길 말-새봄에 돋은 풀을 먹는 말 가족 햇살을 받아 윤슬을 피운 성산 앞바다 평생 숨비소리로 살아 온 해녀 결혼 30주년을 맞아 제주를 찾은 사비노&실비아 부부 답사대가 전한 결혼 축하 기념 리본 제주에서 가장 넓은 백사장을 가진 표선 해비치 해변 2011,제주 특별자치도 건축문화 대상을 받은 표선 성당 제주도의 이미지를 담은 표선 성당의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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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비노+실비아 형님! 결혼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아니 이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볼 줄이야....
행복한 시간 되세요.
고맙습니다~스테파노형제님과 여전히 안녕하지요.^^* 저번에 서울에 다녀 갔다고 저희 대표께 들었어요.
서울 가기 전날 형님네 꿈을 꾸었거든요. 아마도 보고싶었나봐요.
5월 피정에서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죠?
me too^*^
멋진 제주 성지 순례길 잘 보았습니다..^^*
마음지기님! 부활 은총 듬뿍 받으세요.
나도 저 길을 한 번 꼭 걸으리.
참나리님! 물론입니다. 부디 도전하십시오.
그리움님.. 글로만 뵙다가 직접 뵐수있어 영광이었어요.^^* 아직은 찬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걸으시는 순례 답사단의 모습에 마음이 찡했습니다. 식당이 마땅치 않아 더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드리지 못했다고 사비노가 아쉬워 했어요. 마음을 담아 주신 소중한 선물도 감사합니다.(저희 안방에 걸어 놓았어요~^^)
오드리님! 우리는 진실로 그렇게 만나버렸습니다. 코트차림의 오드리님과 함께 계신 사비노님이 믿음직하고 든든했답니다. 행복해 보였답니다.^*^
멋있고, 맛있게 글을 올려 주시는 그리움님! 맘 속에 그려보았든 것을 상세하게 글 주심 감사히 편하게 잘 읽고 보고 있습니다. 찡한 맘도 가지고요. 신부님! 네 분 건강하시길.... 홧팅^*^
"주님안에 사는 이는 복되도다"^*^
제주 성지순례단 건강지켜주시길 두손모음.
부디 저희들도 끼워주세용.
옛날 제주도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 납니다. 성주간에 특별한 봉사를 하시는 그리움님께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 합니다.
기침이 좀 나으셨다니 다행이에요. 그래도 아직 여정이 많이 남아 있어 조금은 걱정이지만 주님께 다 맡겨
드려아죠. 오늘도 이어지는 순례의 길, 주님! 함게 해 주셔요...성모님도요...
하늘인연님! 순례 중반에 접어들자 대원들이 지치나 봅니다. 레오 형제의 기침은 쑥지막한데 신부님의 발에는 물집이 생겼답니다. 저는 어디서나 앉으면 좁니다. 그래도 갈 길은 가야하구요....감사합니다.